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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 Free 러브 앤 프리 (New York Edition) - 개정판
다카하시 아유무 지음, 양윤옥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나이를 먹을 수록 소망하던 것을 잃는다는 것은 맞는 말 같다. 20살이 되고 나서는 19살일 때와 별다른것이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왜 그렇게 20대가 되면 특별하지는 않더라도 사소한 변화가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는지 모르겠더라. 21살이 되어서도 난 여전히 19살 그대로였다. 23살엔 정말 어른이 되는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24살이 되어서는 어른이 되길 포기하고 싶었다. 동화 속에만 있을거라 생각했던 피터팬이 바로 나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더 이상 19살이 아니란걸 알고 있고, 그게 참 아쉽다. 늙은이처럼 하루하루가 아쉽고 지나간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영원히 19살일것만 같아 어리둥절했던 그 시간 동안 내가 꿈꾸었던 무수한 목록들이 있었다면 점점 검정줄을 쭉쭉 그으며 잊어버리고 포기해버리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러다가 문득 그 무형의 목록의 단편이 기억나고 거기에 그어있는 무형의 검정줄이 보이면 별로다, 기분이.
더 안살아봐서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미지수이지만 예전보다 지금의 나는 참 겁쟁이가 되었다. 내 안에 수많은 열정이라는 불꽃이 이런 저런 핑계와 장애물과 두려움 때문에 꺼져가는 것이 뻔히 보이면서도 나는 또 다시 무섭고 지금 쥐고있는 것들이 아쉬워서 놓지 못하면서도 남은 무형의 목록들을 바라보며 안절부절 하고 있다.
누구나 꿈꾸는 여행자라는 이름.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TV에서 자주 보는 ‘여행생활자’라는 이름의 정성용 씨. TV에서 볼때마다 부럽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고 용기에 박수를 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사람의 여행자가 있다.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의 여행, 그리고 남극에서 북극까지 수십 개의 나라를 방랑자처럼 여행한 사람. 게다가 그는 여행 내내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였다. 이 정도면 부러움을 넘어서 무한 질투의 경지랄까. 책 속 사진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사야카라는 여인이 정말 부러웠다. 아프리카나 북극까지 뻗어있던 나의 여행로망은 점점 인도라거나 시베리아 횡단 쪽으로 소심하게 좁혀지고 있지만 (여자혼자 아프리카나 북극이라니 좀 무섭잖아) 인도나 시베리아 횡단 만큼은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이왕이면 2년간 지겹도록 같이 하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워본다. (불끈)
사야카가 다카하시 아유무(작가)의 LOVE였다면 다카하시 아유무 그 자체로 FREE라 할 수 있겠다. 무려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생계라거나 2년 후의 미래라거나 하는 것은 뒷전으로 하고 수십국을 여행한 것도 그렇지만 여행기록에서 보이는 그의 마음가짐이라던지 여행하는 스타일 같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일본인이다 보니 일본인스럽다고 느껴지는 점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는 나도 한번 쯤 따라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포스트잇으로 소심하게 표시해두기도 했다. 딱 이틀 배우고 퐁당퐁당을 겨우 연주한 후 집으로 줄행랑쳤던 그 ‘기타’를 다시 배워야겠다거나 여행중의 두려움을 붙임성으로 극복한다거나(건달이라고 보여지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등등->하지만 알고보니 착한 사람이었다...) 나의 라이프워크는 무엇일까 하고 고민해보고, 나도 오랜만에 종이학을 접어봐야지, 그럼 색종이부터 사야겠다...(이 때 색종이 살 생각에 벌써 들떠버린 나를 발견.) 또 친구와 함께 가기로 했던 몽골의 초원에서 나도 한번 별을 보며 똥을 눠 보자던가 (어릴 때 포도밭에서 놀다가 급히 응가를 누고 원두막에서 그야말로 어린이답게 쿨쿨 자다가 굴러떨어져서 그 똥이 묻었던 기억도 나더군... 이거...괜찮을까.) 다음 여행은 꼭 ‘현지인처럼 지내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아유무가 던져준 화두인 ‘만일 내가 이곳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았을까’도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 책은 예전에 노란색 표지로 나왔던 것을 '뉴욕 에디션'이라고 개정해서 나온 것이다. 이전 책을 서점에서 구경했을 때는 난해한 편집과 적은 여행기(글) 때문에 특이하다고만 여기고 그 후로는 관심 밖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읽게 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여행할 때 꼭 작은 수첩을 일기장으로 준비한다. 현지에 가서는 문구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첫 일기장은 집에서 준비해가고 두 번째 부터는 일부러 현지에서 구입해서 사용했다. 첫 해외여행이었던 일본 방문 때에는 거의 극기훈련 수준이어서 일기를 쓸 짬도 없고 그러다보니 집에 와서도 뭘 봤는지 기억이 안났었는데 두 번째 유럽 배낭여행 때 이렇게 일기를 쓴 것이 참 좋은 경험이었다. 하루 일정 중간중간에도 급하게 메모를 하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도 피곤해도 꼭 일기를 쓰고 잤다. 쓰는 동안 머리와 가슴에 남아있는 순간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고 부산하게 손을 움직였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 미처 정리하지 못한 그 때의 일기를 읽으면 이게 무슨 얘기를 써둔건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다음 여행에서도 나는 꼭 그렇게 일기를 쓸 것이다. 그 때에는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붙이려고 짬 나는대로 그림 연습도 하고 있다.
며칠 전 누군가의 블로그 여행기를 보면서 어쩌면 여행에 있어서는 일기도, 사진도, 티켓 따위도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중요한 것은 나의 기억. 너무 오래 되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 콧구멍이라거나 고막, 혀, 눈, 마음 같은 것이 기억하고 있는 냄새, 소리, 맛, 풍경, 색, 느낌 같은 것이 다른 유형(有形)의 것보다도 더 또렷하게 남아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새벽공기 같은 겨울 냄새를 맡으면 그것과 꼭 닮아있던 지난 여행을 떠올리고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그곳으로 다시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라고. 내년 봄이 지나면 꼭! 그 때까지 부디 무형의 꿈 목록을 잊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