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 스님과 함께하는 내 마음 다시보기
혜민 지음, 이영철 그림 / 쌤앤파커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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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 워낙 히트친 책이라 읽어보려 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뻔한 책에서도 배움의 문장을 발견하는 이웃의 능력을 보고 도전해 보기로 했어요. 명언 가득한 책에서 문장을 건져내 자신을 되돌아 보려는 야심으로 이 책을 읽게 됐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별로였어요.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그닥 없었습니다. 대신, 이런 책이 엄청 잘 팔릴만큼 우리 사회가 지쳐 있구나, 이런 짧은 메시지를 사람들이 좋아하는구나....를 느꼈습니다. 

저는 이 책이 별로였지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2012년부터 어마어마하게 읽힌 책입니다. 하여 의문이 생기더군요. 

왜 나는 이 책이 별로일까.....? 

이 책에 나오는대로 지혜롭지 못한 것일까?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나는 그 정도는 안다'에서 시작하니 새로운 것이 들어갈 틈이 없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나는 아직 모른다'라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 이야기에 귀 기울이니 더 큰 지혜가 쌓인다죠. 

이 문장을 보며... 며칠을 생각했습니다. 

수긍가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고... 반성을 잠깐 했다가, 꼭 그건 아닌거 같고... 결국 인정해야 하는게 아닌가...자꾸 궁지에 몰려, 이렇게 결론을 내버렸습니다. 

이 책은 내 취향이 '아닌 것'으로 하자고. 

 

이 책은 혜민스님이 트위터에 올린 글을 모은 거라 글의 호흡이 짧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많은 사람이 혜민스님의 글에서 위로와 응원을 발견했고 그것이 폭발적인 호응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저는 짧은 글과 명언보다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러 저러한 경험을 했고 무엇을 느꼈으며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발견'했는지 듣는게 더 좋습니다. 그런 글이 더 진정성있게 느껴집니다. 

 

작년, 혜민스님이 TV 예능프로에 나온걸 본 적이 있어요. 

생각지 않게 시쳇말로 '대박' 친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안티도 제법 있었나 봅니다. 위로와 힐링만 얘기한다고 사회가 달라지냐, 어처구니없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게 더 중요한게 아니냐며 공격하는 무리에 적쟎이 놀라고 상처받았나 보더라구요. TV에서 그 이야기를 하며 눈물짓는 모습을 봤는데...무언가 모를 아쉬움 한가닥을 느꼈습니다. 

안타까워 해야 했는데, 아쉬움을 느꼈다.... 또 반복되는군요.
(혜민스님의 상처가 작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상처와 공격에도 좀 더 흔들림없이 굳건하고 포용력 넓은...스님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었어요)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이 책은 베스트셀러 유명세와 개인적 감상의 괴리를 현격히 느끼게 해줬습니다. 괴리를 어떻게 볼 것인가란 숙제를 받았지만, 낙제점이네요. 

그저,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우리를 다시 한번 발견한 것에 의미를 둡니다. 

그래도 나아지기를, 또 소원해 봅니다.           

 

 

 

 

 

 

읽은 날 2013. 12. 26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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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 김재규 평전
문영심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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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방대한 자료에 근거해 쓰여진 다큐 형식의 소설이라길래, 호기심이 팍 생겼습니다. 가물가물하지만, '김재규'라니.... 충분히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것 같았어요. 

 

이 책은 김재규를 변호한 강신옥, 안동일 등이 34년간 간직한 자료와 기억, 기족의 증언, 그와 운명을 함께한 5명의 이야기, 김재홍 교수가 어렵게 입수한 <박정희 살해사건 비공개 진술>, 그 외 방대한 자료에 기초해 쓰여졌다며 그 동안 출간된 김재규 관련 책과 차원이 다르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재규 평전'이란 타이틀이 괜히 있는게 아니더군요. 자랑하던 객관성은 어디 가고, 곳곳이 편향적이라 불편했습니다. 

 

이 책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박정희 최측근에 있었던 김재규는 유신 헌법의 의미를 간파하고 유신의 심장을 쏘기로 결정합니다. 나름 치밀한 계획(?)으로 거사를 했으나, 거사 후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해 12.12 사태가 일어났고 결국 실패한 혁명이 되버렸다네요. 

김재규는 박정희를 살해했지만, 내란을 일으킬 의도가 없었고 실제로도 그랬답니다. 김재규 덕분에 우리나라 민주화가 20년 이상 앞당겨졌으니, 김재규의 행동은 공동체의 정당방위 원리와 같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선뜻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유신이 잘못인 것은 분명한데,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이 꼭 '살인'이어야 했나....에선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대단하고 대단한 권력을 가진 박정희를 제거하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실제로 실현가능한 구체적인 방법이 거의 없었음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살인'이란 방법밖에 없었다면 어쩔 수 없을거 같은데, 김재규가 얼마나 '살인'외의 방법을 찾으려 했는지에 대해서는.....여백이 많습니다. 여백을 메꾸는 것은 '자기가 죽을 걸 알면서도 박정희를 죽인 거다. 그는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졌다면 실행할 수 있었을까? 그는 박정희에 의해 희생될 수 있었던 많은 사람을 구한 거다' 라며 순수한 의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고 거사 후에 대한 준비가 치밀하지 않은 것이 살해란 행동의 순수를 증명할 수 있을까요? 살해가 옳지 않지만 전후무후 기가 막힌 타이밍에다 다시 오지 않는 찰나의 기회라면...? 

정말 살해 외 방법이 없다면 목적을 위한 살인이 정당한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유신이란 광풍의 진원지에서 김재규를 둘러싼 여론, 재판 등 모든 행정적, 사법적 처리가 부당하고 졸속이었다 해도, 박정희가 죽어 마땅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해도...  목적을 위한 살인이 정당할 수 있을까.... 

절대권력자 박정희를 죽이는 일인데, 꼼꼼한 준비없이 무작정 일만 저지른(김재규가 제대로 했다면 12.12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을.... 아, 다른 사태가 일어났을지도 모르겠군요!) 김재규는 차라리 무능력한 게 아닐까....   

최대와 최선의 노력을 다했음에도 전두환이 권력을 잡은 것(하늘이 도와주지 않은 거라 볼 수 있는)과, 전두환 등장을 예상조차 못한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인데...말이죠. 

 

이 책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 초반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박정희가 죽었을 때 유신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유신독재를 끝장낸 김재규는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채 처형되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이 책이 이런 시선을 극복하지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 결국 한계 안에 갇힌 채 끝나버리더군요. 

유신체제가 끝나야 한다와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한 채 처형되었다 사이의 수많은 이야기가 제대로 풀어지지 않은채 급하게 봉합되버린 느낌입니다. 제대로 파헤치면 원하는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봐 겁내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김재규가 박정희를 죽였다, 란 사실 앞에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 책이 제대로 쓰여졌다는 자평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김재규가 '살해'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구체적인 정황과 공감가는 진실된 이야기가 있던가, 김재규의 한계와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비판하는 부분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장군, 영웅, 의인, 평전...이란 단어가 무척 낯설고 불편하더군요. 

 

10.26 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지난 2004년 5월 11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김재규에 대한 보상 심의 활동이 착수되었는데, 결정이 유보된 채 끝나버렸다는군요. 

이래저래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그러한 일에, 이 책이 좀 더 객관적이고 냉철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습니다. 

 

 

 

 

        

 

 

 

 

읽은 날 2013. 11. 26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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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시리즈 1
태원준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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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는 무려 둘이 합쳐 계란 세 판, 하드웨어는 둘이 합쳐 달랑 100 kg!' 

재밌는 표현에 눈이 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사진.... 

 

 

바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건 내가 원래 좋아하는 프레임이야~' 란 근거없는 생각이 들고, 대놓지 않고 은근히 말하는 뭔가가 있을것 같았어요. 

그래서, 일단 가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모자의 300일 세계 배낭여행기입니다. 

엄마의 환갑잔치를 위해 돈을 모으던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엄마, 우리 배낭여행 가자!' 말하고, 평소 운동조차 하지 않던 엄마는 '그래!' 하고선 가게를 정리합니다. 그리고선 둘이 훌쩍! 떠나요. 여행의 계기도, 구성원 조합도 독특한 배낭여행이 아닐 수 없어요. 

 

모자는 중국에서 출발해 오로지 육로로 동남아시아 대륙 끝까지 걷고, 중동으로 날아갑니다. 그 사이 다양한 에피소드와 모자 사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개인적 이야기를 재밌고 유쾌한 필치로 담고 있습니다. 

패키지 여행에 익숙한 제게 모자가 전하는 나라와 명소 이야기가 알차게 다가오더군요. 

400년 동안 석굴에 14만 개의 불상을 새겼다는 용문석굴, 많은 여행자 사이에서 스타급 반열에 올라섰다는 리장의 축복과 같은 하루하루, 오아시스와 사막, 단언컨대 혼돈 그 자체인 악명의 도시 카이로, 보통 100% 기대했다면 아무리 못해도 10% 정도는 실망하기 마련인데, 100%의 기대를 300% 이상의 놀라움과 만족으로 화답해 준 페트라... 

다양하고 넘칩니다. 

그 중 스리랑카 편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악수를 청하고, 함께 사진을 찍자며 이 포즈 저 포즈 취하기 시작한다. 한 사람이 달려와 과일을 건네면, 그를 질투하는 또 다른 사람이 바로 달려와 우리의 팔을 잡고 환영 인사를 건넨다. 바닥에 앉아 채소를 손질하던 상인들은 카메라를 가리키며 사진을 찍어 달라 하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주변의 모든 상인들이 몰려와 구경하며 호탕하게 웃는다. 심지어 팔이 부러진 아저씨까지 뛰어와 깁스를 한 손으로 엄마를 툭툭 치며 사진을 찍자고 옆에 선다. 이거 뭐 시장이 우리로 인해 완전 마비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버스 차장은 올라타는 승객들에게 차비 받을 생각도 않고 내 옆에 앉아 노트북에 저장된 지도를 진지하게 들여다볼 뿐이다. 아 참, 근데 엄마는 어디 갔지? 버스 앞자리에 앉은 엄마가 차장 대신 사람들에게 차비를 받고 있는 것이다..." 

 

관광객도 적고 문명화가 덜 되어 그런지 스리랑카 사람들이 참 소박합니다. 해변에서 저자의 엄마 옆에 수줍게 다가와 소라와 조개껍데기를 살포시 올려놓으며 미소짓던 청년....이야기에 당장 스리랑카로 달려가고 싶더군요. 

 

이 책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에 이은 후속편이 있습니다. 유럽 여행기가 담긴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인데요, 후속편까지 읽어보고 싶진 않더라구요. 

저자는 <둘이 합쳐 계란 세 판, 세계여행을 떠나다>란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여행 내내 실시간(?)으로 사진과 글을 올리고, 모자는 블로거들의 반응을 감지해요.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보이기 위한 여행이 아닐까...싶더군요. (아.. 300일이나 되는 여행이라면 어쩔수 없을...) 

타인에게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나 있다는 거, 잘 압니다. 저 또한 그러니까요. 그러나.... 그게 여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있다는 건.... 적어도 제겐 피하고 싶은 일이에요. 

 

다음에는 보여주기 위한 여행을 가릴 필요없는, 그런 차원을 떠난 여행기와 만나고 싶네요.     

 

 

 

 

 

 

 

읽은 날  2013. 11. 29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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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선 그대가 꽃이다 - 시들한 내 삶에 선사하는 찬란하고 짜릿한 축제
손미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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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잘 나가던 방송 생활을 돌연 접고, 1년 잠적한 후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썼던 손미나, 이것이 그에 대해 기억하는 전부입니다.

지금 찾아보니 <스페인 너는 자유다> 가 30만부 팔렸으며, 당시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읽은 에세이로 스페인 신문에도 보도됐었다네요.

게다가 '미나공주' 란 별명으로 진행했던 TV프로 <도전! 골든벨>은 평균 시청률 35% 이상이었고, 아시아 최고 프로그램으로 뉴욕 에이미상 후보에도 선정됐었다니, 정말 잘 나가긴 했습니다.

 

2006년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 이후 7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명성(?)이 진짜.....일까? 거품이 아닐까....?

잘 나가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도 그 시절에 기생해 사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어려운 것은 정점을 찍고 추락한 후 다시 오르는 것인데, 대개 과거에 묶이곤 하지요.

좀 악의적이지만, 그가 과거에 묶여 있는지, 나비가 되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좋게 표현하면, 연예인 프리미엄을 뗀 그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아나운서, 미나공주' 가 아닌 일반인으로서의 손미나를.

 

빼어난 글은 아니나, 읽어갈수록 글에 담긴 솔직한 마음은 절로 무장해제 하게 하더군요. 초반은 매우 평범했지만 (그가 겉멋을 위해 파리로 간게 아닌가 의심스러웠어요), '자신만의 파리'를 말할 때부터 모든 의심의 눈초리를 거뒀습니다.

 

"사람들이 파리를 왜 낭만적이라고 하는지 아니?"

"왜 그런 거지? 사실 여기 와서 살아보니까 정말 이곳이 그렇게 낭만적인 도시인지 잘 모르겠어.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은 늘 불평불만을 터뜨리고, 날씨도 우울한 데다 사람을 너무 고독하게 만들어. 이 도시는..."

"바로 그거야. 그래서 낭만적인 거야. 동화처럼 해피엔딩이거나 놀이동산처럼 모든 게 예쁘고 완벽하게 짜여 있다면 그 안에 어떤 낭만이 존재할 수 있겠니? 보이지 않는 슬픔이 녹아 있기 때문에 이 도시가 낭만적인 거야. 그게 바로 파리의 매력이지."

 

삶의 비극적 요소들을 인정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 능력, 외모 등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파리에서, 그는 파리와 닮은 자신(자신을 인정하고 능력 범위 내에서 자신만의 소설을 쓰고자 하는)을 발견합니다.

그는 소설을 쓰고 싶어했어요. 너무나, 미치도록!

쓰고 싶은 만큼 내가 할 수 있을까, 란 의문에 갇히기도 하구요.

게다가 파리에서 만난 프로(?) 소설가들의 조언에 기가 막힙니다.

 

"장편의 경우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 천 명이라면 그중에 실제로 쓰기 시작하는 사람은 열 명도 채 안 되고, 실제로 소설을 시작하는 사람이 천 명이라면 그것을 끝낼 수 있는 사람은 또 열 명이 안 되지요. 그 적은 수에 낀다고 해도 그 작품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을 가능성은 아주 적어요. 그렇게 되었을 경우에도 굴하지 않고 또다시 책상 앞에 앉아 새로운 장편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일을 간절히 원하는가. 그런 열정을 정말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자신의 솔직한 답을 먼저 듣고 시작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거든요."

 

이 말은 신경숙 작가가 그에게 한 말입니다.

아..... 소설 쓰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줄, 미처 몰랐네요. 고통과 괴로움, 할 수 있을까 강박증 사이에서 태어난 소설을, 너무 쉽게 읽고 평한 거 같아 미안해지기도 했습니다.

 

열등감과 자괴감에 시달리기 충분한 그를 버티게 해준건 '파리의 열정'입니다. 

프랑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랑할 권리가 있듯 창작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네요.

'타인을 위한 시간'이란 미용실 같지 않은 이름을 갖고 있는 미용실의 미용사는 자신을 시인이라 소개합니다. 시집을 발간했냐는 질문에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지, 시집을 발간하는 사람이란 뜻은 아니잖아요."라 답하는 곳, 그곳이 바로 창작 열정 가득한 파리입니다.

 

복잡한 프랑스어 속에서, 법적으로 따지길 좋아해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동네 거지조차 당연히 챙기는 패션 문화, 모든 일에 불평불만이 많고, 전기.가스.전화.인터넷.케이블....업무처리를 편지로 해야 하는....프랑스도 사람사는 곳인 만큼.... 손미나는 결국 적응합니다.

삶의 비극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프랑스 답게

"소설 쓰기란 험하디 험한 진흙밭은 뒹구는 일임과 동시에, 티끌만큼의 때도 묻지 않은 자신의 영혼을 마주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를 자신의 삶에서 건져내지요.

 

이 책을 읽고 "좋은 책, 인연을 건지다"의 포스팅(http://blog.naver.com/cjiim/195795782)을 쓰기도 했습니다. 

남의 것을 흉내내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삶에서 자신의 글을 건져낸 그가 무척 장하고 이뻤습니다. 글 쓰는 일을 오래 하고 싶다는 그가, 여전히 밤에 글 쓰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면 한 시간 이상 걷고, 술이나 커피를 마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글 쓰기 위해 정한 자신의 규칙을 지키며, 대중에게 꾸준히 읽혀지는 작가로 남길 응원합니다.    

 

 

 

 

 

 

읽은 날  2013. 8. 13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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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람
고은 지음, 백낙청 외 엮음 / 창비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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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얼마 전 다음과 같은 글을 봤습니다.

 

'예술이란, 예술작품과 예술가의 삶을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낯선 것을 잉태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며, 낯선 시선이야말로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익숙한 것을 버리고 세상을 보는 다양한 시선과 렌즈를 가지는 것... 그것이 예술이며 예술적인 것이다."

출처 : 청장서옥님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wjdwjd9096/130180532858

 

이 글을 보는 순간, 고은 선생이 떠올랐습니다.

고은 선생의 대표 시선집인 <어느 바람>은, 어느 시(詩) 하나 전형적이지 않고 페이지마다 새로운 시선이 가득한 예술작품으로 읽혀졌거든요.

詩는 문장 하나로 끝날 수 있는 만큼, 가장 호흡이 짧습니다. 제대로 된 시라면, 아무리 짧아도 재미와 감동, 메시지를 모두 담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독립되고 개별적인 작품이 모여 '시집'을 구성할 수도 있지만, 한 편 한 편이 하나의 작품으로 충분히 빛납니다.

이러한 詩다 보니 어느 문학작품보다 쉽게 '전형성'이란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데, 고은 선생의 시는 전형적인 예상을 보기좋게 걷어찹니다.

 

<어느 바람>은 고은 선생의 고희를 기념으로 출간된 시선집입니다. 김승희, 안도현, 고형렬, 이시영 시인이 시기별로 1차 수록작을 뽑아 평론가 백낙청이 최종 선정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이 수록됐습니다.

첫 시집인 <피안감성> (1960년) ~ <두고 온 시> (2002년) 까지의 단행본 시집에서 150편이 선별됐어요.

선생의 작품활동이 길 뿐 아니라 각기 다른 시인이 선정해서인지, 시 하나하나 반짝이는 별이 되어 아름다운 별무리가 되었습니다.

 

어느 별은 장부의 외로움과 절개가 가득합니다.

시대의 시인이 진실 외마디를 만들지만 그 마음이 다른 마음에 맞아죽기도 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무덤에 묻혀 있어오 의연합니다.

간간히 자손만 찾아오는 무덤에서, 다시 태어나 '자작나무의 천부적인 겨울과 깨물어먹고 싶은 어여쁨에 들떠 남의 어린 외동으로' 결국, 성장하는 기상을 볼 수 있어요.

 

따뜻한 마음이 넘치는 별도 있습니다.

고향이 있어 축복이라 말하면서, 그 마음이 미안해 닭과 중병아리에게 모이를 줍니다. 바람에 잔털 이는 중병아리들이 추울까봐 구구구 소리도 주었다는, 시인의 따뜻한 마음이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또, 익살 넘치는 별은 어떤가요.

 

 

청개구리

 

청개구리 한마리

네가 울어

하늘 가득히 비구름 모여든다

 

과연 천하장사로구나

요놈

 

 

 

단지 두 글자인 결구로 완벽한 호흡을 마무리 짓습니다. 얼핏보면 평범한 시가 결구로 빼어남을 갖추네요.

 

발상의 전환이 가득한 별, 아름다운 문장이 넘치는 별, 성석제 작가가 떠오르는 구수한 입담의 별...... 중 섬뜩한 칼이 연상되는 별도 있습니다.

삼천 번, 일만 번, 십만 번 허리를 굽히고 생사도 내치겠다는 성철 대종사를 향해 '저 아래 범부들을 아시냐' 는 싯구는 외마디 할 겨를 없이 칼날이 목에 온 느낌입니다.

개마고원에서 '무어라고 지껄이는 자 극형에 처함이여' 또한 수천 장의 기와가 눈앞에서 깨지는 듯한 느낌이구요.

 

부분 부분뿐 아니라, 한편으로 온전함이 빛나는 시도 기억에 남습니다. <愛馬 한쓰와 함께> <북청 사자춤> <순간의 꽃>....중 짧은 한 편을 인용합니다.

 

 

휴전선 언저리에서

 

북한여인아 내가 콜레라로

그대의 살 속에 들어가

그대와 함께 죽어서

무덤 하나로 우리나라의 흙을 이루리라

 

 

 

 

시선집  마지막에 다다르면, '뜻으로 본 한국역사 이런 책들의 뚜껑을 덮고, 남아메리카 콜롬비아 카르타헤나' 등 혼자 면목없다 말하며, 여전히 젊디 젊은 시선으로 세상을 향하는 고은 선생이 느껴집니다.

이를 두고 백낙청은 '현역 시인'이란 표현을 했어요. 서정주의 경우, 여든 살이 넘도록 현역시인으로 남았으나 일부를 빼면 환갑 뒤의 창작은 대부분 긴장이 풀린 '관광객'의 기록이나 객담에 가까운 것들이라며, 고은 선생이 칠십을 맞아서도 여전히 젊다는 사실이 못내 고맙고 든든하다 말합니다.

독자로서 고은 선생의 '젊음'은 감사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만, <잉크> 나 <음유시인>을 통해 볼 수 있는 창작의 고충....앞에, 감동이 황송하기도 해요.

 

시인의 젊음을 빕니다.

젊음이 아니라 해도 건강을,

독자는 언제나 감사합니다.

    

 

 

 

읽은 날 2013. 10. 29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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