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 제10회 소설 스바루 신인상 수상작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5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일본 소설을 읽다가 보면 아시아권이라서 그런지 서쪽 소설을 읽을때보다 동질감이 많이 느껴진다. 다른 부분도 있겠지만 일본의 옛날과 현재는 우리와 많이 닮아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생각보다 더 많은 농촌 남자들이 외국인 여자와 결혼한다고 한다. 30년 정도 흐르면 혼혈인 아이들이 자라서 그들만의 크고 작은 조직을 형성할 것이고, 매번 '단일민족'을 강조하던 기존의 한국인의 가치관과 부딪힐지도 모른다고도 했다. 한국 여성이 외국 남성과 결혼하는 사례도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우리도 이제 실질적인 민족 포용정책이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일본도 시골 총각들은 외국인 여성과 결혼을 하곤 하나보다. 소설 안에서 보이는 깡촌 풍경은 우리와 다르지 않은것 같다.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
 "'시골'하면 무엇이 떠오르세요? 룰루랄라~ 그런 신나는 것들이 생각나지 않으세요? 시골이 즐거운 것은 아마도 아이들에게만 그런걸까요?"
해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려든다. 너, 나 할것 없이 우리들은 도시 생활에 물들어 있다. 어느날 애인이 "나와 같이 농촌에서 논 밭을 갈며 살지 않겠니?"라고 묻는다면 과연 얼씨구나 지화자를 외칠수 있을까. 

 [오기와라 히로시]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오기와라 히로시, 오기와라 히로시...라고 계속 말을 해보아도 자꾸 잊혀졌다. 프로필을 보고 알았다. 그가 [내일의 기억]의 작가라는 것을. '내일의 기억'은 엄마와 작은 홀에서 상영하는 영화의 제목이다. 젊은 남자는 나름 잘나가는 회사원에, 예쁜 부인이 있는 가장이다. 그에게 찾아온 알츠하이머. 흔한 소재라면 그렇게 되겠지만 늘 보던 억지 눈물을 자아내는 기억상실 환자의 이야기가 아닌, 조금은 현실에 다가간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여서 엄마와 나는 감동했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으로는 [벽장 속의 치요]가 있는데 이로써 오기와라 히로시는 더 이상 낯설은 이름이 아니었다.

 '우시아나'라는 나이트 클럽 같은 이름을 가진 시골 마을 청년회는 마을을 부흥하기로 마음먹고 모여서 의논한다. 마을 최고의 인텔리인 신이치는 도쿄에서 대학 생활 하면서 알게 된 친구가 광고 회사에 다니고 있으니 그에게 부탁을 해보겠다고 하며 도쿄로 출발한다. 신이치의 친구는 겉으로는 일을 잘 처리해줄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신이치는 그것이 입에 발린 소리라는 것을 조금 후에야 알았다.

신이치는 거의 잊을 뻔했던 도쿄 말의 활용법을 기억해냈다.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는 우시아나의 ‘어떻게든 내가 할게’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 사람 좋은 사람이야’는 그는 아무래도 좋은 사람, 혹은 사정에 따라 부려먹을 수 있는 사람이고, ‘조만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날을 말하는 것이다. 말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것은 꼭 똥오줌을 싼 채로 그냥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 여기는 우시아나가 아니다. 도쿄다. 82쪽

 여차저차해서 부도 직전의 광고회사와 계약에 성공하여 '마을 맹글기'를 하는데 그게 엉뚱하게도 '우시아나 괴물 출현'이라는 제목의 것이다. 마을 부흥을 하고자 하는 우시아나 사람들과 순전히 '업무상'으로 우시아나에 오게 된 도시의 광고회사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취재진들.

 괴물 소동으로 마을이 북적거리고 난 후 괴물이 가짜라고 판명나자 취재진들은 모두 발길을 돌린다. 한때라도 북적거림을 경험한 우시아나 사람들의 욕심이 점점 부풀었다. 괴물 소동을 다시 한번 써먹자는 마을 사람들의 요구를 따르다가 그 소동 자체가 가짜였다는 것이 들통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허황된 방법인 괴물 따위는 던져버리고 마을에서 나는 특산품을 이용한 사업을 벌이기 시작한다.

매스컴이 사라지는 순간 관광객들도 함께 사라졌다. 263쪽

뭐, 더 이상 누구한테 어떤 말을 들어도 무섭지 않아유. 나도 다른 사람들도 지나치게 욕심을 냈어유. 바깥사람들은 우리들보다 훨씬 좋은 세상을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허구. 즐겁게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허구. 그런데 별루 그런 것 같지도 않았고. 어쨌든 세상에다가 이쪽을 좀 봐달라고 한 건디, 막상 그들이 우리를 봐주니께, 하, 그레 참, 성가시데...... 284쪽

 하지만 도시의 사람들은 여전히 시골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않았다. 도쿄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료코는 우시아나로 시집을 가는데 그녀가 쓰는 우시아나 생활 칼럼은 도시에서 인기 상승이다. 
가끔 TV에서 귀농에 성공한 사람들이 나오는데, 그들의 이면을 보면 화려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앨리트가 대부분이다. 그들 중 '어쩔수 없이 귀농하게 된' 사람은 거의 없다. 귀농을 해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의 귀농 생활을 도시 사람들이 부러워하게끔 각색해 놓은 프로그램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입이 씁쓸해진다. 그들이 추운 겨울에 오들오들 떨면서 지내야 한다거나, 채소는 유기농으로만 먹는다거나, 화장실 시설도 없이 지낸다는 것을 자랑처럼 말할 때는 속이 뒤집어지는 것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귀농 생활을 동경하고 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농부가 아닌 '시골의 귀족'들이었으니까. 부자가 하루정도 가난한 사람의 생활을 체험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생활이었다. 사람이란 동물은 정말로 요상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도시에 살면 전원을 그리고 시골에 살면 도시를 그린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심보인지, 뭔지 나는 아직 모르겠다.

“우리 엄마는 자주 말했어요. 뒷마당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은 어딜 가봤자 발견되지 않는다고.” 120쪽

 도쿄로 돌아온 광고회사의 세 사람은 우시아나에서 먹은 새고기가 '도도새'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도새는 지난번 미술관에 갔을 때 몇백년 전 그림 안에 있던 새여서 기억이 생생하다. 유럽의 귀족과 부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도도새는 그들에게 무자비하게 포획되어 그들의 안마당에 사육되었고, 엄청난 속도로 멸종되었다고 한다. 나는 늘 어릴적에 읽었던 '파랑새' 동화를 찾고 있다. 어쩌면 나의 파랑새는 도쿄의 그들이 우시아나에서 지천으로 먹을 수 있었던 곰배새처럼 내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지도 모른다. 나 혼자만 그걸 모르고 눈먼 장님처럼 파랑새를 찾아 더듬거리는 것인지도.

 이 책을 읽기 전 '여기엔 분명 도시엔 없는 시골의 냄새가 날거야'라고 잔뜩 기대를 했었지만 실제로는 기대했던 것 만큼은 구수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도시 사람으로 자란 나에게 시골이란 '배워서 얻은 가치관'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영화 [내일의 기억]에서 오기와라 히로시는 알츠하이머를 앓는 주인공의 모습보다 그 병을 감지하고, 부정하고, 받아들이기 까지의 과정에 집중했다. 주인공과 아내 사에에도 부부만이 가질수 있는 애틋함과 동시에 부부이기 전에 남남으로서 가족내에 환자가 있을 때 생길수 있는 분열의 조짐까지 그려냈다. 무작정 찾아온 불청객처럼 소리 없이, 불행은 우리에게 찾아온다. 나는 늘 예쁜 색을 입힌 불행만을 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껍질을 벗은 무자비한 불행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발가벗은 불행에 대해서 느낄수 없을정도로 조금씩 초연해질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이번에도 뿌연색을 입힌 유리를 씌웠다가 벗겨낸 시골과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오기와라 히로시는 그런 작가이다.

 우리 모두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을 품고 있다. 그것은 어딘가에 버려놓은 각자의 몬기치 인형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아직 버리지 않은 그것.


몬기치. 맞아, 소녀 시절 허세도 질투도 화장도 필요 없덨던 그 무렵 이쁘지 않다고 늘 뒤로 돌려 앉혀놓았던 인형이 몬기치였다.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아직 버리지 않았다. 266쪽


 세상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지만, 우선 메리 크리스마스다. 존 레논이 말한 대로다.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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