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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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향한 깊은 경외와 숭배를 지극히 아름다운 언어들로 낯설고도 슬프게 그려낸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은’,

이 행성에 존재하는 지성체들의 고통과 고독, 상실에 이르는 여정을 아버지 시오와 9세 자폐 아들 로빈을 통해 이야기한다.

“나의 슬프고 특별하며 갓 아홉 살이 된, 이 세상과 잘 맞지 않는 아들이.” (11)

*

우리는 죽어가고 있다.

이 행성의 모든 지성체는 멸종할 것이며, 지구는 멸망한다.

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온몸으로 버텨내는 이가 있다.

어른이 아니다. 아이다.

세상에선 '아스퍼거,' ‘자폐,’ ‘ADHD,’ ‘강박증 장애’ 등으로 분류되는 아홉 살 아이 로빈.

로빈은 ‘살아 있는 것들에게 유난히 예민한’ 성정을 갖고 있다.

로빈이 애착을 갖는 것은 ‘자연’ 그중에서 ‘동물’이다.

광우병 걸린 소들의 이상행동을 영상으로 보기만 해도 벽에 자신의 머리를 찧고, 아버지가 운전하다가 실수로 친 다람쥐의 사체를 보며 광분하고 자학하는 아이.

천사처럼 온순했다가도 까닭 없이 분노를 터뜨리며 아버지의 손을 물어 피를 내기도 하는 로빈은 세상과는 섞일 수 없는 아이다.

“나는 온 세상에서 로빈을 제일 잘 아는 사람에게 탄원할 수밖에 없었다. ‘얼리사.” 십일 년하고 반 년 동안 내 아내였던 사람. “얼리사.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 줘. 숲속에서 함께 있을 때는 괜찮지만, 로빈을 집으로 데려가기는 두려워.” (56)

아버지 시오의 헌신적인 사랑이 가슴 아플 정도로 애절하다. 로빈의 폭주를 막기 위해 미지의 행성들 이야기를 하나씩 들려주는 시오는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그들의 고립지에서나마 아들과 교감한다.

로빈이 가장 많이 닮은 아내 얼리사는 교통사고로 사망한 상태다. 얼리사는 동물들의 인권을 수호하는 몇 개의 NGO 단체를 이끌기도 했고, 국회 앞에서 수없이 시위를 하기도 한 행동가였다.

아내와 대한 사랑과 그 사랑 이면에 숨겨진 의심과 슬픔, 자폐 아들 로빈의 발작과 치료, 그 모든 과정이 이 행성이 지닌 부조리와 부조화와 충돌하며 갈등의 격랑을 타지만,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확신해온 지성체에 내재한 희망과 생명력의 상징인 야생의 숲, 오직 그들만이 경험한 자연의 신비와 그 압도적인 당혹감(bewilderment)이 빚어낸 그곳으로 동행한다.

“우리가 해친 것을 치유합시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303)

자연의 한 종으로써, 생명의 처음과 끝으로써, 한때와 영원으로써, 숲의 세계와 분리될 수 없는 로빈의 고통스러운 예민함과 부서짐은, 이 기형적인 행성에 호소하는 자연의 몸부림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연구자들은 과학적인 관점에서 생명이 살 수 없다고 알고 있던 곳에서 생명을 찾아내고 있었다. 생명은 끓는점 위에서나 어는 점 아래에서도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75)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 내 아이에겐 내가 필요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386)

세상은 낙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전하면서도, 이 세상이 짊어진 고통, 아직 오지 않은 예고된 고통에 대한 방관과 무심함에 대한 경고를 아홉 살 자폐 소년의 몸에 처절하게 새긴 소설가의 이 잔혹하고도 슬픈 서사를 어찌하면 좋을까.

세상에 오직 단 두 사람만이 사는 행성.

그 이름은 지구가 아니라 고독이라는 것을.

“모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없는 행성이 하나 있었다. 그 행성은 고독 때문에 죽었다. 그런 일이 우리은하에서만 수십억 번이나 일어났다.” (386)

‘새들은....“은 파워스의 전작 ’오버스토리‘의 연결 선상에 있는 소설이다.

역자의 후기를 참고하자면, 원제 Bewilderment의 유래도 그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 소설 또한 나무들, 숲의 세계와 인간이 초래한 환경 문제를 조명하여 강렬한 울림을 선사한 것으로 안다.

자연에 대한 강한 메시지는 내가 읽었던 파워스의 1995년작 갈라테아 2.2에서는 없었기에, 이후 긴 시간 동안 작가의 관심과 사유를 지배한 것들을 엿볼 수 있던 이번 소설은 큰 수확이 있었다.

갈수록 고통과 슬픔의 강도가 세진다는 것과, 불확실성에 대한 헤맴의 여정이 여전히 계속된다는 게 리차드 파워스답지만.

그의 차기작이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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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의 기술 - 느낌을 표현하는 법
마크 도티 지음, 정해영 옮김 / 엑스북스(xbooks)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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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묘사는 생각의 방식이다.” 라고 말한다.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다양한 영시를, 언어를 초월한 인간의 감각을 사용하여 보다 섬세하게 ‘느낄 수 있게’ 돕는 책이다.

*

“우리가 흡수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대한 부분적인 해석일 뿐이다.” (13)

이러한 부분적인 해석을 나만의 언어의 세계로 만들어 타인을 초대하는 것, 이것이 묘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크 도티의 ‘묘사의 기술’은 매우 지적이면서도 어려운 책이다.

작가가 시인인데다 영어로 쓰기 때문에 한 차례 걸러서 내게 와 닿는 게 퍽 쉽지 않다.

시는 모국어로 읽을 때 가장 참맛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이 책이 매우 의미 있는 것은,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멋진 시들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비숍의 ‘물고기’, 헨리 본의 ‘그의 책에게’, 조지 허버트의 ‘기도’, 제라드 맨리 홉킨스의 ‘별이 빛나는 밤’, 엘런 샤피로의 ‘해바라기’ 등 수없이 많은 시들이 등장한다.

영시라면, 에즈라 파운드, 에밀리 디킨슨, W.H 오든 정도만 알고 있는 내게 이 책에 등장하는 시인과 시들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였다.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하는 좌절감도 있었지만.

교수이기도 한 그가 풀어내는 영시들의 다양한 수사법과 묘사의 세계는 영미문학을 전공하거나 영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더없이 유익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생소한 영시들인데다 원본이 실려 있지 않고, 아무래도 시를 다루다 보니 번역문도 상당히 추상적인 표현이 많아 가독성 면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

"모든 설명들은 부분적인 것 같다. 따라서 모든 지각은 감정적이고, 해석의 기회이며, 추측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13)

책은 크게 두 부분을 나눠 있는데, 첫 부분은 구체적인 시들을 들어 묘사의 예를 설명, 해석하고 있다면, 두 번째 부분은 기술적인 부분이다.

“경험의 질감을 재현하려는 작가에게, 아름다움은 단순히 정확함, 즉 진짜처럼 보이는 것에 최대한 근접하는 것이다.” (153)

묘사의 진실성을 탐구하는 저자의 전문성은 E.E. 커밍스의 시를 해석할 때 빛을 발한다.

소설가 제니퍼 이건이나 조나단 사프란 포어 등이 관습을 타파하는 표현의 방식으로 시도하기도 했던 언어의 해체, 여백, 도식적인 표기, 배열, 낯설게 하기 등을 시에서 접하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고 보니 음표로 표기해온 악보, 작곡가의 시그니처이자 음악의 권위를 증명해온 악보의 개념을 타파한 존 케이지가 떠오른다.

"초시간성 (timelessness)이라는 또 다른 종류의 시간성도 존재한다. 이 서정적인 시간에서 우리는 시간이 순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인식을 멈춘다. 서정적 시간은 과거의 영향과도, 다가올 사건들에 대한 예상과도 관련이 없다.“ (33)

음악이든 시든 중요한 것은 유물처럼 추앙받아온 그것의 나이테가 아니라 시간의 존재를 부수어버리고 언제든 새로운 ‘감각’, ‘현실성’, ‘우연성’의 미지의 세계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닐까.

민트색의 자그마한 글쓰기 책 , 그러나 담고 있는 것은 미국 현대 영시의 가장 중요한 정수를 맛본 것 같다.

부족한 나로서는 여전히 모자라지만 어떤 ‘느낌’을 조금, 아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한마디로, "느낌 아니까~" 를 배우기 위한 책.

묘사는 생각의 방식이다.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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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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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마지막기차역 (2020, 2022) by #무라세다케시 #모모

무라세 다케시의 소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은,

삭막한 세상, 인간에 냉소하는 마음들에 정공법으로 눈물을 터뜨리는, 거짓말처럼 아름답고 세련되게 신파적인 네 편의 연작 소설집이다.


*


이미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탈선한 열차 사고로 죽은 나의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다.

그건 바로 가장 가까운 역에서 출몰하는 유령열차에 오르는 것이다.

유키호라는 여고생 유령이 나타나 안내한다. 단, 네 가지의 조건이 있다.

산 자는 이미 죽을 운명인 망자를 데리고 나올 수 없다. 만약 하차시키려고 하면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망자에게 곧 죽을 것을 알려줄 수도 없다. 만약 산 자가 내리지 않으면 망자와 함께 사고난 지점에서 죽게 된다.

여기 네 명의 산 자가 있다. 약혼자를 잃은 자, 아버지를 잃은 자, 연인을 잃은 자, 그리고 남편을 잃은 자.

느닷없이 찾아온 이별에, 제대로 된 작별인사나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그들은 그리움이 불러온 유령열차에 올라 망자와 마주하는데…….

각 단편의 화자들은 저마다 인생의 상처와 아픔이 있는 이들로서, 망자는 그들의 삶에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차라리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나을 법한 절망 속에서 그들이 오른 유령열차행은 슬픔의 애도보단 빛나는 추억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곧 덮칠 ‘죽음’이란 그늘을 떼어내고, 오직 그 순간, 함께하는 간절한 시간의 영원성을, 평생분의 소중함을 서로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일본 장르소설 중 타임루프물은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보이 밋 걸 류의 타임루프물은 시중에도 여럿 나와 있다.

사실로 말하자면, 이 소설을 처음 펼쳤을 때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한 소년이 소녀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런 라이트노벨 류의 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네 편의 연작소설, 그것도 같은 열차사고로 소중한 이를 잃은 화자들의 저마다의 사연이 유려한 문체로 이야기되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은 변했다.

작가는 망자의 입장이 아니라 산 자의 입장으로 망자를 설명함으로 감동을 배가하고, 상처받은 이들, 약한 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듯이 따뜻한 문체로 스며들게 했다.

첫 단편은 너무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사랑만을 그려내어 좀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그런 완전한 사랑에 대한 감각조차 상실한 우리에게 사랑의 섬세한 면면을 볼 수 있게, 떠올리게 한다.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만나고,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하는 거야. 극적이라 할 만큼 거리를 좁혀가는 방식이 대단히 멋지거든. 무엇보다 무수히 많은 사람중에서 나를 선택해줬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 (214)

세 번째 단편은 첫 번째와 비슷한 맥락을 띈다. 그래서인지 몇몇 인물이 겹쳐서 등장한다. 역시 사랑은 숭고하다는 것, 완전한 사랑에 대한, 한층 깊은 슬픔과 애틋함을 담고 있다.

다소 현실적이었던 두 번째와 네 번째 단편은, 화자 주변을 둘러싼 세상의 어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살아야 할 희망조차 앗아가는 현실에서 망자를 마주해야만 하는 고뇌와 회한을 담은 세 번째 단편,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너무도 사무치게 다가오는 네 번째 단편.

소설은 ‘시간을 되돌려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을 골자로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말하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그 목숨과도 같은 소중한 것을 말하기 위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된 열차 사고를 끌어왔는지도 모른다.

죽음 앞에서 사람은 가장 솔직하고 가장 순수하기에.

유난히 자연재해가 잦고 언제든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생각해봤다.

아니, 일본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기댈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최고의 방공호도, 안전장치도, 피난소도 아닌,

역시 ‘사랑’이라고,

죽음보다 강한 그것이라고,

별수 없이 신파적인 이 소설이 내게 가르쳐줬다.

“인간이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인 걸 알았더라면.”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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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만나고,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하는 거야. 극적이라 할 만큼 거리를 좁혀가는 방식이 대단히 멋지거든. 무엇보다 무수히 많은 사람중에서 나를 선택해줬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 (214)

도모코, 마음이 병든 건 착실히 살아왔다는 증거란다. 설렁설렁 살아가는 놈은 절대로 마음을 다치지 않거든. 넌 한 사람을 진심을 사랑했기 때문에 마음에 병이 든 거야. 마음의 병을 앓는다는 건, 성실하게 살고 있다는 증표나 다름없으니까 난 네가 병을 자랑스레 여겼으면 싶다. (80)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해. 사람을 꺼리면 안 된다. 삶에서 해답을 가르쳐주는 건 언제나 삶이거든. 컴퓨터나 로봇이 아니라, 모든 걸 가르쳐주는 건 사람이다. 그러니 용기를 내서 사람을 만나봐라. 사람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161)

다들 사랑하는 사람이 계속 살아주기를 바랐거든. 난 그게 참 아름답더라.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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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엔니오 모리코네 :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영화음악 모음곡 [디지팩]
엔니오 모리코네 (Ennio Morricone) 작곡, 안드레아 모리코네 (Andrea M / Arcana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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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다. 듣자마자 눈물을 펑펑 흘렸다. 마음의 티를 씻어내고 정화시켜준 천상의 음악 앞에 그 어떤 말이 필요하랴. 신이 잠시 보냈다가 데려간 거장. 이런 거장을 다시 만날 수 없음이 그저 애통하고 대신 영혼을 감싸는 그의 음악으로 위로 삼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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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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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본 싼 겉표지 면이 너무 우그러져 있어, 책의 아름다움이 상실돼 아쉽습니다. 하드커버 표지의 두께를 감안해 신중하게 접고 관리했다면 하는 바람이 있고요. 좋은 상태와 좋은 가격으로 잘 만들어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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