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슬픈 아일랜드 - 개정판
박지향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슬픈 아일랜드>는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 만화가 이원복 교수 편에서 보고 읽게 됐습니다. 그가 추천한 책 중 단연 눈에 띄였는데요, '먼나라 이웃나라' 내공이 거저 나오는게 아님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이 책은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아일랜드에 관한 것으로, 박지향 교수의 글쓰기가 더해져 너르고 깊은 인문학적 가치를 뽐냅니다.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보며 '무엇을' 발견하고 성찰했는지에 대한 부분이 매우 인상적인 책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잉글랜드, 웨이즈, 스코틀랜드, 그리고 북아일랜드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나라가 영국입니다. 잉글랜드는 그 자체로 영국을 대표했고, ‘잉글랜드가 곧 영국’이라는 의식이 20세기 후반까지도 지속되었다네요)는 고만고만 했습니다. 외려 아일랜드는 성자와 학자들의 땅, 북유럽 신화가 넘치는 곳이었어요.
그러다 1536년 종교개혁을 깃점으로 영국의 본격적인 아일랜드 정복과 지배가 시작됐습니다.

영국에게 아일랜드는 문명 수준이 뒤떨어진, 게으르고 술독에 빠져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하얀 깜둥이’였습니다. 그들을 개종(종교개혁 전 영국과 아일랜드는 모두 카톨릭이었음)하느니 단순히 대체해 버리는 것이 쉽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아일랜드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신 vs 구, 문명 vs 비문명, 기독교 vs 카톨릭... 이런 이분법 구도 아래 오해와 불만이 쌓이기 시작해, 1600년 경 잉글랜드에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잉글랜드 아이들을 잡아 먹기 위해 석쇠에 굽고 있는 장면을 그린 판화들이 유포되어 가톨릭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기도 했다네요.

지리적으로 가까운 두 나라의 왕래는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흐려놓기도 했습니다.
태생, 혈통, 언어, 일종의 정신 상태, 종교까지 가세해 토착 아일랜드인, 구 잉글랜드인, 신 잉글랜드인, 그리고 얼스터 스코트랜드인으로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단합해도 모자를 판에 편을 갈라 타자화 해버리고, 너는 아일랜드인이 아니야! 라는 선긋기로 끝없는 혼란에 빠집니다.

혼란과 함께 해가 저물지 않는 대영 제국(19세기) 옆에서 아일랜드는 '가장 슬프고 비참한 나라' 라는 정체성을 굳혀 갑니다.
선량한 아일랜드와 사악한 잉글랜드, 착한 의붓딸과 못된 계모 이미지 그리고 언젠가 위대한 전통 문명이 있었는데 이것이 잉글랜드의 간섭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확신이 실제 과거에 대한 기억을 대체해 버립니다.
영국에 아일랜드는 단지 ‘하나의 문제’일 뿐이지만, 아일랜드에 영국은 ‘유일한 문제’였고, 잉글랜드 사람들은 역사를 전혀 기억하지 않는 데 반해 아일랜드 사람들은 아무 것도 잊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미국자본의 투자로 아일랜드의 경제가 발전합니다. 외려 빛났던 영광을 가진 영국보다 잘 살게 되었어요.
아일랜드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영국을 뛰어넘자 미움도 가시고 너그러워집니다. 과거 영국인은 체통 지키기에 급급한 속물들이며,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아일랜드 운명에 뛰어든 이방인으로 미움의 대상이었는데 말이죠.

 

그 후(1970년대 초) 아일랜드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역사 다시보기' 였습니다.
잘 살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슬프고 비참한 나라’라는 이미지에 집착하며 피해의식으로 위안받고 도덕적 우월감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죠. 아일랜드 말고도 ‘예외적으로 비극적이고 참혹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식하며 자국의 역사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원인을 밖이 아닌 안에서 찾으려는 이성적인 노력은 유럽연합 가입과 함께 빛을 발합니다.
섬나라 근성을 버리고 유럽 내의 아일랜드, 나아가 세계 속의 아일랜드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기 시작한 것이죠.
모든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정체성 변화는 미래로의 도약, 그 시작점이 됩니다.

한동안 북유럽을 참 많이 흠모했습니다.
우리의 복잡다양한 문제 해결을 북유럽에서 찾고자 했으며, 그들의 복지, 공평, 공존, 존중...의 높은 가치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고 싶어했어요.
북유럽과 관련된 몇몇 책을 읽어봤으나 알 수 없었습니다.
뜻밖에 답이 이 책에 있더군요.
우리의 현실과 역사를 냉정히 되돌아보고, 우리 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처럼 지정학적으로 변두리에 위치하며 강대국 옆에서 고난을 겪었고, 지지리도 못살고 가난했던 과거를 떨쳐버리고 단시간에 경제성장 기적을 이룬 아일랜드가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가졌던 것처럼 말이죠.
이것이 아일랜드를 통해 얻어야 할 교훈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한 나라의 역사를 넘어 소중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박지향 교수는 2002년 <슬픈 아일랜드>를 출간하며 우리나라 독자들이 아일랜드에 관심이나 있을까, 그저 소수 인문학 전공자나 읽어 보겠지.... 했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2008년 개정판이 나올 수 있었다네요.
이 책을 읽어보니 그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다양하고 폭 깊은 박교수의 글솜씨는 넘치고도 남습니다. 

​by 책과의 일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주 속으로 걷다
브라이언 토머스 스윔 외 지음, 조상호 옮김 / 내인생의책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얼마전 <오리진>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는 물질, 반물질, 플랑크 시기, 암흑에너지, 절대온도....등 생소한 언어로 씌여진 우주에 관한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덕분에 우주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어떤 대상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우주에 대해 알게 되었음이, 익숙치 않은 물리학 용어를 알게 되었음이.... 우주와 상관없을 거 같은 대한민국, 서울.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내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우주 속으로 걷다>란 책을 읽게 된 것은 아이 때문입니다. 아이가 우주와 진화에 관심이 있다길래 읽기 적당한 책을 주려고 먼저 읽게 되었는데요,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용어와 내용이 전문적이지 않고 적당한(?) 수준이었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우주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통해 던지는 질문이었습니다. 질문은 이러한 것이었어요.

우주의 중심은 어디인가? 중심은 좋은 것일까? 안전한 장소일까?
별이 붕괴되도록 짓누르는 중력과 내부를 팽창하게 하는 핵융합 사이의 아슬아슬한 불안정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우리의 작은 몸이 죽어 거대한 우주 자체가 될 수 있을까?
우리의 열정과 꿈뿐만 아니라 우리의 괴로움과 상실도 우주의 뼈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

책이 던지는 질문 중 제가 선택한 것은 '우주 질서 속의 나' 와 '내 안에 있는 우주' 입니다.

(1조분의 1에 다시 1조분의 1, 그리고 다시 1조분의 1, 그리고 다시 천만분의 1)초란 시간에 대폭발이 있었어요. 양과 음, 남과 여, 하늘과 땅...처럼 대폭발 잔해도 물질과 반물질로 이뤄져 있었습니다. 물질과 반물질은 만나면 에너지(빛)로 변하는데, 알 수 없는 우연으로 물질과 반물질의 균형이 깨져 질량을 가진 양성자가 출현하게 되었대요. 이 양성자는 원자가 되고 별이 되는 시작점인데, 만약 물질과 반물질이 균형있게 존재했었다면, 우주는 '빛'밖에 없었고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가 없었을 거라니,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 후 38만 년이란 시간이 흘러 우주 온도가 1억 도 이하로 내려가서야 인력이 작용해 원자가 형성됐고, 원자가 모여있는 구름에서 별이 만들어졌습니다. 별은 내부로 폭발하려는 성질(중력)과 밖으로 팽창하려는 핵융합 사이의 아슬아슬한 긴장상태로 살다가 핵 융합 에너지가 모두 고갈되고 나면, 폭발합니다. 별이 폭발할 때,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져 튕겨져 나왔는데, 이것으로 인해 지금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별이 만들어지고 폭발하지 않았다면, 우주는 탄생 때처럼 수소와 헬륨만 가득했을 거랍니다. 이러한 내용이  원소주기율표에 은유적으로 표현되있다는 사실도 신기했습니다.

대폭발 후 양성자가 원자로, 원자가 분자로, 분자가 세포로, 세포가 모여 생명체로.... 오랜 세월을 거쳐 우리가 지금 존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원이 우주와 별이었음이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전에도 이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어릴 적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밤하늘을 보며 '저 별은 나의 별...'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 단순한 여흥이었을까... 저릿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지금도 팽창하고 있는 우주, 셀 수 없이 많은 은하군, 그 중 하나의 은하, 그 속의 태양계, 태양계 속 지구라는 행성..... 그리고 나. 이런 시각으로 생각하면 내가 별볼일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그러나, 태초의 대폭발 후 우연의 일치로 양성자가 만들어져 별이 탄생하고, 폭발하고...그 덕에 내가 존재한다는 시각으로 생각하니, 나는 당당한 우주의 일원이자 우주의 오랜 진화의 살아있는 증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는 불균형(물질과 반물질의 10억분의 1이란 비대칭) 속에서 반대되는 입자 사이의 끌림에서 시작됐습니다. 비록 양성자가 전자를 끌어당기는 이유는 모르지만, 양성자가 전자를 끌어당기듯 우리는 누군가를, 무엇을 끌어당기고, 끌려하는 건 우리가 그 속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우주의 진화에 나타난, 여러 개체가 모여 단순한 합 이상의 '하나'가 출현했다는 신비로운 사실이 무척 감동스러웠습니다. 원자가 모여 별이 됐지만, 원자와 별은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세포는 분자가 모여 출현했지만 세포와 분자를 무척 달라요. 이러한 지적 깨달음이 '우주 질서 속의 나'임을 알려주고, 내 안에 우주가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어요.

<우주 속으로 걷다>는 우주의 탄생부터 생명의 출현에 이르는 거대한 역사를 스토리로 엮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저자는 행성의 지배자가 된 인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지구 공동체의 일원임을 자각하게 해줍니다.

"우리는 무엇을 지침으로 삼아야 할까?
우리는 단순히 한 나라의 국민이 아니라 우주의 인간이다.
우주의 에너지가 우리를 꿰뚫고 일깨운다.
다른 생명체와 인류가 공영할 수 있도록 문화적으로 다양하고 지역적으로 생기가 넘치는, 여러 형태의 지구 문명을 출현시켜야 한다.
이를 보증할 수 있는가? 없다. 그러나.
단지 쿼크와 렙톤으로 구성된 우주가 별이 되고 다랑어가 됐듯, 이것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만큼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우주에 관한 상세한 지식은 <오리진>이란 책에 비해 떨어지지만, 우주와 나를 연결하는 선을 발견하는데 이 책<우주 속으로 걷다>은 더할나위 없습니다.
우주적 지식을 넘어 우주적 인간관의 깨우침은, 150억 년 전 원리가 지금도 관통하고 있으며, 여전히 희망을 가져야 함을 가슴으로 느끼게 해줍니다.
비록 유한한 삶이라 희망의 크기가 적을수 밖에 없지만, 우주적 규모로 배포를 키워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참 재밌는 책입니다.

 

 

 


아이와 함께

1. <어쩌다 중학생이 되었을까>, 쿠로노 신이치 : ★★★★★
2. <10대의 시계는 엄마의 시계보다 느리다>, 손동우 : ★★★★
3.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 ★★★★
4. <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 : 어렵다고 포기
5. <우주 속으로 걷다>, 메리 에블린 터커 : 재미없다고 포기
6. <마르크스 서울에 오다>, 박홍순 : ★★★★
     

 

 

읽은 날  2014. 3. 20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조셉 캠벨 지음, 이윤기 옮김 / 민음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단군신화> 처럼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건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가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믿기엔 허무맹랑하지만, 분명 되짚어볼만한 역사적 비유와 은유가 있어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학자가 조셉 캠벨입니다. 

그는 <신화의 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의 가면 1~4>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신화 이미지> 등으로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입니다. 

<신화의 힘>을 읽어보고 싶었으나, 절판이라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조셉 캠벨은 세계 각국의 신화를 조사, 연구하여 다음과 같은 공통분모를 찾아냈습니다.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자로서, 모험 - 입문 - 귀환의 과정을 밟습니다. 대개 모험은 본인도 알기 어려운 세력과의 관계 속으로 끌려 들어가며 시작하여, 노파나 노인의 모습으로 자주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조력자를 만나게 됩니다. 조력자 도움으로 첫 관문을 통과함으로써 그는 마법의 문턱을 넘어서게 되며, 본격적인 시련의 길로 접어들게 되지요. 

어렵사리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 영웅은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 만나 아버지와의 화해를 이룹니다. 조셉은 이를 입문 과정으로 표현하는데, 아버지를 만나러 가며 느끼는 공포를 극복하고, 순간을 초월해 근원을 투시하게 된다네요. 

이 모든 과정을 끝낸 영웅은 전리품을 안고 귀환합니다. 때로는 회피하고 싶은 욕망과 유혹 사이에서 살짝 무너지기도 하지만, 이는 영웅의 성공을 더 인간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이러한 신화 체계는, 현대 석학들에 의해 여러 가지로 정의되었답니다. 프레이저는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이라 했고, 뮐러는 선사 시대로부터의 시적 환상의 산물이라고 했으며, 뒤르켐은 개인을 집단에 귀속시키기 위한 비유적인 가르침, 융은 인간의 심성 깊은 곳에 내재한 원형적 충동의 징후인 집단의 꿈, 쿠마라스와미는 인간의 심오한 형이상학적 통찰을 담은 전통적인 그릇, 교회에서는 하느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라고 정의했다네요. 갖가지 판단은 판단자의 견해에 따라 결정되지만 동일한 것은 신화가 무엇이냐는 관점이 아니라, 신화가 어떻게 기능하고 인간에게 봉사해 왔으며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것입니다. 

 

조셉 캠벨은 신화를 어떻게 보았을까요. 

그는 신화가 과거에다 묶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인간의 끊임없는 환상에 대응해,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비의적 이미지는 우리 심성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랍니다. 이것이 충분하지 않으면 꿈을 통해서라도 내부에 나타나게 된다네요. 상징이 충분해야 우리의 에너지가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함에서 풀려날 수 있답니다. 

 

신화로부터 상징을 공급받아 이루려는 최종 목적은 마음이 현상계 저쪽 세계 (공, 혹은 범주를 초월한 존재)로 들어가 적멸에 이르는 것, 즉 본질을 깨닫는 것이랍니다. 

그 본질이란 기존 사회로부터 추방당했으나 영웅이 되는 첫 시작일 수도 있고, 영웅이 사회를 지키고 구원할 수 있도록 영웅의 시련을 나누어 부담하는 일 일수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상징을 통해 동일한 구원이 계시되고 있으니, 신화에서 힘을 얻어 우주의 벽을 깨뜨리고 모든 경험을 초월하는 자각에 이르자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저는 읽는 내내 불교가 떠올랐습니다. 

불변의 공에 대한 자각, 현상계 저쪽 세계..... 조셉 캠벨은 참으로 불교적이더군요. 그런데, 불교적 이야기를 서양사상 내러티브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는 계속 반복적이고, 알다가도 모르게 이어져 어렵기만 했습니다. 

제 이해의 폭이 적음을 탓해야겠지요. 

겨우 알만한 것은 신화가 과거 이야기에만 그쳐서는 안되고 상징적인 힘을 찾아내 오늘날 우리에게 도움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여러나라의 역사를 보며 오래된 신화에서 오늘을 살아낼 힘을 찾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일랜드도 과거 가.장. 비참한 나라라는 신화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으나, 1970년대 '역사 다시 보기'를 통해 새로운 민족, 국가상을 가지고 새롭게 도약하고 있다네요. 

 

우리도 그래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 어려운 실마리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할지, 역사학자들의 행보에 관심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읽은 날  2013.  9.  13    by 책과의 일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제 인식흐름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알고자 하면 알게 될 것이다' 에서 '알고자 해도 끝내 알 수 없다'로요. 

어떤 책이 결정적 기여를 했는지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 책은 활실히 영향을 줬습니다. 바로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 입니다. 

 

전중환은 인간의 마음에 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톱이나 드릴, 망치, 니퍼 같은 공구들이 담긴 오래된 연장통이라구요. 우리의 마음은 어떤 배우자를 고를 것인가, 비바람은 어떻게 피할 것인가, 포식동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등 수백만 년 전 인류에게 주어졌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게끔 설계되었는데, 마음의 진화 속도가 환경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군요. 

그래서 왜 태어났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신은 어떤 존재인가 같은 심오하고 추상적인 문제를 잘 해결하게끔 설계되지 않았답니다. 

 

어떠신가요. 

저는 상당히 공감 했습니다. 

사람이 단 것을 좋아하는 성향은 오래 전 환경에서는 적응적이었다 라든가, 비효율적인 과시적 소비는 수공작의 휘황찬란한 꼬리와 같다든가, 사람들이 왜 매운 향신료를 좋아하는지....등 많은 예를 들어 설명하지 않아도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그의 얘기를 따라가다 보니, 사람은 텅 빈 백지 상태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도덕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임을 절로 이해하게 됐습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불확실하고 위험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 사건의 옳고 그름을 순식간에 판단해야만 해어요. 그러한 심리적 기제가 쌓이고 쌓여 '보편적인 도덕 성향'으로 후대에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마음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인식을 '진화심리학'이라고 합니다. 

 

전중환의 얘기에 공감하면 할수록 한숨이 나옵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의 마음이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의 수렵.채집 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문제들을 잘 풀게끔 진화했다면, 지금 현대 산업사회의 복잡한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은 당대에는 분명 힘든 일이니까요. 저자의 말대로, 현대 사회에 적응하려면 수천에서 수만 세대가 걸려야 할까요! 

 

이 책은 <과학자의 서재>에서 최재천 교수의 추천을 보고 읽은 것입니다. 최 교수의 말대로 어려운 분야를 쉽게 풀어쓴 저자의 능력이 탁월하더군요. 

또한 전중환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진화심리학을 정식으로 전공한 학자라 합니다. 

앞으로 진화심리학자들이 심리기제 -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 정말로 둘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를 연구해 밝혀낸다면, 우리 마음이 좀 더 환경에 적응적이 될지 궁금합니다. 

심리기제가 명명백백 밝혀진다해도, 마음의 작동원리란 게 간단할지......의문스럽기도 해요. 

지금도 우리는 아는 것을 왕왕 실천하지 못하고 있으며, 성향에 안 맞을 경우 귀를 닫기도 하니 말입니다. 

 

'오래된 연장통'이란 전중환의 표현, 아주 근사합니다. 

세상의 원리를 알고자 하는 마음이 지칠 때 그 뒤에 숨어가거나 토닥토닥 스스로를 위안할 수도 있고, 

미지의 분야를 켜켜이 쌓인 먼지를 헤치며 개척하고 싶은 마음도 들게 하니 말입니다. 

비록 우리에겐 오래된 연장만 가득하다해도 잘만 활용한다면, 세상으로의 개척에 큰 지장이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낙관적 기대 또한 오래된 연장일테니, 믿어야 하겠지요. 

 

 

 

     

     

 

읽은 날  2013. 6. 3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잭 웨더포드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몽골제국은 1200년 경 홀연히 나타나 세계 역사 상 가장 넓은 제국을 가졌으나, 150여년 짧은 영화를 누린 후 홀연히 사라졌어요. 

이젠 자취도 찾기 힘든, 바람같은 제국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이 책은 칭기스 칸의 사라진 역사가 기록된 <몽골 비사>에 기초해 씌여졌습니다. 

1200년 당시 높은 문명을 자랑하던 아랍은 몽골에 의해 많은 피해를 봤지만, 가져갈 것 없는 궁핍한 땅이었던 유럽은 피해 대신 몽골이 뚫어놓은 길로 문명의 혜택만 입었답니다. 

이것을 기초로 유럽이 주도하는 근대가 형성됐다는 게 저자의 설명입니다. 

 

몽골제국 확장기 때, 유럽은 듣도 보도 못한 몽골군이 엄청 무서웠나봐요. 몽골이 용을 훈련시켜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였다네요. 겨우 150여년 동안 등장했던, 존재조차 몰랐던 변방 아시아인에게 호되게 당한 유럽인은 공포감을 갖게 되었고, 차차 몽골을 세계 악의 상징으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독일 의대교수인 요한 프리드리히 블루멘바흐는 인간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의 세 가지 기본 인종으로 나누고 여기에 하위 범주로 아메리카와 말레이를 넣었답니다. 아시아인이 몽골에서 유래했다는 이론에 따라 모든 아시아인을 몽골인 항목에 집어넣었다죠. 

이러한 몽골 인종 분류 체계는 서구 과학에 자리를 잡고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자, 일부 발달이 늦은 아이 얼굴이 아시아인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몽골 인종에 속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진아를 격세 유전적 몽골 특성 또는 오랑우탄 특성이라고 했다니 기막히지만, 그만큼 유럽이 몽골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제국 영토가 이토록 확장된 이유는 예상한 것과 비슷했습니다. 

칭기스 칸의 개인적 능력, 기존과 다른 관리방식(혈통이 아니라 능력에 따라 책임을 나눈 것),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국의 발판으로 삼은 것, 그리고 스멀스멀 입혀진 신화적 지위.... 

그러나 간간히 보여지는 지나친 이상적 기술은 약간 거슬렸습니다. 

아랍과 인도의 수학으로부터 혁신적 방법을 채택하고, 인쇄술로 국가행정적 요구를 충족시키고, 알파벳을 사용하고... 

그러나 가장 큰 몽골제국의 비밀은 '끊임없는 정복' 이었습니다. 

칭기스 칸이 사망하자 대칸의 지위를 둘러싸고 아들과 왕비들이 쉼없이 권력투쟁을 했습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는 끊임없는 정복으로 포획한 물질적 이해로 극복했다네요. 정복으로 얻은 전리품은 정치적 통일성이 흔들리는 제국을 문화적, 상업적으로 단단하게 해주었답니다. 

 

제국의 유지가 이렇다보니, 1300년 경 전세계를 강타한 페스트는 몽골제국의 커다란 위협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페스트가 교역으로 옮겨지는 병이다보니, 겁에 질린 사람들은 외국인이 병을 가져온다 비난했고, 교역은 갈수록 위축되었습니다. 

군사적 힘과 상업적 이득이라는 두 가지 이점이 사라지자 러시아, 중앙아시아, 페르시아, 중동 곳곳에 있던 몽골인은 제국의 보편적 원리를 버리고 그들의 언어, 종교, 문화를 따름으로써 새로운 양식을 찾아 나갔어요. 이로써 몽골제국을 지탱해오던 보편적 원리가 바람의 재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남아 있는 제국의 흔적은 <몽골 비사>와 전설 이랍니다. 

칭기스 칸의 영혼이 실려져있다 전해지는 술데(영기)가 지하실이나 폐쇄된 방에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어 있다가 언젠가 다시 나타나 몽골인을 이끌어줄지도 모른다는... 전설이 지금 몽골인에게 전해지나봐요. 

 

승자의 기록일 수 밖에 없는 '역사'의 태생적 한계 안에서 사라진 제국의 역사는 씁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을 살아내지 않으면 과거는 한낱 스쳐가는 바람에 불과합니다. 

바람의 역사를 6년 동안 현장에서 발로 뛰면서 연구조사한 저자 잭 웨더포드의 노고를 기립니다. 

칭기스 칸의 짙은 한숨이 21세기 잭 웨더포드에게 전해져 이 책이 나온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모두 오늘을 살아내기를. 

설령 그렇지 않아 기억하는 이 없어도 

원래 삶은 바람같으니... 

연연해하지 않기를. 

노마드였던 칭기스 칸 처럼. 

 

 

 

 

 

 

읽은 날  2013. 5. 25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