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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080114-080117
엄마의 존재는 꽤 '여성적인 것'들이다. 어릴적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집을 비우곤 했지만 엄마는 늘 엄마라는 존재가 해야 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려고 노력했다. '돈버는 엄마'나 '돈버는 아빠'라면 빗겨갈 수 있는 일일지라도 내 엄마는 꼭 엄마의 의무를 다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늘 엄마 냄새가 났다. 빨래를 하고 난 후의 피존냄새, 밥솥에서 나는 수증기 냄새, 걸레와 속옷을 삶아낸 가스 냄새, 계란말이 하는 냄새 등등. (그밖에 도마에 칼질하는 소리라거나 찌개가 끓는 따위의 청각적인 것도.) 그래서 얼마간 바쁜 일과 때문에 저녁늦게까지 엄마가 집을 비우면 아파트 복도를 걸을 때 다른집에서 나는 요리냄새와 아이들 소리가 부럽고, 빈 집에 들어오기 싫은 때가 있었다. 요즘도 가끔 엄마가 외출을 하면 나머지 세 식구는 굉장히 무기력한 상태가 되어버린다. 사소한 말장난을 할 때 아빠는 '여기는 내 집이니깐'이라는 말을 곧잘 하는데 그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집문서의 주인이야 누구든 그 집은 이미 엄마의 집이다, 라고 인정하게 되는 순간이다. (심지어 아빠조차도 말이다!)
적어도 내 시야 안에서는 '엄마란 이런 것, 엄마의 삶이란 이렇게 여자다운 것'이라 정의 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도를 넘어선 페미니즘이 종종 등장하는 요즘, 그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 '여자의 세계'에 사는 나는 못되게도 엄마만은 그 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엄마란 존재는 늘 내 곁에 혹은 집 안에 있었던 것이라, 한시라도 곁에서 떨어지면 불안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바꿔 생각해보면 주로 '바깥사람'인 아버지들의 소외를 다룬 아버지 신드롬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집'이라는 도발적(?)이고 약간 당혹스럽기도 한 제목을 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엄마의 집이라니, 인정할 수 없다. 엄마의 집이 곧 나의 집이고 우리집이라면 모를까. 엄마는 늘 나와 함께이고 단독일 수 없다. (이렇게 적고나니 뭔가 병적이다.) 어쨌거나 그런 일부 두려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은 생각한것 처럼 도발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한편으로는 기대한 만큼 엄마를 독립적으로 두지 않아 실망했다. (엄마를 '우리집'에 꽁꽁 묶어두고 싶지만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집'이라고 해서 그 소재에 상당한 관심 레이더를 곤두 세우고 읽었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겨도, 엄마의 화장이 짙어져도, 엄마가 내가 아닌 애인 때문에 행복해하고 슬퍼해도, 엄마에게 나를 뺀 인생이 있음을 인정하더라도 그리 화가 나지 않는것을 보면 엄마는 어디에 두어도 엄마랄까. 아니면 이게 진짜 내 이야기가 아닌 '이건 소설 속 이야기야'라며 읽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가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에 넋을 놓고 한참 생각해보기도 했다.
엄마와 아저씨는 정말 사랑을 하는 것일까? 182
나 같은 인간이 사랑을 할 수 있을까? -182
"누군가의 언니란 어떤 존재일까?" -192
이런 질문 부터 여기에는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이 엄청 많다. 하루아침에 답을 할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얼른 정신 차리고 다시 책을 읽었지만 한번 쯤 던져봐도 될 질문들이 꽤 있다.
전경린이라는 이름, 엄마의 집이라는 제목. 이 두가지에 기대를 걸었던 책이었다. 직전에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을 읽어서 그런지 소설 초반에 자꾸 그 책이 겹쳐 떨어지지 않아서 혼났다. 뭔가 허무하기도 하고, 2% 부족한 것 같다. 왠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함께 읽어야 할 것 같은 소설이다. 그럼 2%가 채워지려나?
'엄마의 집' 속의 집은 불완전한 엄마의 집이다. 라는 것이 나의 실망 중 하나인데 어쩌면 그 불완전한 면이 진짜 완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뭐가 뭔지 모를 결론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