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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여긴 쿠바야 - 우리와는 다른 오늘을 사는 곳
한수진.최재훈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11년 7월
평점 :
얼마 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사망했습니다.
최근 변화하고 있는 남미의 명망있는 대통령 사망이라는 사실보다 쿠바가 퍼뜩 떠올랐어요.
베네수엘라는 남미 최대의 산유국으로 하루 2만 배럴이나 되는 석유를 쿠바한테 공짜로 공급하고, 쿠바는 의사, 교사, 운동 코치, 예술가들을 빈민가와 가난한 시골에 파견하거나 환자들을 쿠바로 데려와 무료로 치료를 해주는, 나눔과 연대의 힘 - 중남미 PTA를 하고 있는 나라거든요.
(※ 중남미 PTA : 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에서 시행 중인 '민중형 무역협정'으로 전미자유무역협정(FTAA)의 대안적 지역통합 전략이다. FTA가 이윤 극대화를 목표로 한다면, PTA는 회원국 주민의 공공서비스 질 향상이 목표이다.)
차베스 대통령 사망이 중남미 PTA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걱정입니다만.
오늘은 수도인 아바나 공항에 '온 인류가 (나의) 조국이다 (Patria es Humanidad)'란 멋진 문구를 달고 있는, 쿠바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괜찮아 여긴 쿠바야>는 저자인 한수진과 까밀로(최재훈)이 일반 여행자가 잘 가지 않는 구석구석을 누비며 쿠바의 본모습을 오롯이 기록한 책으로 쿠바의 일반 여행 안내서로는 부족하지만, 있는 그대로 날것의 쿠바를 만나기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전 그들의 여행을 통해 본 쿠바의 역사와 현재가 인상적이었어요.
쿠바의 현재를 말하기 위해선 그들의 역사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잠깐 소개할께요.
1492년 콜럼버스가 이 섬을 발견한 후 17세기 중반 영국군이 아바나 항구를 점령, 18세기 말 아이티에서 일어난 흑인 노예혁명으로 수천 명의 프랑스인들이 대거 쿠바로 쫓겨 온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계급 구조를 바탕으로 1868년 10년 간에 걸친 1차 독립전쟁을 거쳐 1895년부터 시작된 2차 독립전쟁에서 스페인을 거의 몰아내기 직전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자 이번엔 바로 코앞에 위치한 미국이 쿠바에 끼어들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쿠바는 사실 상 미국의 식민지나 다름없게 되지요.
그러다가 1959년 쿠바 혁명이 시작됐어요. 피델과 라울 카스트로는, 까밀로 씨엔푸에고스와 체 게바라 같은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젊은이들과 함께 부정부패로 국민의 미움을 받아온 독재자를 축출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선언합니다. 그러자 미국이 바로 침공, 실패로 끝나자 외교단절은 물론 국제무대에서 추방, 40년 이상 제재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소련과 동구권 무역에 의존하던 쿠바는 1990년 소련이 해체되자 매우 큰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거의 외국인 관광객에 의존하다, 지금은 무상 의료와 교육을 하는, 부족하지만 자립이 가능한 나라가 됐다고 합니다.
쿠바의 젊은이들은 대학교까지 완전 무료로 교육받는 대신 2년 동안 의무적으로 사회봉사를 한다고 합니다. 내가 흘린 땀방울로 병든 사람이 건강해지고 못 배운 사람이 읽고 쓸 줄 아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기쁨과 자부심으로 더욱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그게 바로 체 게바라가 꿈 꾼 '새로운 인간'의 모습이었다네요.
그런, 게바라가 꿈꾸던 이상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을까요?
저자가 만나본 쿠바 사람들이 말합니다.
"혁명의 큰 뜻에는 동의해. 그리고 공짜로 배우고 무료로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지. 하지만 너희는 이렇게 다른 나라에 여행을 다닐 수 있잖아. 우린 그럴 수가 없어. 일단, 보통사람 월급으로는 비행기 표를 살 수가 없어. 여권을 받는 절차도 무지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든다구. 그리고 운 좋게 여권이 나와도 외국에서 초청장을 받지 않으면 쿠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
그들 목소리에 저자는 이렇게 말해요.
"근데 막상 가보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산다는 게 쉽지가 않아. 한국만 봐도 그래. 너희가 보기엔 우리가 부러울지 몰라도, 아침부터 밤까지 평생 뼈 빠지게 일만 하고 행복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아."
이 말이 쿠바 사람들 귀에 들릴.....까요?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에 충분한 생활은 가능하지만, 옷을 산다거나 여가를 즐길 수 없다....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무상 교육과 의료 그리고 자립자족이 가능한 반면 여유를 즐길 수 없는 생활과, 치열한 경쟁에서 승자가 되어야만 누릴 수 있는 여유....
어느 것이 더 좋다 딱 잘라 말하기 어렵네요. 그저, 쿠바를 이렇게 만든 미국의 경제 제재가 원망스러울 뿐입니다.
혁명의 1세대를 지나 요즘 쿠바 젊은이들은 리바이스 청바지에 비싼 카메라를 메고 거리를 활보하는 서양 관광객들을 보면서 자신의 낡은 옷을 초라하게 느끼고 있답니다. 비록 그들이 실천하고 있는 이상이 아무리 근사하고 멋져도 당장 자신의 삶이 초라하다면...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해도, 쿠바는 사회주의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미국 정부의 온갖 공작과 음모, 혹독한 경제 봉쇄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또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그 어떤 나라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료, 문맹퇴치, 주거 같은 보편적 복지와 사회 안정을 이룩한 나라입니다.
결코 완벽하지 않고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되지 않은 채 그래도 한 발 한 발 천천히 전진해나가는 사회는 세계에서 오직 쿠바 뿐이라는군요.
그래서 쿠바는 자본주의와 다른 대안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푸른 유니콘'으로 여겨지고 있어요.
최근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나 북유럽 국가들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이상을 흠모하지만, 결국 우리가 가진 것에서 미래를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근사하고 멋진 체 게바라의 '새로운 인간'은 쿠바에서 가능한 것이며, 우리는 우리만이 가진 역사와 문화 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꿔야 하겠지요.
그 새로운 미래에 쿠바는 분명, 멋진 영감을 주는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저자의 친구 라몬, 윤종신을 닮았다고 해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읽은 날 2013. 2. 17 by 책과의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