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곁에서 - 주말엔 숲으로, 두번째 이야기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말엔 숲으로, 두번째 이야기. 숲에 놀러온 치과의사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새로운 삶을 꾸린 하야카와, 그리고 여전히 디저트 셔틀을 해주는 사랑스러운 친구들 세스코와 마유미가 등장한다. 하야카와가 어머니로서 타로에게 들려주는 잡다한 숲의 지식과, 낙관적인 가치관이 이 책의 포인트이다. 하야카와는 우연히 만난 타로의 담임 선생님 타카기에게도(타로의 담임인 걸 전혀 모르는 상태.), 타카기의 어머니에게도(역시 숲에서 만난 적 있는 여자의 어머니라는 걸 전혀 모르는 상태) 자신의 지식과 신념을 전파한다. 이를 테면, 긴꼬리산 누에나방은 유충일 때 잔뜩 먹어두고 성충일 땐 아예 입이 사라진 채 교미만 한다는 사실 같은 것. 이렇듯 이 책은 따라서 타로의 성장일기와, 혼자 숲마을 학교로 오는 바람에 엄마와 갈등을 겪는 타카기의 독립일기가 교차되어 전개되고 마지막에 주인공 하야카와 본인의 일기를 덧붙이며 끝을 맺는다.


 개인적으로, 너무 인상깊게 봤던 <주말엔 숲으로>보다는 못한 속편이라는 생각이다. 그래도 힐링이 되어주는 만화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하야카와가 일년에 한번씩 아들도 남편도 없이 홀로 해외여행을 간다는 설정이 마음에 든다. 이 책에서 설정된 여행지는 체코였는데, 아들 타로에게 '체코의 공기를 선물로 담아올게'하면서 병을 보여주는 하야카와의 모습이 참 그녀답게 넉살좋고 낙관적이구나 싶었다. 아 체코 여행 가고 싶다.

- 공원 미끄럼틀의 차가운 감촉이라든가,
- 숨바꼭질할 때의 하얀 입김이라든가.
- 왜 잊히지 않고 우리 속에 남아 있는 걸까.
- 일부러 기억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중요하니까 남아 있는 거겠지?

기대를 따라주지 못하는 씨앗도 분명 있겠죠.
기대는 기대일 뿐, 씨앗 본인과는 관계없죠.
떨어져 나가는 것 외에는
자신의 세상이 넓어질 방법은 없으니까요.

남편과 함께 아주 소중하게 소중하게 키우고 있습니다만
아이가 사는 보람은 아니라는 기분이 들어요.
사는 보람은 한 사람 한 사람 자신 속에만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스 문단의 화제작이자 문제작이라는 『복종』. 미셸 우엘벡은 상당히 유명한 작가라지만, 세계문학에 별로 관심이 없던 난 이 책을 처음 읽었던 2016년 3월 이 작가를 제대로 처음 인지했다. 그전부터 작가의 이름에 익숙한 기분이 들었던 탓은, 아마도 죽기 전 읽어야 할 책 리스트를 정리할 때 스치듯 보았거나 <미셸 우엘벡 납치 사건>이었던가 영화 제목을 스치듯 보았기 때문일 거다.


 줄거리는 이렇다. 급진적인 좌파 분위기에 휩쓸린 프랑스는 이슬람 이민자들과 서구 유럽 출신들 간의 싸움으로 혼란스럽다. 마침 모하메드 벤 아베스가 창당한 이슬람박애당이 청년운동, 문화센터, 자선단체의 촘촘한 조직망으로 서서히 정치입지를 넓혀가고 있었다. 사건은 2017년 대선 결선 투표부터 시작된다. 이슬람박애당과 사회당이 손을 잡아 극우파이자 프랑스 제1당인 국민전선을 몰아내면서, 프랑스 정권에서 반유대적인 성향이 거세지고 팔레스타인을 강력 지지하게 된다. 그러면서 발생하는 프랑스 사회의 변화를, 도적적 관념과 성평등적 관념에 무감한 자유연애주의자 남교수 장프랑수아 코페의 시선에서 그려내고 있다.


 '완전 재미없어서 중간에 덮었다' 식의 악평도 꽤나 있길래 마음 잡고 읽었지만 생각보다 꽤 재밌었다. 오히려 책장이 술술 넘어갈 지경. 미셸 우엘벡 특유의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독특한 만연체' 식 문체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약간의 몇 분을 제외하곤, 쉬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보인다. 다만, 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단 주지의 플롯으로 흘러가는 내용이니 프랑스 내 정치적 이슈와 사연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한국인 입장에선 완전히 이해하기 조금 어렵다. 그리고 주인공 캐릭터가 여남평등적 교육 자체에 불필요를 느끼고 있는 남성 보수주의자 경향이 있어,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캐릭터를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프랑스 사회가 이슬람교와 이슬람 이주민들에게 느끼고 있는 불안감과 두려움, 한국 사회에서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페미니즘적 시선, 이 두 가지 사회의 화젯거리를 함께 토론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종교가 더 뛰어난 교리를 지녔나, 어떤 신이 더 위대한 구원자의 역할을 하는가 같은 논쟁은 감히 결론 내릴 수 없으며 완전히 무가치하다. 다만, 이슬람교가 프랑스 사회를 철저히 바꾸어놓았을 때 그 변화가 정말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표에 따르는 것이고, 이와 동반된 책임은 우리가 냉철하게 짊어져야 할 부분 아닌가. 그럼에도 역시 진저리치게 되는 대목은, 이슬람교 하에서라면 페미니즘과 여권의 한없는 퇴보가 자명해 보인다는 점. 주인공이 이슬람교에 '복종'하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 대학 총장의 부인들을 보게 된 순간 느낀 호기심과 부러움에서 기인한다는 점. (물론 무슬림 개종 전부터 주인공 프랑수아가 보이는 전형적인 보수 아재 사상과 천재적 합리화에 이미 신물나 있긴 했지만. 근래 본 주인공 캐릭터 중에 제일 맘에 안 들었다.) 따라서 이 소설은 특히 '여성으로서' 끔찍한 미래 소설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치적 용어를 많이 접하게 됐다. 이를테면 '살라피즘 추종자들'(살라피즘은 코란과 전통 이슬람 규범인 순나에 기초하여 초기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이슬람 복고주의),'무슬림형제단'(이집트에서 창설된 이슬람 부흥 운동 조직으로 이슬람세계에서 현재 가장 영향력이 크다. 이슬람 근본주의인 이란의 시아파와 달리 서구에 온건한 태도를 보인다.),'이슬람 지하디스트'.(이슬람 원리와 이슬람교 전파를 위해 벌이는 투쟁을 뜻하는 지하드 추종자들. 전쟁과 평화적인 방법으로 나뉘는데, 최근엔 폭력적인 세력을 의미하는 용어로 축소된 경향이 있음.) 즐거운 공부도 겸했던 책이다.


내 인생의 학문적 정점은 논문을 준비하고 책을 출간하던 시절이었다. 그 모든 것이 이미 십 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학문적 정점? 혹시 그냥 정점이 아닐까? 어쨌든 당시엔 내 존재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 나의 칼럼들은 명료하고 예리하고 재기가 넘치는데다 마감 기일을 절대 어기지 않았던 만큼,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한 인생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한 것일까? 하기는 무엇 때문에 한 인생이 정당화되어야만 한단 말인가? 동물들 전부가, 그리고 압도적인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당화의 필요성을 조금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들은 단지 사니까 사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논리다. 그들은 아마 죽으니까 죽을 것이다. 그들은 그것으로 고민 끝이다. (pp.55-56)

하지만 거리를 배회한 지 거의 한 시간쯤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문득 무엇이 변했는지를 알아차렸다. 여자들이 죄다 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자들의 허벅지를 관찰하고, 허벅지가 교차되는 지점에 있을 성기를 상상하고, 노출된 다리 길이에 비례해 성적 충동을 느끼는 이 모든 과정이 내게는 무의식적이고 기계적인, 일종의 생물학적 현상이었기에 즉시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확실했다. 원피스며 치마가 사라졌다. (pp.215-216)

"아이샤라고, 새로 들인 제 처입니다. 지금쯤 당황해 있을 겁니다. 베일을 두르지 않은 맨얼굴을 외간남자한테 보이면 안 되거든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선생님이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제 처의 잘못이죠. 로비로 내려오기 전에 혹시 손님이라도 와 있는지 물었어야 했으니까요. 그게 다 아직 이 집에 익숙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곧 괜찮아지겠죠."
"네, 무척 어려보이는군요."
"이제 막 열다섯 살이 되었죠." (pp.295-296)

장소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단순히 그곳에서 지냈던 경험에 기인한다. 좋았든 나빴든 상관없이 과거는 늘 아름다우며, 미래 또한 그러하다. 오직 현재만이 힘들다. 우리는 무한하고 평화로운 두 행복 사이에 수반되는 고통의 종양으로서 현재를 받아들인다. (p.325)

"(……) 자연선택은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개념이긴 하나, 그 형태는 천차만별입니다. 심지어 식물한테도 적용되는데, 식물의 경우는 대지와 물과 태양이 제공하는 영양분으로의 접근성과 직결되죠. 인간은, 물론 동물이긴 하나, 들판의 개나 영양이 아니거든요. 자연선택에 의한 인간의 지배적 위치를 결정짓는 건 발톱이나 이빨이나 빨리 달리기 능력이 아니라, 바로 지성이란 얘깁니다. 따라서 지극히 진지하게 말씀드리자면, 대학교수가 지배적 수컷의 위치에 놓이는 건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pp.354-355)

"(……) 무엇보다 이슬람 문명에는 중매쟁이가 생기게 된 겁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매우 지혜로운 여자들만이 맡는 중요한 직업이지요. 이 중매쟁이들은 여자이니만큼 당연히 젊은 아가씨들의 벌거젓은 몸을 볼 수 있고, 일종의 평가라는 것을 합니다. 여자들의 신체적 조건과 미래의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비례하도록 말입니다. 선생의 경우는 딱히 불만을 가질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제가 보장하죠." (pp.356-3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빠라는 남자 - 다가가면 갈수록 어려운 그 남자
마스다 미리 지음, 안소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일반적인 아빠들의 모습이 아닌 마스다 미리 본인의 아빠 이야기만 늘어놓는데 어쩜 이렇게 우리 아빠랑 비슷한지 모르겠다. 식당에 갔을 때 맛없다고 큰 소리로 투덜거리는 점이나, 엄마한테 자신의 생각을 전해서 대신 말하게끔 하는 점이나, 퉁명스러운 점 같은. 아빠를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오히려 뒷담화란 생각이 들만큼) 아빠에 대해 투덜거리기도 하고, 아버지의 취향과 캐릭터를 말하기도 하면서 마스다 미리와 함께 서로의 아버지에 관해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기 전엔 아빠를 대변하고 모에화하는 <시바 아저씨> 같은 책일 줄 알고 영 읽기 꺼려졌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어렸을 적 아버지를 무서워했던 감정이 나이가 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연민과 공감, 노화에 대한 씁쓸함으로 변하는, 마스다 미리 본인의 감정 변화가 느껴진다. 자식이라면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감정 역시 비슷할 것이다. 애증이긴 애증인데 어쩔 때는 사랑이 커졌다가 어쩔 때는 증오가 커지는 감정. 서서히 연민도, 공감도, 다른 감정들도 추가되어 가겠지.


 연관되는 책으로 마스다 미리의 <엄마라는 여자>도 있더라. 이어서 읽어볼 생각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 부끄러움을 모르는 카리스마, 대한민국 남자 분석서
오찬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라는 논제를 한국 남자이자 사회학자인 저자가 '고등학생이 병영캠프를 가고 <여자들은 집에서 애나 봐라>는 두 가지 황망한 정서'로 엮어 설명한 책이다. 책은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을 통해 읽었다.


 저자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일상의 군대화'가 성별을 스테레오 타입으로 강화시키는 것에 대해 지적하고, 된장녀나 맘충, 김여사 같은 단어가 강자가 약자에게 붙인 치졸한 놀림이라고 일갈하며, 라이따이한과 코피노의 아버지 한국남자의 좆놀림에 대해 다룬다. 운전을 하는 여성은 왜 김여사로 불려야 했을까, 카페에서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는 기혼 여성은 왜 손가락질 받아야 했을까, 강간이나 성폭력에 노출된 여성은 왜 그날 그때 무엇을 입었는지부터 거론되어야 했을까. 


 그래, 굳이 맞장구를 쳐주자면, 한국 남자는 가부장적 사회와 성평등 사회 어디에도 어울리지 못하면서 '불쌍해진' 면을 분명 가지고 있다. 문제는 사회가 어떻게 자신들을 'Ugly Korean Male'으로 만드는지 자각하지도 못한 채 자신들을 '불쌍한 존재'라며 스스로 동정하기 급급한 것이다. 그 한국 남자보다 아등바등 억눌려 사는 것이 한국 여자이다. 이건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이 책에서 언급하는 무수한 성불평등 지표-연봉 차이, 폭력 건수, 고위직 여성의 비율-가 말해주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사회의 포악스러움을 적극적으로 말하는 것을 외면한 채, 여자들 기에 눌려 산다면서 자신들의 ‘심리적 거세‘만을 말하기 바쁜 지금의 아버지들을 보고 아들들은 이상한 걸 배운다. 이들은 아버지가 할아버지만큼 화려하게 살지 못하는 ‘사실‘을 보고 지금의 세상이 여자들에게 훨씬 유리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여성 할당제‘, ‘여성 전용‘ 같은 말이 나오면 "요즘 세상에 누가 차별을 받는다고 그래?"라며 역차별을 운운한다. 이들은 가뭄에 난 콩이라서 주목받는 ‘매 맞는 남편‘, ‘여자 상사에게 성희롱 당한 남자‘ 사례를 잘도 기억했다가 데이트폭력 피해자의 절대 다수가 여자라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사회 현상을 애써 외면한다. 그래서 남녀 간 벌어지는 폭력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유난 떤다고 비난한다. 이런 태도야말로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망각한 것이 아닐까.

현대사회의 가치인 ‘양성평등‘이라는 말은 이 기울기가 ‘과거에 비해‘ 달라졌다는 것이지 ‘수평‘하다는 뜻이 아니다.
게다가 이런 변화의 조짐이 더욱 탄력 받아야 마땅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뭔가 변화에 발맞춘 주장이 나오면 ‘역차별‘이란 단어로 공격하는 남자들, "여자는 의무는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을 주장하니 그런 여자를 싫어하는 건 나의 당연한 권리다"라는 막말을 쏟아내면서도 그것이 ‘표현의 자유‘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을 만나는 건 어렵지 않으니 말이다.
리베카 솔닛의 표현을 빌리자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언어가 혐오 발언을 보호하는 데 쓰이는 실정이다.‘ 정희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종, 젠더, 계급 간의 위계에서 약자에 대한 강자의 표현의 자유는 혐오 범죄일 뿐이다. (……) 표현의 자유는 보편적인 권리가 아니라 보편성을 향한 권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찬란하게 47년 - 아름다운 게이, 홍석천 지랄발광 에세이
홍석천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17년 5월
평점 :
품절



 꿈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꿈에 대해 타인들이 타박하기 때문이라는 문장이나, 커밍아웃 당시 심경을 고백하는 문장은 인상 깊다. 하지만 연예인이 벼슬도 아니고 연예인 면죄부를 암시하는 듯한 의견은 정말 별로다. 그의 에세이가 신간 목록에 있을 때부터 정말 정말 많이 기대했었는데 그 기대가 컸나보다. (실망했던 홍석천의 의견은 사진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첨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