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뒤흔드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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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밴드왜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메이지 시대부터 가업으로 내려온 헌책방. 그 이름이 '도쿄밴드왜건'이라니 메이지 시대의 헌책방 치고는 굉장한 '센세이션'이 아니었을까 싶다. 호통쟁이 칸이치를 시작으로 60 나이가 무색한 전설의 로커 가나토, 그의 아들들과 딸, 손자와 손녀 이렇게 4대가 한 집에 모여산다. 여기에 원수지간이어야 할 개와 고양이까지 사이좋게 살고 있으니 그야말로 대가족이다. '핵가족'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있는 나는 책 속에 나오는 인물을 익히는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친절하게도 책의 앞부분에 인물소개를 따로 해주고 있다.)
소설이 끝나고 작가가 남겨둔 한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그 시절 많은 눈물과 웃음을 거실에 가져다준 텔레비전 드라마에"
작가가 바치는 오마주라는 이 소설. 그렇다. "우리 여덟째 막둥이가 벌써 대학에 갔다우~"라는 말이 당연하던 옛날옛적은 그야말로 원시적인 추억이 되고 지금은 한 가정의 자녀가 셋만 되어도 놀라는 시대이다. 자녀의 수가 부의 상징이라거나, 셋째를 낳으면 지원금을 준다거나 하는 일은 이 소설의 가족이 보면 놀랄 일이 아닐까. 십여년 전에는 가족드라마가 유행이었다. 탑골공원에 계신 할아버지도, 노인정에 계신 할머니도 모두 마루에 앉아 수박을 들고 아들, 딸, 손자, 손녀와 깔깔 웃으며 TV를 보던 시절이 있었다.
이 집안에는 재미있는 가훈이 많다. '식사는 가족이 모두 모여 왁자지껄 먹는다'라는 가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그것도 할 수 없는 현대인들은 얼마나 불행한가. 알랭 드 보통의 <동물원에 가기>에는 에피쿠로스의 말이 실려있다.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생각하기보다는 누구와 먹고 마실 것인가를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 없이 식사하는 것은 사자나 늑대의 삶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책을 읽을 때 이 문장에도 밑줄을 그어놓은 것은 당연했다. 대가족의 왁자지껄함은 따뜻하고 정겹지만 너무 낯설어서 불편한 풍경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멋있는 가훈 하나.
'책은 저절로 자기 주인을 찾아간다.'
대대로 헌책방을 하는 집안으로서는 최고의 가훈이 아닌가 싶다. 특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 게다가 소장욕을 불사르는 사람이라면 '헌책'이 가지는 보이지 않는 인연에 매료된적이 있을 것이다. 새 책은 가지지 못하는 인연. 누렇게 바랜 냄새나는 책은 누구 말마따나 오랜 친구를 찾은 기분이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하나 독특하고 괴짜이면서도 따뜻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성격도 가지각색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르다. 일본에 정착한 영국인, 배다른 형제, 자매, 아버지가 사랑했던 여자... 모두가 이 책에서는 '가족'이 된다.
350페이지의 책을 두 시간여동안 읽어버렸다. 죽은 할머니인 '사치'의 영혼이 들려준 이 집안의 이야기는 따뜻하다. '가족 TV에 바치는 소설'이라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 무릎을 쳤다. 이미 잊고 있었던 어린날의 추억. TV를 보면서 그것이 비록 대리만족이고 환상 속의 이야기일지라도 우리는 그 안에서 가족의 사랑을 보았다. 배신과 질투가 난무하는 요즘 드라마를 보고 자란 아이들에 비하면 가족 드라마로 인한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헌책 또한 옛 가족 드라마와 비슷하다. 헌책과 가족 드라마 모두 상을 줄만하다. 속편이 나온다는 소식에 나도 함께 박수를 쳤다.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도 좋을 책인 것 같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혼자 얼마 알지도 못하는 일본 배우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며 연출을 해보기도 했다.)
전설의 로커 '가나토'가 중심이 된 밴드가 옥상에 모여 뜬금없이 <all you need is love>를 연주하는 장면에서는 눈과 마음이 뜨거워졌다. 낮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허공을 가르는 '챙-챙'하는 악기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나토'의 말대로 [모든건 러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