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공식 한국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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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이 책, <오래된 미래>는 <총, 균, 쇠>와 세트로 인식된다.

<총, 균, 쇠>에 따르면,  오래 전 비옥한 초승달지대의 지리적 잇점으로  획기적인 농경생활이 성

공했고, 이에 따라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가 시작됐다고 한다. 인구의 증가는 내부로만 향하던 시

선을 외부로 돌리게 했다.

인구가 증가한만큼 부족한 것을 메워야 하는 필요가 생겼다. 그리고 인구가 증가하면, 증가된 자

(토지, 노동력 등)을 독점하는 권력자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 권력욕 또한 외부를 향한다.

이러한 필요와 권력욕이 자신들의 주변부를 탐색하게 하고 차차 범위를 넓히게 했으리라.

애초에 '인구'가 증가하지 않던 시절에는 어땠을까?

이 책, <오래된 미래>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은 언어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헬레나 호지가 1975년 언어 연구를 위해 인도 북부 작은 

마을 라다크에 들어갔다가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생태적 지혜를 통해 천년

이 넘도록 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를 유지해온 라다크가  서구식 개발 속에서 환경이 파괴되고

사회적으로 분열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다.

 

그 역시 라다크에 머물면서 '규모'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규모든 인구

든, 우리네의 시골 마을을 떠올려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구가 적은 호젓한 시골 마을, 마을 사람들은 대개 옆집 대소사는 물론 숟가락, 젓가락 수까지

훤하다. 반면, 인구나 넘쳐나는 대도시는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심지

어 옆집 사람이 죽어가도 모를 수 있다.

 

이 차이는 아마도 대가족제도와 작은 규모의 공동체 생활일 것이다.  자녀를 키워보면,  대가족

제도의 장점을 넉넉히 느끼게 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엄격함과 단호함으로 대한다. 우리아이들

이 종종 느낄 것 같은 답답함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넉넉한 품으로 자주 해소되곤 한다. 아이들

이 부모에게 통하지 않는 떼를 가끔 할머니한테 부릴 때마다 할머니가 말씀하시는데,

"에미하고 할미하고 같으니?"

이 말은 내가 들어도 절로 미소가 나는 말이다.

 

각자 사생활이 침범당할 것 같은 위치에 다닥다닥 이웃이 위치해 있다. 소통해야 하는 이웃수가

많고 어디까지 이웃으로 그어야할지 모르는 애매함 속에 피곤함이 자리잡는다.

애매함과 피곤함이 '작은 규모의 공동체 생활'로 위치가 바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의 말대로 대가족제도와 작은 규모의 공동체 생활이야말로 성숙하고 균형있는 인격이 만들어

지는데 훌륭한 기초를 형성하리라 생각한다.

대가족의 넉넉함과 공동체의 관심,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일수록 상황을 조절할 줄 알고 어떤 상

황에서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 속에도  대가족제도와 작은 규모의 공동체 생활로  사랑, 존중, 우정,

행복을 누리며 살았던 라다크에 어느 날 개발의 바람이 불어닥친다.  개발은 사람들에게 인위적

인 결핍감을 느끼게 했고 그 결과 구성원 사이의 경쟁의식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은  서구식 모

델을 표준으로 삼아 모든 행동과 사고를 그에 맞게 따르라는 압박을 받는다. 강요된 서구 이미지

를 추구함에 따라 자신의 고유문화와 뿌리를 부정하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게 된

다.

 

600년이 넘도록 마찰 없이 공존해왔던 다수의 불교도와 소수의 이슬람교 사이에 갈등이 고조된

다.  서구식 경제개발 속에 두 집단은 싸움을 시작했고,  상대방 주택에 폭탄을 던지는 등 생명을

빼앗는 지경에 이르렀다.

산업화로 많은 사람들의 성향이 더욱 경쟁적이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해감에 따라,

그런 성향들을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라 치부해버리는 태도가 주류를 이루게 된다.

탐욕과 이기적인 모습은 인간의 본성이라기보다 산업화로 인해 사람이 소외된 현상인 것이다.

 

라다크에 불어닥쳤던 개발의 소용돌이가 가라앉고 지금은 '라다크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그 운동을 통해 라다크가 오래되었으나  우리의 '미래'가 되기를, 저자인 헬레나 호지와 함

께 희망해본다.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우리가 지금 시급히 해야 하는 일은 농업 자체에 그에 합당한 권위를 복원시킴으로써 앞서 언

한 추세를 반전시켜야 하는 것이고 또 농업을 정식 직업의 위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일이다.

수출을 위한 환금성 작물 재배 대신  지역 소비용 식량 생산의 비중이 증대되고  그렇게 생산된

물들이 정부지원하에  구축된 운송체계를 통해 원격지로부터 유입된 작물들과 경쟁하지 않아

되고, 또 대단위 농장이나 기업형 농경을 위한 자본집약적 농업설비 대신 지역의 조건에 맞는

규모 농업기술에  더 많은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영세농의 수익에서  생태학적 측면에서 더욱

강한 재래식 영농 방법으로 이전된다면 농부들은 더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인류가 오래 전 경작을 하며 정착했던 소박한 시대,  그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만 땅을 경작

하는 일에 합당한 권위를 복원시킨다면,  산업화로 훼손된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이 사라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헬레네 호지의 대안을 보니 <88만원 세대>가 생각났다.

우리 사회의 현실인 88만원 세대를 위해 우석훈, 박권일이 제안한 것 중 '농업 공무원'이 있었다.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에게  농업공무원의 일거리를 주어 농업을 정식 직업의 위상으로 끌어올린

면, 추세가 반전되고 지역 소비용 식량 생산이 증대되고...선순환이 되지 않을까.

화려한 스펙, 높은 눈높이와 진정한 땀의 가치...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오래된 과거를 미래로 끌어올리는 꿈을 가져보자.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라다크의 평화, 뿌리깊은 자기 존중, 사랑과 우정이 크게 와닿았다면, 우리는 충분히 꿈을 꾸고

실현,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읽은 날  2009. 8. 1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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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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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제법 오래 전 <미워도 다시 한번> 류의 드라마가 엄청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똑순이로

유명했던 배우 김민희가 단골로 출연했는데, 비슷한 플롯으로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 시대 비슷비슷한 드라마, 영화가 넘쳐났고 그 중 몇 편을 어른들 어깨 너머로 봤다.

대놓고 '이 드라마, 영화 아주 엄청 슬퍼요, 울지 않을 수 없어요~' 하던 영상물. 그 시대 사람

들이 보면서 같이 울고 감정을 해소하고 그랬다.

 

출퇴근길,  인기가요를  듣는다.  빠르고 랩이 많은 노래보다  감성적 노래를  선호한다.  가끔

삭제 key를  누르는데,  우는 음색이 주 대상이 된다.  호소력과 감성이 지나쳐  '울음' 수준인

음색을 들으면 여지없이 다음 노래를 누르거나 삭제를 하게 된다.

'대놓고 슬퍼요~' 하는 노래는 슬플 때도, 그냥 그럴 때도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슬프기는

커녕 기분이 나빠진다.

 

노래 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소설...많은 창작물이 그런 거 같다.

슬픔이 슬픔에서 머물면 '힘들다.'

주인공은 슬픔에 함몰되지 않고 그럼에도 씩씩해야 하고, 희망을 가지거나 희망을 줄 수 있어

야 한다.

동병상련 마음, 혹은 다른 무엇으로 불릴 수 있는 마음으로 같이 울어주기 힘들어서일까.

 

김애란의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만족이 임계점을 넘어 감탄이 되는' 소설이다. 감

탄스러운 소설을 써내느라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자리지만,

 난 알아.

 네가 그것을 얼마나 함들고 외롭게 뛰어넘었는지."

 

작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애독자가 되버린 나도 감히 그녀에게 말해주

고 싶다.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견뎠는지, 그 견딤을 매우 잘 보았노라고.

덕분에 나도 힘이 난다고, 고맙다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름이다.  그의 신체나이는 80세,  키는 2cm 줄어서 128cm이다. 빨리

늙는 병에 걸렸고, 건강에 무지한 건강, 청춘에 무지한 청춘을 부러워하는 17살 소년이다.

 

"우리가 병원에서 하는 일은 항상 비슷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정해진 검사를 하고, 정해진

 실망을 하는 것.  '더 나빠졌군요' 라든가  '계속 지켜봅시다' 라든가  '장담할 순 없지만...' 이

 는 얘기를 듣는 것. 호기심과 혐오, 연민과 탄식이 깔린 긴 복도를 지나가는 것.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보고 내비치는 안도의 눈빛을 감내하는 것.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사람과 나

 누는 사소한 대화,  그리고 웃음에 귀기울이는 것.  내 몸이 내게 거는 말에 일일이 답해주는

 것. 내 몸이 나의 주인처럼 구는 것에 굴복하는 것. 뜻을 알 수 없는 이름이 줄줄이 적힌 처방

 전을 연애편지 읽듯  뚫어져라 응시하는 것....그런 게 우리가 병원에서 하는 일이었다.  우리

 는 그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녀의 부모는  아름이와 같은 나이에  아름이를 가졌다.  병원 복도, 호기심과 연민  그리고 탄

식이 깔린 곳을  남의 이목 따위는  진작부터 신경쓰지 않았다는 듯,   잘못한게  없으니 도망치

지  않겠다는  식으로,  어디서든 당당히 걸었지만,   어느 날  아름이의  설득으로 TV 프로그램

연을 결정한다.

TV출연을 앞둔 아름이의 말.

 

"나는  내가 너무 괜찮아 보여서도,  지나치게 혐오감을 줘서도  안된단 걸 알았다. 사람들이

 직시할수 있을 정도의 불행, 기부 프로그램을 움직이는 건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난감했다.

아름이 말이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직시할 수 있을 정도의 불행에, 심지어 어른까지 보듬어 주는 심성을 지녔다면 프로

그램 작가 말처럼 '대박' 난다는 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에요.

 엄마, 나는....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아름이를 가진 것을 안 열일곱 살 소녀는 무서웠다. 혼란스러웠다. 운동장을 열 바퀴고 스무

바퀴...심장이 터질 때까지 밤새도록 뛰고 또 뛰었다.  아름이 건강이 자신의 탓인건만  같은

죄책감을 가진 엄마와

아름이가 자신의 슬픔이어서 기쁘다는 아빠.

그리고 도망치려 했던 엄마를 그러안으며 자기 인생이 두근두근하다 말하는 아름이.

그 셋을 중심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책장을 덮기가 힘들다. '쉬었다 읽어야지' 라는 마음을 가

지기 어렵다.

평생 (마음의) 감옥에서 지낸 아름이에게 수고했으니, 이젠 독방으로 가라하는 장면, 아름이가

의사가 하는 말을 통해 의사가 하지 않은 말을 찾아내는 장면, 장씨 할아버지가 몰래 쥐어준 소

주팩, 아름이가 느꼈던 사람들의 따뜻한 악수를 이용해 먹은 그 넘.

 

"이야기를 짓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사람과 장소와 시간을 고루 살피며 문장까지 신경써

 야 하는게 만만치 않아서였다. 글쓰기는 매순간이 결정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걸 내

 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야기는 중간중간 자주 멈췄다. 그럴 때면 홀로 북극

 에 버려진 펭귄이 된 기분이 들었다. 참으로 막막하고 무시무시한 순간이었다."

 

매순간 순간  결정과 선택의 힘든 작업을  훌륭히 수행한  작가에게 인사를 한다. 당신 덕에 슬픔

이 정화되고 승화되는 게 뭔지 알겠다고.

당신은 북극에 버려진 펭귄이 아니라,  우리가 슬픔에 함몰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여 끝내 다시

일어설 기운을 내게 해주는 '반짝반짝 북극성'이라고.

 

 

읽은 날  2012.  5.  24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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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생각해 봐! -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일걸
홍세화 외 지음 / 낮은산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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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생각해 봐!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일 걸, 우석훈 외>

 

책을 읽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였다. 어떤 계기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고교생활 중 '책'

은 제법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학교 수업이 재미없으면 몰래 펴 놓고 보기도 하고, 책 한권씩 읽을 때마다 추천 리스트를 지워가

는 만족감을 얻기도 하고.. 그 중 생각나는 건 어느 시험 전날 김창완이 진행하는 라디오프로그램

에서 소개된  어느 백형별 걸린 소녀의  이야기였다.  한 번 잡은 책을 놓지 못해 12시 1시 되도록

읽고 눈이 빨개지도록 울고, 결국 퉁퉁 부은 눈으로 시험을 본 기억이 새롭다.

 

그 후 20대는 절독의 시기였다.

지금처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책 정보를 취득하기 어려웠던 시절, 책이 소설 등 문학만 있는줄 알

았다.  그렇게 접한 소설 등 문학작품은  한결같이 우울했다.  우울, 슬픔, 좌절, 절망이란  단어가

없어도 글자 사이사이, 행간 사이사이 티슈로 꾹 누르면 그런 단어가 묻어나올 것 같았다.(아마도

그건 그 당시 시대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들어 가는듯한 우울에 지쳐 서서히 독서를 끊어 갔다.

 

다시 독서를 시작하게 된 건 아이를 낳고서였다. 육아서를 집어들었고 서서히 범위가 넓어졌다.

편리한 각종 매체는 푸르고 짙은 바다처럼 넘쳐나는 책 정보가 가득했고, 소설 외 다양한 분야가

미지의 세계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의문이 있었는데, 바로 '문학작품을 왜 읽는 것일까?' 였다.

아마도 20대 때 소설류를 읽으며 '암울한 기분'인 채로 절독한 영향이 컸나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2008년 부터였다.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발췌본을 만들고....

러던 어느날, 염무웅의 <문학과 시대현실>을 읽어봤지만 그리 와닿지 않았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가.

 

이 질문을 다시 마음 속 벽장에 담아놓고 있던 어느 날, 이 책 <거꾸로 생각해 봐...>를 만났다.

이 책은 십대를 대상으로 '당연한 것들'로 인식되는 일곱 가지 것들을 알기 쉽게 풀어낸 책이다.

십대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제목도 내용도 쉽고 재미있다.

7가지를 쉽게 풀어 쓴 저자는 우석훈, 강수돌, 강양구, 우석균, 이상대, 김수연, 박기범 이다.

익숙한 이름, 낯 선 이름 다양하다.

 

이상대가 풀어 쓴 '시.소설'편, 어렵고 두꺼운 책보다 명쾌하게 문학을 알려준다.

 

"시, 소설 안 읽고도 여태껏 잘만 살았다고?

사회 지식보다 사회 의식이 중요하고, 역사 지식보다 역사 의식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의식을 키

울 것인가. 앞에서 얘기했듯 시와 소설을 가까이 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시와 소설을 읽고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개인적인 사소한 일 같지만, 아닙니다.  내 삶을 돌아보고 그를 바탕으로 세

에 적극 참여하는 사회 행위인 것입니다.

이제 '시 안 읽고도 여태껏 잘만 살았는데요.' 이렇게 맹랑한 얘기는 하기 없기입니다. 시 소설같

은 문학을 가까이 해야 영혼이 살찌고, 이 혼탁한 세상에 그나마 사람답게 사는 길이 열립니다.

친구들의 건투를 빕니다."

 

그 후 다른 책들을 통해 '문학의 의미'를 계속 발견하게 됐지만, 이 글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그 외 현재 중남미에는 '승자 독식'이라는 말조차 없는, 분리가 완전히 끝난 사회임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우석훈의 글, 세계 농약의 80%가 후진국인 제3세계에서 사용되며 농약 중독 사고 99

%가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강수돌의 글 등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된 수많은 질병들 가운데 유독 소아마비가 '박멸'에 이르게까지 된 까닭

은 바로 백신 개발자인 소크 박사가 특허를 포기했기 때문이야.  소크 박사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

자 수많은 제약회사가  특허를 양도하라고 부추겼지만  그는  '태양에 특허를 신청할 수 없다.'

주위의 권유를 뿌리쳤거든,

지금 세계보건기구에 납품되는 소아마비 백신 1개의 값은 단돈 100원 정도야.

.....지금 전 세계의 가장 큰 보건 문제는 치료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데

있거든.

생각해 봐. 나치가 유태인과 집시, 동성애자들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는 몇 해 동안 600만 명을 죽

였고 이것이 인류 최대의 대량학살로 알려져 있지.  그런데 에이즈 하나만 보더라도  지금 지구상

에서 약이 있는데도 1년에 300만 명이 죽어 가는 홀로코스트가 벌어지고 있어. 이러한 사실상의

대량학살을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몇몇 선진국들이 정당화하는 근거는 다름 아닌 '특허권의 보호'

라는 거야."

 

태양에 특허를 신청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 문구인가!

소크 박사는 엄청난 부와 권력,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을텐데.

지금도 수 많은 예비 소크 박사가 있을테지만, 다국적 제약회사의 '특허권 보호'를 당해낼 수 있을

까!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람은 합리적 동물이 아니다.

스스로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이 명제에 동의한다.

나 또한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고 때론 자각 증세 없이 그 생각을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잘못된 생각을 합리화하고 고집하며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거꾸로 생각해 보자. 세상이 많이 달라져 보일 테니까.

 

 

1995.6.25 경향신문에서 인용

 

읽은 날 2011.7.5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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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지음 / 사계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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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역사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고전.

고전은 하나의 콤플렉스다.  읽어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항상 위시 리스트에 고전 한 두 권쯤 담아놓고 언젠가....를 고대한다.

내게 <논어>도 늘 그런 책이다.

일찍이 송나라 유학자 정자의 말은 <논어>를 쉽게 펼치지 못하게 한다.

"<논어>를 읽지 않았을 때도 그저 그런 사람이요, 읽은 후에도 그저 그런 사람이면 곧 읽지 않은

것과 같다."

 

예전 박경리의 <토지>를 읽은 첫 소감은 이랬다.

"누구든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기는 역시 힘든 모양이다."

100여년 긴 세월이 바탕이 된 그 소설에서 최서희가, 김길상이 그 성품으로 지금 시대에 살았다

면 어땠을까. 나는 그 시대에 어떤 인물로 오버랩 될까...싶은 것이 시대의 한계에 묻힌 인간상이

첫 화두였다.

그러하기에 고전은  텍스트의 문맥과 함께  그 시대의 배경을 이해해야만  더 받아들이기  쉬울지

르겠다. 단순히 텍스트의 이해가 '고전'의 빛나는 명성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물론,  시대의 배경과 상관없이 100년, 1000년 이상 살아 남은 책이 가지는 위용도 흠모해야 하

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의 장점은 매우 뛰어나다.

문학 속에 나타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줌으로써  역사와 문학 상호 간에 넘나듬이 매우 신선할

뿐만 아니라 어렵게 느껴졌던 고전을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역사는 '흑사병'이다.

흑사병의 발병은 중앙아시아였는데, 1346년 킵차크한국의 통치자가 흑사병이 몽골군을 습격하

자 남은 병사와 함께 철수했다. 이때 통치자였던 야니벡이 공성기(캐퍼필드)를 이용해 죽은 시체

들을 성 안으로 날려보내고...그 성 안에 있었던 제노바 상인들이 1347년 자유를 되찾아 고향으

로 귀국했을 때 감염된 쥐와 병균이 함께 들어갔을 것이라 한다.

이 무서운 전염병으로 인간 사회가 거의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보카치오

의 <데카메론>은  생의 의미를 다시 구하기 위해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다.  추상적 사랑뿐만이 아닌 육체적 사랑이든 정신적 사랑이든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하는 사랑으로 이 세상에서 위안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을 뿐이라는,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이 새

운 세계를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도 몇몇 고전과 함께 늘 읽고 싶은, 읽어야 할 고전이기만 했

다. 그가 <월든>뿐 아니라 <시민의 불복종>도 썼다는데 그가 쓴 문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것만은 알고 있다. 즉, 이 매사추세츠 주 안에서 천 사람이, 아니 백 사람이, 아니 내가 이

름을 댈 수 있는 열 사람이,  아니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이라도  노예 소유를 그만두고 실제로 노

예 제도를 방조하는 입장에서 벗어나며  그 때문에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놀라운 한 사람이 힘을 보여준 그가 속했던 시대적 배경을 보니  그의 비장함과  지향하는

가치가 더 빛나 보였다.  그 시대적 배경은 다름 아닌  미국과 멕시코와의 전쟁이었는데,  얼마 전

하워드 진, 레베카 스테포프의 <살아있는 미국역사>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역사였다.

 

앞으로 고전은 계속 읽을 것이다. 읽어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고전을 읽지 못함에 대해 예전만큼 콤플렉스를 가지지 않을 것 같다.

고전이 가지는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와 자혜를 알기 쉽게 알려주는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요, '당

대의 언어'로 쓰여진 당대의 책만이 주는 알기 쉬운 지혜와 가치를 즐겨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은  한문이나 중국어보다 그리고 우리네 조상들이 19세기 이전까지 써오던

말보다 훨씬 더 영어에 가깝다 하지 않았나.

 

푸시킨의 <대위의 딸>, 스탈 부인의 <코린나-이탈리아 이야기>의 배경이 된  혁명을 보며 궁금증

이 생겼다.

무릇 혁명이 성공하려면 어떤 것이 탄탄해야 하나?

혁명의 성공 배경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또, 성공한 혁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 궁금증에 답해줄 책을 언젠가 만나겠지만, 저자의 또 다른 책 <문화로 읽는 세계사>를 먼저 만

날 것 같다.

저자 주경철이라면, 세월을 뛰어넘는 가치와 지혜를 이해하기 쉬운 당대의 언어로 만나게 해 줄것

같다.

 

읽은 날   2012. 6. 1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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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
신영길 지음 / 나무생각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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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 신영길>

 

블로그를 하면서 주중 TV시청이 없어졌고 대신 매달 1~2권을 더 읽게 됐다. 멍하니 있는 시간

대신 스마트폰을 계속 보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 속에 쌓인 피로감을 발견했고 그즈음

마음에 자리 잡은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통해 주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자 했다.

그렇다고 특별히 자연을, 주위를 바라보지 않았지만, '잠시 멈춤'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만으로

도 많은 위안을 받았다.

이렇게 자연은 '그저 있는 것'만으로도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며칠 전 읽은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를 보니 더욱 더 이 책, <나는 연 날

리는 소년이었다>가 떠올랐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습 삼아 하는 일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실전만이 훈련이었

다. 내게 연습용 화살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루기는커녕 나는 지금도 삶이 버거워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가. 홀로 외로웠다...."

 

누구에게나 겨울이 있다는 걸, 어디쯤 봄이 오고 있음을 믿지만, 그의 겨울은 유독 길었고 봄은

항상 더디게 왔다. 그런 막막한 겨울 어디쯤, 그는 겨울의 심장이 보고 싶어 막연한 시베리아

어디쯤, 바이칼호에 갔다.

 

바이칼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2500만 년) 가장 깊은 호수다. 전세계 얼지 않는 담수량의

20%, 러시아 담수량의 90%를 차지한다. 이외 바이칼호가 갖고 있는 수치는 뭐든지 어마어마

하다.

 

무작정 찾아간 바이칼호,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바이칼호는 수백 개의 강이 유입되고 오직 하나의 강으로만 유출되는 자칫 부패할 수 있는 구조

다. 그런데도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청정수를 유지하는 건 수없이 많은 지진과 화산 활동을

통해 제 속을 뒤집어 엎으며 끝없이 자정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아무 말 없이 있는 그대로의 바이칼호는 저자에게 '깨우침을 얻는 성소'였던 모양이다.

 

"바다처럼 큰 호수가 자신의 몸 전체를 결박해버리고 바늘구멍 하나 없이 봉인한 채 겨울 수행을

하는 바이칼의 모습. 위대한 성자 앞에서 나는 자복하고 말았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나 엄

살이 심했던가. 스스로 무릎 꿇었다..."

 

"생각해 보면 지나온 삶은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나를 괴롭혔던 자학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제 내 발자국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보다 큰 은혜이리라. 도대체 얼마나 걸린 것인가.

삶이란 그냥 사는 것일 거란 싱거운 생각에 이르게 되는 데까지. 무엇을 이룩하기 위해서 또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산다는 그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게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나보다."

 

저자는 머리로 아는 '숭고함'을 눈으로 귀로 피부로 온 몸과 마음으로 직접 경험했다.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 삶을 힘겹

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중

 

이 책, <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를 읽은 후 나도 언젠가 바이칼에 가고 싶어졌다. 오랜 생명

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끊임없는 자기 성찰 (수 많은 지진과 화산활동)로 얻어진 생명

력, 그 심장을 보고 싶었다.

바늘구멍 하나 없이 온 몸을 결박하고 수행하는 자연의 모습, 그 앞에서 나는 얼마나 허물어질까.

그 허물어짐 뒤에 내가 새로 세울 것은 무엇일까.

허물고 세우는 것이 없어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을까.

 

유난히 춥고 시린 겨울이 내게 온다면 그때 찾아가보리라.

따뜻한 봄날, 문득 마음이 동하면 그때 찾아가보리라.

유난히 쨍한 여름이어도, 유난히 쓸쓸한 가을이어도.

언제고 언젠가.

 

바이칼호...

내 마음 속 성지가 되겠지.

 

읽은 날 2009. 8. 27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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