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행복한 거 맞아?"
이런 질문에 심각해진다면 그건 유혹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남자들이 여자를 떠볼 때 하는 질문이라고 한다. 애인이나 남편이 있는 여자에게 이런질문을 하는 이성은 열에 아홉은 흑심이라는거다.
하지만 어쩌나... 내 질문은 의도가 좀 다르다.
그림을 파헤쳐 감상하는 방법을 알려준 책 '그림 보여주는 손가락_김치샐러드'를 읽은 독자답게 표지를 분석하기 시작한다. 얼핏봐서는 평화로워보이는 저 그림은 젊은 여자가 벤치에 앉은 채 유모차를 옆에 두고 있다. '아, 저 여자는 아기를 낳았고 아기와 함께 공원에라도 나왔나보네.'라고 생각한다면 틀렸다. 책을 읽고 난 사람은 알 것이다. 그녀는 아기를 보고 있지 않다. 벤치 뒤에 펼쳐진 도시를 멍하니 응시하며 육아에 지친 몸을 벤치에 기댄채 유모차 한 켠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 막 엄마가 되었다.
'행복한 사건'이라는 제목에 대한 내 물음은 여기서 시작된다.
아이를 가진 여자들은 양가감정에 휩싸인다. 아이가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마음과 정말 죽겠으니 쳐다보기도 싫다는 마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엄마'가 되는 여자들의 공통적이고도 정상적인 반응이다. 여자라고 해서 매순간 자기가 낳은 아이라는 이유로 그 애가 예뻐보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이 책의 바르바라처럼 잠을 설치고 밤낮이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 직업을 유지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에 뱃가죽은 점점 흘러내리고 오줌이 찔끔찔끔 새어나온다(요실금). 아기를 안고 들어올리고 하느라 팔뚝은 어느새 남편보다 두꺼워져있고 화장은 커녕 세수조차 하기 힘든 나날의 연속이다. 여자에서 엄마로 변신한 여자들은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 우리는 여성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성이 되어가는 것이다. (58)
그럼에도 우리네 엄마들은 우리를 포함한 무수한 자녀를 잉태했다.
10개월의 인내와 회음부 절개의 고통과 양육의 막막함을 잊은채 어느새 그녀들은 다시 '행복한 사건'을 맞이한다.
그녀들은 행복하다고 했다.
적어도 내가 본 출산의 현장은 기묘한 것이었다. 회음부는 생각보다 두터웠다. 작은 구멍으로 아기의 머리가 보였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산모가 느낄 신음의 고통은 말할것도 없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으로서는 소독 된 가위로 '쑹덩'하고 잘려나가는 회음부와 그 안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하얀 살덩어리, 태반과 기타의 붉은 것들에 적잖이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포유류로 태어나서는 아주 자연스럽고 원시적인 행위인 출산을 마주한 나는 적어도 충격으로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매우 기묘하다고 느꼈다. (실제로 내 동료 중 몇몇은 그 현장에서 쓰러져 실려갔다는 이야기가...)
자궁 안에서 견뎠을 무수한 침묵을 깨며 아기는 울음을 터뜨린다. 산모는 언제 고통스러웠냐는 듯이 활짝 웃으며 행복해한다. 그 아기가 그녀가 고통을 잊어버린 이유이다.
그렇다면 아빠는?
남(?)의 몸에서 일어나는 임신의 현상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남자는 비로소 출산하는 순간 무언가를 느낀다. 우리는 모성애에 비해 부성애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했던 것 같다.
* 산부인과 의사는 분만실 간호사에게 아기 아빠를 다시 들어오게 하라고 했다. 니콜라는 혼이 쏙 빠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충격을 받은 것이다. 로랑스 페르누 저서의 2000년 판본은 대단한 진전을 보였지만, 1967년도 판본과 마찬가지로 아기 아빠가 분만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다. 어쨋든 내 앞으로는 하얀 막이 쳐져 있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니콜라는 자기 아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공포영화를 보기라도 한 듯 하A게 질려 있었다.
그는 망연자실해 있었다. 남자들은 약해 빠졌다. 너무 민감하다. 남자들은 생리도, 입덧도, 임신도, 분만도, 회음부 절개도 모른다. 남자들은 행복한 여자들이다. (72)
출산 그 이후 여자와 남자는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닐까?
지난날 모성이 다산을 하는 것을 풍요로 여기고 남자는 동굴밖에 나가서 짐승을 잡아다가 생계를 꾸렸듯이 그들은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그 뗄 수 없는 본능적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자유분방하기로 소문난 '프랑스'의 여자도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여자고 엄마고 아내, 며느리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 여자와 시어머니, 남편은 이럴것'이라는 편견!!)
그동안의 아련한 사랑 이야기에 속았던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리얼리티쇼'란 이런것이구나 했다.
* 처음의 사랑이 있고, 성숙한 사랑이 있다. 성숙한 사랑은 나중에야 온다. 아무도 그런 사랑은 꿈꾸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만날 때의 사랑은 부부의 사랑에 비하면 풋내 나는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172)
* 나는 모르는 게 없었다. 지독히도 난해한 헤겔, 칸트, 라이프니츠의 저서들도 이해했다. 그런데 인생을 마주하고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204)
완벽한 부부란 없다. 인내하는 부부만 있을 뿐. ^^
내 눈에 행복해보이는 남의 가정도 알고보면 이런저런 사연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진정으로 오래도록 진행되는 사랑은 '얼만큼'도 아니고 '왜'도 아닌 동고동락의 '과정'에 있는게 아닐까?
*나는 레아를 지켜보면서, 모든 사람에게는 그를 돌봐준 누군가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이는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사랑해 준 누군가가 없었더라면 그렇게 살아남기도 힘들었으리라. (225)
이 책을 읽고 나면 비로소 내가 그토록 금이야 옥이야 마음을 졸이며 길러진 아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랑을 하는 방법과 그 가운데 고난을 이겨내는 방법도 함께.
♬ 추천 : 애를 낳은 이후로 부부 사이가 소원해진 부부,
여자들의 출산이 어떤 사건인지 궁금한 남자들,
도대체 왜 결혼하면 지옥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미혼남녀,
이 인간과 드디어 같이 못 지내겠다고 결심한 연인들에게^^
* 결국 이 여행이나 저 여행이나 엇비슷해지게 마련이다. 가보지 않은 땅이 없다. 미지의 땅은 오직 하나, 딸뿐이었다. 우리가 낳은 아기 말이다. (91)
* 아빠는 좀 달랐다. 아기 아빠는 젖을 먹이지 않기 때문에 아이한테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관계는 불규칙적이었다. 니콜라의 생활도 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이는 정신이 번쩍 든 모양이었다. 철마에 올라앉아 정말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일 아니면 하고 싶지 않다고 호기롭게 외치던 반항아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뭐가 그리 중요해서 아침마다 부리나케 일터로 달려가는지? 그는 점점 더 일찍 집을 나섰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고객들을 만나고, 예산을 잡고, 그가 이제 '수익'이라고 부르는 판로들을 찾아야 했다. 예숙을 위한 예술에 목매던 나날은 끝났다. (98)
* 아! 위대한 사랑의 맹세와 마법 같은 포옹의 나날은 저만치 멀어졌다. 진정 낙원은 잃어버린 낙원일 수밖에 없는 걸까? 기저귀가 사방으로 널린 집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란 불가능한 것일까?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고 돈 걱정에 빠져들면서도 여전히 애인 노릇을 한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왜 우리는 처음부터 사랑은 정신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세뇌당했을까? 왜 사랑은 낭만적인 베네치아의 운하이지, 결코 아빠니 엄마니 아이니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사랑은 성스럽고 가정은 구질구질하다면, 어떻게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까? (104)
* 아기는 부부를 파괴하는 제3의 요소다. 하지만 우리가 오히려 부부 사이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아마 아기는 더 잘 자라게 될 것이다. (108)
*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서로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을 포기한 채 살 수도 없다. 우리가 처한 상황이 딱 그랬다. 질문들을 던져도 결코 해답을 찾지 못한다. 가능한 일인지 어떤지도 알지 못한 채 궁지에서 벗어나보겠다고 불가능에 도전하고또 도전한다. 행복을 추구하면서 행복을 포기해 버리고, 불행의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다가 정말 바닥까지 떨어지고 나서야 다시 솟아올라 처음 순간의 비약에 대한 감각을 되찾는다. (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