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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로드 - 길 없는 길 따라간 세계대학일주
박정범.권용태.김성탄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처음 해외여행이란걸 해본 것은 배를 타고 일본에 갔을 때이다. 푹푹 찌는 섬나라의 폭염에 내 몸무게보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하루는 기차에서, 하루는 숙소에서 머물기를 반복하면서 한푼이라도 아끼려고 끊임없이 걷고 도 걸었다. 집에 돌아오니 훈장처럼 양 발바닥에 커다란 물집이 잡혀있었지만 보호자 없이 떠난 여행이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여행 중엔 발이 아프다는 투정한번 없이 잘도 돌아다녔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 후유증을 겪듯이 나 또한 집에 돌아온 후에 여행지에 대한 향수를 더 깊이 느끼곤 한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볼걸, 하고 아쉬운 점도 한둘이 아니다. 엄청난 더위에도 음료수 한 병 사 먹기가 겁이나서 식수 시설을 믿고 병에 물을 받아 마셨고, 아이스크림도 딱 한번 그것도 엄청 고심해서 도라애몽 모양의 쭈쭈바를 사먹었을 뿐이다. 맵고 짠 음식을 즐기는 나에겐 입에 맞지 않는 일본 음식 때문에 맥도날드가 차라리 편했고, 돈이 없을때는 가져온 라면을 봉지에 끓여먹곤 했다. 그것도 하나의 추억이지만 그래도 다음에 일본에 갈 일이 있으면 먹고 토하는 일이 생겨도 현지 음식만을 먹으리라. 그리고 꼭 대학 탐방을 해보리라는 아쉬움을 늘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유럽여행을 갔을 때는 캠브리지를 들렀다. 차비와 약간의 기념품 사는 돈을 빼면 캠퍼스 구경은 돈도 안들고 참 좋다. (근데 캠브리지에 있는 대학들은 마음대로 못들어가게 하더라 ㅠㅠ) 막연하게나마 나처럼 외국 대학 구경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거라고 생각하며 살다가 <캠퍼스로드>를 읽는데 적잖이 놀랐다. 바로 '최초의 세계대학 일주' 라는 문구 때문이다. '대학일주'라는 주제로 여행을 했던 사람들이나, 나처럼 잠깐 구경하는 정도로 시도한 사람은 있어도 본격적으로 '세계대학일주'를 목표로 대안여행을 하고 그것을 책으로 펼친 것은 아마 처음인가보다. 관광이나 유학, 연수가 아닌 '대안여행'이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한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세 명의 청년은 유학열풍, 철학이 없는 관광만 쫓는 것보다는 의미있는 여행을 하고자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대학일주인데, 세계를 범위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관심가질만한 대학을 방문하여 현지의 학생들과 교류하고 한국을 알리자는 목표로 여행을 계획한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 경비 등은 본인들의 학교와 몇 군데의 기업에 협조를 얻었다고 한다. (여행계획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나름 명문대생들이라 기업 원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학교의 스펙도 작용한듯.)
그들이 방문한 대학은
중국 / 홍콩 / 베트남 / 태국 / 말레이시아 / 싱가포르 / 인도
오스트리아 / 그리스 / 터키 / 폴란드 / 체코 / 스페인 / 포르투갈
브라질 / 칠레 / 아르헨티나 / 남아공 / 짐바브웨
이렇게나 다양하다.
중국에서 한국 유학생은 몇배나 비싼 등록금을 내고 수업을 듣는데 그 돈이 모여서 학교 건물 하나를 새로 세웠다는 것, 베트남에는 자존심이 센 사람이 많다는 것,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교묘하게 그 자유를 막는 나라의 모순된 모습 등을 보고 한국과 다른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학교 탐방의 최대 장점은 현지학생과 만나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나도 현지인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었지만 간단한 실용회화 말고는 할 말이 없었고, 그나마 숙소에서 만난 사람이나 숙소 주인, 가게 주인, 현지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과의 대화 말고는 특별히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기 힘들어서 많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생 끼리는 각자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장단점과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솔직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을것이기에 그런 그들의 여행이 몹시 부러웠다. 일반적인 여행서는 에세이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뜬구름 잡는듯 이상적인 여행기가 될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이렇게 현지인과 만나서 비교적 구체적이고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는 것 까지 질문하고 대답하는 경험을 적었기에 더욱 현실감이 있다. '개인의 일기' '개인만의 여행'을 주제로 한 여행서가 유행인 요즘, 어찌보면 <여행=사치> <여행자=이상주의자>라는 공식을 깨버리는 책이 아닌가 한다.
세 청년은 같은 대륙 안에서 이동할 때에는 자동차를 렌트(리스)해서 다니고 숙박은 캠핑장을 이용하기도 했는데 이것도 좋은 팁이 될듯 하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두루 거치는 여행이기에 각 대륙마다의 문화적 특징이나 각 나라의 시민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 한국학생이 한국을 알리겠다고 시작한 여행과 이벤트를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도 흥미롭다.
이미 졸업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버거운 미션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기자기한 여행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밋밋한 여행기가 될것 같다. 순수한 마음으로 대학을 탐방해서 한국을 알린다는 목적을 가지고 현지의 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대학생만의 특권일지도^^ 학생이라면 한번쯤 도전해볼만 한 여행 주제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여행을 해볼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지금은 몇 남지 않았지만 펜팔 친구들을 만나러 떠나보면 어떨까. 펜팔을 처음 시작한 중학생 때 부터 꿈꿔오던 여행이 아니던가. 여태까지는 내가 나만의 눈과 귀로 보고 들어 느끼는 일방적인 여행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좀 더 서로를 이해하는 소통의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