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제법 오래 전 <미워도 다시 한번> 류의 드라마가 엄청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다. 똑순이로
유명했던 배우 김민희가 단골로 출연했는데, 비슷한 플롯으로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 시대 비슷비슷한 드라마, 영화가 넘쳐났고 그 중 몇 편을 어른들 어깨 너머로 봤다.
대놓고 '이 드라마, 영화 아주 엄청 슬퍼요, 울지 않을 수 없어요~' 하던 영상물. 그 시대 사람
들이 보면서 같이 울고 감정을 해소하고 그랬다.
출퇴근길, 인기가요를 듣는다. 빠르고 랩이 많은 노래보다 감성적 노래를 선호한다. 가끔
삭제 key를 누르는데, 우는 음색이 주 대상이 된다. 호소력과 감성이 지나쳐 '울음' 수준인
음색을 들으면 여지없이 다음 노래를 누르거나 삭제를 하게 된다.
'대놓고 슬퍼요~' 하는 노래는 슬플 때도, 그냥 그럴 때도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슬프기는
커녕 기분이 나빠진다.
노래 뿐 아니라 드라마, 영화, 소설...많은 창작물이 그런 거 같다.
슬픔이 슬픔에서 머물면 '힘들다.'
주인공은 슬픔에 함몰되지 않고 그럼에도 씩씩해야 하고, 희망을 가지거나 희망을 줄 수 있어
야 한다.
동병상련 마음, 혹은 다른 무엇으로 불릴 수 있는 마음으로 같이 울어주기 힘들어서일까.
김애란의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만족이 임계점을 넘어 감탄이 되는' 소설이다. 감
탄스러운 소설을 써내느라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자리지만,
난 알아.
네가 그것을 얼마나 함들고 외롭게 뛰어넘었는지."
작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애독자가 되버린 나도 감히 그녀에게 말해주
고 싶다.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시간을 견뎠는지, 그 견딤을 매우 잘 보았노라고.
덕분에 나도 힘이 난다고, 고맙다고.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름이다. 그의 신체나이는 80세, 키는 2cm 줄어서 128cm이다. 빨리
늙는 병에 걸렸고, 건강에 무지한 건강, 청춘에 무지한 청춘을 부러워하는 17살 소년이다.
"우리가 병원에서 하는 일은 항상 비슷했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정해진 검사를 하고, 정해진
실망을 하는 것. '더 나빠졌군요' 라든가 '계속 지켜봅시다' 라든가 '장담할 순 없지만...' 이
는 얘기를 듣는 것. 호기심과 혐오, 연민과 탄식이 깔린 긴 복도를 지나가는 것.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사람을 보고 내비치는 안도의 눈빛을 감내하는 것. 건강한 사람이 건강한 사람과 나
누는 사소한 대화, 그리고 웃음에 귀기울이는 것. 내 몸이 내게 거는 말에 일일이 답해주는
것. 내 몸이 나의 주인처럼 구는 것에 굴복하는 것. 뜻을 알 수 없는 이름이 줄줄이 적힌 처방
전을 연애편지 읽듯 뚫어져라 응시하는 것....그런 게 우리가 병원에서 하는 일이었다. 우리
는 그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녀의 부모는 아름이와 같은 나이에 아름이를 가졌다. 병원 복도, 호기심과 연민 그리고 탄
식이 깔린 곳을 남의 이목 따위는 진작부터 신경쓰지 않았다는 듯, 잘못한게 없으니 도망치
지 않겠다는 식으로, 어디서든 당당히 걸었지만, 어느 날 아름이의 설득으로 TV 프로그램
출연을 결정한다.
TV출연을 앞둔 아름이의 말.
"나는 내가 너무 괜찮아 보여서도, 지나치게 혐오감을 줘서도 안된단 걸 알았다. 사람들이
직시할수 있을 정도의 불행, 기부 프로그램을 움직이는 건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난감했다.
아름이 말이 너무 정확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직시할 수 있을 정도의 불행에, 심지어 어른까지 보듬어 주는 심성을 지녔다면 프로
그램 작가 말처럼 '대박' 난다는 점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을 알아보는 기준이 있어요.
그건 그 사람이 도망치려 한다는 거에요.
엄마, 나는....엄마가 나한테서 도망치려 했다는 걸 알아서, 그 사랑이 진짜인 걸 알아요."
아름이를 가진 것을 안 열일곱 살 소녀는 무서웠다. 혼란스러웠다. 운동장을 열 바퀴고 스무
바퀴...심장이 터질 때까지 밤새도록 뛰고 또 뛰었다. 아름이 건강이 자신의 탓인건만 같은
죄책감을 가진 엄마와
아름이가 자신의 슬픔이어서 기쁘다는 아빠.
그리고 도망치려 했던 엄마를 그러안으며 자기 인생이 두근두근하다 말하는 아름이.
그 셋을 중심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책장을 덮기가 힘들다. '쉬었다 읽어야지' 라는 마음을 가
지기 어렵다.
평생 (마음의) 감옥에서 지낸 아름이에게 수고했으니, 이젠 독방으로 가라하는 장면, 아름이가
의사가 하는 말을 통해 의사가 하지 않은 말을 찾아내는 장면, 장씨 할아버지가 몰래 쥐어준 소
주팩, 아름이가 느꼈던 사람들의 따뜻한 악수를 이용해 먹은 그 넘.
"이야기를 짓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사람과 장소와 시간을 고루 살피며 문장까지 신경써
야 하는게 만만치 않아서였다. 글쓰기는 매순간이 결정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그걸 내
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야기는 중간중간 자주 멈췄다. 그럴 때면 홀로 북극
에 버려진 펭귄이 된 기분이 들었다. 참으로 막막하고 무시무시한 순간이었다."
매순간 순간 결정과 선택의 힘든 작업을 훌륭히 수행한 작가에게 인사를 한다. 당신 덕에 슬픔
이 정화되고 승화되는 게 뭔지 알겠다고.
당신은 북극에 버려진 펭귄이 아니라, 우리가 슬픔에 함몰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여 끝내 다시
일어설 기운을 내게 해주는 '반짝반짝 북극성'이라고.

읽은 날 2012. 5. 24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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