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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후르츠 캔디
이근미 지음 / 달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주인공 조안나는 지방 캠퍼스 대학을 나와 별 볼 일 없는 스펙에 몸매도 평범, 얼굴도 평범, 집안도 평범한 사회 초년생이다. 흔한 신데렐라 이야기가 늘 그렇듯 '달콤한 캔디'를 입에 물 평범한 주인공 되시겠다. 안나는 광고계의 초일류 대기업 '자이언트 기획사'에 못먹는 감 찔러나보자는 심정으로 원서를 내보는데 마침 그 회사에서 신입사원 채용시 '학벌을 보지 않고 뽑아보자'는 새로운 방침으로 모집을 해서 합격을 한다. 늘 일등을 놓치지 않고 야무진 친구 수희의 조언으로 짝퉁 명품을 둘둘 휘감고 출근 하는 안나. 그런데 회사의 전무(회장 아들)의 성이 조씨인데 이런 저런 농담섞인 얘기 끝에 전무의 사촌 동생이름도 조안나라는 걸 알게 된다. 일이 점점 요상하게 풀리기 시작해서 급기야 사내에 '조안나가 조전무의 그 사촌동생'이라는 소문이 퍼지고 안나는 팔자에 없는 공주 연기를 하게 된다. 때를 봐서 '나는 그 조안나가 아니'라고 털어놓으려 했지만 번번히 기회를 놓치면서 벌어지는 오해와 갈등. 그리고 잘 생기고 잘 난 '나빈우'라는 남자와 얽히면서 싹트는 애정라인.
이 소설을 '칙릿 류'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모든 정황이 칙릿스럽다. 예전의 로맨스 소설 여주인공 평범녀가 초반엔 자기주도형으로 밀고나가다가 왕자님과 사랑에 빠지고 결말에는 유순한 사랑의 여인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해피앤딩 하는 것과 달리 요즘 칙릿은 일과 사랑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거나 사랑보다 일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리 만족이라고 해야하나. 조안나가 회사 일을 하면서 겪는 사건들, 인간관계의 어려움, 진정한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과정, 사랑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끊임없이 자기를 비교하게 되는 것에는 공감을 할 수 있었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사회에 첫 발을 내 디딘 것이 자기 스펙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대기업이었고, 그 안에서 재벌 가족이라는 오해 때문에 공주로 둔갑해서 고초를 겪은 것, 백마 탄 왕자를 만나서 짝사랑을 하며 그를 포기하려다가 마지막엔 그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결말을 맺는 것은 조금 진부하지 않나 싶다. 본래 드라마를 보더라도 주인공이 병에 걸린다거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가슴앓이 하는 절절한 스토리 보다는 차라리 극악한 주인공이 나오거나 사랑을 하더라도 좀 더 현실적으로 지지고 볶는 내용을 선호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닥 이성적인 편은 아닌데도 소설이나 영화 등 허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을 대할 때는 '이상'보다는 '이성'을 택하게 되더란 말이다. 아니면 내가 너무 얌채가 되었던지.
당신은 어떤 오해를 받고 있습니까?
이근미 작가는 지인들에게 위의 질문을 해 보았다는데 '자신이 과대평가되고 있는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답변이었다고 한다. <어쩌면 후르츠 캔디> 라는 제목을 보고 '어쩌면'이라고 토를 달아놓은 것이 마냥 달콤한 사탕은 아니겠구나 싶긴 했지만 내가 상상했던 내용과 상당히 닮아있어서 더 실망했는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을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것에 놀라는 재미가 쏠쏠한데 말이다. 난 판타지물이나 읽어야되나봐.)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힘든 것들 중에 하나는 조안나가 겪은 것처럼 남들이 나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 때문이었다. 수 년도 아니고 겨우 얼마 알아가는 것 뿐인데도 서로간에 관계를 맺고 함께 일을 하거나, 연애를 하거나,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저 사람을 알아'라는 확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보면 지레짐작으로 '이런 사람이겠거니' 하는게 오해가 되어서 나는 나대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노력하다보면 다리가 찢어지는 줄도 모르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작가는 20대라면 누구나 겪는 것이라고 나를 위로해주었다. 하긴 이제 막 젖살이 완전히 빠지는 20대에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판에 남을 오해하지 않는게 더 이상한걸지도.
절반 이하의 공감과 나머지의 실망을 가지고 읽었던 책이다. 칙릿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