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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무섭고 아련한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철도원, 프리즌 호텔 등으로 유명한 작가 아사다 지로의 최근 번역작품이다. 그의 책은 한 권도 읽어본적이 없었지만 도서관에 가면 꼭 일본문학 쪽으로 가서 한번쯤 만지작거리다가 나오곤 했다. 영화로 만들어진 <철도원>은 영화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그러기로 했는데, <프리즌 호텔> 만큼은 독자들의 평이 좋아 꼭 한번 읽어보고 싶었지만 여직 기회가 없었다.
일본 영화를 자유롭게 볼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은걸로 알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한 학급에 몇몇은 일본 가수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인터넷이 대중적이지 않았던 그 때에는 남대문 시장 같은 곳에서 일대일로 불법 파일을 받아보는 것 같았다. 애니매이션이나 코믹 같은 것이야 만화방이 생기기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읽곤 했지만 영화나 소설은 대중적이지 않았다. 처음으로 일본 영화를 본 것은 <러브레터>였다. 물론 그 전에도 일본영화를 본적이 있겠지만 정식 수입이 되지 못하거나 수입되기 전에 미리 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패션 디자인에 취미가 있던 친구는 일본의 매체를 자주 접하고, 원서 코너에서 잡지를 사서 읽거나 J-POP을 듣는 등 일본문화에도 빨리 익숙해졌다. 그 친구를 통해 <러브레터>가 정식 수입되기 전 비디오 녹화본으로 받아서 볼 수 있었다. 그닥 좋지 않은 화질의 비디오였지만 내 주변에선 대중적이지 않았던 일본 영화를 미리 볼 수 있다는 것에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일본 만화를 보면 꼭 등장하는 감초 연기자의 유머에 웃으면서 뿌옇게 처리된 특유의 화면과 배경에 등장한 하얀 눈에 반했었다.
영화 <철도원>의 장면을 보았을 때 <러브레터>가 생각났다. 잔잔한 이야기여서 그런지 비슷한 분위기라고 기억하는듯 하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나는 철도원의 원작자가 아사다 지로 라는 것을 기억해두었다. 그렇게 알게 된 그의 소설을 이제야 읽게 된 것이다.
7가지의 단편들을 모은 이 책을 받아들고는 등골이 오싹한 이야기를 기대했다. 일전에 읽은 일본 소설 가운데에는 잔잔하지만 정곡을 찔러 은근히 사람을 놀래키거나 공포에 질리게 하는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사다 지로의 스타일을 마스터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조금 갸우뚱 하기도 했다. 요즘은 하도 잔혹하고 무서운 이야기가 많아서 왠만해서는 꿈적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공포를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심심한 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사다 지로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어떻게 '오싹'함을 그만의 이야기 꾸러미로 만들었는지 짐작을 할 수 있으리라. 책을 읽으면서 어릴 때 작은 방에 온식구가 누워 잠을 청할 때 팔베개를 해주시며 옛날 이야기를 해주던 아빠가 생각났다. 그리고 때가 되면 큰댁에 모여 늦게까지 뛰어 놀다가 밤이 되면 전깃불 없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해 주시던 할머니도 생각났다. 이 책의 일곱 이야기들은 그런 것들이다. 하나같이 죽은 사람이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이지만 저마다의 사연이 있어 슬프고, 유령들 덕분에 무섭고, 옛날 이야기 같이 아련한 이야기들이다. 인물 한명, 한명 애정을 가지고 심정이나 사연을 애틋하게 그려낸 부분에서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작가의 시선 또한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