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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살면서 느끼는 자잘한 행복만큼 더없는 기쁨을 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듯 바람의 냄새도 함께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여름은 여름답게 날씨는 푹푹쪄야 맛이고, 초록이 온 세상을 차지하고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겨울은 나름대로 혹독하게 추워야 겨울답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예전에는 이러한 소소한 삶의 빈자리의 값짐을 느끼지 못했었다. 올해들어 비로소 가장 평범한 생활이 가장 행복한 생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떻게 보면 텅빈 듯, 무미건조한 일상이 누군가는 몹시도 갈망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빈 공간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여유롭고 삶을 만끽하며 사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아, 가을이구나. 하고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소소한 삶의 즐거움이란 나의 '빈 공간'들 중에서 가장 크게 자리잡은 것이 바로 책 읽기와 관련된 것이다. 책 읽는 것, 책 사는 것, 책 선물하는 것을 비롯해서 이번 가을에는 뜻밖이고 오래도록 뜻깊을 추억을 남기게 되었다.
장 폴 뒤부아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부랴부랴 도착한 어느 서점에서 그를 보고 길지도 짧지도 않은 줄 맨 끝에 섰을 때. 그 때의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오늘 인터넷 뉴스에서 읽은 이지누님의 글 속에 담긴 산골소녀 영자가 이지누님을 처음 보고 남긴 글을 살짝 훔쳐 써보자면,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신이 보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장 폴 뒤부아다."
미리부터 싸인을 받고 얼굴 한번 보고자 찾아가게 되었지만 싸인회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그저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인 존재였다. 그의 책 한 권도 아직 읽지 않는 나로서는 그의 팬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점이 없지 않은가. 이 날의 외출은 순전히 '한 외국 작가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마침 그날 이전에 선물처럼 내게로 온 이 책이 그나마 우리의 낯선 만남에 동지가 되어주었달까. 하얀 표지의 책을 가방에서 꺼내어들고 줄을 서 있는데 표지가 우글쭈글해질 정도로 두 손에 땀이났다. 어찌나 흥분이 되던지 위가 뒤집힐 것 같아서 눈물을 찔끔 뽑아내도록 크게 헛구역질까지 했더랬다. (본인 비위가 약해;)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으나 이 몸은 이미 흥분의 도가니탕 속에서 지칠대로 지쳐버린데다가 바로 앞 순서의 아리땁고 파리지앵의 냄새를 질질 흘리는 아가씨가 찰스(!)를 닮은 남친과 유창한 불어로 뒤부아씨와 대담을 나누는 모습에 기가 팍 죽어서 내 순서가 되어서도 그가 내 영문이름 철자를 알아보기 쉽게 내 이름 석자만 수줍게 발음해주었을 뿐, 묵묵히 그의 싸인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아무튼간에 말 할 필요도 없이 몹시 매력이 있는 이 작가양반과의 만남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거야말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소박한 즐거움 아니겠는가.
그 이후 몇번이고 친필 싸인을 들여다보며 흡족해하는 독서가 시작되었다. 마침 책 속 주인공 '폴 페레뮐터'도 작가라서 매 순간 '폴=장 폴 뒤부아'라는 공식을 지워버리려고 어지간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폴의 표현으로는 '여기도 저기도 씨를 뿌리고 다니다가 몰래 여자아이까지 낳아 숨겨두고 호수에 빠져죽은 아버지와 정체모를 남자와 아마도 바람이 난 후 비행기 사고로 죽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구실 못하는 불알을 가진, 애도 없고, 얼마전 이혼당해서 부인도 없는 중년의' 우리 주인공은 이런 화려한(?) 인생 경력을 잘 살릴 수 있을법한 소설가가 되었다. 그러나 작가 특유의 소심함도 가지고 있어서 자기만의 세계에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외로움, 고통을 커다란 구멍을 파고 그 안에 모두 집어 넣어 놓았다.
그 구멍들이 보일 때 마다 그는 괴로워하지만 그때마다 온몸으로 구멍을 꾹꾹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얼핏보면 평화롭고 조용한 작가의 삶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외로움이 극에 달하던 그는 뭔지모를 괴로움이 엄습해오는 순간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 구덩이가 모두 아버지로부터 생긴 것이라는 생각에 갑작스러운 여행을 결심한다. 아버지가 빠져죽은 호수가 있는 곳으로. 그 곳에서 그는 아버지의 옛 친구로 부터 놀라운 사실을 전해듣는다. 같은 아버지를 가진 자기의 이복누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혼란스러워진다.
여행의 목적인 호수로 가는 길에서 폴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겉으로는 순박한 주민같아 보이지만 비열한 인종주의자, 태초의 유전자로 부터 물려받은 야만성을 드러내는 사냥꾼 부부, 물고기라면 사족을 못쓰는 친구 등등... 작가란 직업을 가진 폴의 눈으로 본 여러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놀랍고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아버지가 빠져죽은 호수에 갔다가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다는 '더러운 숲'에 가게 된다. 그 안에서 그가 겪는 온갖 야생적인 경험들은 지난날 현실에 안주하고 수수하기만 했던 작가 폴을 깨어나게 만들었다. 그는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안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작고 연약한 존재인가를 느꼈다. 죽고 사는 것이 눈 앞에 있는 와중에는 더이상 사람과 사람의 원한이나 실망, 증오 따위는 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 잔인한 사람들 그리고 자기 스스로를 용서한다. 그리고 마침내 늘 외톨이였던 자신에게 피붙이(이복누이의 존재)가 생겼음을 감사한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폴의 여행에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읽었을 것이다. 특히 '더러운 숲'을 지나는 여정에서 나는 줄곧 외면당했던 짖이겨지고 있는 내 손바닥을 보게 되었다. 나 또한 가시덤불로 가득한 길을 걷던 때가 있었고, 누구에게나 그런 무자비한 여정이 각자의 인생 안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방 안에서 익숙함에 안도하며 산다. 용기내어 집 밖으로 나섰을 때 너무도 생경하고 차갑고 매말라서 걷고 싶지 않은 길을 보고 겁부터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걷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길의 끝이 보인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알게된다. 아늑했던 그 옛날의 내 집에서 내가 그저 '쉬어터지고' 있었음을 폴이 느꼈듯이 우리도 깨닫는다. 앓고 난 후 더 강해지는 법이다. 나를 벗어나야만 남과 맞닿을 수 있고 진정으로 자신과도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가시덤불에 찔리고 뜯기는 손이 아물어가는 일은 가시에 찔리기 전에는 있을 수 없다. 오직 뜯기고 할퀴어진 후에야 비로소 그 상처가 아물게 되는 것이니까. 나도 내 안의 고통스러운 구덩이 하나를 덮어버리고 싶다. 내 두 손이 더러워지고 찔리더라도 참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폴과 뒤부아의 응원으로 용기를 내어보기로 한다. 내 안의 '더러운 숲'으로 여행을 떠나볼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