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이후, 스티븐 제이 굴드>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 유난히 자주 언급된 '다윈', 궁금증이 생겼다.
"푹스의 <풍속의 역사>는 '인류의 기념비적 저작'이다. 나는 이 책을 스티븐 제이 굴드의
<다윈 이후>와 함께 내가 읽은 번역서 가운데 으뜸으로 친다."
"<조지 가모브>는 또 하나의 빼어난 과학자 자서전이다. 여러모로 찰스 다윈 자서전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에 필적하다."
찰스 다윈, 진화론 아닌가.
고교 생물시간에 봤을법한, 그 후로 보지 않을 법한 다윈이 왜 자꾸 언급될까, 궁금하여 이 책을
읽게 됐는데, 간단 소감은 그저 놀라움이다. '진화론' 세 글자에 담긴 무궁무진한 숨은 뜻과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전율했다.
내가 알고 있는 진화는 진화(進化)이다. 무언가 좋게 개선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다윈의 시대 1800년대에도 그러했단다. 1800년대 일상어로서의 진화는 진보의 개념과
확고하게 묶여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금도 그러하듯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하고 있으며,
인간 진화를 단순한 변화가 아닌 키의 증가 또는 그 밖의 독단적인 척도로 측정한 개선과 향상으로
정의하고 있다.
하여, 초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다윈조차 '진화'라 부르지 않았는데, 다윈이 획기적인 이론을
만들어 놓고도 21년!이나 공개하기를 두려워한 것은,
다윈 스스로 자기 이론 속에 내포된 철학적 의미를 분.명.히. 깨닫고 있었기에 21년이나 이론을
책상 서랍에 썩히고 있었다.
그건 바로, 철학적 유물론 - 인간의 정신이 만약 인간 두뇌의 산물 그 이상이 아니라면, 하느님이란
(1800년대임을 감안하자!) 두뇌의 환상이 빚어 낸 또 하나이 환상 이외에 도대체 무엇일 수
있겠는가!
다윈 스스로 분명히 인지했을 거라 추정되는 이론의 철학적인 함축성, 그는 공개하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다윈이 말하는 '진화'는 개선이 아니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개체의 자연 선택의 적응을 메커
니즘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 변화는 일방향적이거나 무방향적이며 점진적인가
하면 돌발적이고 선택적인가 하면 중립적이다.
결단코, 개선이 아님을 다윈은 이 책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스티븐 제이 굴드' 이다. 굴드는 미국의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 등장할 만큼
대중과 가까웠던 과학자였다. 그가 1974~77년까지 <자연사>에 게재한 연재물을 모은 이 책을
통해 각종 자연과학적 지식과 이해를 넓힐 수 있는데, '과학'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다.
"과학이란 객관적인 정보를 냉혹하게 추적하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창의적인 인간 활동이며,
과학계의 천재들은 정보 처리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예술가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이론의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발견에서 유도되는 결과가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 창조적인 상상력의 귀결이다. 우리는 과거가 아닌 현실의 확신에 의존해서 과거사를
심판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론의 변화가 당대의 사회적.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받는... 이것이 바로 1960~70년대 미국에서
넘쳐났던 '생물학적 결정론' 이었다. 전쟁과 폭력의 책임을 이른바 우리의 육식성 조상들에게
떠넘길 수 있다면, 우리에게 남아있는 '살인자 유인원'의 성향이 아닐까 생각, 흑인과 백인 수많은
인종 차별주의...
하나의 사상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대한 결과를 빚고 있는지, 우리 삶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
든 것인지 알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읽은 '다윈 정신'.
사회적.정치적으로 뿌리 깊은 시대의 사상 속에서 새로운 것을 통찰하는 것,
어느 한 시점에서 유용했던 구조가 이후의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항상 유용할 것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
'전적응'의 원리 - 어떤 구조물이 형태를 크게 바꾸지 않으면서 그 기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작고 원시적이며 나무에 살고 있었던 포유류 집단 내부로부터 진화된 이유가 무엇일까?'
굴드의 이 도발적인 질문에 대한 스스로의 답을 보자.
"'아직도 멀었다'는 자연사학자가 할 수 있는 강력하고도 적절한 선언이다. 우리는 작은 문제에
한해서라면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다. 우리는 중간 정도의 문제라면 웬만큼은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참으로 큰 문제들은 풍요로운 자연 앞에 무릎을 끓는다. 변화는 일방향적이거나 점진적
이거나 하면 돌발적이고 선택적인가 하면 중립적이다. 나는 앞으로도 자연의 다양성을 만끽할
것이지만, 확실성이라는 갈피를 잡기 어려운 괴물은 정치가와 목사들의 몫으로 남겨 두고자
한다."
쉽게 만만히 읽혀지는 책은 아니지만, 충분히 차고 넘치도록 책의 진가가 가슴과 뇌리에 떠나지
않는다.

읽은 날 2011. 12. 27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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