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달리기
니꼴라 레 지음, 이선영 옮김 / 지향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영화는 늘 주인공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게 만든다. 주인공이 하는 말과 행동, 그밖에 겨우 적절한 배경음악정도... 영화 속 내레이션에 귀를 기울여본적이 있는가. 다큐멘터리의 성우가 낮게 뱉어내는 건조한 내레이션과는 분명 다른 그것. [서른 살의 달리기]는 어느 인디영화의 내레이션 같은 소설이다. 프랑스 소설은 늘 그랬다. 활자로 읽는 영화랄까. 그래서 읽고 나면 아무리 유머러스한 소설일지라도 가슴 한 구석에 한 같은것을 꾹꾹 눌러담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내가 유럽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분위기가 한국 소설과 닮았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일본소설이 가지는 지나친 밝음과 상반되는 어두움을 두 곳의 소설은 지니고 있다고 느꼈다. 유럽 소설의 어두움에 반해 한동안 유럽 소설만 읽은 때도 있었는데 그에 비해 한국 소설은 어둡다는 이유로 기피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소설 속 어두움은 젖은 건물벽에서 나는 곰팡내와 닮았다. 새 집에서 내뿜는 콘크리트 냄새를 좋아하던 나에게는 '물 말아 먹는 밥' 처럼 기막히게 영혼을 적시는 양식이 아니겠는가.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30대 여성의 파란만장한 모습을 다룬 것이라면 이 책은 30대 남성들의 이야기이다. 고난한 삶에 절어서 거지꼴로 애창곡을 열창하던 브리짓 존스가 주었던 코믹함에 비해 여기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노총각의 발냄새 만큼 보기 딱하다. 단순 바람이 난 남자부터 자기 딸 또래와 사랑에 빠진 남자, 먼저 바람이 나서 가출해놓고 부인에게 남자가 생기자 돌아버린 남자, 11살의 소녀를 응큼한 눈으로 보는 베이비 시터 등등.. 브리짓 존스는 노처녀 딱지를 떼느라 바빴는데 여기 이 남자들은 욕구 충족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날씬해지고 싶은 여자들에게 의사가 되어주는 '단식원' 처럼 이들에게는 '신개념 정신병동'이 의사가 되어준다. 여기서 만난 다섯 남자들은 연애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금지, 휴대폰 받는 것도 금지, 연애 편지나 애정 소설 읽는 것도 금지다. 병원을 나온 프랑크의 아들(바람나서 낳은 아들)이 30대가 되어 다시 부인 외에 애인을 둔도 흥미롭다. 

 

 서른 살의 남자와 서른 살의 여자는 다른걸까? 서른 살의 어떤 여자는 살쪄서 매력을 잃었고, 서른 살의 어떤 남자는 바람을 피느라 여념이 없다. 서른 살이 되지도, 30대의 남자와 친하지도 않아서 잘 모르겠다. 20대 후반부터 결혼을 하기 시작해서 곧 부부에게는 위기가 닥친다고 한다. 모 포털 사이트에 가보면 메인 화면에 '불륜' 혹은 '이루어질수 없는 사랑'으로 고민하는 글이 걸려있다. 이미 다 자란 성인도 피해갈 수 없는 불치병이야말로 '애정결핍증'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본다.

 

 내가 읽은 이 책의 주제는 이것이다.
 [30대 남자는 외로워서 미친다.]

 

 독특한 문체의 소설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다. 분위기는 프랑스 소설들이 주었던 것과 다름 없었지만 작가가 가지는 문체를 적절히 번역하는데 무리가 있던 것인지 매끄럽게 읽히지 않아서 아쉽다. 그리고 '칙릿 소설' 의 변이종을 보는 듯한 가벼움에 실망했다. 프랑스산 포장지로 잘 싸여진 [부부클리닉]을 보는듯도 했다. 남자나 여자나 영원히 젊고자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것 같다.

 

 

 

 

이혼의 상처를 치료받고 있는 사람들이 멀리 공원으로부터 산책을 끝내고 돌아오고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실은 그들을 경멸하고 있다. 솔짓히 말해, 이혼한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겠는가? 사랑했던 여자에 대항해 법적인 절차를 밟을 수 있는 남자에게 말이다. 우리는 홀아비도 경멸한다. 솔직히, 자기 아내보다도 더 오래 살다니. - 163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시겠어요?"
"생강 과자를 먹곤 했어요. 어렸을 때, 모두가 그러듯이."
"모든 아이들이, 어렸을 때, 다 생강 과자를 먹지는 않습니다. 프랑크."
"어렸을 때, 지겨웠어요, 의사 선생님. 모든 아이들처럼."
"모든 아이들이 지겨워하지는 않아요, 프랑크." -  167

 

"전에는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어떻게 살겠다고 분명하게 계획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끝났어요. 지금은 일이 제대로 안 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운 생각뿐이에요."
"나도 조금은 두렵다."
"......"
"하지만 그리 큰일은 아니란다." -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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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3 09: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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