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도 지지 않고 시 그림이 되다 1
미야자와 겐지 지음, 곽수진 그림, 이지은 옮김 / 언제나북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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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도 지지 않고>

-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보라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과 욕심 없는 마음으로

결코 화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음 짓고

하루에 현미 네 흡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내 잇속을 따지지 않고

사람들을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가 있다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가 있다면 가서 벗짐을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가서 두려움을 달래주고

북쪽에 다툼이나 소송이 있다면 의미 없는 일이니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이 들면 눈물 흘리고

추운 여름이면 걱정하며 걷고

모두에게 바보라 불려도, 칭찬에도 미움에도 휘둘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얼마 전, 리디북스에서 공개한 김연수 작가의 인터뷰를 보았다. 김연수 작가가 재차 추천한 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읽으며, 이 책의 표지를 봤더랬다. 그러니, 예스북클럽 쿠폰(^^)을 노리고 5만원 이상 책쇼핑을 할 때 이 책을 자연스럽게 장바구니에 넣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이 미야자와 겐지의 시선집 쯤 되는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이 책은 그의 대표 시 <비에도 지지 않고>만 실려 있는 간략한 그림 에세이다. 책 정보를 제대로 읽지 않고 구매한 자의 말로가 이것인가…. 대신, 이 책이 지닌 특색은 한 구절씩 페이지를 할애하여 곽수진 그림 작가가 일러스트를 더했다는 점. 볼로냐 국제도서전과 월드 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에서 수상한 바 있는 곽수진 그림 작가는 ‘공존’을 표현해보려 했다는 작가 후기에 걸맞게 따뜻하고 배려 있는 그림을 선보인다. 그가 그린 강아지, 고양이, 새, 달팽이 등 귀엽고 깜찍한 동물들과 함께 미야자와 겐지의 시를 조금씩 읽어나가니 절로 마음이 평안해졌다.

미야자와 겐지는 1896년 출생하여 동화 작가이자 시인, 농업과학자로 살았다. 1933년 서른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급성 폐렴으로 사망하기까지 작가로서 주목받진 못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팽배했던 전체주의·제국주의 물결과 겐지의 소박하고 안온하고 이타적인 작품 색깔이 서로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허나, 겐지의 동생이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한 그의 100여 편 동화와 400여 편 시가 유작으로 출간되면서 그는 뒤늦게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질 만큼 일본에선 이미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살아 생전 빛을 받지 못했으나, 죽어선 신물 날 만큼 이름이 불리우는 명사들을 보면 복잡한 기분이 된다. 고흐, 로트렉처럼 가난과 중독에 시달리며 예술에 영혼을 바쳤던 명사들이 같이 떠오르니 말이다. 겐지의 일생을 간략하게 읽으며 역시 복잡한 기분이었다.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그의 시 <은하철도의 밤>을 찾아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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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용도 아니 에르노 컬렉션
아니 에르노.마크 마리 지음 / 1984Books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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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니 에르노의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아니 에르노가 섹스 후 어질러진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그에 관해 설명과 회상을 덧붙여 남긴 기록이다. 연인이었던 마크 마리와 함께 글을 써서, 사진 하나에 각각 두 개의 에세이가 붙은 구성으로 진행된다. 40여 장의 사진 가운데 14장을 골랐고, 글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서로에게 글을 보여주지 않고 자유롭게 썼다고 한다.


자신의 섹스'와 '그 풍경을 담은 사진'을 기록해 출간했다는 점에서 참 '아니 에르노다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글은 가감 없고 솔직하고 존재론적이다. 난 언제나 그녀의 내밀하고 열정적인 욕망이 궁금해 책을 열었지만, 새삼스럽게도 그녀가 회의하는 '세밀한 일상'과 '쓰는 삶'에 마음이 동하곤 했다. 이 책 또한 요란한 섹스 일기인 척 겉모습을 꾸미고 있지만, 속내는 아니 에르노의 투병 일기이자 생을 향한 투쟁 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이 쓰인 시기가 아니 에르노가 유방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던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항암 치료 때문에 체모가 모두 빠졌던 아니 에르노는 머리를 밀고 가발을 쓴다. 겨드랑이 쪽에는 맥주병 뚜껑같이 볼록한 플라스틱 관이 삽입되어 있었는데, 화학 요법을 할 때마다 악성 세포를 죽이는 물질을 집어넣는 카테테르였다. 이렇듯 온몸이 투쟁의 현장으로 바뀌어버린 아니 에르노는('몇 개월 동안 내 몸은 폭력적인 작업이 이뤄진 극장이었다.") 정형화된 섹스 어필이 불가한 몸으로 섹스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욕망과 삶은 병에 쉽사리 투항하지 않는다는 걸, 시간은 흘러가지만 순간은 영원하다는 걸 이야기한다.


섹스를 할 때마다 그녀의 가발이 벗겨지던 이야기나, 아니 에르노와 마크 마리가 각자 어머니의 죽음 전후로 같은 아미고 호텔에 머물렀던 우연의 이야기, 투병 사실을 알리면 본인이 부재할 미래를 점쳐보는 사람들의 눈이 싫어 투병을 숨겼던 동정의 이야기, 베니스 성당 종탑에서 브래지어를 던졌던 낭만의 이야기, 육체가 보이지 않는 사진에서 함께 지낸 '여름'을 떠올리고 그가 신던 '부츠'를 기억하고 즐겨 듣던 '노래' 리스트를 되뇌는 흔적의 이야기… 연인은 동일한 사진을 두고 다른 감상과 회상을 늘어놓지만, 그 글들이 머금은 온도는 비슷해 보인다. 차츰 열정이 식어가는 온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렸다는 식의 옛것을 대할 때의 차분하고 건조한 온도가 책 후반부로 향할수록 또렷하게 느껴진다.


오래전부터 사진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소망이 더욱 강렬해졌다. 아니 에르노가 말했듯 모든 사진은 형이상학적이니까. 사진으로도 행복과 사랑은 붙잡을 수 없다. 하지만, 생이 지나가는 발자국만큼은 붙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나도 이토록 진지하게 죽음의 그림자를 외면하고 유한한 욕망에 매몰될 수 있을까.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은 매번 다른 깨달음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남자 없이 지내기 것은 단지 성적인 필요성보다는 지식을 향한 욕망에 있다. 무엇을 알기 위해서인가. 그것은 말할 수 없다. 나는 아직, 어떤 깨달음을 위해 M을 만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어떤 사진도 지속성을 나타내진 않는다. 사진은 대상을 순간에 가두어 버린다. 과거 속에서 노래는 확장되어 나가 고, 사진은 멈춘다. 노래는 시간의 행복한 감정이며, 사진은 시간의 비극이다. 나는 종종 우리가 한평생을 노래와 사진으로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진 속에 우리의 육체는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나눈 사랑도 없다. 그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그 장면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사진의 고통. 그것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진의 ‘필사적인‘ 의미. 우리는 구멍을 통해 시간의, 무(無)의 불변의 빛을 엿본다. 모든 사진은 형이상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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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낙태 여행 - Journey for Life
우유니게.이두루.이민경 외 지음 / 봄알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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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적 함의와 변화를 촉구하는 문제 의식, 우당탕탕 여행 에세이의 장점을 모두 종합해놓은 책이다.


책의 첫인상은 자극적이다. 검은색 바탕에 하얀 고딕 글씨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써놓은 제목이 눈에 띈다. 사실, 나도 지하철에서 책을 들며 읽는 와중에 종종 책의 표지를 가리기도 했다. 책의 제목이 부끄러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낙태'라는 글자를 보고 누군가 내 머리를 갑자기 후려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에서였다. 피해망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른바 '묻지마 폭행'(^^)이 워낙 많이 일어나는 시국이라 불특정 다수가 모인 대중교통에서는 방어기제가 발동된다. '낙태'라는 용어는 그 자체로 폭력적이고 부정적이며 거친 느낌을 준다. 이 책을 쓴 출판사 봄알람의 멤버들은 이를 겨냥해 부러 '임신 중단', '임신 중지'라는 표현 대신 '낙태'를 썼다. 대중이 더 널리 쓰는 단어 '낙태'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를 걷어내고자 함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책 표지 색이 먹색인 건 단순히 제목을 눈에 띄게 하려는 의도뿐만 아니라 낙태죄 폐지 운동을 가리키는 '검은 시위'를 상징하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한국은 근대화 시기 일본법을 받아들이면서 1953년부터 낙태죄가 존재했다. 2019년 4월, 낙태한 여성과 낙태술을 시행한 의사를 처벌하는 낙태죄 항목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리면서 낙태죄 폐지를 향한 여지와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2020년 10월, 정부는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어정쩡하게 눈치만 본, 실효성 없는 법안이다. 한국에서 중절 수술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수술 희망자이자 대상자는 주로 기혼자들이다. 낙태죄는 사실상 사문화된 법인데, 2020년에도 낙태죄를 존속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은 여성의 신체결정권을 반드시 손에 쥐고 있어야겠다는 가부장적 억하심정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나는 한국보다 여성 인권이 '그나마' 발전한 유럽에선 여성의 신체가 '그나마' 존중받고 있겠지 하고 기대를 품었다. 유럽 여행을 하면 <비포 선라이즈>처럼 로맨틱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것처럼. 하지만 페미니스트의 기대는 언제나 배신당한다. 프랑스의 활동가 플로랑스의 말대로 '여성의 권리가 온전히 얻어진 곳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고, 이 책을 읽는 내내 절절히 느꼈다. 낙태가 합법인 네덜란드에서는 지정된 병원에서만 수술을 해야 하고(수도 암스테르담에는 낙태 병원이 없다. 네덜란드 전역에 12곳뿐이다.), 낙태권을 투쟁으로 얻어낸 프랑스는 극우 진영의 낙태 불법화 위협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유토피아는, 허랜드는 남성이 권력을 쥔 종교와 제도가 있는 한 양립이 불가하다.

설령 임신 9개월이 됐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그러겠다고 결정하면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 마리 클로드

낙태를 할 때에는 무대에 여자만이 존재한다. 그 상황을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은 여성이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 그는 돌연 아빠의 아이가 된다. 어쩌면 이게 여성의 낙태를 그토록 다 함께 손가락질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아이는 국가와 남성의 재산인데 그것에 대한 선택을 여성이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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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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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장편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은 실존 인물 백석을 주인공으로, 백석이 북에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57년부터 선전 아동시를 게재한 뒤 절필한 62년까지 그가 시인으로 살았던 마지막 7년의 행적을 그렸다.

김연수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현실에서 실현되지 못한 일들은 소설이 된다고 믿”는다고 썼지만, 나는 이 소설 속에서 보여진 마음들과 어떤 선택들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백석이 어느 하루 자살을 하게 되는 여인과 불타는 집을 보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나 뜨거움과 느꺼움을 동시에 느끼는 일은 있었겠노라고, 멀리 이국에서 온 시인과 조선어로 ‘비’와 ‘바람’ ‘바다’를 발음한 일은 없을지도 모르나 제 마음에서 벽돌 조각처럼 부서지는 단어들을 몰래 적고 아침이 오기 전에 불태운 일은 있었겠노라고.

책을 읽는 내내 줄리언 반스의 소설 《시대의 소음》 이 떠올랐다. 그 소설 역시 스탈린 치하 전체주의 체제에서 예술가로서 고뇌했던 음악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삶을 다루고 있다. 해당 작품에는 다음 문장이 나온다.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시대의 소음》 중에서.)

권력과 영합하지 않는 독립적인 예술을 지지하는 위 문장은 《일곱 해의 마지막》에서 백석이 ‘조선인민군은 항일 무장투쟁의 계승자이다’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읽다 자문하는 장면과 겹친다. 백석은 사랑과 적개심, 광기와 같은 모든 감정을 자신이 써내려간 문장 속에서 이해하던 사람이었다. 즉, 시를 쓰고는 살아갈 수 없는 시인이었으나 당과 수령을 위한 시 앞에서는 차마 펜을 들 수 없었다.

전쟁의 광기로 가득한 이 세계 속에서 자신을 구원한 그 언어와 문자들의 주인은 누구일까? 기행은 궁금했다. 그것은 자신의 것인가, 당의 것인가? 인민들의 것인가? 아니면 수령의 것인가?

거기서 불타는 한 권 한 권은 저마다 하나의 세계였다. 당연히 서로의 주장은 엇갈리고, 지향점은 다르고, 문체는 제각각이다. 그렇게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고, 현실은 그 무수한 세계가 결합된 곳이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세계가 있고, 또 추악한 세계가 있다. 협잡이 판치는 세계가 있고, 단아하고 성실한 세계가 있다. 어떤 세계는 지옥에, 또 어떤 세계는 천국에 가깝다. 이 모든 세계가 모여 다채롭고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빛을 발하면 그것이 비로 완전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책 한 권이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인 한 명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현실 전체가 몰락하는 것이다.

책을 완독한 뒤 백석의 시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를 연달아 읽고 있다. 백석의 시와 소설 속 장면이 겹치는 부분이 꽤나 많다. 삼수 독골 축산반 사무실에서 백석이 갈탄 난로에 의지하다 편지와 시를 쓰는 모습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머물던 그같고, 옥심과 함께 불을 바라볼 때에 백석이 떠올리는 ‘높은 시름이 있고 높은 슬픔이 있는 외로운 사람을 위한 마음’은 시 <흰 바람벽이 있어>의 한 문장을 고스란히 따왔기에 더욱 벅차다. 가장 첫 시는 역시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였다. 시를 읽는데 백석의 앞에서 이를 외던 소설 속 서희가 혜산역 대합실 한켠에서 우뚝 서있는 풍경이 자꾸만 그려졌다. 쇠도끼 날처럼 백석의 머리통을 내리치고, 그를 눈이 푹푹 나리는 밤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 옮겨놓은 시. 나는 이 풍경을 상상하면 불타는 집과 천불에 휘말린 숲을 보는 백석이 된 것마냥 가슴이 은은하게 뜨겁고 느꺼워진다.

서희가 시 외는 장면과 더불어 가장 좋았던 장면은 소련 시인 벨라가 함흥 서호진의 비 내리던 밤 백석에게 시인의 일을 말하는 장면이었다. 본인 역시 시를 썼던 사람이며 자신의 단어는 부서지고 있다고 고백하는 백석에게 그녀는 죽음과 전쟁, 상처의 의미를 되새긴다.

["나는 1924년에 세상에 태어났고, 그 세상에는 늘 나보다 면저 죽는 것들이 있었어요. 내게 전쟁이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죽이는 일이었어요. 전쟁은 인류가 행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일 이지만, 그 대가는 절대로 멍청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삶에 대해 말할 수있나요? 전쟁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평화를, 상처를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회복을 노래할 수 있나요? 전 죽음에, 전쟁에, 상처에 책임감을 느껴요. 당신 안에서 조선어 단어들이 죽어가고 있다면, 그 죽음에 대해 당신도 책임감을 느껴야만 해요. 날마다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아침저녁으로 죽음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러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매일매일 죽어가는 단어들을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시인의 일이에요. 매일매일 세수를 하듯이, 꼬박꼬박."]

따라서 나는 이 책을 눈 냄새와 비 냄새가 나는 소설이라고 기억한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에선 서로의 마음 사이 심연을 건너기 위해 주인공들의 대사마다 물 냄새가 났다면 이 책은 눈 냄새와 비 냄새로 정의하고 싶다. 습기 가득한 꼿꼿한 마음에도 압력과 폭력은 불을 질러댔지만, 시인의 생애는 이를 지켜보고 버티어낸 갈매나무처럼 보인다. 백석의 시를 읽는 동안 두고두고 슬플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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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사람을 읽다 - 소비로 보는 사람, 시간 그리고 공간
BC카드 빅데이터센터 지음 / 미래의창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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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의 창 미래북살롱 활동으로 읽게 된 다섯 번째 책이자 이번 활동의 마지막 책이다. 이번 책은 흥미로운 부분도 많고, 요즘 내가 가장 인기 있는 분야 중 하나인 '빅데이터' 관련 도서라 다른 분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오프라인 활동 모임 날짜에 선약이 있어 참여하지 못했다. 두고두고 아쉬울 것 같다.

 《빅데이터, 사람을 읽다》는 비씨카드 빅데이터 센터가 ‘실무자에게 도움이 되는 빅데이터 서적’이라는 컨셉으로 펴낸 경제경영서다.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국 소비자들의 관심사가 어떻게 변해왔고 요즘 뜨는 상권은 어딘지 소개하며,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의 개정에 따라 데이터 시장이 어떻게 변화해갈 것인지 예측한다.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빅데이터가 무엇인지 소개하고 2장에서는 소비 활동을 하는 개인을 어떤 소비 유형 세그먼트로 이야기할 수 있는지 10개의 소비자 프로파일링 유형으로 구분해 쉽게 보여준다. 3장에서는 <트렌드 코리아>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장처럼 느껴지는데, ‘미세먼지’ ‘편의점’ ‘워라밸’ ‘배달 음식’ 등 요즘 뜨는 소비 트렌드 아홉 개를 분석하여 설명한다. 4장은 빅데이터로 요즘 뜨는 상권 다섯 개를 집어 ‘힙지로’, ‘황리단길’, ‘해리단길’ 등을 설명하는 장인데 가장 재밌고 '요즘 사람'이 되는 기분으로 읽었다. 홍대의 늘 가던 카페, 동네 근처 늘 가는 음식점만 가는 내겐 젊은 사람 흉내 좀 내라고 독려해주는 참고 사항이었달까.

사람들이 서울에 모여드는 것은 일자리와 생활환경 등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안전하게 살고 싶은, 피해가 있더라도 금방 회복할 수 있는 곳을 본능적으로 찾기 때문이 아닐까? 미세먼지 수치가 실제로 얼마인지를 떠나, 미세먼지에 대한 불안감이 분명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수치가 낮아지더라도 이 불안감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불안감을 덜어주고 일상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심과 안전에 대한 욕구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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