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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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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하리만큼 잘났지만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환자가 된 젊은 사업가 윌 트레이너,
괴팍하리만큼 독특한 패션 감각을 지닌 엉뚱하고 순진한 여자 루이자 클라크"

이 문장만 읽어도 짐작갑니다.
평상시라면 만나기 힘든 남녀가 '불의의 사고' 덕(?)에 환자와 간병인이라는 관계로 만나 의도치 않게 사랑을 쌓아가는 달달한 연애소설...임을 쉽게 알수 있어요.
이렇게 결말과 진행과정이 투명한 유리같지만, 술술 읽히는 가독성과 '혹시나 다른 결말'이란 희망만큼 '내가 선택한 죽음'이란 주제가 곳곳에 드러나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윌 트레이너는 끔찍하기만 한 사지마비 환자의 생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마감하려 합니다. 빗발치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 마음을 굳히죠.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늘 그렇듯) 그의 삶에 등장한 여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로 예상치 않게 만난 그를 사랑하게 되죠.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사랑을 키워가던 윌은 사랑하는 클라크를 두고도 결.국. '선택적 죽음'을 맞이합니다. 제발 옆에만 있어 달라는 클라크의 외침을 외면하고 떠납니다.

<미 비포 유>에는 '선택적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이 존재합니다.
주인공 윌은 확고하게 선택적 죽음을 고수하는 반면, 클라크(그녀의 가족을 포함)는 사회적.도의적으로 잘못됐다 생각해요. 윌의 엄마는 그의 유년시절 기억에 사로잡혀 현실을 부정하고, 윌의 아빠는 거리를 두고 냉정히 바라봅니다.
이러한 시선 속에는 '선택적 죽음'이 정당한가에 대한 논의가 생략되 있습니다. 마치 조조 모예스가 일부러 '연애 소설'이란 장르를 선택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에요. 작가가 일부러 연애소설이란 장르를 골라 논란의 중심인 '정당성'을 '선택'의 문제로 치환시킨듯한 생각이 듭니다.
윌의 선택이 옳은가 그른가 대신, 윌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소설의 포인트에요. (그는 사랑하는 그녀를 놔두고 선택적 죽음을 택합니다)

선택적 죽음....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분명합니다만, 선택적 죽음이 그저 '자살'이 아닌, 엄격한 규제와  품위가 깃들어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고민없이 받아들이는 '생명 존중'이란 윤리의 실현 통로가 꼭 '자살'이어선 안된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 훗날, 윌 트레이너처럼 선택적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위치가 된다면, 저는 윌과 같은 선택을 하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떠나지 말아주세요 /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에요... 라는 통속성 대신, 상대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그것이 내 슬픔을 가중시키는 것이라 하더라도 의연히 감내하고, 상대방 부재로 인한 본인의 외로움에 어찌할 줄 몰라 슬픔에 함몰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누군가의 부재를 슬퍼하는 것은 그의 부재로 인한 내 정체성이 상실되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나를 두고 가면 어떻게 하나요. 나는 어떻게 살라구요...라는 통속성에 익숙해서일까요.

"어느 날 당신이 지금보다 나한테 화를 덜 내게 되고 또 마음도 가라앉으면,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이로써 당신은 나를 만나지 않았던 때보다는 훨씬 더 좋은, 아주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발판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요."

라고 말하는 윌과

"언니(클라크)는 아직 모를지 몰라도, 언니는 모든 게 달라졌다는 걸. 이제 윌 트레이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언니는 이곳에 머무르지 않을 터였다. 언니에게서 낯선 분위기가 풍겼다. 언니만의 깨달음과, 언니가 본 것들, 언니가 가본 장소들의 향기가 풍겼다. 우리 언니는 드디어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것이다."

이렇게 변한 클라크가 훨씬 더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은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당신이 감상에 빠져 질질 짜는 건 생각하기 싫어요.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라는 연애소설다운 문장까지.

적당한 몰입도와 선택적 죽음을 둘러싼 성숙한 사랑까지 (꼭 죽어야 성숙한건 아닙니다. 성숙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보여지는 게 아닐까요)... 여전히 인기있는 베스트셀러의 적당한 이유를 찾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읽은 날 2014. 5. 20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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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추리문학 베스트 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 / 해문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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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3대 추리소설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세계3대 추리소설은 다음의 세 작품을 말합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엘러리 퀸 <Y의 비극>             윌리엄 아이리시 <환상의 여인>

이 중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Y의 비극>을 읽었는데요, 두 권을 읽고 마지막 <환상의 여인>은 읽을 마음이 생기지 않더군요. 재밌었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 비해 <Y의 비극>은 실망이 컸습니다. 고작 이런 작품이 '세계3대 추리소설'로 불리다니..... 곧 호기심이 생겼어요. '세계3대 추리소설'이란 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세계3대'란 권위를 누가 부여했는지...

인터넷 검색을 해봤으나 알 수 없었습니다. (혹, 아시는 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어디에도 믿을만한 자료는 없더군요.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세계3대 추리소설'이라 불리는 작품이 있다는 정도였습니다.
정말 누가 언제 세계3대 추리소설이란 단어를 쓰기 시작했는지 미스테리합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추리 소설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1939년 작입니다. 그의 전 작품 중 스릴과 서스펜스가 가장 뛰어나다 인정받는 작품이라네요. '세계 3대 추리소설'이란 수식어와 함께 높은 기대를 안고 이 책을 읽었는데, 읽는 내내 '역시'란 마음을 감출수 없더군요.
소설 시작부터 명성의 아우라가 듬뿍 느껴집니다. 읽은지 5페이지도 안되 긴장감과 스릴이 잔뜩 느껴지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글은 짜릿한 기대로 흥분하기에 충분합니다.
이래서 세계3대 추리소설이라 불리는구나...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1939년 작품이다 보니 소설 내용은 어디선가 본듯 합니다. 수많은 공포.스릴러 영화에 영감을 줬음직한 (예전에 많이 무서워했던 '13일밤의 금요일'이란 영화가 생각나더군요.) 스포일러란 생각이 들더군요.
인디언 섬이라는 무인도(공간의 제한)에 여덟 명의 남녀가 정체 불명의 사람으로부터 초대를 받고, 초대에 응한 그들은 섬에 도착한 뒤 한 사람씩 죽습니다. 결국 8명 모두 죽고 섬에는 아무도 없게 됩니다. 특이한 점은 초대받은 8명 모두 고의인지 실수인지 알수 없는 의도로 사람을 죽였다는 겁니다. 즉, 법이 손댈 수 없는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이 초대를 받고, 그리고 아무도 없게 된 거죠.

 

 

 

 

이에 반해 <Y의 비극>은 복잡합니다.
13살 소년이 실제인물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을 읽고 '어린 마음속의 사악한 피'로 말미암아 엄마의 원수이기도 한 할머니를 실제로 살해합니다. 소년의 돌출행동을 본 소설 속 추리소설의 작가는 소년에게 충분한 교정의 기회를 줬으나 아이가 제멋대로 행동해 선도할 방법이 없다 판단합니다. 이대로 두면 두고두고 사회의 위협이 된다 여겨 소년을 고발(사건 예방)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누구에게도 도움되지 않는다며 소년의 죄를 알리지도 않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습니다. 

소설은 고작 13살 소년에게 살인자의 피, 고약한 피...운운하고, 연재소설처럼 이어지는 추리소설을 읽고 모방하는 소년을 몰래 혼자 지켜보며 아이를 테스트 합니다. 현실과 상상의 세계가 불분명할 수 있는 소년이 저지르는 행동을 '고약한 유전적 소양' 이라 물아 붙이고, 이를 Y의 비극이라니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말!

이 소설이 씌여진 1939년 영국의 사회배경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아마도 '우생학적 진화론'이란 괴물의 영향이 컸으리라 짐작만 갑니다. 그 시대에 잘못된 인식이 유행해 이런 소설이 씌여진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지금도 세계3대 추리소설이란 명목으로 읽힌다는 것은....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상으로 알 수 없는 '세계 3대 추리소설'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설마 추리소설이라 이 모든 게 미스테리한 건 아니겠...지요.


1. <Y의 비극> 엘러리 퀸
2.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3. <내가 그를 죽였다> 히가시노 게이고
4.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넬레 노이하우스
5.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6. <야행관람차> 미나토 가나에
7. <용의자 X의 헌신> 히가시노 게이고
8. <이유> 미야베 미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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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9-08-05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의 비극- 손에 땀을 쥐고 읽었는데.. 님의 독단적인 생각....
 
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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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못사는 세상에서, 어느날 누군가가 다같이 잘 사는 공동체를 꿈꾸며 신의 이름을 부릅니다. 가난한 사람, 힘이 약한 사람,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사람들은 (신이 누구든지간에 굳이 알 필요없고) 바람결에 떠다니는 소문의 진원지를 찾아 자연스럽게 모입니다. 사람이 모일수록 공동체는 힘이 커져 나라가 되고 제국이 됩니다. 나라가 되고 제국이 되자, 초기 지도자들이 가졌던 순수한 이상과 열정은 사라지고 탐욕이 자리를 꿰차게 되지요. 

그러는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초기 지도자의 뒤를 누가 이을 것인가, 누구에게 정통성이 있나....누가 공동체의 이상을 순수하게 지키고 있는가 혹은 지킬 수 있나.... 여러가지를 둘러싼 내분이 끊이지 않습니다. 

끊이지 않는 내분에도 그들의 위대한 공동체 이상은 그럭저럭 유지되어 고유한 내러티브는 문제와 희망 사이에서 공전합니다. 그러기를 천여 년, 어느날 부터인가 소리없이 침투하는 외부세력에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집니다. 

내가 누구인지, 누가 옳은지 그른지 내팽개치고 외부세력을 따라하려는 무리가 생기고, 한편에선 오랜 세월 이어온 이상과 순수를 되찾고 싶어합니다. 누구는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며 현실을 깔끔하게 재단하고 싶어하구요. 

한때 드넓은 평원을 평정했는데 갑자기 인식된 현실이 초라하고, 그래도 나의 기개는 여전히 굳고 곧다면....어떨까요.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은 이런 상황에 놓인, 사라진 것에 대한 담뿍한 애정의 시선으로 쓰여졌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 오스만(오스만 제국이 연상됩니다)은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가득한 열정에 따라 무작정 길을 떠납니다.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여정 끝에 '책'을 필사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메흐메트를 죽여요. 메흐메트는 죽었으나, 문제의 '책'을 베끼면서 영원한 시간의 균형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에 정지한 시간 속에선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알듯 모를듯한 표현이 나옵니다. 

 

메흐메트와 달리 '책'과 전쟁을 벌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책'이 외국 문명과 서구에서 유입된 새로운 문물이기 때문에 대항해야 한다며 조직적으로 맞섭니다. 

 

그런데, 이 문제의 책을 누가 썼나면, 기가 막힙니다. 

철도 잡지에 글을 쓰는 광신적인 철도원 늙은이가 자신이 썼던 어린이용 만화책에서 영감을 얻어 쓴 것이에요! 어처구니 없이 단순한 의도로 쓰여진 이 책을 보고 어떤 젊은이들은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믿고 인생의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죠. 

이런 상황을 보고 누구는 말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실 새로운 인생을, 새로운 세계를 원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책의 저자를 죽였던 거야." 

또 누군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책이란 우리에게 모든 세계를 연상시키는 그런 것이야. 새로운 인생을 글 밖에서 찾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었어. 우리가 원하는 나라를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도망친 거야." 

 

그렇다면 이 '책'의 존재는 무엇이며, '새로운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요....? 

 

독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이 소설은 오르한 파묵의 작품인데요, 이 소설은 터키 문학사상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이랍니다. 터키에선 단지 '재미'를 위해 책 읽는 것을 사치라 생각한대요. 

가장 많이 팔렸다는 말이 수긍갈만큼 <새로운 인생>은 충분히 난해합니다. 

 

이 소설의 배경인 1980년대는 터키 근대사 중 가장 다이나믹한 시대입니다. 오래된 이슬람 문화권을 유지하다 근대에 들어서 두 문화 사이에 낀 정체성을 갖고 있어요. 게다가 터키는 마지막 술탄(이슬람 세계의 공동 지배자)을 폐위시켰고, 공식적으로 정치와 종교를 최초로 분리한 무슬림 다수인의 나라입니다. 

소설과 인생을 동일시하는 파묵답게 이 작품에선 '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로 터키 사회의 주요 문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혼란스러운 이야기는 복잡하고 미묘한 터키 역사를 그대로 빼닮았습니다. 오래된 그들의 역사를 몰랐다면....정말 읽기 힘든 책이 아닌가 생각되네요. 

 

파묵은 새로운 인생을 '비유할 데 없는 순간(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에 맛볼 수 있는 행복(죽음)'이며, '서양 문명이 만들어낸 소설이라는 장난감'으로 자신이 말하려는 것은 오직 이 세계가 잔인한 곳이라는 겁니다. 

글쎄요. 

독자인 제가 보기엔 선뜻 동의하기 어려워요. 

'새로운 인생'은 어쩔수 없이 맞닥뜨린 외부 문명과 조화를 이뤄가고픈, 이뤄가야만 하는 그들 문화 같습니다. 

새로운 인생의 끝에 '죽음'이 있다고 한 것은, 시대 변화에 맞게 사라져야만 하는 일부 고유한 터키 문화의 운명이며, 자신도 모르게 전파된(이 소설에서 '책'이 우연히 쓰여졌고, 의도치 않게 전파된 것처럼) 외부문명과의 조화로 새롭게 만들어야 할 터키의 미래가 '새로운 인생'이 아닐까 싶네요. 

 

소설이 난해해 보이지만, 파묵의 말대로 내용은 새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기 드문 정체성을 갖고 있는 터키를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상하고 야릇한 힘이 소설을 꽉 잡고 있어요. 알듯 모를 듯....매력적이고, 오랜 역사만큼 묵직한 뭔가로 꽉 차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패배했지. 서양은 우리를 삼켰어. 짓밟고 지나갔지. 그러나 어느 날, 천년 후의 어느 날, 반드시 이 음모를 끝장내고, 우리의 수프, 검, 영혼 속에서 그들을 몰아냄으로써 복수를 하고 말거야." 

 

이러한 복수의 다짐은 곧 죽음으로 가득찬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 오르한 파묵은 말하지만.... 그는 분명 희망을 버리지 않았을거라 여겨집니다. 

주인공이 사랑했던 자난이란 여인의 소식이 소설 마지막에 등장해요. 

그녀의 남편은 메흐메트나 오스만과 달리 '그 책'을 읽고도 건강한 방법으로 책을 소화해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자난과 그녀의 남편...에서 오르한 파묵의 희망을 읽습니다. 

 

한때 드넓은 평원을 평정했으나 

지금의 현실이 초라하더라도 

여전히 굳고 곧은 기개로 

새로운 인생의 길을 모두 찾아가길 

소원합니다. 

오스만(터키)도 그러하겠지요. 

 

           

 

 

 

읽은 날  2013. 10. 9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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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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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험버트란 소아성애자가 궁리에 몰린 어린 소녀를 1년 넘게 데리고 다니며 아이 영혼에 상처를 주고, 훗날 소녀가 좋아했던 남자를 질투에 눈이 멀어 살해한다는, 매우 불쾌한 내용입니다. 

소아성애자가 좋아하는 소녀는 '님펫'으로 불리는데, 님펫이란 아홉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소녀 중에서 마성을 보이는, 종잡을 수 없고 변화무쌍하며 영혼을 파괴할 만큼 사악한 매력과 야릇한 기품을 갖고 있는, 선택된 소녀라 합니다. 

님펫에 매력당하는 남자와 소녀와의 나이 차이는 필수인데, 일반적으로 30~40년 나야 한다는군요. 

불쾌한 설정이지만, 마성을 지닌 어린 소녀....라, 뭔가 있을 것 같고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말대로 '불쾌하다'라는 말이 '독특하다'란 뜻일지도 몰라 읽어보게 됐습니다. 

 

소설의 줄거리(소아성애자의 님펫에 대한 사랑...이란.....)에 비해 쓸데없이(?) 두꺼운 500쪽을 읽어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완독했는데요, 그만한 매력이 있었어요. 

우선, 문장이 괜찮습니다. 

'심장 대신 푸르스름한 얼음 한 덩어리를 품고' 와 같은 문장이나 등장인물이 계단 내려오는 것을 '샌들, 밤색 슬랙스, 노란색 실크 블라우스, 각진 얼굴의 순서로 계단을 내려오면서' 라 표현한다든지...하는 것들이 좋았어요. 

또한 문장이 한 편의 시처럼 읽힙니다. '따다다다 따따, 또르르 똑똑' 하는 리듬감이 귀에서 떠나질 않더군요. 

그리고 페이지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작가의 너스레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신화 속 인물이 은유의 제물이 되는 건 당연하고, 언어의 어감이나 발음, 뜻을 뒤틀려 사용하는 게 200쪽은 되지 않을까.....(과장입니다~) 생각이 들더군요.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프로이트를 활용한 우스갯 소리였어요. 

'그는 빈의 도움을 빌려 거시기가 잘 붙어있는지 확인하다가'란 표현은 주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하던 프로이트가 거세불안 언급한 것을 놀리기 위한 것이고, '지그문트 2세 전하께서'란 표현도 그를 조롱하기 위해 쓴 표현입니다. 

 

작가가 유난히 프로이트를 조롱한 것은 문학에 대한 생각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작가는 상징과 비유를 싫어합니다. 교훈적인 소설은 쓰지도, 읽지도 않는다는군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에게(이 책의 작가죠)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다시 말해 예술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답니다. 어떤 국가나 사회계층 또는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문학작품을 연구하는 것은 유치한 짓이며, 작품은 집을 감싸는 안개 낀 여름날이나 안개 너머에 빛나고 있을 태양처럼 즐거움을 주는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 힘써 말합니다. 

 

시처럼 음율감 가득한 문장과 비호감 내용에도 불구 끝까지 읽게 하는 <롤리타>를 읽고 나니 얼떨결에 작가 생각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다소 유쾌하지 않은 소설의 내용에도 불구 독자로 하여금 읽게 하는 힘은 작가가 말한 심미적 희열 덕이며, 그것이 없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거 같아요. 

아름다운 언어의 행렬은 읽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며, 언어의 잔치를 관통하는 여운이면 족하지 않을까(그런 내용에도 불구).....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나 작품의 여운이 가시니...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이 책의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출신입니다.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으나,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고 1919년에 서유럽으로 망명했어요. 그 후 20년간 독일.프랑스 등지에 살면서 러시아어와 영어로 작품을 썼습니다. 그러다 1945년에 미국으로 귀화했습니다. 

이러한 우여곡절 탓에 작가는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한없이 다루기 편한 러시아어를 포기하고 내게는 두번째 언어에 불과한 영어로 갈아타야 했'답니다. 아무래도 모국어가 아닌 제2의 언어로 문학작품을 쓰면 여러가지 제약이 많았을 거에요.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속속들이 친근한 어감이 아니다보니, 함축적인 연상이나 효율적인 도구가 아니라 느꼈을 겁니다.  

작가의 이력이 이렇다보니, 님펫을 어린 소녀가 아닌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은유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린 10대란 나이에 많은 유산을 받았으나, 혁명으로 모든 걸 잃어버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웬지 '잃어버린 시간'이 느껴집니다. 

이런 해석에 대해 작가는 발끈하겠죠. '나는 비유와 은유를 싫어하고, 소설은 심미적 희열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하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듯 하네요. 

그의 말대로 소설이 심미적 희열의 결정체지만, 문학작품은 국가, 사회, 시대, 작가와 동떨어질 수 없다 생각합니다. 이 말은 문학이 시대와 사회를 논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문학에는 그 작품을 써야 했던, 혹은 썼던 작가의 개인적인 처지와 시대 사회적 상황이 투영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즉, 심미적 희열을 추구하는 작가의 성향에는 그(시대를 포함한)만의 고유 이력이 있을거 같아요. 

 

참, 그런데요.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둔 작가가 제 몸같지 않은 영어로 작품을 쓰고, 저는 김진준이란 분이 번역한 것으로 이 작품을 만났습니다. 작가가 러시아어로 쓴 다른 작품도, 이 책의 영어 원작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시적인 산문, 산문같은 시'를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김진준 씨는 20년 동안 번역가로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웠던 숙제라 했는데요, 모든 문장이 가진 고유의 진폭을 원작대로 살려준(충분히 그런 것 같아요) 역자에게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읽은 날  2013.  11.  21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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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ppermint 2019-08-12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이얼게 정성스럽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후기라니 님의 글을 읽고나니 롤리타가 절로 읽고싶어집니다.좋은글감사합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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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코인' 이라는 게 있어요.

 

 

운영자 없는 가상화폐 ‘비트코인’. 미국, 독일 등 전세계 정부와 언론이 주목하는 가상화폐이다. <출처 (cc) zcopley at flickr.com>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고안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가상화폐'인데, 수학 문제를 풀면 돈(비트코인)이 발행(이를 '채굴'이라고 한대요) 된다고 합니다. 최대 2,100만 비트코인이 매장(?)되 있는데, 2013년 8월까지 약 1,200만 비트코인(한화로 약 1조 5천 450억원)이 채굴됐다네요.

비트코인을 거래하는 중개서비스가 오픈되고, 일부 싸이트에선 결제 수단으로 인정되는 등 새로운 화폐로 사용하려는 시도가 활발한데, 각국.학자마다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답니다.

 

자세한 내용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22&contents_id=35725

 

 

이 내용을 보니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박사가 떠오르더군요.

박사는 비트코인 마이너(miner, 비트코인 발행을 위해 문제를 푸는 사람을 광부라 합니다)처럼 수학잡지에 실린 문제를 풀며 하루하루를 보냅니다만, 그들과 다르게 상금(비트코인?)엔 전혀 관심없는 사람입니다.

박사는 '수학'이란 창을 통해 세상을 보는데요, 그 창이 매우 따뜻하고 애정이 담뿍담뿍 담겨져 있습니다.

친구에게 놀림받기 싫어 늘 모자를 쓰고 있는 가정부 아들에게 '무한한 숫자나 눈에 보이지 않는 숫자에도 번듯한 신분을 줄 수'있다는 이유로 √ (루트)란 이름을 지어 주고,

박사의 시계에 새겨진 숫자와 가정부의 생일이 '우애수'라며, 페르마도 데카르트도 한 쌍밖에 발견하지 못한 우애수인만큼 '특별한 인연임'을 발견해 냅니다.

어떤 식에든, 어떤 숫자에든 의미가 있으니 이면지 같은 곳에 아무렇게 계산하면 가.엾.지.않.냐.....는 박사의 말에, 저는 가만히 밑줄 긋고 먼 곳을 바라봤습니다.

시선이 머무는 곳에 박사의 따뜻한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듯해, 절로 훈훈해 지더군요.

 

책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교통사고로 17년 전 기억만 갖고 있는 박사의 집에 '나'가 가정부로 들어가면서 셋(박사, 가정부, 가정부의 아들)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박사는 숫자 못지않게 가정부의 아들 루트를 아껴주는데요, 그 속에서 루트는 '내'가 깜짝 놀랄만큼 따뜻한 마음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내용을 극화시켜주는 장치로 80분만 유지되는 박사의 기억력이 나옵니다. 즉, 박사의 기억력이 80분만 유지되고 그 전의 기억이 사라지기 때문에 박사가 걸을 때마다 옷 속에 붙어있는 수많은 메모지(기억력을 대체하죠)로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납니다.

수식 앞에서 박사가 내쉬는 감탄의 한숨과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언어와 빛나는 눈동자는...80분 기억력 덕에 가능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80분마다 기억회로가 리셋되니, 언제나 새롭게 경탄하고 감탄할 수 있는거 같았어요.

그렇지 않다해도, 박사는 여전할테지만요.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박사는 그동안 봐왔던 소설 속 수학자와 굉장히 다릅니다. (그래봐야 <용의자 X의 헌신>, 버트런트 러셀, <로지코믹스>...만 떠오르네요)

박사는 수학을 통해 무언가 이루려 하지 않습니다. 진리를 구하려는 거창한 목표도 없어요.

그저...숫자와 수식을 사랑하고 쓰다듬어 줄 뿐입니다.

심지어 박사와 루트를 떼어놓으려 하는 미망인 앞에 백마디 말 대신 공식 한 줄을 써요.

 

  

 

이것을 본 미망인은 박사가 루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바로 알아챕니다. 이 공식은 '오일러의 공식'으로 박사가 가장 사랑하는 공식이거든요.

이 공식에 대한 표현을 볼까요?

 

"다른 공식에 비하면 묘하게 균형이 맞지 않는다. 큰 덩치를 마지막 0 이 받치고 있고...

한없이 순환하는 수와, 절대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수가 간결한 궤적을 그리며 한 점에 착지한다. 어디에도 원은 없는데 π가 e곁으로 내려와 수줍음 많은 i와 악수를 한다. 그들은 서로 몸을 마주 기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한 인간이 1을 더하는 순간 세계가 전환된다.

모든 것이 0으로 규합된다.

한 줄기 유성의 빛, 동굴에 새겨진 시 한 줄.....!"

 

이 책에 담긴 수식을 향한 박사의 애정 어린 마음을 보니, 박사처럼 무언가를 그 자체로 애정할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더군요.

80분만 유지되는 기억력이 있어도, 안될거 같아요.

 

비트코인을 고안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미국식 영어와 영국식 영어를 섞어 써서 두 명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어느 국가에서 만들었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수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만들었을거 같아, 자꾸 이 책이 연상되네요.

사토시 나카모토가 수학 그 자체를 좋아해 만든건지, 새로운 화폐를 만들려는 시도였는지, 그저 재미삼아 한 건지...아무도 모릅니다만,

'박사'의 마음으로 만든 것이길 빕니다.

아, 의도도 중요하지만 선한 쓰임이 더 중요하겠네요.  

 

 

 

 

 

 

다시 읽은 날 2013. 10. 23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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