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alian Joy - 이탈리아 스타일 여행기
칼라 컬슨 지음 / 넥서스BOOKS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뭔가를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 모든 것이 끝났다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때가 바로 시작이다-루이 라무르

과거를 정돈하고 현재를 시작하는 방법 중 여행보다 완벽한 것이 있을까? 

 여기에 성공한 여성이 있다. 그녀는 모든 물질적인 것을 가졌지만 모든 인간적인 것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여긴다. 그녀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지금이야말로 무엇인가 새롭게 시작해야할 때라는 것을 느꼈다. 

 시작은 줄곧 우리에게 다른 것 하나를 버리도록 만든다. 내가 세상에 나왔을 때 리본이 달린 멋진 드레스를 입고 태어나지 않았듯 시작이란 늘 텅비는 것부터 비롯된다. 버린다는 것은 지금 당장 필요없다는 의미와도 같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늘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지 말라'고 일러준다.

노래 ♬ 타타타(김국환아저씨)를 들어보자.

     ...산다는 건 좋은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그렇게 우리는 알몸으로 태어났다. 

 여행은 우리네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이제껏 쌓아둔 나의 직업, 인간관계, 집 혹은 고향이라는 보금자리, 통장잔고, 빚 독촉의 압박, 사랑 그리고 기타 모든 나와 관련되었던 것들을 그냥 두고 빈가방(때로는 이것 조차 두고 정말 빈손으로 떠날 수도 있다!)을 가볍게 둘러매고 미지의 세계에 발을 디딘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우리는 여행 맨 처음의 낯설음과 두려움을, 그 다음엔 익숙해짐과 아쉬움을, 마지막으로는 그리움과 희망을 챙겨서 돌아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점점 꿈처럼 희미해져가지만 언제나 심장속에 가득 채워진 혈액처럼 박동과 함께 숨쉰다. (어쩌면 한 세상 소풍을 끝내고 생을 마치는 사람이 사후 세계로 가기를 꺼려하듯 여행지에서 떠나고싶지 않아 찔찔짜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탁월한 선택을 했다.

이탈리아!

낭만, 고전, 젊음, 열정, 모험, 사람 냄새, 여행의 진실...이 모든 것들로 가득 채워진 곳이 바로 이탈리아니까. 고백하자면 내가 이탈리아에 있었던 2004년 겨울.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왜 그토록 이탈리아에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리고 도대체 내가 왜 이런 무미건조한(!) 곳을 여행 루트로 정했는지 후회스러웠다. 마치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를 읽고 난 후 잔뜩 기대를 하고 영화로 보았을 때의 허망함과도 비슷했다고나 할까. (이 영화 역시 오랜 후에 감회가 새롭더군...)

말하자면 이탈리아는 내게 매우 한국적인 동시에 유럽적인 곳이었다. 그런 익숙함에 나는 이탈리아에 대해 건조함을 느끼고 돌아왔을지도 모르겠다.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갈 때에도 이탈리아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고 (피렌체의 두오모가 궁금하긴 했지만!) 로마에서 돌아오는 인천행 비행기 안에서도 내내 딴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후 2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밟았던 어떤 땅 중에서도 이탈리아의 도시들이 너무도 그립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내뱉던 특유의 힘찬 인토네이션과 서양인 다운 풍부한 표정, 그 속의 동양적인 인간미, 숙소의 냄새(;), 아이스크림 맛, 스피지코 피자의 맛, 온갖 예술품.... 지금 이런것들을 명확히 떠올리려 노력해도 점차 희미해져가고 그것들은 하나의 기억에 불과하게 되었지만 내가 그곳에 있었던 계절이 돌아와 그 때의 이탈리아 공기 냄새와 비슷한 느낌을 만나게 되면 곧 이탈리아를 그리워하는 매일매일이 되어버렸다. (어째 여행기 리뷰마다 이탈리아 타령을 해서 귀가 따갑다;)

  이 책을 발견하고 그토록 발광을 했던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책으로는 분명 이탈리아 사람들의 인토네이션이라거나 이탈리아의 공기냄새 따위를 듣거나 맡을 수 없다. 그래서 늘 여행기는 가뭄에 잔비내리듯 감질나기 마련이다. 이제껏 여행기를 읽은 후엔 불난집에 부채질하듯 이탈리아로 향하는 내 마음을 가다듬지 못하고, 젖 모자란 아기마냥 더욱 징징대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안 조이'는 읽고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채워져버렸다. 당장 떠날 수 없어도 안심했다고나 할까.  

 이탈리안 조이를 읽기 시작하면서 염려했던 것은 저자가 외국인인 만큼 여행기에 대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한국인과 호주인은 분명 조금은 다른 취향을 갖고 있을거라는 염려..) 하지만 여행자는 그저 여행자일 뿐이었다. 누가 가서 보아도 그곳은 이탈리아이니까! 칼라 킬슨은 내가 보지못했을 이탈리아의 모습을 참 잘도 구경시켜 주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 호주의 성공한 커리어우먼에서 갑자기 이탈리아로 훌쩍 떠나서는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고 사진을 찍고 드디어는 사진작가로, 칼럼니스트로 일하는 그녀의 드라마틱한 인생 여정이 함께 담아져 있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분명 다른 여행기와는 다르다.

 그리고 나는 다시금 이탈리아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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