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태어나기 전에 무섭거나 아팠나?"

 "아니."
 "죽는다는 것도 그런 게 아닐까. 태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 뿐이야. 무서울 것도, 아플 것도 없어." p14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담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채근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죽음을 향한 두려움일 때도 그렇고 동경일 때도 그런데, 아무튼 울창한 덤불 속에서 그보다 더한 암흑을 들여다보는 듯한 얼굴로 어눌하게 말을 걸어온다. p25
 
 사람의 죽음에는 특별한 의미나 가치도 없다. 누구의 죽음이나 같은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는 말이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늘 언제 죽을까 노심초사한다. 내 생각에는 그런 걱정으로 인생의 많은 부분을 소용해버리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니까. 우리가 읽는 대부분의 글에서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말고 현재를 즐기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어쩐지 그 글들을 읽고 있자면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삶에 집착하게 되어버린다. 스스로의 수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조차도 '맞아, 나도 언젠가는 죽을거야.'라고 인식하는 순간 생(生)에 집착하고 마는 것이다. 그에 비해 이 책은 나에게 비교적 시니컬하게 와 닿았다. 사신 치바라는 인물 자체가 인간의 살고 죽는 것에 대해서 냉정하게 바라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책의 전체적인 느낌이 그러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단지 그 두려움을 '모험'이라는 심리적 방패로 맞서든지 포기하든지 하는 방법을 이용할 뿐이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은 모험 또는 포기 등으로 설명될 수 없는 종류의 공포이다. 모든 두려움에 앞서 '그까짓거 죽기보다 더 하겠어?'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도 결국 죽지 않을것이라는 안심 때문이다.  
 
 태어날 때의 기억을 가지지 못하는 것, 그래서 그 때의 느낌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모르듯이 죽음 또한 그렇게 망각의 일종으로 찾아온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된다. 어쩌면 태어나기 이전에는 '출생된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들은 한 번의 생을 시작하고 마감할 때 까지 (돌연사를 제외하고는) 충분히 죽음이라는 것에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성격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은 각 발달과정상의 과업을 가지고 있다. 유아기, 청소년기,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 그때마다의 발달과업을 잘 수행해야 그 다음 단계에서 더 나은 심리적 안정을 가진다는 것이다. 특히 노년기에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면서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잘못했던 것은 뉘우침으로써 다음 생(죽음)을 준비하게 된다. 원한이 있는 사람은 죽을 때 눈을 감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 한을 풀기 위해 죽음을 올바르게 맞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대로 죽을 수 없어'라는 표현이랄까.
 
 우리는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원하고 또한 인간답게 죽기를 원한다. 병으로 고통받고 죽는 것도, 인생의 공허함을 느끼고 옥상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누군가의 원한을 사서 죽음을 당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사신 치바는 이러한 복잡한 인간의 내면과 인생을 종합적으로 정리해서 각자의 수명까지 살게 해서 인간답게 죽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 전에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정하는 신이다. 일주일간의 조사가 끝나면 담당부서에 결과를 보고한다. 결과가 '가(可)'일 경우 그 다음날 죽음이 실행된다. 그렇다면 '수명 이전에 당하는 죽음은 전적으로 사신에게 책임을 돌려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원망이라고 할까나.
 
 그가 어떤 사신인지 살펴볼까.
"해야 할 일은 신속이 하지만 쓸데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스타일이다." p16
우선 치바는 이토록 냉정하다. '가'라고 생각하면 여지 없이 '가'를 불러버리는 쪽이랄까. 한편으로는 너무도 인간적인 사신이어서 오히려 정감가는 쪽이다. 그렇지만 가수가 된 여자의 경우 치바 자신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보류'로 결정한 것에서는 인간의 생사에 대해서 조금은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처리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게 짧아. 툭하면 화를 버럭 내고, 충동적으로 사람을 찔러. 더구나 그다지 죄책감도 없고. 경찰이 왔으니까 도망치고. 트렁크가 열려 있으니까 들어가고. 뒷일은 생각을 안 해. 인간이란 이런 녀석들뿐인가? 후회라고는 안 하는 살인범뿐인가?" p239
 
 '인간의 이러이러한 면은 이해할 수 없어.' 라고 말하는 치바. 사실 인간족인 내가 생각하기에도 인간은 알다가도 모를 종족이다. 좋다고 웃는가 하면 어느새 질질 짜고 있질않나 이유 없이 사회악으로 사는 인간들도 많다. 누군가에게는 의미 없는 일을 거의 미쳐서는 평생 식음을 전폐하고 씻지도 않고 정진하는 사람도 있고......
 
 치바는 이러한 인간의 모순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점점 '가' 보다는 '보류'를 넣는 쪽이 많아지겠지..하는 기대를 해본다.
 
 "후회할 정도라면 죽여서는 안 된다고는 생각해요."라는 청년의 대답처럼 어쩌면 인간이 저지르는 죄악이란 자신이 초래할 결과에 대해 고민해 볼 겨를도 없이 벌어지고 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후회'라는 단어도 생긴것 아닐까.
 
 "예를 들면 말이에요, 태양이 하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특별한 일은 아니지요. 하지만 태양은 중요하잖아요. 죽는 것도 똑같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특별하지는 않지만 주위 사람들로서는 슬프고 중요한 일이라고." p330

 

 사신에게 있어서 인간의 죽음이란 인간의 탄생만큼 의미없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가장 원초적인 인간의 물음임에는 틀림없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아름다운 이 세상과의 이별 등의 의미가 두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풍'을 끝낸 마지막 길목에서 뒤돌아보는 소풍의 추억이 잊혀지기엔 너무도 값진 것이기에.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千祥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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