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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송순섭 옮김 / 버티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간이주점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부분>
사학과 1학년 교과과목중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강의가 있다고 한다. 갓 입학한 스무살 대학생에게 많은 기대를 가지게 했을 교수의 첫 질문은 뻔했다. 교수는 학생들 한명 한명에게 다가가 '자네는 역사가 뭐라고 생각하나? 자네는? 자네는?'하며 묻고다녔다. 지겹도록 부딪혀온 그 질문에 학생들의 기대는 한풀 꺾였으리라. 그 뻔한 질문에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뻔한 대답이 돌아왔다. 강의 첫 시간 내내 교수는 학생들의 역사에 대한 정의를 캐물었다. 그리고 드디어 강의시간이 끝나갈 때 교수는 말했다. '역사란 말일세. 역사라네.'
그렇다. 역사란 역사라네. 맥이 풀리는 동시에 명쾌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 교수는 덧붙여 말했다.
'역사歷史는 인간이 한 곳에 정착해서(止) 집을 짓고 (厂) 쌀을 재배(나무목木 두개가 있는 수풀림林위에 삐침이 두 개 붙으면 곡물을 재배하는 의미가 됨)하기 시작하면서 계층이 나뉘게 되고, 사람이 일어나는 일을 종이에 기록(史)하는 것이라네.'
자의적인 해석인 것 같으나 현명한 해석이기도 하다. 그 역사를 해석하는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사실의 역사와 기록의 역사이다. 사실의 역사가 과학적 고증을 통한 것이라면 사학자 자신이 고증을 통해 사료를 추려내어 주관적으로 정리는 것이 기록의 역사이다. 그렇게 따지고보면 소설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 또한 작가의 눈으로 추려낸 기록의 역사가 될 것이다.
역사를 기록한 책을 보면서 그 책을 기술한 사학자가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는 것 처럼 나는 매번 책을 읽을 때면 작가의 이력을 꼭 살펴보고 그의 책에 녹아있는 의중을 헤아려보려고 노력한다. 자칫 책의 흐름에만 감정을 내맡기면 작가의 눈에 나의 눈이 겹쳐보여 흐려지고 왜곡되기 때문이다. 내가 작가를 보듯 조금 더 객관적인 눈으로 소설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 속의 모든 에피소드들을 작가의 생애와 연관시키는 의도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되겠지만.
이 책은 유럽소설을 흥미있게 읽는 나도 생경하게 느껴지는 '체코'의 작가 보흐밀 흐라발의 작품이다. 유럽의 작가라면 체코 보다는 프랑스의 작가가 오히려 더 친숙하다. 그러나 찾아보고자 한다면 체코는 그리 생소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밀란 쿤데라, 산도르 마라이 그리고 카프카도 체코 작가가 아닌가. 이들 작가들을 한꺼번에 떠올려보면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체코'문학의 체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문호들 뒤를 잇는 작가가 바로 보흐밀 흐라발이다. 전쟁 때 독일군에 점령 당했던 체코에서 태어난 이 젊은이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던 경험으로 작가가 될 법도 했다. 명예로운 작가가 된 그는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 세상에 없다. (로맹가리와 더불어 정말 슬픈일이 아닐 수 없다. 더이상 새로 탄생하는 그의 작품을 기대할 수 없으니까. 왜 유럽의 작가들은 하나같이 비슷비슷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가는 돌연 죽어버리는 것일까.)
책의 제목인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는 병력이나 탄약을 수송하는 경계가 매우 삼엄한 독일군 열차를 의미한다. 이 책은 정치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의와는 관계 없이 역사에 의해 정신없이 사방으로 흔들리는 개개인의 역사를 비추고 있다. 그들의 컴컴한 역사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다. 독일에 점령당해 엄중히 감시받았던 체코는 일본 점령하의 조선을 떠올리게 한다. 동병상련이라고, 빼앗기고 매맞아보지 않은 사람은 알수 없는 그 무엇을 우리는 경험했기에 저 멀리 떨어진 나라인 체코인의 소설 안의 모습을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내심 책 속에 들어있을 어두운 역사의 뒷통수를 볼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예상을 깨고 유쾌하고 박장대소 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마치 우리의 전통 문학에서 보여지는 한限과 대비되는 풍자와 위트처럼, 체코인들의 피에도 똑같은 울분이 있고, 그것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들은 그저 평범한 기차역의 직원들이었다. 우리 역사의 테러리스트들이 그러했듯 그저 평범한 아들이자 아버지, 남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속에는 개인을 넘어서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냥 단순한 소속감일 수도 있고, 언젠가 내팽개쳐질 민족주의이거나 개인적인 애국심이었을 수도 있다.
전쟁과 관련되어 있는 소설은 유쾌하지 않다. 가스실, 살육, 폭발, 기아, 이별, 보복 등으로 대변되는 이야기들과 함께 당시의 역사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은 그 안에서 웃을줄도 알게 된다. 전쟁 속에서도 사랑은 꽃핀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참 후의 현재를 살고 있는 나 또한 그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함께 아파하고 기뻐하게 된다. 그러나 어두운 역사를 경험하지 않은 민족이 느끼는 책의 감동은 아마도 다르리라. 점령당한 조국에서 살고있음에도 그 현실이 익숙해져서 독일군도, 일본군도 그저 하나의 풍경에 지나지 않을 때, 전쟁이 나는 와중에도 연애도 하고 농담도 하게 되어버릴 때에도 주인공들의 마음 속엔 잊혀지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래서 보잘것 없이 평범했던 체코인 '밀로시'는 폭탄을 끌어안고 숨어서 열차를 기다렸나보다. 자신의 폐가 총알에 찢기고 터져서 제 피로 흰 눈이 모두 붉게 적셔질 것을 알면서도.
경험하지 못한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젊은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동질감으로 이 소설을 읽어나갔다. 우리를 괴롭힌 괴물들에 대한 증오심보다는 어차피 모두 다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매우 값지지 않은가 싶다. '저 독일군도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받는 평범한 가장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겠지. 그리고 그 가족은 그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고 있을 것이야. 하지만 그는 이제 돌아갈 수 없어.' 라고 함께 죽어가는 적을 보며 연민을 느끼는 밀로시는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수많은 어리석은 희생을 부르는 것인지 말해주고 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크지도 않은 욕심 때문에 곱절로 되갚아질 못난 짓을 꾸미는 것일까. 역사는 잊혀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것을.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