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
오츠이치 지음, 김수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와, 이걸 정말 17살 때 썼다는 건가!
어제 새벽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를 엎드려 읽는 내내 등 뒤에서 서늘함을 느끼고 몇번이고 발끝을 돌아보고 또 돌아봤다. 이야기를 다 읽은 후에는 새벽의 어둡고 고요함 속의 공포를 견딜수 없어서 이불로 발끝을 덮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안심이 되었다. 잠을 자려고 형광등의 스위치를 누른 후에도 한참을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작은 불빛이라도 보여야 마음이 놓일 정도였다. 30분 정도 휴대폰으로 '부루마블'을 한 후에야 잠이 들었다^^

 

 에이리언 영화 시리즈가 한창 여름밤을 장악했을 때 마침 집에는 동생과 나 단둘 뿐이었다. 아직 어린 두 아이는 부모님이 자리를 비운 그날 밤 시끌벅적 분위기를 잡아가며 먹고 싶은 간식도 챙겨두고 밤새도록 공포영화를 볼 생각에 들떠있었는데 에이리언 입 속에서 또 다른 아기 괴물이 튀어나올 때 나도 모르게 꺄악 비명을 질렀던 기억이 난다. 어린 동생도 아무렇지 않게 보던 영화인데 말이다. 훨씬 더 어렸을 때는 공포의 '빨간 마스크' 이야기가 유행이었는데 친구들끼리 집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하다가 벌벌 떨면서 할머니께 전화를 했고 펑펑 울면서 무섭다는 나를 위해 할머니가 집까지 오신적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무서운 것을 못 견디는 건 여전하다. (징그럽고 잔인한건 괜찮은데 '왁!'하고 튀어나오는 공포는 정말 무섭다ㅠㅠ)

 

 여름엔 공포물을 읽는 것이 낙일터인데 나는 공포영화도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미리 읽어본 사람들이 엄청 재미있다고 해서 가을이 시작되려는 어제 겨우 읽은 것이다. 이제는 가만히 있으면 찬바람이 솔솔 부는 계절인데 거기에 얼음을 들이부은 격으로 책을 읽었다.

 

 오츠이치의 소설은 얼마전 출간된 'ZOO'를 통해 알게 되었다. 간결하지만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팍! 치는 듯한 깔끔한 공포. 굳이 상상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글자들이 영상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신선한 공포'로 기억되는 그의 다음 번역작은 바로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였다. 사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렇게 오싹할줄 몰랐다. 대강의 스토리 라인을 알고 있었지만 전혀 색다른 이야기는 아닌듯 했다. 하지만 읽는 내내 재밌고 무서워서 혼났다.

 

 어린 아이들은 순수하다고 생각해야 마땅하지만 가끔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그 애들만이 가질수 있는 잔인함에 놀랄때가 있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의 것들이지만 '순수한 잔인함' 또한 존재한달까. 그런것을 발견할때에는 소름이 끼친다. 그래서 안되는 줄은 알지만 '아이들의 영악함이 때로는 어른의 것보다 잔혹하다'고 생각한다. 그럴때마다 인간이란 어쩔수 없는 잔인한 존재일까 싶기도 하다.

 

 이 책에도 아동의 잔인성이 등장한다. 악마의 자식 처럼 잔혹성을 선천적으로 타고난 듯한 소년과 소녀. 보통의 아이와 비슷한 질투심을 가졌을 야요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친오빠를 친구 사쓰키도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고 사쓰키를 나무 위에서 밀어버린다. 사쓰키는 나무에서 떨어져 관절이 뒤틀린채로 죽는다. 찰나의 질투심에 친구를 죽게 한 야요이는 무서움에 떨지만 오빠인 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재미있는 놀이를 하듯 시체를 처리한다. 켄이 본래 못된 아이, 문제아였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전혀 의심할 수 없는 순결한 아이에게서 잔인함을 발견하고 흠칫 놀라는 것이다. 죽은 사쓰키는 귀신이 되어 자신의 시체가 치워지는 과정을 담담하게 관찰하고 독자에게 이야기한다. 소설의 안에 순식간에 죽어버린 아이의 비명도, 분노도 없기에 더욱 놀랍다.

 

 뒤에 실린 단편 [유코]도 일본 특유의 공포(링 같은 공포?)를 요소요소 넣어두고 섬뜩한 반전도 함께 있어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츠이치의 ZOO를 읽었을 때 신선하다는 첫인상을 가졌기에 어쩌면 이번 작품은 조금 실망스럽지 않을까 했었다. 더욱이 이 책은 작가가 17살 때 쓴 소설이라고 해서 잘 써봐야 얼마나 썼겠냐고 생각했던게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ZOO 만큼 재미있다. ZOO보다 더 재미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오츠이치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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