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국지 8 - 남은 뜻을 위하여
나관중 지음, 황석영 옮김, 왕훙시 그림 / 창비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청소년시절, 빨리 불끄고 자라는 엄마의 고함소리에 13촉 백열전구를 이불 속으로 끌어들여가면서 밤을 새워 읽었던 몇몇 책 중에 삼국지가 있었다. 아마도 박종화의 삼국지가 아니었는가 싶은데, 관운장이며 유비 현덕 그리고 삼고초려에 감격하여 세상으로 나왔던 절세의 현인 제갈공명에 빠져들면서 간웅 조조니 힘만 센 털복숭이 손권이라 상대적 폄하를 하면서 읽었던 듯 하다.
폄하되었던 조조에 대한 위상을 높이면서 - 주로 일본에서 읽혀지는 방식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문열의 삼국지가 이에 속할테고 - 아무나 통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능력이 있어야만 통일이 이루어짐을 역설하면서 한동안 조조를 영웅시하고 그에 대한 이문열의 평을 맹신하듯 역사와 소설의 거리를 좁혀놓았던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황석영의 삼국지를 읽게 되면서 중국 원본에 매우 충실한 번역이겠다 싶은 재미로 8권까지는 잘 읽었다. 수도 없이 많은 인물들, 그들에 대한 삽화는 인물마다 비슷하게 보이게 하였지만, 후세에 전하는 시귀들과 단원의 끝마다 다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될 것인가?" 따위의 의문형 글은 참신한 느낌이 들었다.
삼국지 자체가 중국 민중의 손을 거치면서 오랜 역사와 정서를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니만큼 우리 정서와 꼭 맞아 떨어질리야 없겠지만, 가장 사랑을 받는 작품임엔 틀림이 없고 황석영의 필체나 삽화 시구 들이 어우러져 참신한 느낌을 많이 주었으나 흡인력은 떨어졌다. 이젠 내 나이가 삼국지와는 좀 떨어질 나이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ㅋ
원작자의 의도처럼 처음에는 도원결의를 맺는 유비, 관우, 장비와 제갈량에 대한 관심이 드높았고, 그 다음에는 조조에 대해 그리고 이번에는 상산 조자룡과 그 외의 인물들에 눈길이 더 가는 것을 느꼈다. 관심과 이해의 폭에 따라 움직임을 느끼게 되었다. 민중들의 경우 국가나 민족의식이 있는 것 같지 않았고, 주군을 위한 목숨바친 충성이란 충절을 노래하고 칭찬하면서도 자신의 경우에는 그런 행위를 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라해야 할까? 삼분된 어지러운 대세속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편이 발달했다고나 해야 할까? 아니면 무너진 한왕실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그려지는 소설의 탓이라고나 할까? 좀 껄끄러운 앙금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