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할머니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나라 요시토모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요시모토 바나나 하면 '키친'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일단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 생각난다. 바나나의 소설 중 가장 처음 읽은 책이기도 하다. 요시모토 바나나 스러움을 지겹다, 상업적이다, 별거 아닌것을 포장만 했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나도 일부 동의하지만 '하치의 마지막 연인'을 읽었을 때에만 해도 그런 감성을 접한 것은 처음이었고 소녀의 두근거림을 느꼈었다. 그래서 당시에 책을 선물할 일이 생기면 그 책을 고르곤 했다. (물론 여자에게만)

 

 '일본소설' 중에 요시모토 바나나를 포함한 그녀 시대의 여류작가들은 비슷비슷한 감성을 지녔다. 그래서 그게 붐이 되어 빵빵 터질때도 있지만 쌓이고 쌓이면 남는것도 없고 진부하다는 생각도 들만하다. 그녀들의 소설은 '일상'과 닮았다.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평범 축에도 못 끼는 것 같아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처럼 일상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지만 우리의 하루 중 속속 박혀있지 않은가. 그런 일상이 반복되면 '지겹다'고 하는 게 사람 변덕인 것처럼 이런 잔잔하고 감성적인 책 또한 단물이 빠지면 홀대하게 되나보다.

 

 요시모토 나라의 일러스트와 아르헨티나 할머니라는 이국적인 제목 때문에 출간 직후부터 사서 읽고 싶었는데 지금까지 방구석에 꽂아두고 있었다. 엄청 얇은 책이라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데도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도 비슷한 감성에 지쳐서 조금 무게 있는 책을 읽고 싶었던 때문이다.

 

 이 책은 꾸준하게 잘 팔렸고 바나나의 팬이 아닌 사람 중에도 읽은 사람이 꽤 있을듯 한데 막상 주변에서 읽은 사람에게 '어때?'라고 물으면 '별로야'라는 대답을 들었다. 한 명은 '그냥 그래요' 라고 말해서 개인 취향이겠지 했었다. 그런데 어제 시린 발을 녹여가며 이불 위에서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스포일러로 명 재촉하는 나쁜사람마냥 실실 웃으면서 '그거 재미없어'라고 잘라 말했다. 그것도 몇번이나 옆에 와서 '재미 없다니까' 라고 해대서 그래도 마음먹고 일년 넘게 벼르다가 읽는건데 짜증이 조금 났다. 실은 절반 이상 읽을 때에도 오랜만에 접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감성에 살살 녹다가 혼자서 소설 속 풍경을 상상하기도 하며 읽었기에 '역시 책은 개인 취향이야'라며 오히려 흐믓했다.

 

 소설 내용 중에는 말도 안되는 것이 조금 끼어있기도 하지만 소설이니까, 하고 용서할 수 있는 정도였다. 석공 아빠와 엄마, 나 이렇게 살고 있다가 엄마가 돌연 죽었는데 아빠는 엄마의 임종도 지키지 않고 도망쳤다. 어릴때부터 아이들이 '아르헨티나 할머니'라고 부르는 요상하게 화장을 하고 옷을 입은 여자가 사는 집이 있다. 그 여자는 옛날에는 탱고를 가르치며 살았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하지 않고 집 밖에는 꼭 필요한 때 아니면 나오지 않는다. 그 여자에 대해서는 무수한 소문이 있다. 그런데 도망간 아빠가 그 여자네 집에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나중에 그 집에 찾아가보니 정말 아빠가 있었고,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실은 50대의 아줌마로 겉모습은 괴상한면이 있으나 마음이 따뜻한 여자다. 그리고 그녀의 집도 낡고 더럽고 냄새가 나지만 오분정도 있으면 금새 익숙해지고 포근함을 느낄 수 있다. (이 아이 적응이 무척 빠르다 싶을 정도로 집이 포근한건지 아이가 빠른건지.) 죽은 엄마 생각은 잘 안하고 아르헨티나 할머니가 자꾸봐도 예쁘다고 해복해하는 아빠, 고등학교 졸업 무렵에 배다른 동생이 태어났지만 덤덤하고 기쁘기까지 한 주인공. 게다가 아르헨티나 할머니는 그 후 6년만에 죽는다. 엄마가 죽을 때 주인공 혼자 엄마 곁을 지켰는데 그 때에 받은 충격 때문에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여러가지 사건들이 있음에도 별다른 갈등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낯설었다. 짧은 소설이라 급한 진행, 그리고 결말도 약간 벙쪘다. 이런점 때문에 다들 별로라고 했나 싶다. 그래도 이런 감성은 오랜만이고, 추운 날씨에 어울리는 것이라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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