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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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터링 이벤트를 통해 <밤의 동물원> 정식 출간 전 가제본으로 소설을 읽게 되었다. 소설 <밤의 동물원>은 동물원에 들이닥친 무장괴한으로부터 아들을 지키기 위한 엄마 조앤의 사투를 다룬 범죄 스릴러물로, 동물원 폐장시간 즈음인 오후 4시 55분부터 괴한들이 경찰에게 진압되는 오후 8시 5분까지 대략 세시간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더 콜>, <악녀>, <미옥> 같은 모성을 강조한 액션 영화가 저절로 떠올랐다. <밤의 동물원>에서는 주인공이 괴한에게 직접 달려들어 그들과 맞서싸우는 엄청난 액션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치열하고 긴장감 넘치는 엄마 조앤의 '탈주'가 동물원 곳곳을 샅샅이 누비며 펼쳐진다. 당장 영화로 제작되어도 손색없을 정도다. 십팔 킬로그램이 나가는 어린 아들을 줄곧 품에 안은 채 호저우리부터 간식 자판기, 케일린의 은신처, 숲, 개울 등을 동분서주하는 조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어깨 근육이 당기고 무릎과 발바닥이 쑤시는 것 같았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동물원의 밤'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들에 있다. 이를 테면, 괴한의 총에 맞은 코끼리의 사체나 죽은 동료를 바라보고 있는 콜로부스의 안타까운 모습, 멈춰버린 회전목마에 숨게 되는 전개나 울타리마다 이어지는 따스한 조명이 난생 처음 위협으로 느껴지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또 다른 독특한 점은 조앤이 도망치는 줄곧 떠올리는 아들 링컨의 습관이나 자주 하는 말 등의 기억, 혹은 조앤 본인이 어렸을 적 외삼촌이나 아빠와 놀면서 갖게됐던 기억이다. 아들과 자신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조앤은 비교적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한다. 허나 신경을 곤두세우며 그림자 속으로 도망치는 순간순간마다 공포와 긴장 때문에 등장하는 번잡한 생각들과 어쩔 수 없이 종내 마주하게 된다. 조앤이 떠올리는 링컨의 유년에는 링컨이 자라는 것을 아쉬워하는 조앤의 모성이 담겨있다. 이는 현재에 대한(동물원에서 마주친 무장괴한들만 아니었다면! 조앤도 이렇게 덧붙인다.) 조앤의 만족감을 비추기도 하면서, 곧 아들을 향한 조앤의 강렬한 사랑과 뜨거운 집념을 보여준다. 그리고 동시에 섞이는 조앤의 유년 시절 기억은, 조앤 또한 '어린이'였을 뿐인 평범한 인간이자 여성임을 보여주는 장치다. 깜깜한 동물원의 밤, 총을 들고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무장괴한들로부터 조앤이 아들과 스스로를 위해 일분 일초마다 태초의 나약함을 딛고 간신히 맹렬하게 나아가고 있음을 체감하게 한다.


 호저 우리에서 몸을 숨기고 시간을 때우면 저절로 끝날 것만 같았던 조앤과 링컨의 사투는, 배고파하는 링컨을 위해 조앤이 간식 자판기로 위치를 옮기면서 위기를 맞는다. 조앤은 이 과정에서 동물원에서 일하는 케일린, 은퇴한 선생님 마거릿을 만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는다. 불행히도 링컨이 전원 스위치를 올리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무장괴한들 중 한 명인 로비에게 위치를 들켜 목숨의 위협을 받는 창고 안의 사람들. 이때 아이러닉하게도, 총구를 겨눈 로비가 마거릿의 제자였음이 밝혀지면서 그들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다. 마거릿에게 꼬박꼬박 '파월 선생님'으로 호칭하고 존중을 표하면서도 '인간사냥'에 뜻이 있다고 믿는 로비의 모습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범죄자로 보여 섬뜩했다. 로비와 마크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도 그들이 케일린이나 마거릿처럼 동물원에 놀러왔다가 갇힌 피해자들 중 하나로 착각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온 '사냥하러' 갔다는 마크의 말에 순간 온몸이 오싹해졌던 기억이 난다. 


 인상 깊은 장면은 두 가지를 꼽겠다. 하나는 조앤이 쓰레기통에서 우는 아기를 발견하는 장면. 아기는 도통 울음을 멈추지 않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에 그 울음소리가 겨우 감춰진 채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쓰레기통 속 아기를 보며 조앤은 아기의 어머니를 원망한다. 링컨을 살리기 위해 아기를 버리고 갈 수밖에 없는 극단의 상황과 조앤의 휴머니즘이 갈등을 빚는 장면이다. 후에 조앤이 링컨을 혼자 두고 숨겨야 하는 상황이 되자 '아기의 어머니 또한 아기를 살리기 위해 그랬던 거였걸까'하고 생각을 전환하기도 한다. (괴한들을 진압한 동물원에서 아기도 부디 조앤과 링컨처럼 구출됐기를.)


 두 번째는 조앤이 일미터 폭의 강물 속에 몸을 숨긴 채 다리 밑에서 로비와 마크의 발을 보며 동태를 살피는 장면. 덤불 아래 숨겨둔 링컨을 찾으러 가야하는 조앤의 긴박한 마음상태와 마침 이들과 마주친 케일린의 위태로운 목숨이 맞물려 가장 절정의 위험을 보여줬던 장면이다. 케일린을 살리기 위해 강물 속에서 뛰쳐나와 소리치고, 성치 않은 몸으로 끝까지 달리는 조앤의 모습은 그야말로 영웅다운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사이코패스처럼 굴던 로비가 이유없이 케일린과 조앤을 죽이지 않은 것은 약간 이해가 되지 않지만. (더불어 호저 우리에서 휴대폰을 집어던진 조앤의 행동도 이해되지 않던 항목에 추가한다. 핸드폰을 던지는 것보다 더 좋은 방안이 있었을 것 같다.)


 손전등을 든 경찰이 쓰러진 조앤의 얼굴에 "부인?"하고 말을 걸었을 때, 덩달아 푸욱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쉰 즐거운 범죄소설이었다. 영화화 제작도 한 번 기대해 본다. 나는 조앤 캐릭터에, 드라마 <워킹 데드>에서 로리 역으로 등장하는 사라 웨인 콜리스 배우의 얼굴을 입힌 채 상상하며 읽었다. 그런 강인한 얼굴의 배우로 캐스팅해줬으면 좋겠다고 참견하며 김칫국 마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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