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과 마요네즈
나나난 키리코 지음 / 조은세상(북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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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리코 나나난의 만화책은 가장 간결한 공통의 주제를 다룬다. 이번에는 음악인의 꿈을 꾸지만 현실에 부딪힌 남자친구와 그런 남자친구와의 동거를 지탱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방황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츠치다로 하여금 돈 때문에 술집에 나가야 하는 상황을 만든 남자친구 세이이치가 한심스럽게 보이면서도, 츠치야 그녀의 사랑방식이 의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츠치야는 과거 연인 하기오에게도 퍼주기 식 사랑을 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츠치다는 나쁜 남자에게 끌리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면서 만족하는 타입이 아닐까 싶었다. 


 세이이치를 놓지 못하는 마음이 단순히 '정'으로 표현되지만은 않는 점, 세이이치를 두고 하기오와 만나면서 과거의 자신을 보상받으려 하는 점, 하기오가 만났던 예전 연인이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줬던 리카였음을 깨닫고 마음을 접는 점, 세이이치와 다시 만나 그의 음악을 들으며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점. 그런 부분이 좋았다.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오다기리 죠가 하기오로 출연한다. 영화도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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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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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링 이벤트를 통해 <밤의 동물원> 정식 출간 전 가제본으로 소설을 읽게 되었다. 소설 <밤의 동물원>은 동물원에 들이닥친 무장괴한으로부터 아들을 지키기 위한 엄마 조앤의 사투를 다룬 범죄 스릴러물로, 동물원 폐장시간 즈음인 오후 4시 55분부터 괴한들이 경찰에게 진압되는 오후 8시 5분까지 대략 세시간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더 콜>, <악녀>, <미옥> 같은 모성을 강조한 액션 영화가 저절로 떠올랐다. <밤의 동물원>에서는 주인공이 괴한에게 직접 달려들어 그들과 맞서싸우는 엄청난 액션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치열하고 긴장감 넘치는 엄마 조앤의 '탈주'가 동물원 곳곳을 샅샅이 누비며 펼쳐진다. 당장 영화로 제작되어도 손색없을 정도다. 십팔 킬로그램이 나가는 어린 아들을 줄곧 품에 안은 채 호저우리부터 간식 자판기, 케일린의 은신처, 숲, 개울 등을 동분서주하는 조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어깨 근육이 당기고 무릎과 발바닥이 쑤시는 것 같았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동물원의 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들에 있다. 이를 테면, 괴한의 총에 맞은 코끼리의 사체나 죽은 동료를 바라보고 있는 콜로부스의 안타까운 모습, 멈춰버린 회전목마에 숨게 되는 전개나 울타리마다 이어지는 따스한 조명이 난생 처음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또 다른 독특한 점은 조앤이 도망치는 줄곧 떠올리는 아들 링컨의 습관이나 자주 하는 말 등의 기억, 혹은 조앤 본인이 어렸을 적 외삼촌이나 아빠와 놀면서 갖게됐던 기억이다. 아들과 자신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조앤은 비교적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한다. 허나 신경을 곤두세우며 그림자 속으로 도망치는 순간순간마다 공포와 긴장 때문에 등장하는 번잡한 생각들과 어쩔 수 없이 종내 마주하게 된다. 조앤이 떠올리는 링컨의 유년에는 링컨이 자라는 것을 아쉬워하는 조앤의 모성이 담겨있다. 이는 현재에 대한(동물원에서 마주친 무장괴한들만 아니었다면! 조앤도 이렇게 덧붙인다.) 조앤의 만족감을 비추기도 하면서, 곧 아들을 향한 조앤의 강렬한 사랑과 뜨거운 집념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섞이는 조앤의 유년 시절 기억은, 조앤 또한 '어린이'였을 뿐인 평범한 인간이자 여성임을 보여주는 장치다. 깜깜한 동물원의 밤, 총을 들고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무장괴한들로부터 조앤이 아들과 스스로를 위해 일분 일초마다 태초의 나약함을 딛고 간신히 맹렬하게 나아가고 있음을 체감하게 한다.


 호저 우리에서 몸을 숨기고 시간을 때우면 저절로 끝날 것만 같았던 조앤과 링컨의 사투는, 배고파하는 링컨을 위해 조앤이 간식 자판기로 위치를 옮기면서 위기를 맞는다. 조앤은 이 과정에서 동물원에서 일하는 케일린, 은퇴한 선생님 마거릿을 만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는다. 불행히도 링컨이 전원 스위치를 올리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무장괴한들 중 한 명인 로비에게 위치를 들켜 목숨의 위협을 받는 창고 안의 사람들. 이때 아이러닉하게도, 총구를 겨눈 로비가 마거릿의 제자였음이 밝혀지면서 그들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마거릿에게 꼬박꼬박 '파월 선생님'으로 호칭하고 존중을 표하면서도 '인간사냥'에 뜻이 있다고 믿는 로비의 모습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범죄자로 보여 섬뜩했다. 로비와 마크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그들이 케일린이나 마거릿처럼 동물원에 놀러왔다가 갇힌 피해자들 중 하나로 착각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사냥하러' 갔다는 마크의 말에 순간 온몸이 오싹해졌던 기억이 난다. 


 인상 깊은 장면은 두 가지를 꼽겠다. 하나는 조앤이 쓰레기통에서 우는 아기를 발견하는 장면. 아기는 도통 울음을 멈추지 않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에 그 울음소리가 겨우 감춰진 채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쓰레기통 속 아기를 보며 조앤은 아기의 어머니를 원망한다. 링컨을 살리기 위해 아기를 버리고 갈 수밖에 없는 극단의 상황과 조앤의 휴머니즘이 갈등을 빚는 장면이다. 후에 조앤이 링컨을 혼자 두고 숨겨야 하는 상황이 되자 '아기의 어머니 또한 아기를 살리기 위해 그랬던 거였걸까'하고 생각을 전환하기도 한다. (괴한들을 진압한 동물원에서 아기도 부디 조앤과 링컨처럼 구출됐기를.)


 두 번째는 조앤이 일미터 폭의 강물 속에 몸을 숨긴 채 다리 밑에서 로비와 마크의 발을 보며 동태를 살피는 장면. 덤불 아래 숨겨둔 링컨을 찾으러 가야하는 조앤의 긴박한 마음상태와 마침 이들과 마주친 케일린의 위태로운 목숨이 맞물려 가장 절정의 위험을 보여줬던 장면이다. 케일린을 살리기 위해 강물 속에서 뛰쳐나와 소리치고, 성치 않은 몸으로 끝까지 달리는 조앤의 모습은 그야말로 영웅다운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사이코패스처럼 굴던 로비가 이유없이 케일린과 조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약간 이해가 되지 않지만. (더불어 호저 우리에서 휴대폰을 집어던진 조앤의 행동도 이해되지 않던 항목에 추가한다. 핸드폰을 던지는 것보다 더 좋은 방안이 있었을 것 같다.)


 손전등을 든 경찰이 쓰러진 조앤의 얼굴에 "부인?"하고 말을 걸었을 때, 덩달아 푸욱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즐거운 범죄소설이었다. 영화화 제작도 한 번 기대해 본다. 나는 조앤 캐릭터에,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로리 역으로 등장하는 사라 웨인 콜리스 배우의 얼굴을 입힌 채 상상하며 읽었다. 그런 강인한 얼굴의 배우로 캐스팅해줬으면 좋겠다고 참견하며 김칫국 마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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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기묘한 몽상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27
이언 매큐언 지음, 앤서니 브라운 그림,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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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서니 브라운 책을 한창 찾아볼 즈음에 이 책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앤서니 브라운의 삽화와 더불어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점은, 부커상 수상작가 이언 매큐언이 쓴 동화라는 점! 읽어보니 이언 매큐언 작가 특유의 색깔이 많이 드러나는 동화는 아니다. 다만, 에피소드마다 이어지는 피터의 몽상과 백일몽 같은 이상현상들이 기이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 그자체로 독특한 색깔을 가진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터의 기묘한 몽상>에서는 챕터마다 피터의 새로운 몽상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주인공 피터는 걸핏하면 몽상에 빠지는 버릇이 있다. 오죽하면 자기의 몽상에 취해 동생 케이트를 버스에 두고 내린 적이 있을 정도.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몽상들은 진짜 '몽상' 그뿐이었는지, 현실에서 벌어진 일들과 '교차'되고 있는 건지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들 만큼 실재와 꿈의 경계에 있다. 피터는 동생 케이트 방에 있는 인형들에게 위협 아닌 위협을 당하기도 하고(2. 인형들), 늙은 고양이 윌리엄과 몸이 바뀌기도 하며(3. 고양이), 귀찮고 시끄러운 가족들을 크림으로 지워 스스로를 고립시키기도 한다.(4. 지우는 크림) 호접지몽[胡蝶之夢]의 논리로 주먹대장에게 맞서 이기기도 하고(5. 주먹 대장), 케이트의 장난으로 아기와 몸이 바뀌어 곤혹을 치루기도 한다.(7. 아기) 


 몽상 소년 피터는 종국에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일시적으로 어른이 되어 상급생 그웬돌린과 데이트를 한 뒤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몽상을 꿈꾸는 소년의 나날'은 지나가고 있고 자신은 곧 '몽상 없는 어른'이 될 거라는 사실을 직감한 것이다. 해변에 모인 아이들 그룹과 어른 그룹 사이에 서서, 몽상 끝에 성장한 자신을 돌아보는 피터의 모습은 마치 유명한 성장소설 <슬픔이여 안녕>과 비슷한 장면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장 인상깊은 에피소드는 고양이 에피소드와 마지막 어른 에피소드였다. 열여덟 늙은 고양이 윌리엄이 피터와 몸이 바뀐 뒤 짧은 즐거움을 누리고 세상을 떠난 모습, 피터가 바다 앞에 서서 어른을 맞이하는 모습이 잔상으로 남는다. 그러고 보니 프롤로그에 따르면 피터는 '몽상 없는 어른'이 되진 않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몽상은 그치지 않았는지 그는 작가가 되었다. 동화에서의 이 설정이 괜스레 위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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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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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보면 하상욱의 시와 무슨 차이가 있는 책인가 싶다. 헌데 확실히 하상욱의 말장난보다는 사회이슈에 더 관심이 있고 페미니즘적 발언을 하며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농담집이다. 유병재의 글은 맛깔난다.

 유병재 작가소개하는 부분부터('저서로는 이 책이 처음인데 원래 이런 건 남들이 써준다는데 나는 왜 내가 쓰고 있냐.') 빵 터져서 책을 펴자마자 웃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맘고생하는 사람들 헬쓱해 보이게 하는 거 그만해라. 일 꼬이고 우울할 때마다 살이 얼마나 찌는데. 입맛이 얼마나 좋아지는데. 새벽에 얼마나 처먹는데. 처먹고 후회하고 또 처먹고 그 와중에 치킨 시키는 내가 싫고 그게 맘고생인데.
_<입맛>

[포토] 박○○ 폭풍성장, 쭉 뻗은 성숙몸매 14살 몸매 맞아?
이 새끼는 씨팔 도대체 뭐부터가 문제일까?
_<기레기>

핸드폰에 액정필름 붙일 땐 숨도 못 쉬고 집중하는 주제에……
섹스할 땐 무슨 깡으로 답답하다고 콘돔도 안 끼냐.
_<강심장>

주댕이 싸물어.
나한테 상처 줄 수 있는 건 나뿐이야.
_<까도 내가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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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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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백영옥 작가의 진솔한 자기 이야기와 그녀가 본 책, 영화, 사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책을 더 풍부하게 만든 것 같다. <빨간머리 앤>을 다시 한번 정주행하고픈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 


 백영옥 작가가 '만약'이라고 가정한 것중에, 만약 회사에서 10만원 정도 여가를 즐길만큼의 실연수당이 횟수 제한으로 나온다면, 친구들과 "아, 그 사람은 실연수당을 받을 만큼의 사람은 아니었어!"라는 식으로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상상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실연수당도 좋고, 구남친에 대한 미련을 훌훌 털어버릴 핑계를 갖는 것도 좋고. 정말 그렇게 된다면, 나도 딱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겠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위해 일하고 노력할 자유.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다짐한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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