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생각해 봐! 세상이 많이 달라 보일 걸, 우석훈 외>
책을 읽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였다. 어떤 계기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고교생활 중 '책'
은 제법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학교 수업이 재미없으면 몰래 펴 놓고 보기도 하고, 책 한권씩 읽을 때마다 추천 리스트를 지워가
는 만족감을 얻기도 하고.. 그 중 생각나는 건 어느 시험 전날 김창완이 진행하는 라디오프로그램
에서 소개된 어느 백형별 걸린 소녀의 이야기였다. 한 번 잡은 책을 놓지 못해 12시 1시 되도록
읽고 눈이 빨개지도록 울고, 결국 퉁퉁 부은 눈으로 시험을 본 기억이 새롭다.
그 후 20대는 절독의 시기였다.
지금처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책 정보를 취득하기 어려웠던 시절, 책이 소설 등 문학만 있는줄 알
았다. 그렇게 접한 소설 등 문학작품은 한결같이 우울했다. 우울, 슬픔, 좌절, 절망이란 단어가
없어도 글자 사이사이, 행간 사이사이 티슈로 꾹 누르면 그런 단어가 묻어나올 것 같았다.(아마도
그건 그 당시 시대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들어 가는듯한 우울에 지쳐 서서히 독서를 끊어 갔다.
다시 독서를 시작하게 된 건 아이를 낳고서였다. 육아서를 집어들었고 서서히 범위가 넓어졌다.
편리한 각종 매체는 푸르고 짙은 바다처럼 넘쳐나는 책 정보가 가득했고, 소설 외 다양한 분야가
미지의 세계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 잊을만하면 찾아오는 의문이 있었는데, 바로 '문학작품을 왜 읽는 것일까?' 였다.
아마도 20대 때 소설류를 읽으며 '암울한 기분'인 채로 절독한 영향이 컸나보다.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2008년 부터였다.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발췌본을 만들고....
그러던 어느날, 염무웅의 <문학과 시대현실>을 읽어봤지만 그리 와닿지 않았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학을 왜 읽어야 하는가.
이 질문을 다시 마음 속 벽장에 담아놓고 있던 어느 날, 이 책 <거꾸로 생각해 봐...>를 만났다.
이 책은 십대를 대상으로 '당연한 것들'로 인식되는 일곱 가지 것들을 알기 쉽게 풀어낸 책이다.
십대를 대상으로 하다보니 제목도 내용도 쉽고 재미있다.
7가지를 쉽게 풀어 쓴 저자는 우석훈, 강수돌, 강양구, 우석균, 이상대, 김수연, 박기범 이다.
익숙한 이름, 낯 선 이름 다양하다.
이상대가 풀어 쓴 '시.소설'편, 어렵고 두꺼운 책보다 명쾌하게 문학을 알려준다.
"시, 소설 안 읽고도 여태껏 잘만 살았다고?
사회 지식보다 사회 의식이 중요하고, 역사 지식보다 역사 의식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의식을 키
울 것인가. 앞에서 얘기했듯 시와 소설을 가까이 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시와 소설을 읽고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개인적인 사소한 일 같지만, 아닙니다. 내 삶을 돌아보고 그를 바탕으로 세
상에 적극 참여하는 사회 행위인 것입니다.
이제 '시 안 읽고도 여태껏 잘만 살았는데요.' 이렇게 맹랑한 얘기는 하기 없기입니다. 시 소설같
은 문학을 가까이 해야 영혼이 살찌고, 이 혼탁한 세상에 그나마 사람답게 사는 길이 열립니다.
친구들의 건투를 빕니다."
그 후 다른 책들을 통해 '문학의 의미'를 계속 발견하게 됐지만, 이 글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그 외 현재 중남미에는 '승자 독식'이라는 말조차 없는, 분리가 완전히 끝난 사회임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우석훈의 글, 세계 농약의 80%가 후진국인 제3세계에서 사용되며 농약 중독 사고 99
%가 제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강수돌의 글 등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다.
"백신이나 치료약이 개발된 수많은 질병들 가운데 유독 소아마비가 '박멸'에 이르게까지 된 까닭
은 바로 백신 개발자인 소크 박사가 특허를 포기했기 때문이야. 소크 박사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
자 수많은 제약회사가 특허를 양도하라고 부추겼지만 그는 '태양에 특허를 신청할 수 없다.' 며
주위의 권유를 뿌리쳤거든,
지금 세계보건기구에 납품되는 소아마비 백신 1개의 값은 단돈 100원 정도야.
.....지금 전 세계의 가장 큰 보건 문제는 치료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데
있거든.
생각해 봐. 나치가 유태인과 집시, 동성애자들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는 몇 해 동안 600만 명을 죽
였고 이것이 인류 최대의 대량학살로 알려져 있지. 그런데 에이즈 하나만 보더라도 지금 지구상
에서 약이 있는데도 1년에 300만 명이 죽어 가는 홀로코스트가 벌어지고 있어. 이러한 사실상의
대량학살을 다국적 제약회사들과 몇몇 선진국들이 정당화하는 근거는 다름 아닌 '특허권의 보호'
라는 거야."
태양에 특허를 신청할 수 없다니!
이 얼마나 감동적인 문구인가!
소크 박사는 엄청난 부와 권력,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을텐데.
지금도 수 많은 예비 소크 박사가 있을테지만, 다국적 제약회사의 '특허권 보호'를 당해낼 수 있을
까!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람은 합리적 동물이 아니다.
스스로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이 명제에 동의한다.
나 또한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고 때론 자각 증세 없이 그 생각을 고집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잘못된 생각을 합리화하고 고집하며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거꾸로 생각해 보자. 세상이 많이 달라져 보일 테니까.

1995.6.25 경향신문에서 인용
읽은 날 2011.7.5 by 책과의 일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