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가의 석양 - Always
야마모토 코우시 지음, 한성례 옮김 / 대산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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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랏빛, 그리고 자줏빛의 표지를 들여다볼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다. 제목 속의 '석양' 두글자만으로도 설레이는 책이었다. 다양한 소재를 보여주는 소설, 그중에서도 지극히 미래지향적(?)이라 생각했던 일본소설 중 요근래 '향수(노스텔지어)'를 소재로 한 소설이 속속 번역되어 나온다. 릴리 프랭키의 [도쿄타워], 쇼지 유키야의 [도쿄 밴드 왜건]을 이은 [Always 3번가의 석양]은 50년대 일본의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최근 숨이 차도록 바쁘고 마음도 불안정해서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혼이 빠진 사람처럼 있다가 일요일이라 책을 한 권 읽기로 하고 새벽 길을 나설 때 차 안에서 읽으마하고 가방에 한 권을 넣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집에 오는 길은 정오를 갓 넘긴 시각이라 아직 햇살이 뜨겁고 밝았지만 오랜만의 드라이브라서 그런지 멀리 보이는 하늘에 석양이 드리워진 것같다고 멋대로 상상했다. 그러다가 피곤한 나머지 뒷좌석에서 잠이들었고 차 안에서 읽으려고 가져간 책은 그냥 가져오고 말았다. 이른 저녁을 먹고 부랴부랴 책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덮었을 때는 이미 석양이 진 후였다. 며칠동안 계속 흐린날씨가 계속되었고 고속도로에서 부터 상상하며 기다렸던 석양을 보지못해서 아쉬웠지만 책 속에서 아스레한 석양을 12번이나 감상했으니 미련이 없다.



 이 책은 1958년 전후 일본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4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한달에 한가지씩의 따뜻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이는 부자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산을 기워서 쓰고 한겨울 난로없이 지낼정도로 가난했던 시절. 하지만 그들 모두는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다독여가며 살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개발되지 않은 주택가에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오래된 주택에는 주인과 세를 든 사람들이 섞여 살았고, 겨우 빌라 한 두채가 새로 지어지거나 작은 주택이 새로 지어질 뿐인 동네였다. 작은 동네에서는 이웃끼리 말그대로 숫가락 숫자까지 알 정도로 친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아직 남아있던 시절. 낮동안 조용했던 동네는 석양이 질 무렵부터 골목마다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다다다다- 하며 작은 발을 타닥거리며 달리는 아이들 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놀이터가 없었기에 공사장이 놀이터였고 내 무릎엔 언제나 시뻘건 피가 흘렀지만 흙이 잔뜩 묻은 상처 따위는 아랑곳 없이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정력있게(?) 뛰어놀았다. 해가지고 잠잘시간이 되면 주인집 아주머니가 나와 동생을 돌봐주셨다. 부모님이 장사를 마치고 돌아올때 까지였지만 우리는 참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와 엄마가 있는 가게로 손을 꼭 잡고 달렸다. 아주머니의 부름을 뒤로하고 달리는 동안 어두운 골목길이 무서웠지만 '꺄악~꺄악~' 일부러 소리를 지르면서 발소리를 크게 하고 둘이 달리면 무서움이 줄었다. 숨이 차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막 정리를 끝낸 엄마가 반겨주곤 했다.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리던 골목에서는 석양이 지면 꼭 아빠가 멀리서부터 보였다. 타고온 씽씽카는 내버리고 아빠에게 달려가면 목마를 태우고 집까지 함께 돌아갔다. 당시 아이들은 고작 피아노학원 다니는 정도였기에 학교가 끝나면 학교 앞에서 불량 쫀드기를 연탄불에 구워먹으며, 흙먼지가 뒹구는 바닥에 기어다니는 지네를 발로 꾹꾹 눌러보곤 했고, 오줌싸개였던 나는 집에 오다가 뉘집 담장 아래에서 노상방뇨를 하곤 했다. 아파트로 이사오고 난 후 골목도 없고, 페인트 냄새나는 놀이터 뿐이어서 재미가 없었다. 새로 사귄 친구에게 예전에 내가 살던 동네에 가자고 해서 다시 찾아가보니 고향에 간 기분이었다. 난생 처음 먹어본다는 친구에게 불량식품 전도(?)도 했다. 노상방뇨를 했던 담장 위에는 여전히 개나리가 피어 있었다. 그로부터 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그곳은 여전히 그대로 있다. 요즘 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해서 그 전에 다시 찾아가 추억의 장소를 사진으로나마 남겨두기로 했는데 좀처럼 다시 가기가 어렵다. 그동안 얼마나 변했는지, 어릴적 있었던 미용실과 쌀집, 약국이 아직도 있는지, 씽씽카를 멋지게 몰고 내려오던 언덕은 아직 그대로인지 보고싶다.



 이 책에는 내 어린시절의 추억들이 하나씩 담겨있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낯설 옛날이야기가 내게는 추억이 되어 아련하게 느껴지니 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고리타분하다고 잊혀지던 추억의 이야기들이 속속 다시 선보이는 것을 보니 나처럼 어린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나보다. 누구나 사람과 사람이 내는 따뜻한 냄새와 힘을 경험한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정'이라고 이야기 한다. 날이 갈수록 삭막해진다는 요즘 소설에서나마 남은 정을 느낄수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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