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
신영길 지음 / 나무생각 / 200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 신영길>

 

블로그를 하면서 주중 TV시청이 없어졌고 대신 매달 1~2권을 더 읽게 됐다. 멍하니 있는 시간

대신 스마트폰을 계속 보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 속에 쌓인 피로감을 발견했고 그즈음

마음에 자리 잡은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통해 주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자 했다.

그렇다고 특별히 자연을, 주위를 바라보지 않았지만, '잠시 멈춤'의 필요성을 깨달은 것만으로

도 많은 위안을 받았다.

이렇게 자연은 '그저 있는 것'만으로도 지친 마음을 달래준다.

며칠 전 읽은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같은 이야기>를 보니 더욱 더 이 책, <나는 연 날

리는 소년이었다>가 떠올랐다.

 

"사회에 나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습 삼아 하는 일은 용납이 되지 않았다. 실전만이 훈련이었

다. 내게 연습용 화살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루기는커녕 나는 지금도 삶이 버거워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가. 홀로 외로웠다...."

 

누구에게나 겨울이 있다는 걸, 어디쯤 봄이 오고 있음을 믿지만, 그의 겨울은 유독 길었고 봄은

항상 더디게 왔다. 그런 막막한 겨울 어디쯤, 그는 겨울의 심장이 보고 싶어 막연한 시베리아

어디쯤, 바이칼호에 갔다.

 

바이칼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2500만 년) 가장 깊은 호수다. 전세계 얼지 않는 담수량의

20%, 러시아 담수량의 90%를 차지한다. 이외 바이칼호가 갖고 있는 수치는 뭐든지 어마어마

하다.

 

무작정 찾아간 바이칼호, 그는 무엇을 보았을까.

바이칼호는 수백 개의 강이 유입되고 오직 하나의 강으로만 유출되는 자칫 부패할 수 있는 구조

다. 그런데도 지구상에서 가장 깨끗한 청정수를 유지하는 건 수없이 많은 지진과 화산 활동을

통해 제 속을 뒤집어 엎으며 끝없이 자정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아무 말 없이 있는 그대로의 바이칼호는 저자에게 '깨우침을 얻는 성소'였던 모양이다.

 

"바다처럼 큰 호수가 자신의 몸 전체를 결박해버리고 바늘구멍 하나 없이 봉인한 채 겨울 수행을

하는 바이칼의 모습. 위대한 성자 앞에서 나는 자복하고 말았다. 그 동안 살아오면서 얼마나 엄

살이 심했던가. 스스로 무릎 꿇었다..."

 

"생각해 보면 지나온 삶은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고 나를 괴롭혔던 자학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제 내 발자국이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무엇보다 큰 은혜이리라. 도대체 얼마나 걸린 것인가.

삶이란 그냥 사는 것일 거란 싱거운 생각에 이르게 되는 데까지. 무엇을 이룩하기 위해서 또는

무엇이 되기 위해서 산다는 그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게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나보다."

 

저자는 머리로 아는 '숭고함'을 눈으로 귀로 피부로 온 몸과 마음으로 직접 경험했다.

"가장 훌륭한 태도로, 가장 예의를 갖추어 우리를 넘어서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은 아마 자연의 광대한 공간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 삶을 힘겹

게 만드는 사건들, 필연적으로 우리를 먼지로 돌려보낼 그 크고 헤아릴 수 없는 사건들을 좀 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중

 

이 책, <나는 연 날리는 소년이었다>를 읽은 후 나도 언젠가 바이칼에 가고 싶어졌다. 오랜 생명

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끊임없는 자기 성찰 (수 많은 지진과 화산활동)로 얻어진 생명

력, 그 심장을 보고 싶었다.

바늘구멍 하나 없이 온 몸을 결박하고 수행하는 자연의 모습, 그 앞에서 나는 얼마나 허물어질까.

그 허물어짐 뒤에 내가 새로 세울 것은 무엇일까.

허물고 세우는 것이 없어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을까.

 

유난히 춥고 시린 겨울이 내게 온다면 그때 찾아가보리라.

따뜻한 봄날, 문득 마음이 동하면 그때 찾아가보리라.

유난히 쨍한 여름이어도, 유난히 쓸쓸한 가을이어도.

언제고 언젠가.

 

바이칼호...

내 마음 속 성지가 되겠지.

 

읽은 날 2009. 8. 27 by 책과의 일상

 

http://blog.naver.com/cjii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