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 철학 소설 시리즈 1~10 세트 - 전10권 탐 철학 소설
전호근 외 지음 / 탐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탐 철학소설 시리즈(총 10권)는 동서양 사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한 편의 소설로 풀어낸, 청소년을 위한 교양 소설입니다. 철학의 딱딱함을 '이야기의 힘'으로 순화시켜, 청소년들이 쉽게 철학을 대할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인데요, 내용과 기획의 참신함으로 여러 공공 기관 및 청소년 단체에서 우수도서로 선정됐다고 합니다.

 

탐 철학소설 시리즈에는 이러한 책들이 있어요.



 

 

 

  

이 중에서 7권을 읽어봤는데요, 간단한 안내를 해보렵니다.

 

 

 

 

 

<마르크스, 서울에 오다>가 7권 중 제일 재미있었어요.
이 책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마르크스(진짜 마르크스는 아니구요)란 중년 외국인 아저씨가 대한민국 중산층 가정 집에 열흘 간 홈스테이를 합니다. 마르크스 아저씨는 광화문, 시청, 홍대 등을 다니며 '많은 지식'으로 무장한 '대화?'로 주인공 에게 새로운 지평선을 열어주는데요, 이 때의 '많은 지식'은 마르크스 사상이고 '대화'는 대화라기보다 교육에 가까워요.
이런 딱딱함을 중화시켜 주는 장치로 홍대거리, TV 드라마 등 익숙한 소재가 등장합니다. 덕분에 젠체 하며 본격적으로 가르치려 하기보다 일상에서 보여지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하는 방식이 되어 편안합니다.

 

마르크스와 얘기하는 것은 대개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입니다.

소매치기를 당하면서 범죄의 사회학에 대해 얘기하고, 노동자이면서 노동자임을 인정하지 않는 주인공 아빠를 보며 자본주의에 대해 얘기하고, TV 드라마를 보며 대중 문화의 숨겨진 이면을 논합니다.

 

이렇게 쉽게 접할수 있는 일상에서 마르크스적인 주제를 자연스럽게 꺼내 대화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에요.
자연스러움과 강한 전달력 덕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쌍둥이 형제가 두 번의 시간여행을 하면서 겪게 되는 일과 시간여행에 대한 이론이 적당히 버무려져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특수, 일반)에 대해 쉽게 알려주고 있는데요, 오래 전 <E=mc2>란 책을 읽어봐도 모르겠던 걸 덕분에 조금 알게 됐습니다.

    

소설 내용은 이렇습니다.
쌍둥이 중 한 명이 첫번째 시간 여행을 한 뒤 혼자만 5년 전 그대로라 어려움을 겪습니다. 시간여행을 하고 오니 자신은 여전히 작고 야윈 초등학생인 반면, 같이 자랐던 쌍둥이 형제는 듬직한 청소년으로 자랐거든요. '시간여행'은 좋았지만, 또래와 다른 외톨이 같은 심정은 주인공을 괴롭혔습니다.
다행히 기술이 발달해 자신의 5년전 과거로 되돌아가는 두 번째 시간여행을 하며, 소설이 끝납니다.

         

소설의 이야기적 완성도는 높지 않습니다만(그래도 나름 신선하고 재미있게 읽었어요) 사이사이 어려운 상대성원리를 쉽게 알려주는 장점이 좋게 느껴진 책입니다.
 

 

 

 

 

 

 

루소는 <에밀>이란 작품을 썼습니다. 에밀이라는 남자주인공이 성장하는 교육 소설인데요, 루소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교육관,종교관을 집대성했습니다.
이 책 <루소, 학교에 가다>는 루소의 <에밀>이란 작품이 연상됩니다.  (제목과 등장인물이 서로 겹쳐 헷갈립니다...)
    
<루소, 학교에 가다>에는 두 명의 아이(이코, 에밀)가 나와요. 그 중 한 명인 이코(역시 쌍둥이)는 성적 올리기에만 급급한 학교를 다니다 우연히 가상마을 존재를 알게 됩니다.  반면  에밀은 루소의 교육관이 실천되는 곳에서 유유자적? 살아요. 그는 주입식 교육이 아닌 인성과 자연스런 환경과 흐름 속에서 스스로 깨쳐 배웁니다.
         
에밀이 사는 곳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데, 바로 가상현실이라는 점입니다.
에밀은 이코같은 아이들이 처한 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실험 속에 살고 있는데요, 실험이 비밀 유지에 실패하고 반대세력이 늘어나면서 결국 중단됩니다.
            
실험이 갑작스럽게 중단되는 것을 보니 루소의 <에밀>이 일으켰던 파문이 떠올랐습니다. 루소의 <에밀>은 1762년 파리에서 출간되자마자 금서 처분을 받고, 루소에게는 체포 영장이 발부될 만큼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어요. 이는 루소가 기독교의 요체인 원죄설과 계시 신앙을 부정하는 요인을 내포하는 ‘시민종교’를 역설했기 때문이랍니다. 당시 시대가 품을수 없었던 종교관과 교육관때문에 비난받았던 루소의 꿈이, 소설 속 실험 중단과 겹쳐 보이더군요.
     
제목만큼 루소를 효율적으로 차용해 <에밀>이란 작품과 묘한 공통점을 이끌어내고, <에밀>처럼 못다한 꿈으로 <루소, 학교에 가다>란 작품이 끝나는 게 닮아 있어, 인상깊습니다.

           

굳이 '에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처한 '교육'의 문제점을 부담스럽지 않게 환기시켜 준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이 아닐까 싶어요.

 

 



푸코의 사상은 세 단계로 진행됐다고 합니다.
제1기는 <정신 질환과 인격>, <고전주의 시대에 있어서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등의 저서를 중심으로 인식론적 연구에 집
중하던 시기
제2기는 <말과 사물>과 <지식의 고고학>을 중심으로 한 이론 언어학의 연구 시기
제3기는 <감시와 처벌 : 감옥의 탄생>과 <성의 역사>를 출간했던 시기
     
이렇게 잔뜩 어려운 푸코를 이 작은 책(일반 책보다 면적이 적고 272쪽입니다)은 알차게 풀어내고 있습니다(아, 제가 푸코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이런 표현을....).
광인, 가난, 정신병이 시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졌음을 알려 주면서 독자의 질문하는 힘을 길러주고 있어요.
         
대개 이러한 질문이죠.
난 변한 게 없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선 밖으로 밀려났을까?
내가 다르다는 게 밀어낼 이유가 되는 걸까?
누가 밀어 냈을까?
날 밀어내고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실존적인 질문은 거대한 일상과 관성적인 삶에 당연히 묻힙니다. 이런 책을 읽어도 쉽지 않은 일이에요. 대부분 시대에 압도당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아주 가끔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면, 이 책 <푸코, 감옥에 가다>는 기뻐할 거 같아요.

 

 

 



 

플라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감각적인 세계와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이데아의 세계를 뚜렷이 구분했습니다. 이데아의 세계야말로 진짜 존재하는 것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했어요.
하여, 이 책 <플라톤, 영화관에 가다>는 가상현실 느낌이 나는 영화관을 배경으로 선택합니다.
매우 영리한 판단이에요.

주인공은 영화관을 통해 플라톤과 소크라테스가 활동하던 고대 그리스 세계로 넘어가고 현지?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습니다.
이 설정은 현실(감각세계)과 이성(영화관을 통해 넘어간 고대 그리스 세계)을 구분시키는 효율적인 장치로 작동합니다.
이 포맷을 보니, 탐 철학소설 시리즈는 철학자를 단순히 소개하는 것을 넘어 앎의 이해를 재창조한다는 느낌이 나더군요. 다양하고 신선한 각도에서 철학자를 차용하고 활용해 나름의 목표를 훌륭히 수행하는, 좋은 책이란 생각이 듭니다.

           

또한 고매한 철학자한테 함몰되지 않고 나름의 씩씩한 논리를 펴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히 이 책 <플라톤, 영화관에 가다>는 플라톤이 3D 화면을 본다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기까지 합니다.

저자의 용감한 상상이 참신하고 재밌습니다.



 
 


이 책은...난해했습니다. 사실 난해할 수밖에 없어요. 장자의 사상을 딱부러지게 표현하기 힘드니까 알기 쉽게 표현하기 어려운가보다...란 생각이 들어요.
    
이 책에 나오는 돌고 도는 대화를 소개할께요.
   
나는 지금 찰나의 순간만 '나'이고, 이 허물을 벗어 던지면 나는 나도 뭣도 아닌 것이다. 란 말에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는가 라고 되묻는 대화가 나옵니다.
   
생긴 대로 열심히 살지, 왜 내가 없어진 다음의 삶을 기웃거리는가, 란 질문에
'OO'란 문패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란 말이 나오구요.
   
이런 선무당 같은 대화는 난해할 수 밖에 없습니다.
흠.... 동양철학이 더 어려웠나? 란 생각이.....들더군요.
난해함에 큰 인상을 받지 못했지만, 독자마다 다르게 읽힐 거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읽다가 말았습니다.
1년에 50~90권의 책을 읽는데요(올해는 현재 70권 정도 읽었네요), 읽기를 포기하는 책은 2~3권 정도됩니다. 대부분은 완독하는 편입니다만, 이 책은 읽기가 매우 어렵더군요.
주제가 분명하지 않은 대화가 반복되어 피곤했는데요, 아무래도 동양 사상이 어려운가 봅니다.

 




     


 



이상으로 탐 철학소설 10권 중 7권에 대한 리뷰를 마칩니다.
탐 철학소설이 청소년 대상이라, 성인이 읽기에는 다소 부족할 수 있습니다. 괜찮은 거 같은데, 감동받을 정도는 아닌.... 애매모호한 경계에 있어요.
그러나 주제를 풀어가는 참신함과 딱딱한 철학을 부드럽게 해주는 능력이야말로 칭찬받을만 합니다.

 

부디 좀 더 많은 청소년과 독자가 이 시리즈로 철학과 가까워지고, 깨어있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애쓰셨고,
내일은 더 잘 되실겁니닷~!!! 

 

 

 

 

 

 

 

 

by 조약돌 礫, 날다  (구,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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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가 날고 트랜스젠더 닭이 울었사옵니다 - 과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살림청소년 융합형 수학 과학 총서 35
이성규 지음 / 살림Friends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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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스테디셀러와 기획물로 분류할수 있습니다. 스테디셀러는 꾸준히 읽힐수 있는 힘을 가졌으나 기획물은 잠깐! 반짝!에 그쳐요. 요즘 중고책을 팔다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스테디셀러의 기준은 '감동'인 거 같아요. 책의 내용이나 형식을 떠나 독자가 감동을 받으면 받을수록 꾸준히 읽히고, 단순 지식과 사실 전달이 대부분인 경우엔 계속 읽히긴 어려운 거 같아요.

얼마 전 K-POP STAR3란 TV 프로그램에서 버나드 박이 기술과 기교가 뛰어난 샘 김을 누르고 우승했는데요, 사실 샘 김의 음악성은 모든 심사위원이 천재라 극찬할만큼 뛰어났습니다. 반면 버나드 박은 음악성?도 악기 연주도 못하지만... 묵직한 음성에 가득 실린 무엇이 감상자로 하여금 감동을 느끼게 해, 그게 우승 이유 중 하나가 된거 같아요.
천재성, 음악성.... 모든 수식어가 있어도 예술의 이유 중 하나인 '감동'은 모든 걸 제압...하는 셈이죠.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입니다)

이렇게 사설이 긴 이유는 이 책 때문입니다.
<UFO가 날고 트랜스젠더 닭이 울었사옵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꼼꼼한 기록을 과학과 접목한 책인데요, 단순 사실을 알려주는 걸 넘어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강릉 사람 김문석의 집에, 반쯤 검은 암탉이 2월 초부터 변화하여 수컷으로 되었다.”
-『중종실록』

“종친 서성정의 집에서 한 여종이 한꺼번에 아들 세쌍둥이를 낳았는데 사람 몸뚱이에 개의 머리여서 사람들이 모두 해괴하게 여겼다.”
-『중종실록』

“길주 사람 임성구지는 음양이 모두 갖추어져 지아비에게 시집도 가고 아내에게 장가도 들었으니 매우 해괴합니다.”
-『명종실록』

이런 해괴한 비사들을 당대의 역사적 시각과 과학의 통찰력으로 읽어내는 저자의 노력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위해 기초자료 수집에 1년 그리고 보충자료와 집필에 2년, 모두 3년이 걸렸다고 하는데요, 긴 시간과 정성을 충분히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감동이란 이름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긴 힘들지만, 독창성과 꼼꼼하고 알찬 자료로 부담없이 가볍게 읽기에 괜찮습니다.
두고두고 읽히기에 한계가 있어 보이지만, 그런 책 중에서도 괜찮은 수작이라 여겨집니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세한 기록을 당대의 역사적 시각과 과학으로 풀어낸 독창성의 힘으로 꾸준히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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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비포 유 미 비포 유
조조 모예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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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하리만큼 잘났지만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환자가 된 젊은 사업가 윌 트레이너,
괴팍하리만큼 독특한 패션 감각을 지닌 엉뚱하고 순진한 여자 루이자 클라크"

이 문장만 읽어도 짐작갑니다.
평상시라면 만나기 힘든 남녀가 '불의의 사고' 덕(?)에 환자와 간병인이라는 관계로 만나 의도치 않게 사랑을 쌓아가는 달달한 연애소설...임을 쉽게 알수 있어요.
이렇게 결말과 진행과정이 투명한 유리같지만, 술술 읽히는 가독성과 '혹시나 다른 결말'이란 희망만큼 '내가 선택한 죽음'이란 주제가 곳곳에 드러나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윌 트레이너는 끔찍하기만 한 사지마비 환자의 생을 스스로의 선택으로 마감하려 합니다. 빗발치는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 마음을 굳히죠.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늘 그렇듯) 그의 삶에 등장한 여자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로 예상치 않게 만난 그를 사랑하게 되죠.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사랑을 키워가던 윌은 사랑하는 클라크를 두고도 결.국. '선택적 죽음'을 맞이합니다. 제발 옆에만 있어 달라는 클라크의 외침을 외면하고 떠납니다.

<미 비포 유>에는 '선택적 죽음'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이 존재합니다.
주인공 윌은 확고하게 선택적 죽음을 고수하는 반면, 클라크(그녀의 가족을 포함)는 사회적.도의적으로 잘못됐다 생각해요. 윌의 엄마는 그의 유년시절 기억에 사로잡혀 현실을 부정하고, 윌의 아빠는 거리를 두고 냉정히 바라봅니다.
이러한 시선 속에는 '선택적 죽음'이 정당한가에 대한 논의가 생략되 있습니다. 마치 조조 모예스가 일부러 '연애 소설'이란 장르를 선택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에요. 작가가 일부러 연애소설이란 장르를 골라 논란의 중심인 '정당성'을 '선택'의 문제로 치환시킨듯한 생각이 듭니다.
윌의 선택이 옳은가 그른가 대신, 윌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가 소설의 포인트에요. (그는 사랑하는 그녀를 놔두고 선택적 죽음을 택합니다)

선택적 죽음....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분명합니다만, 선택적 죽음이 그저 '자살'이 아닌, 엄격한 규제와  품위가 깃들어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가 고민없이 받아들이는 '생명 존중'이란 윤리의 실현 통로가 꼭 '자살'이어선 안된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먼 훗날, 윌 트레이너처럼 선택적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위치가 된다면, 저는 윌과 같은 선택을 하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떠나지 말아주세요 /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이에요... 라는 통속성 대신, 상대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그것이 내 슬픔을 가중시키는 것이라 하더라도 의연히 감내하고, 상대방 부재로 인한 본인의 외로움에 어찌할 줄 몰라 슬픔에 함몰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누군가의 부재를 슬퍼하는 것은 그의 부재로 인한 내 정체성이 상실되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나를 두고 가면 어떻게 하나요. 나는 어떻게 살라구요...라는 통속성에 익숙해서일까요.

"어느 날 당신이 지금보다 나한테 화를 덜 내게 되고 또 마음도 가라앉으면,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이로써 당신은 나를 만나지 않았던 때보다는 훨씬 더 좋은, 아주 멋진 삶을 살 수 있는 발판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요."

라고 말하는 윌과

"언니(클라크)는 아직 모를지 몰라도, 언니는 모든 게 달라졌다는 걸. 이제 윌 트레이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언니는 이곳에 머무르지 않을 터였다. 언니에게서 낯선 분위기가 풍겼다. 언니만의 깨달음과, 언니가 본 것들, 언니가 가본 장소들의 향기가 풍겼다. 우리 언니는 드디어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것이다."

이렇게 변한 클라크가 훨씬 더 보기 좋았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은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당신이 감상에 빠져 질질 짜는 건 생각하기 싫어요.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라는 연애소설다운 문장까지.

적당한 몰입도와 선택적 죽음을 둘러싼 성숙한 사랑까지 (꼭 죽어야 성숙한건 아닙니다. 성숙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서 보여지는 게 아닐까요)... 여전히 인기있는 베스트셀러의 적당한 이유를 찾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

 

 

 

 

 


읽은 날 2014. 5. 20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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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 시간 여행을 떠나다 탐 철학 소설 5
고중숙 지음 / 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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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어느 날, 쌍둥이(일혁이와 일석이 - 아인슈타인의 이름은 독일어로 ‘하나의 돌’이란 뜻) 중 한 명인 일석이는 로켓을 타고 우주여행을 합니다. 뜻하지 않게 운석과 충돌해 예정보다 늦게 지구로 귀환했더니, 지구에 남아 있던 쌍둥이 일혁은 훌쩍 자란 반면, 자신은 여전히 자그맣고 어립니다. 함께 뛰놀던 여자 친구는 활짝 핀 꽃처럼 아름다워져 더이상 아이가 아니었고, 오랜 만에 만난 친구들은 반갑기야 했지만 몇 마디 대화에 그쳐 버리죠.
일석은 자신이 원했던 시간 여행이지만, 가혹한 현실에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 사이 과학기술이 발전해 타임머신의 원리를 실현할 수 있게 되어, 5년 공백에 상처받은 일석은 자신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며, 소설이 끝납니다.

<아인슈타인, 시간 여행을 떠나다>에는 두 개의 시간여행이 나옵니다. 하나는 시간지연을 이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휘어진 시공간을 활용한 여행입니다.
시간지연은 특수상대성이론의 결론 중 하나인데, ‘정지한 사람이 볼 때 움직이는 사람의 시계는 자기 시계보다 더 느리게 가는 것으로 보인다’는 개념입니다. 즉, 지구에 남은 일혁의 시계는 광자로켓(광속의 0.9798배)을 탄 일석의 시계보다 빠르기 때문에, 일혁은 지구 시간 5년동안 성장한 거고 일석은 지구 시간 1년만큼 성장한 게 되는 것이지요.

두번째 시간 여행은 우리의 시공간이 휘어졌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태양을 큰 볼링공이라 생각하고 이것을 트램펄린에 올려놓으면 볼링공 주위의 면이 움푹 꺼지는데, 이것이 바로 공간의 휘어짐입니다. (우리는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의 시간으로 이루어진 4차원 세계에 살고 있어요) 공간이 휘어지는 것은 인력(중력)때문인데, 중력이 어마어마하게 강한 곳(블랙 홀)과 약한 곳(화이트 홀)을 연결(웜홀)하면 과거 혹은 미래로 갈 수 있다는 게 타임머신의 원리입니다.

이 책은 두 가지 시간여행을 경험한 일석의 이야기와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원리가 어떠한지, 설명하는 내용이 서로를 보충하며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칫 과학적 원리만 설명하면 지루할 뻔한 이야기는 일석의 공감 가능한 이야기로 보충이 되고, 허무맹랑할(?) 뻔한 이야기는 과학적 원리로 신빙성을 더합니다.
두 마리 토끼를 잡다보니 내면의 깊은 이야기가 아쉽지만, 소설 내용이 조화로워 부각되 보이진 않습니다.

이 책은 큰 아이의 독서를 위해 미리 읽어본 것입니다.
제가 추천한 몇 권을 어렵고 재미없다고 하길래, 소설과 접목한 책이라면 어떨까해 읽어봤는데 아이도 괜찮아 합니다.
<Why?> 같은 학습만화에 익숙해서 그런가 본데, 이 책은 만화 대신 '글'이라 다행스럽습니다.

지금 청소년은 과거와 달리 굉장히 많은 선택지가 있습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현란한 영상매체와 엔터만 치면 촤르륵 나오는 지식과 정보, 그리고 다양한 분야와 색다른 시도로 무장한 책들....
그 많은 선택지 중 아이는 무엇을 선택할까요.
무엇을 선택해야만 할까요.

그저 조바심과 채근 대신 시야를 넓혀주는 안내등 역할이기를,
오늘도 바래봅니다.

​읽은 날  2014. 3. 27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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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1. <어쩌다 중학생이 되었을까>, 쿠로노 신이치 : ★★★★★
2. <10대의 시계는 엄마의 시계보다 느리다>, 손동우 : ★★★★
3.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 ★★★★
4. <책만 보는 바보>, 안소영 : 어렵다고 포기
5. <우주 속으로 걷다>, 브라이언 토머스 스윔 & 메리 에블린 터커 : 재미없다고 포기
6. ​<오래된 연장통>, 전중환 : 재미없다고 포기
7. <프랜신의 학교 습격 사건>, 캐런 쿠시먼 : 재미없다고 포기​
8. <마르크스 서울에 오다>, 박홍순 : ★★★★
9.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 재미없다고 포기
10. <바보빅터>, 호아킴 데 포사다 : ★★★★
11. <아인슈타인, 시간 여행을 떠나다> 고종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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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아일랜드 - 개정판
박지향 지음 / 기파랑(기파랑에크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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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슬픈 아일랜드>는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 만화가 이원복 교수 편에서 보고 읽게 됐습니다. 그가 추천한 책 중 단연 눈에 띄였는데요, '먼나라 이웃나라' 내공이 거저 나오는게 아님을 여실히 느꼈습니다.

이 책은 우리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아일랜드에 관한 것으로, 박지향 교수의 글쓰기가 더해져 너르고 깊은 인문학적 가치를 뽐냅니다.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보며 '무엇을' 발견하고 성찰했는지에 대한 부분이 매우 인상적인 책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잉글랜드, 웨이즈, 스코틀랜드, 그리고 북아일랜드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나라가 영국입니다. 잉글랜드는 그 자체로 영국을 대표했고, ‘잉글랜드가 곧 영국’이라는 의식이 20세기 후반까지도 지속되었다네요)는 고만고만 했습니다. 외려 아일랜드는 성자와 학자들의 땅, 북유럽 신화가 넘치는 곳이었어요.
그러다 1536년 종교개혁을 깃점으로 영국의 본격적인 아일랜드 정복과 지배가 시작됐습니다.

영국에게 아일랜드는 문명 수준이 뒤떨어진, 게으르고 술독에 빠져 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하얀 깜둥이’였습니다. 그들을 개종(종교개혁 전 영국과 아일랜드는 모두 카톨릭이었음)하느니 단순히 대체해 버리는 것이 쉽다고 생각했어요.
이것이 아일랜드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신 vs 구, 문명 vs 비문명, 기독교 vs 카톨릭... 이런 이분법 구도 아래 오해와 불만이 쌓이기 시작해, 1600년 경 잉글랜드에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잉글랜드 아이들을 잡아 먹기 위해 석쇠에 굽고 있는 장면을 그린 판화들이 유포되어 가톨릭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기도 했다네요.

지리적으로 가까운 두 나라의 왕래는 아일랜드의 정체성을 흐려놓기도 했습니다.
태생, 혈통, 언어, 일종의 정신 상태, 종교까지 가세해 토착 아일랜드인, 구 잉글랜드인, 신 잉글랜드인, 그리고 얼스터 스코트랜드인으로 갈기갈기 찢어졌습니다. 단합해도 모자를 판에 편을 갈라 타자화 해버리고, 너는 아일랜드인이 아니야! 라는 선긋기로 끝없는 혼란에 빠집니다.

혼란과 함께 해가 저물지 않는 대영 제국(19세기) 옆에서 아일랜드는 '가장 슬프고 비참한 나라' 라는 정체성을 굳혀 갑니다.
선량한 아일랜드와 사악한 잉글랜드, 착한 의붓딸과 못된 계모 이미지 그리고 언젠가 위대한 전통 문명이 있었는데 이것이 잉글랜드의 간섭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확신이 실제 과거에 대한 기억을 대체해 버립니다.
영국에 아일랜드는 단지 ‘하나의 문제’일 뿐이지만, 아일랜드에 영국은 ‘유일한 문제’였고, 잉글랜드 사람들은 역사를 전혀 기억하지 않는 데 반해 아일랜드 사람들은 아무 것도 잊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미국자본의 투자로 아일랜드의 경제가 발전합니다. 외려 빛났던 영광을 가진 영국보다 잘 살게 되었어요.
아일랜드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영국을 뛰어넘자 미움도 가시고 너그러워집니다. 과거 영국인은 체통 지키기에 급급한 속물들이며,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아일랜드 운명에 뛰어든 이방인으로 미움의 대상이었는데 말이죠.

 

그 후(1970년대 초) 아일랜드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역사 다시보기' 였습니다.
잘 살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슬프고 비참한 나라’라는 이미지에 집착하며 피해의식으로 위안받고 도덕적 우월감을 유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죠. 아일랜드 말고도 ‘예외적으로 비극적이고 참혹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식하며 자국의 역사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원인을 밖이 아닌 안에서 찾으려는 이성적인 노력은 유럽연합 가입과 함께 빛을 발합니다.
섬나라 근성을 버리고 유럽 내의 아일랜드, 나아가 세계 속의 아일랜드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기 시작한 것이죠.
모든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정체성 변화는 미래로의 도약, 그 시작점이 됩니다.

한동안 북유럽을 참 많이 흠모했습니다.
우리의 복잡다양한 문제 해결을 북유럽에서 찾고자 했으며, 그들의 복지, 공평, 공존, 존중...의 높은 가치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고 싶어했어요.
북유럽과 관련된 몇몇 책을 읽어봤으나 알 수 없었습니다.
뜻밖에 답이 이 책에 있더군요.
우리의 현실과 역사를 냉정히 되돌아보고, 우리 만의 답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처럼 지정학적으로 변두리에 위치하며 강대국 옆에서 고난을 겪었고, 지지리도 못살고 가난했던 과거를 떨쳐버리고 단시간에 경제성장 기적을 이룬 아일랜드가 새로운 자신의 정체성을 가졌던 것처럼 말이죠.
이것이 아일랜드를 통해 얻어야 할 교훈 같습니다.

 

 

이 책을 통해 한 나라의 역사를 넘어 소중한 결론을 얻었습니다.
박지향 교수는 2002년 <슬픈 아일랜드>를 출간하며 우리나라 독자들이 아일랜드에 관심이나 있을까, 그저 소수 인문학 전공자나 읽어 보겠지.... 했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2008년 개정판이 나올 수 있었다네요.
이 책을 읽어보니 그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다양하고 폭 깊은 박교수의 글솜씨는 넘치고도 남습니다. 

​by 책과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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