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으로 역사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 주경철>
고전.
고전은 하나의 콤플렉스다. 읽어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항상 위시 리스트에 고전 한 두 권쯤 담아놓고 언젠가....를 고대한다.
내게 <논어>도 늘 그런 책이다.
일찍이 송나라 유학자 정자의 말은 <논어>를 쉽게 펼치지 못하게 한다.
"<논어>를 읽지 않았을 때도 그저 그런 사람이요, 읽은 후에도 그저 그런 사람이면 곧 읽지 않은
것과 같다."
예전 박경리의 <토지>를 읽은 첫 소감은 이랬다.
"누구든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기는 역시 힘든 모양이다."
100여년 긴 세월이 바탕이 된 그 소설에서 최서희가, 김길상이 그 성품으로 지금 시대에 살았다
면 어땠을까. 나는 그 시대에 어떤 인물로 오버랩 될까...싶은 것이 시대의 한계에 묻힌 인간상이
첫 화두였다.
그러하기에 고전은 텍스트의 문맥과 함께 그 시대의 배경을 이해해야만 더 받아들이기 쉬울지
모르겠다. 단순히 텍스트의 이해가 '고전'의 빛나는 명성의 전부가 아닐 것이다.
물론, 시대의 배경과 상관없이 100년, 1000년 이상 살아 남은 책이 가지는 위용도 흠모해야 하
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 <문학으로 역사 읽기, 역사로 문학 읽기>의 장점은 매우 뛰어나다.
문학 속에 나타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줌으로써 역사와 문학 상호 간에 넘나듬이 매우 신선할
뿐만 아니라 어렵게 느껴졌던 고전을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역사는 '흑사병'이다.
흑사병의 발병은 중앙아시아였는데, 1346년 킵차크한국의 통치자가 흑사병이 몽골군을 습격하
자 남은 병사와 함께 철수했다. 이때 통치자였던 야니벡이 공성기(캐퍼필드)를 이용해 죽은 시체
들을 성 안으로 날려보내고...그 성 안에 있었던 제노바 상인들이 1347년 자유를 되찾아 고향으
로 귀국했을 때 감염된 쥐와 병균이 함께 들어갔을 것이라 한다.
이 무서운 전염병으로 인간 사회가 거의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보카치오
의 <데카메론>은 생의 의미를 다시 구하기 위해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라
한다. 추상적 사랑뿐만이 아닌 육체적 사랑이든 정신적 사랑이든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행하는 사랑으로 이 세상에서 위안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을 뿐이라는, 그리고 그 사랑의 힘이 새
로운 세계를 태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그 외,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도 몇몇 고전과 함께 늘 읽고 싶은, 읽어야 할 고전이기만 했
다. 그가 <월든>뿐 아니라 <시민의 불복종>도 썼다는데 그가 쓴 문구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것만은 알고 있다. 즉, 이 매사추세츠 주 안에서 천 사람이, 아니 백 사람이, 아니 내가 이
름을 댈 수 있는 열 사람이, 아니 단 한 명의 정직한 사람이라도 노예 소유를 그만두고 실제로 노
예 제도를 방조하는 입장에서 벗어나며 그 때문에 형무소에 갇힌다면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놀라운 한 사람이 힘을 보여준 그가 속했던 시대적 배경을 보니 그의 비장함과 지향하는
가치가 더 빛나 보였다. 그 시대적 배경은 다름 아닌 미국과 멕시코와의 전쟁이었는데, 얼마 전
하워드 진, 레베카 스테포프의 <살아있는 미국역사>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역사였다.
앞으로 고전은 계속 읽을 것이다. 읽어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고전을 읽지 못함에 대해 예전만큼 콤플렉스를 가지지 않을 것 같다.
고전이 가지는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와 자혜를 알기 쉽게 알려주는 책을 읽어도 좋을 것이요, '당
대의 언어'로 쓰여진 당대의 책만이 주는 알기 쉬운 지혜와 가치를 즐겨도 좋을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은 한문이나 중국어보다 그리고 우리네 조상들이 19세기 이전까지 써오던
말보다 훨씬 더 영어에 가깝다 하지 않았나.
푸시킨의 <대위의 딸>, 스탈 부인의 <코린나-이탈리아 이야기>의 배경이 된 혁명을 보며 궁금증
이 생겼다.
무릇 혁명이 성공하려면 어떤 것이 탄탄해야 하나?
혁명의 성공 배경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또, 성공한 혁명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 궁금증에 답해줄 책을 언젠가 만나겠지만, 저자의 또 다른 책 <문화로 읽는 세계사>를 먼저 만
날 것 같다.
저자 주경철이라면, 세월을 뛰어넘는 가치와 지혜를 이해하기 쉬운 당대의 언어로 만나게 해 줄것
같다.

읽은 날 2012. 6. 1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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