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
사카이 준코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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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사카이 준코가 '아이가 없는 미혼 중년 여성' 입장에서 일본 사회를 바라보며 소탈하게, 안타깝게, 당당하게, 우직하게 한편으론 한탄을 담아, 한편으론 체념을 담아 의견을 밝히는 에세이. 이 책의 재치 넘치는 첫인상은 띠지의 문구부터 시작된다. [선인장도 말려 죽였는걸요, 아이라니요……]라고 적힌 센스 있는 띠지를 보자마자 이 책에 끌렸고, 바로 리디북스에서 이북을 결제해 읽게 됐다. 


 사카이 준코는 '아이'라는 존재가 이제는 귀중품이 되었다고 역설한다. 아이를 자발적으로 낳지 않는 사람들이 증대되면서, 혹은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상황이 가중되면서 (교육 받은 여성의 경우, '똑똑한 여자를 싫어하는 남자들의 성향'과 '결혼 없이 아이만 낳는 방식은 무조건 인정하지 않는 유교 사회의 몰이해'가 그런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성평등 실현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고.) '아이'는 페이스북에 자랑할 수 있는 소품이자 부모의 성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스펙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카이 준코처럼 나는 저출산 해결이 사회의 주요 대책으로 떠오르는 국가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뚜렷하고 명확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요즈음 대부분의 여성들처럼 나 역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회의적이다.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달까. 하지만 사카이 준코의 통찰을 지켜보며,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은 내 죽음을 지켜줄 사람을 잃는 것일 수도 있고, 내 출세 요건을 잃는 것일 수도 있고, 가족구성원으로서의 완전한 승인, 무거운 짐을 함께 옮길 수레를 잃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의 미혼 여성, 미혼모, 싱글맘, 이혼 여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 사회에서는 말이다. 


 저출산을 단순히 사회에서 해결되어야 할 암덩어리 같은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인구가 줄고, 아이가 줄어드는 현상은 사회 대책과 깊이 연관된 문제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주류의 흐름이기도 하다. 그러니, 사카이 준코의 말처럼 과거와는 다른, '아이 없는 미혼 여성'을 향한 덤덤한 시선이 먼저 필요하다. '누구나 안심하고 혼자 죽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만 한다. 이제는 길거리가 아이 없는 미혼들로 가득찰지도 모른다. 그들을 그냥 잘 살아가도록 그냥 혼자 꿋꿋이 짐을 이고 가도록 인정하고 내버려두자. 아이가 있든 없든 인생의 주요점은 그게 아니라는 걸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 세대가 고령자가 되었을 때에는 출산을 경험하지 않은 고령 여성, 즉 할머니이긴 하지만 ‘조모‘는 아닌 사람이 많을 겁니다. 고령 여성이라고 하면 자애로움이 넘치는 존재라는 이미지가 있습니다만 우리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에는 할머니 이미지도 상당히 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1인 위패에는 아무 장식이 없었고 수수한 색 하나로 찰해진 데다 너무 가늘어 슬픈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도 여자의 집은 없다." 이런 말이 있지만 적어도 결혼한 여자는 사후에 시댁의 묘 그리고 위패라는 안주할 곳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독신 여성은 사후에도 역시 집이 없답니다.

대부분의 여성은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갖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교제하는 남성이 결혼도 아이도 원치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도 만혼과 저출산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여자만 나무랄 뿐 남성을 어떻게 해보자는 얘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머지않아 우리 집 패밀리 트리는 시들어 사라질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천명‘이라고 생각할 따름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언젠가 끝을 맺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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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트 특급 살인 -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원작 소설, 공식 출판작,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신영희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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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립된 기차,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 배심원 제도에 의한 선고 이 셋을 교묘하게 엮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 나의 아가사 크리스티 첫 책이다.


 1974년에 개봉됐던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았는데 덕분에 등장 인물들의 특성을 기억하기 쉬웠고, 더 몰입되어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암스트롱 부인의 어머니로 밝혀진 여배우 '허버드 부인' 역할에 로렌 바콜 캐스팅은 찰떡으로 느껴진다! (2017년판 케네스 브래너의 연출작에서는 '미셸 파이퍼'가 이 역할을 연기했다.)


 영화를 볼 때도 그렇고, 리뷰를 쓰는 지금도 그렇고 과연 악인을 향한 사형 판결을 그와 같은 인간인 내가, 그보다 선량하고 피해입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행해도 되는가, 그럴 권리를 가지는가 의문을 갖게 되었다. 푸아로는 그래도 된다고 여겼는지 진실을 밝혀냈는데도 불구하고 기차장 부크, 의사 콘스탄틴과 함께 입을 다물었지만.


배심원은 열두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엔 열두 사람의 승객이 있습니다. 라쳇 씨는 열두 차례 칼에 찔렸습니다. 이것으로서 내내 의아했던 것, 왜 이런 한산한 때에 이스탄불-칼레행 열차에 승객이 많이 몰렸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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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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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우리가 피를 보는 것도 아니면서 예술가가 정치와 무관한 작품을 창조하기를, 독재에 항거하기를 바란다. 즉, 책의 표현대로 예술가에게 순교자를 강요한다. 하지만 순교자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겁쟁이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영웅이 되기가 오히려 쉬운 일이었다.


 이 책은 스탈린 치하 러시아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라는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예술이 예술가의 것인지, 정부의 것인지 질문한다. 답변은 이렇다. 예술은 예술만의 것이다. 인생 역시 인생만의 것이듯.

예술은 모두의 것이면서 누구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모든 시대의 것이고 어느 시대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그것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것이다. 예술은 귀족과 후원자의 것이 아니듯, 이제는 인민과 당의 것도 아니다. 예술은 시대의 소음 위로 들려오는 역사의 속삭임이다. 예술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어느 인민이고, 누가 그들을 정의하는가? (……) 그는 모든 이들을 위해 작곡을 했고, 누구를 위해서도 작곡하지 않았다. 그는 사회적 출신과 무관하게 자신이 만든 음악을 가장 잘 즐겨주는 이들을 위해서 작곡을 했다. 들을 수 있는 귀들을 위해 작곡을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참된 정의는 편재한 것이며, 예술의 거짓된 정의는 어느 한 특정 기능에 부여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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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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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정단 2기 두번째 도서다. 이번 책은 함정임 작가의 62편의 글과 사진을 엮은 산문집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산문집만큼 작가의 역량에 따르는 책은 또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출간된 책들과 비교하면, 김영하 산문 삼부작 <읽다>, <말하다>, <보다>가 그랬고,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그랬다. 이 산문집들엔 작가가 소설을 대하는 철학과 자세, 인생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김영하의 소설과 박준의 시집만큼이나 만족스러운 산문집들이었다. 안타깝게도, 작가 함정임의 저작은 내가 아직 읽어본 것이 없었다. 따라서 작가의 문체와 작가가 선호하는 글 속 호흡을 겪는 일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다소 걱정도 됐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이 책을 통해서 좋은 글들과 문장을 많이 만났지만.


 함정임 작가는 불어를 전공했다. 그래선지 좋아하는 작품으로 프랑스 문학을 자주 소개하고,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방문했던 작가들의 도시를 묘사하고, 작품에 얽힌 비하인드를 다수 들려준다. 대표적인 예로 니스 출신 로맹 가리 작가를 언급할 수 있다. 작가는 러시아 소년 로만 카페츠가 다양한 인종의 물결이 섞이는 니스에서 풍부한 문화적 소양을 통해 문학인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로 거듭났음을 알리며, 그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쓴 배경을 덧붙인다. 로맹 가리 외에도 알베르 카뮈, 롤랑 바르트, 줌파 라히리, 사뮈엘 베케트 등 많은 작가들의 생애를 함정임 작가의 조예 깊은 글로써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무엇보다 함정임 작가가 찬탄을 던져 마지않는 롤랑 바르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의 저작보다는 저명한 이름에만 익숙할 뿐이라 그가 어떤 문장을 가진 작가인지 새삼 궁금해졌다.


 이 책에는 문학 작품만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가 세계 곳곳 박물관을 다니며 보았던 작품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와 <셰르부르의 우산> 같은 영화들, 고즈넉한 여행의 풍경들 등속이 저자가 찍은 흑백 사진들과 함께 잔잔한 위로로 다가온다. 보고 싶은 예술 작품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의 문장들을 인용하면서 끝맺은 말이 가장 인상깊었다. "작가란 그저 이야기의 재미(오락)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의 맥락 속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과 흘러가는 시간에 맞서는 예술의 의미를 소설을 통해 던지는 존재이다. 뭇사람들의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어긋나고 응어리진 현실을 풀어주고 어루만져주는 존재가 작가이고, 소설이다. / 작가에게는 영매靈媒의 역할이, 소설에는 치유의 기능이 내재해 있다." 내가 끊임없이 소설을 찾고, 문화예술을 찾는 이유가 이 말 속에 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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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건강법 - 개정판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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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에 따르면, 이 소설은 문학의 모호함과 절대성을 '자신의 실제 살인 경험을 소설로 써낸 작가'를 통해 상징적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 속에 '순결'과 '첫사랑'으로 기록된 소녀 레오폴딘에게 자신의 이상을 투영해 살인이라는 황홀경을 이루었고 이는 하나의 작품이 되었다. 여성 기자 즉 독자는 이 작품을 철저하게 해체하고 뜯어보고 질문하면서 작품의 진정한 의미, 다른 말로 살인의 진정한 의미를 탐구한다. 그리고 탐구가 끝나는 순간, 독자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황홀경을 맞이하게 되고 마침내 작가를 목졸라 죽인다.


 아멜리 노통브의 이 소설은 극단적으로 설정된 하나의 커다란 메타포다. 아멜리 노통브의 문체가 맛있게 살아있는.


1925년 8월 13일 이후로 이 손은 계속해서 목을 졸라왔소.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바로 이 순간에도 내가 레오폴딘의 목을 조르고 있는 게 보이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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