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고 계세요?
고전주의와 바로크 라루스 서양미술사 7
피에르 카반느 지음, 정숙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비엔나 박물관 미술전시회를 보러 덕수궁 미술관에 처음 가보았다. 서울에 살고 있고, 종로 부근을 내 집처럼 드나들면서도 매번 가는 곳만 가게 되어서 못가본 곳이 더 많다. 덕수궁 바로 옆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은 여러번 방문했지만 덕수궁은 돌담길만 조용히 지나다가 왔을 뿐이었고 '궁'이라는 단어에 반사적으로 인상을 쓰게 되는 것이 아직 어리구나 싶기도 하다. 10대에 다녀온 경복궁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는데 20살이 되어 다시 찾은 그곳은 나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일탈을 꿈꾸던 10대 소녀에게는 너무 조용하고 재미없는 곳이었는데 복잡한 삶을 시작하고나니 새삼 휴식처가 필요했던 것이리라.

 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몇몇 유명 화가와 작품에 동경만 했을 뿐, 관심을 넘어서지는 못했었다. 미술 혹은 예술이란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다가가기 힘든, 다가가서는 안되는 성지이기도 했다. 물 밖에 내민 지느러미만 보고 고래라고 하는 격으로 무식하고 용감했던 나의 미술 관람법은 유럽여행에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당시만해도 지금처럼 유명한 그림들이 몰려와서 국내 전시를 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그림이란 항상 구경하는 사람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 복사된 종이 위에 눌려진 그림만 보다가 (복원된 작품일지라도-)화가의 붓터치까지 볼수 있는 '진품'을 구경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난생처음 미술관 순례를 하게 된 것도 즐거운 일이었지만 물감으로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신기한 체험이었다. 유럽의 미술관에는 자갈밭에 자갈 굴러다니듯 엄청난 작품이 들어있다. 작품마다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아파트 3층 높이는 될 정도로 천장이 높고 그 벽을 다 채울 정도로 큰 작품도 있었다. 특히 나폴레옹이 말을 타고 멋지게 관객들을 내려다보는 작품은 저절로 내가 작아짐을 느꼈다. 작품을 실제로 보면서 실망도 많이 했다. 유명한 그림인데도 내가 볼 때는 인쇄되어진 것보다 감동이 덜한 것들도 많았다. 이런 것들은 그야말로 '전문가'에 의해 결정된 '명작'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게 아닌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 감동을 잊지 못해서 여기저기 열리는 미술전시회를 쫓아다녔다. 하지만 그 규모나 내용에서 현지의 미술관과 비교할 수 없었기에 '구경'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렇게 몇해를 지나니 그림 구경에 대한 나의 흥미도 차츰 줄어갔다.

 요즘은 문화계에서 '수입'이 유행인 것 같다. 나는 뮤지컬 보는 것도 좋아하는데 공연이나 전시는 모두 신토불이가 아닌 수입딱지가 붙은 것들이 많다. 그만큼 관람객의 수준도 높아지고 기대도 올라가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전, 모네, 오르세 미술관전 등이 한국에서도 열렸다. 피카소 전시회를 할 때만해도 열성적으로 전시를 찾아다녔는데 요즘 하는 여러 전시는 본듯 만듯 광고만 보고 지나쳤다. 지난번엔 루브르인가 오르세 전시회를 갔더니 내가 프랑스에서 보고 반했던 작품들은 하나도 오지 않았고 유명한 그림들도 몇 점밖에 꼽을 수 없어서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기대는 큰데 실망은 더 크고, 실망에 비례해서 입장료는 비싸다고 느낄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발길도 끊긴다. 물론 유명한 작품을 봐야겠다는 '의무감'으로 갈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댓가가 너무 크다.

 그러던 중 비엔나 박물관 미술전시를 한다는 광고를 보았다. 오르세나 모네 전시회는 지나쳤지만 이것만은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는 이미 가보았지만 '비엔나'는 언제 가볼지 모르는 일이기에 한국에서 전시를 할 때 봐두어야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친구를 꼬셔서 오랜만에 비싼 입장료를 치르고 미술관에 갔다. (교사 할인 처럼 백수 할인도 만들어야 한다고 농담도 하면서 ㅋ) 처음 발을 들인 덕수궁은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미술관의 벽 색깔도 진한 분홍이라 마음에 들었다. 미술 작품들은 65점 정도로 많지 않은 수이다. 게다가 대부분 '성경'이나 '신화'에서 모티브를 딴 그림들이 많고 그 외에도 인물화가 대부분이라 쉽게 질렸다. 먼저 다녀온 사람의 말로는 전시관을 3번 도는데 1시간도 안걸릴거라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건진거라고는 '비엔나 사람들은 생긴게 정말 독특하다'는 것 뿐이었다. (서양 사람들이 다 똑같아 보이지만 미술 작품을 들여다보면 각 나라별 차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인물들의 생김새가 하나같이 정갈하고 귀족적이며 피부는 백옥같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정이 안가게 생겼다는 것이 친구와 나의 감상평이었다.(푸핫) 그림보다 덕수궁에 반했다며 아쉬워하고 있을쯤 그림 설명하는 시간이 시작되었다. 일정 시간이 되면 도슨트가 사람들에게 그림을 몇점 설명해 주는데 늘 후회하지 않을 시간이었기 때문에 우리도 사람들에 끼여가며 열심히 설명을 들었다. 그렇게 미술관을 한바퀴 돌고 설명이 끝난 후 우유를 한잔씩 마시고 쉬었다가 다시 한번 그림을 감상했다. 처음에 혼자 해석하며 보았을 때에는 재미없던 그림이 감동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렘브란트의 '티투스'는 정말 좋았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이 그림에 대해서도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유명 화가가 그린 그림'쯤으로 남았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기억에도 안남았을지도.. [바로크] 미술을 보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었다. 바로크 시대로 이야기 되는 작품들은 고전주의의 자로 잰듯한 경직성을 버리고 "연극적"인 과장법을 사용한다. 그래서 빛을 과감하게 사용해서 화가가 의도하는 한 부분을 극적으로 강조하고, 그림 안의 인물들도 하나같이 연극배우 같은 몸짓을 하고 있다. 또한 '회화적인 그림'에 대해서도 배웠는데 이것은 그림을 가까이서 바라볼 때는 붓이 지나간 자리가 매우 거칠게 물감이 떡이져서 남아있게 보인다. 하지만 같은 그림을 멀리 떨어져서 보면 떡이졌던 물감 부분은 어느새 고운 레이스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회화적인 그림'이라고 한다. 나는 그림을 볼 때 처음엔 멀리 떨어져서 감상한 후 점점 앞으로 다가가서 부분을 감상하고 마침내는 그림 앞에 코가 닿을듯 위태로운 자세로 붓터치까지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물론 내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그림에 일자무식인 내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림을 알고 싶다는 나의 몸부림'이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림을 보고 감동하는 것은 위대한 영화를 보고 감동하는 것의 몇배가 될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은 나서서 말하지 않으며 오직 색과 선, 그림으로만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렵겠지만 그림 읽는 것을 공부해보자고 다짐했다. 전문가 만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어떤 그림을 보고 시시하다고 지나쳐버리지 않을 정도로는 알아야하지 않겠는가. 감동하기 위해서는 감동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미각을 잃은 장금이가 홍시 맛을 알리 없으니까.

 숲을 보고 나무를 봐야할것 같아서 우선 바로크에 대한 책을 읽기로 했다. 미술사에 관한 책부터 시작하면 너무 방대해서 초장에 그만둘 것 같았다. 유명하다는 라루스 서양미술사인 이 책을 고른건 잘한 일이다. 물론 책에 나오는 전문 용어나 방대한 미술사적 지식을 소화하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책에 있는 지식 중 바로크에 관한 대강의 줄거리만 파악해도 충분하다. 이 책을 통해서 바로크가 미술의 한 장르라는 것 이외에 왜 탄생하게 되었고 어떻게 이용되기까지 했는지, 또한 바로크 내에서도 어떤 변형이 있었는지 알수 있었다. 극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는 바로크는 왕정이 무너진 이후의 교회 정치에서 이용되었다. 교회에서는 바로크를 이용하여 성경의 한 부분을 인용하였고, 사람들은 미술작품을 보고 황홀한 극적 장치에 빠져 교회에 헌신하게 되었다. 일종의 선동 찌라시 역할도 했던 것이다. 또한 종교개혁의 바람과도 관련되어 바로크를 볼 수도 있으며 어떠한 유행에도 따르지 않는 소신있는 화가들도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가짜무당처럼 그림을 보던 나에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그림을 볼 때 이것이 바로크의 그림일것 같다는 추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렘브란트'라는 화가를 알게 해 주어서 그에 관한 책도 읽게 만들었으며 마침 EBS에서 방영하던 미술 다큐와 겹쳐서 '다비드'에 대해서도 관심가지게 해주었다.

 초심자인 나에게 너무 가혹했던 수많은 화가의 이름과 정치적, 역사적인 흐름에 대해서는 적당히 제껴가며 읽었다. (한 화가의 이름도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각각 발음이 다른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는 참 난감했다;;)미술이라면 '인상파'화가들만 있는 줄 알았던 무식한 나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준 이 책을 시작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그림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고전주의와 바로크에 관한 숲을 보게 해주는 책은 이 책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짬이 나면 전집을 모두 읽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바로크 미술 전시가 끝나기 전에 한번더 구경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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