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어 1 - 신을 죽인 여자
알렉산드라 브래컨 지음, 최재은 옮김 / 이덴슬리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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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곤에는 용서 따위 없다. 오로지 생존, 그리고 반드시 완수해야 할 과업만 있을 뿐.” (392)


생존 서바이벌.


생명을 걸어야만 살 수 있는 치열한 전쟁터 속 인간들.


‘오징어 게임’의 성공만을 봐도 알 수 있듯이, ‘데스매치’ 이야기들엔 끌리는 매력이 있다.


물론 잔인함과 잔혹함, 비정함, 배신, 유혈 등 추한 것들만 맞닥뜨리게 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안에서 인간애와 인간성은 더욱 강렬히 공명하기도 한다.


즉석으로 머리통이 날아가거나 목이 잘리거나 하진 않지만 ‘살아남아야 하는’ 우리의 현실도 어찌 보면 이런 생존 서바이벌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최근 일본판 데스매치를 다룬 드라마 ‘아리스인보더랜드’를 인상 깊게 보았다.


제작자들은, 시청자들은, 또 연기자들은 이런 ‘데스매치’를 통해 무엇을 캐내고자 한 걸까.


그런 생각의 연장 선상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 및 영웅들의 후대가 겨루는 서바이벌이자 데스매치인 ‘로어’ 1권을 읽었다.


주인공은 마지막 남은 페르세우스의 후손이자 인간인 로어다.


로어가, 모든 신을 죽이고 최종 보스가 되려는 카드모스 가문의 수장 아레스를 처단하기 위해 동료들과 함께 펼치는 모험의 이야기다.


간략히 줄거리는 말하자면,


제우스의 분노를 산 아홉 신들은 ‘아곤’이라는 특정 시기 즉 7년마다 7일간 인간의 몸을 입은 상태가 된다.


그때, 그리스 로마 신화 영웅들의 가문의 수장인 ‘아르곤’과 그들의 일족들인 ‘헌터’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 신은 능력을 빼앗기고, 그 빼앗은 자가 신이 된다.


이 가문엔 오디세우스, 아킬레우스, 테세우스 등이 있고 남은 신은 아테네, 아르테미스 등이다.


현대 시대까지 쭉 살아남은 일족들은 뉴욕에 살면서 각각의 신들의 특성대로 포도주 사업을 한다든지 (디오니소스), 제약 회사 (아폴론을 모시는 아킬레우스 가문) 또는 부동산업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가문을 지켜나간다.


작가는 고대 그리스 문화의 중요한 키워드를 종종 가져와 현대에서 벌어지는 이 신화 속 얘기가 어색하지 않도록 메꾸고 있다.


그들에겐 클레오스 (명예)가 중요하고, 가문을 지키기 위한 맹렬한 훈련은 '아레테'에 이르는 것을 목표한다는 것 등의 언급이 보인다.


로어는 몰락한 가문의 마지막 인간으로서, ‘아곤’과는 무관하게 자유로이 살고 싶어하는 소녀다.


“버려진 게 아니야. 자유로워진 거야.” (109)


그렇게 누군가의 말을 가슴에 새긴 채 숨죽여 살던 그녀를 옛 친구가 찾아오고, 그는 그녀의 원수가 그녀를 찾고 있다는 말을 남긴 채 돌아간다.


로어의 비극적인 가족사, 목숨을 위협받게 된 옛친구, 부상당한 여신.... 로어도 이 싸움에 낄 수 밖에 없다.


‘아곤’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그녀가 가졌기에.


사실 이 소설은 유혈이 낭자한 다크 데스매치 소설이 아니다.


인간애, 의리, 따스함, 발랄한 여주인공과 그녀를 든든히 받쳐주는 잘생기고 몸도 좋고 조각같이 멋진 남자가 등장하는 영어덜트 소설이다. 한류의 영향도 살짝 엿보이기도 한다.


태생적인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고뇌와 숙명이라는 주제 의식도 잊지 않는다.


“강하거나 약하거나,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이 그 두 가지 뿐이라는 게 난 너무 싫었어. ‘강한가, 약한가’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을 기준으로 평가받고 싶었는데.” (362)


“있잖아,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갇혀 있는 울타리 경계에 바싹 붙어서 바깥 삶을 구경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서 가끔은 그곳에 울타리가 있다는 것조차 몰라. 하지만 나는 그 울타리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 그냥 그 안에서 내 방식대로 사는 법을 터득했을 뿐이야." (280)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내가 발견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하니,


숙명에도 꺾이지 않겠다는 인간의 고결한 의지와 노력은 신도 보증하게 할 만큼 값지다는 것이었다.


아테네가 말한다.


“그에겐 힘이 있지만 너에겐 정당성이 있다. 그리고 심지어 그런 모든 것들이 다 너를 버린다 해도 이것 한 가지만 기억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고, 나는 네가 실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341)


얼른 2권이 읽고 싶어졌다.


절단신공이 대단하다.


정갈하고 예쁜 소설.


강하거나 약하거나, 우리가 될 수 있는 것이 그 두 가지 뿐이라는 게 난 너무 싫었어. ‘강한가, 약한가’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을 기준으로 평가받고 싶었는데. (362)

있잖아,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갇혀 있는 울타리 경계에 바싹 붙어서 바깥 삶을 구경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서 가끔은 그곳에 울타리가 있다는 것조차 몰라. 하지만 나는 그 울타리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 그냥 그 안에서 내 방식대로 사는 법을 터득했을 뿐이야. (280)

그에겐 힘이 있지만 너에겐 정당성이 있다. 그리고 심지어 그런 모든 것들이 다 너를 버린다 해도 이것 한 가지만 기억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고, 나는 네가 실패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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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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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부력 - 2021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승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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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부력. 역시 이승우 작가다. 내 마음 깊은 상흔을 투명하게 마주하게 하고 이해하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 작품. 나는 지금도 그 부력의 여력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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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애는 머리가 나쁘니까
히메노 가오루코 지음, 정수란 옮김 / 연우출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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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참고 나만 욕구를 숨기면 온 집안이 평온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으면서 버릇이랄까 습관이 되어버렸다.” (21)

이 소설은 2016년 도쿄대 남학생 5명이 타학교 여대생을 상대로 벌인 성추행 (Gang Style Sexual Assault) 사건을 픽션으로 재구성한 소설이다.

전에 언급한 바 있지만, 나는 실제의 사건이 소설로 쓰여지는 것에 좀 복잡한 마음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작가의 노력이 드러날 만큼 섬세히 쓰여졌고,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게다가 작가가 어디까지나 픽션의 부분은 눈에 띄게 구성해놓아 실제 사건과 별개의 울림과 무게감을 심어 준다.

특히 일본 대중문학에서 그리 흔치 않은 사회파적인 요소를 담은 것에도 끌렸다.

소설을 통해 일본의 사교육, 편차치, 스펙, 입학제도, 대학랭킹 등에 대한 인식들을 새로이 알게 됐다.

도쿄대가 대단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그러니 그것이 무너지는 것엔 그만큼의 충격과 파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그들의 자부심을 ‘두바이의 부르즈칼리파 빌딩처럼 높은 프라이드’라고 냉소하기도 한다.

“<카페본나>의 테이블을 에워싼 도쿄대생들의 손이며 손목이며 팔이며 어깨며 목의 모공, 두피의 모공, 전신의 모공에서 자신감이 뿜어져 나온다. 나는 우수하노라는 자신감은 올곧고 평온하다.” (241)

‘도쿄대인 내가 만나자는데 미즈대 따위가 감히 비싼 척을…….' (315)

“나 도쿄대야 라고 말하면 여자들은 앞다투어 팬티를 내리고 다리를 벌려요.” (473)

도쿄에서 농림수산성 공무원 집안에서 태어나 부속고, 도쿄대 이과1류로 진학한 엘리트 남자.

그의 삶은 어릴 적부터 오직 도쿄대에 향해 있었다. 도쿄대와 관련 없는 것들은 모두 버리며 살아왔다. 인간성도, 감정도.

‘그는 대개 타인의 정서의 동정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는 올곧고 건전한 수재다. 건전한 인간은 내면을 돌이켜볼 필요가 없다.’ (138)

한편, 가나가와 현립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편차치가 낮은 도쿄의 여대에 진학한 여자.

그녀는 세탁소를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여동생 남동생을 둔 평범하고 따스한 가정에서 자랐다.

양보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고, 친구들과 건강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두 사람의 대조되는 고교 시절이 교차하며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주변에 의해 영향을 받고 종래엔 얽히고 마는지,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각각 그려내다가 어느 한 인연을 기점으로 연결한다.

건전하고 사랑스럽게 보였던 장면이 일그러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한순간. 그러나 이미 오래전부터 서서히 예견됐던 괴물이 드디어 탄생하면서부터다.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은, 이 소설은 소설로 읽고 사건의 진상은 따로 알아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사건은 사건대로 객관적으로 보고, 작가가 덧붙인 소설적인 픽션 부분은 그저 픽션으로 말이다.

두 개를 동일시해서 이 여학생 속마음은 이랬을 것이다, 남학생들은 이렇게 느꼈을 것이다... 등의 추측을 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소설만으로는.

소설에 그려진 사건의 상황을 보면,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여학생의 태도가 가해자들이 주장하듯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목격한 동행인도 있었다. 물증으로는 불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심증으로는 또는 인간적으로는, 그런 공포 속에 꿈쩍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 저항할 수 없는 두려움 때문에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다는 것을.

게다가 여학생의 마음이 누군가에게 기울어져 있었다면 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피해자가 가해자들에게 원한 합의 또는 요구는 단 하나였는데, 그것이 실제 사건과 같았는지는 알 수 없다.

작가는 가해자들이 그녀에게 성욕을 느꼈거나 성폭력을 행사한 게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보다 더한 인격의 유린, 인간성의 말살을 높이 비판한다.

“그들이 하고 싶었던 것은 편차치가 낮은 대학에 다니는 생물을 크게 비웃어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었던 것은 그저 ‘도쿄대가 아닌 인간을 짓밟고 싶은 욕구’뿐이었다.” (500)

이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가 내게는 가장 큰 아픔과 슬픔으로 남았다.

끝까지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에게도 하늘은 똑같이 푸르게 빛나고 코스모스는 흩날린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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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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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독자들이 즐길 수 있는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기라 유, 서점대상 시상식 소감

“한국의 독자분들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즐거운 독서가 되시길 빕니다!”

-책 서문-



*



작가는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기 위해 어떤 소재도 사용해도 되는가.

‘유랑의달’은 작가의 양심에 의문을 갖게 한 소설이었다.  

처음 나는 이 소설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었다. 누군가의 재미 없다는 평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읽고 난 뒤에는 아니었다.

작품의 메인 남주가, 그것도 선인의 포지션인 그가 페도필리아로 나오는 것은, 그리고 미화되는 것은, 이거 문제의 소지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껏 엽기적인 일본 소설을 많이 봐왔다.

수녀를 강간하는 ‘게르마늄 라디오’, 신생아에게 몹쓸짓하는 ‘애쉬베이비’, 여성의 자궁을 도려내고 시체 일부를 소유하는 ‘살육에 이르는 병’ 등 구제불능의 사이코도 참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소설에는 현실과 괴리를 둔 사이코 혹은 환자들로서의 경계가 분명했고, 어느 작가도 그들을 미화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이 소설이 내게 정말 불편했던 이유는 작가가 단지 페도필리아 남주를 그려서가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 작품 인물들을 자기 마음대로 (불온한 방식을 꾀하면서까지)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것들을 마치 ‘상식을 파괴한다는’ 고귀한 미화로, 옹호로, 마치 사랑이 전부 구원해준다는 식으로 말이다.   


또한, 세상에 소외받고 상처입은 이들이 서로의 유일한 구원자가 된다는 이 소설의 강렬한 내러티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단순하고도 위험한 결론으로 감성적 포장되는 것도.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감정 또한 (부분 부분 일본 특유의 감성적 묘사로 아름다울 수는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정돈되지 못한 것도 작가의 필력과 무관하지 않을 테다.   

  
등장인물은 9살의 초등학생 가나이 사라사와 19살의 대학생 사에키 후미라는 남자다.

상식을 거부하는 가정에서 나고 자란 초등생 사라사는 세상을 냉소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그러던 중 엄마에게 버려져 이모에게 길러지고 거기서 치명적인 일을 겪으며 가족이란 것에 마음을 닫는다.

집에 돌아가기 싫던 아이는 매일 놀이터에 앉아 여자아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남자 후미를 만나고.

상냥했던 후미가 먼저 제안한다.

“우리 집에 올래?”
그 말이 따뜻한 빗물처럼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p. 32)

"이 사람 얼굴이 참 예쁘네. 눈은 길게 쌍꺼풀 졌고 입술은 얇다. 무엇보다 코가 완벽했다.“ (p. 32)

“후미는 어른 여자 안 좋아해?
“응 안 좋아해.”
“그럼 어느 정도로 작은 아이가 좋아?”
“대략 중학생 정도까지?” (69)


이렇게 후미의 페도필리아적 성향을 설명하는 부분이 소설에 종종 나온다.

즉 후미가 가진 ‘소아성애’ 병력은 작품의 메인 모티브와 다름없고, 후미에 대한 (후미는 상냥한 미청년이다) 미화는 곧 페도필리아의 미화로 연결되어 진다.

후미를 순정 만화 남주처럼 묘사하는 것도, 15년 뒤에 서로 재회하는 매우 진부하고 클리셰적인 방식도, 두 사람을 위해 다른 인물들을 돌연 쓰레기로 만드는 것도, 그다지 매끄럽게 읽히지는 않았다.

소아성애 부분을 빼고도 다른 부분들의 필력이나 구성도 그다지 훌륭하지가 않아 소설로서도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다.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러한 텍스트들에서 작가는 '소아성애'에 대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소아성애는 자기 의지로 어쩌지 못하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성적으로 충동을 억제할 수 있지만 사랑하는 마음까지 어쩌지는 못한다. (125)

“지금 당장 아홉 살로 돌아가고 싶다. 후미가 바라는 모습이 되어. 후미가 하고 싶은 걸 전부 같이 하고 싶다. 키스하고 싶다면 해라. 몸을 만지고 싶다면 만져라. 안고 싶다면 안아라.” (238)

후미라는 인물은 완벽한 사람이지만 단 하나의 치명적 결함으로 인생을 망친 남자다.

사연 있는 페도필리아 혹은 페도필리아가 아닐 수도 있다는 다소 구차한 변호도 말미에 어스름이 드러내지만, 이미 소설 전체의 골자이자 갈등이 되는 ‘페도필리아’의 존재감이 너무도 크고, 거기에 이 소설이 지향하는 ‘서로의 구원자’란 느낌도, 설득도 아무것도 와 닿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두 사람의 눈물겨운 애틋함의 연출은 도리어 거부감이 들었다.

작가는 ‘즐겁게 읽어주세요.’ 라고 했다.

조롱하는 것일까?

서점 직원들이 뽑은 2020년 서점대상 1위.

이제 현대 일본 소설은 오에 겐자부로, 무라카미 하루키, 오가와 요코 등이 쌓은 금자탑에서, 무라타 사야카가 만든 균열을 비롯해 나기라 유의 함몰에 이르러 점점 아득히 멀어져만 간다



(2020/1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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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이상일 감독의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한다. 좋아하는 배우 마츠자카 토리가 후미를, 히로세 스즈가 사라사를 맡았는데 영화는 어떻게 표현되었을지 궁금하다. 그나저나 토리는 소설 원작 영화에 자주 주연을 맡는다. 이시다 이라의 원작 '렌트'의 영화 '콜보이'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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