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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ㅣ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평점 :
작정단 2기 두번째 도서다. 이번 책은 함정임 작가의 62편의 글과 사진을 엮은 산문집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산문집만큼 작가의 역량에 따르는 책은 또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출간된 책들과 비교하면, 김영하 산문 삼부작 <읽다>, <말하다>, <보다>가 그랬고, 박준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 그랬다. 이 산문집들엔 작가가 소설을 대하는 철학과 자세, 인생에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김영하의 소설과 박준의 시집만큼이나 만족스러운 산문집들이었다. 안타깝게도, 작가 함정임의 저작은 내가 아직 읽어본 것이 없었다. 따라서 작가의 문체와 작가가 선호하는 글 속 호흡을 겪는 일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다소 걱정도 됐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이 책을 통해서 좋은 글들과 문장을 많이 만났지만.
함정임 작가는 불어를 전공했다. 그래선지 좋아하는 작품으로 프랑스 문학을 자주 소개하고,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방문했던 작가들의 도시를 묘사하고, 작품에 얽힌 비하인드를 다수 들려준다. 대표적인 예로 니스 출신 로맹 가리 작가를 언급할 수 있다. 작가는 러시아 소년 로만 카페츠가 다양한 인종의 물결이 섞이는 니스에서 풍부한 문화적 소양을 통해 문학인 로맹 가리 혹은 에밀 아자르로 거듭났음을 알리며, 그가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쓴 배경을 덧붙인다. 로맹 가리 외에도 알베르 카뮈, 롤랑 바르트, 줌파 라히리, 사뮈엘 베케트 등 많은 작가들의 생애를 함정임 작가의 조예 깊은 글로써 만날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무엇보다 함정임 작가가 찬탄을 던져 마지않는 롤랑 바르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었다. 그의 저작보다는 저명한 이름에만 익숙할 뿐이라 그가 어떤 문장을 가진 작가인지 새삼 궁금해졌다.
이 책에는 문학 작품만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가 세계 곳곳 박물관을 다니며 보았던 작품들,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와 <셰르부르의 우산> 같은 영화들, 고즈넉한 여행의 풍경들 등속이 저자가 찍은 흑백 사진들과 함께 잔잔한 위로로 다가온다. 보고 싶은 예술 작품이 많아졌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작가가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의 문장들을 인용하면서 끝맺은 말이 가장 인상깊었다. "작가란 그저 이야기의 재미(오락)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의 맥락 속에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과 흘러가는 시간에 맞서는 예술의 의미를 소설을 통해 던지는 존재이다. 뭇사람들의 견딜 수 없는 슬픔과 어긋나고 응어리진 현실을 풀어주고 어루만져주는 존재가 작가이고, 소설이다. / 작가에게는 영매靈媒의 역할이, 소설에는 치유의 기능이 내재해 있다." 내가 끊임없이 소설을 찾고, 문화예술을 찾는 이유가 이 말 속에 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