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미디어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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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타오르다 (2021) by #우사미린 #推し燃ゆ (2020) #최애타오르다가제본서평단 #미디어창비

“최애를 파지 않는 나는 내가 아니다. 최애 없는 인생은 여생일 뿐이다.” (120)

1999년생, 21세의 나이로 2021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우사미 린의 ‘최애,타오르다’는,

침체되었다고 느꼈던 일본 소설의 굳건함과 잠재력을 다시 느끼게 해 준 소설이었다.

주인공은 여고생 아카리로, 아이돌 그룹인 ‘마자마좌’의 멤버인 우에노 마사키가 그녀의 ‘최애’다.

아카리는 4세 때 12살이었던 마사키가 피터팬으로 나온 연극을 보면서 큰 격려와 위로를 얻은 바 있다.

그와 자신의 영혼의 동질감과 유대감을 깊이 경험한 아카리는 고등학생이 되어  마사키의 DVD를 다시 맞닥뜨리면서 ‘덕질’을 시작하는데.

"최애는 목숨이랑 직결되니까.“ (11)

학업에도, 미래에도, 가정사에도 소극적인 아카리가 유일하게 자신의 육체를 불태우면서 일하고 노동하는 이유도 오직 마사키를 위한 것이다.

마사키의 굿즈, 콘서트, 시디 수십 장을 사기 위해서. 그렇게 최애를 알아가고 이해하고 싶어서. 그가 보는 세상을 자신도 보고 싶어서.

어른이 되는 과정으로서, 삶의 무게를 꾸역꾸역 실으며 팽창하는 육체 속에 허덕이며 고통스러워 하는 아카리는 자신의 무능과 집안의 압박, 미래의 불안 그 모든 것을 오직 최애에 끼워 넣어 버틴다.

사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2004년 아쿠타가와 수상작, 역대 최연소 수상으로 불렸던 와타야 리사 (당시 19세)의 #발로차주고싶은등짝 이었다.

‘최애’ 혹은 아이돌 모델 ‘올리짱’을 사모하는 소년 니나가와 그를 지켜보는 소녀 하츠의 ‘자기 알을 깨는’ 성장 이야기인 그 소설이 많이 생각났다.

전자가 2000년대 초반의 감성을 담아 경쾌하다면, 그보다 21년 지난 이 작품은 그때와는 매우 다르게 진지하고 무겁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알을 깬다’.

이것은 ‘발로차....등짝’의 번역가인 정유리 님의 후기에 실린 글귀였다.

상투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성장’을 지향하는 두 소설을 설명하기에 이것보다 정확한 것은 없을 것 같다.

재밌게도 그때 정유리 님이 함께 언급한 오카자키 교코의 작품을 최애의 역자인 이소담 님께서 번역하셨으니, 더욱 두 작품끼리의 연관성이 뚜렷이 느껴지는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제는 ‘최애’인 듯 하지만 사실은 최애 속에 겹쳐진 자신이다.

아카리에게 최애는 그저 관조하는 대상이 아니라 투영하는 대상이다.

그래서 최애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착하고 심지어 육체까지 동일시하여 (한몸처럼 여겨) 그와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낸다.

“나는 서서히, 일부러 육체를 몰아붙여 깎아내려고 기를 쓰는 자신, 괴로움을 추구하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체력과 돈과 시간, 내가 지닌 것을 잘라버리며 무언가에 파고든다. 그럼으로써 나 자신을 정화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괴로움과 맞바꿔 나 자신을 무언가에 계속 쏟아 붓다 보니 거기에 내 존재가치가 있다고 여기게 됐다. (77)

소설 초반에, 즉 최애에 대한 설명을 서술하기 시작하면서 ‘허벅지’라는 표현이 꽤 자주 등장한다. (8, 13, 17)

이것은 ‘허벅지’가 척추 및 허리, 다리를 지탱하는 어떤 근원적인 힘이기에 빗댄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이게 아쿠타가와 상 탈 만한 작품인가’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문체나 묘사도 그리 특별하지 않았고, 진부하게 끼워 넣은 문장 패턴들, 그리고 이 소설의 가장 큰 혹평이었던 ‘SNS에서 끄적일 만한 글’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 글감으로서는 상당히 제한적이고 폭이 좁은 주제라 작가가 어떤 식으로 얘기를 펼쳐갈지 큰 기대감은 들지 않았었다.

덕질을 해? 최애가 있어? 그래서 뭐? 이렇게 흐를 수 있는 스토리는 갈수록 굳건한 심지를 불태우며 반짝이기 시작한다.

소설의 기-승-전-결의 단계를 거치면서 점차 작품이 매끄러워지는데, 작가의 집요하고 우직한 뚝심으로 방향성을 잃지 않고 모든 게 한 곳에 귀결되는 결말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와타야 리사가 처음부터 완벽한 형태로 작품을 선보였다면, 우사미 린은 앞으로 ‘성장’할 것이 기대되는 작가다.

다루기 쉽지 않은 일상의 얘기를 묵직한 도끼를 던져 파문할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든 것부터가 재능이지 않은가.

그래서 최애는 어떻게 되었을까.

최애의 이야기는 한없이 잔망스럽고 쓸쓸하고 아련하기만 한데.

샤이니의 태민을 심히 덕질하던 그때 내 마음처럼.


최애를 파지 않는 나는 내가 아니다. 최애 없는 인생은 여생일 뿐이다. (120)

나는 서서히, 일부러 육체를 몰아붙여 깎아내려고 기를 쓰는 자신, 괴로움을 추구하는 자신을 느끼고 있었다. 체력과 돈과 시간, 내가 지닌 것을 잘라버리며 무언가에 파고든다. 그럼으로써 나 자신을 정화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괴로움과 맞바꿔 나 자신을 무언가에 계속 쏟아 붓다 보니 거기에 내 존재가치가 있다고 여기게 됐다.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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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2022-12-26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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