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치는 강가에서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5월에서 6월로 넘어가는 깊은 밤.

나는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었고 눈은 염증과 건조증으로 그냥 뜨고 있기도 힘든 상태였다.

"TV나 컴퓨터 모니터, 책 보는 것은 당분간 멀리하세요."

안과 의사는 항생제 안약과 네불라이져를 할 때 쓰는 물약이 들어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플라스틱 앰플형 건조증 약을 처방해주었다. 종일 책을 봐야하는 사람에게 의사의 말은 죽으라는 것과 다름 없었다. 늦게까지 전공책을 붙잡고 있다가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눈을 감고 일단 누웠다. 10를 넘긴 시간이라 이대로 잠드는 것은 아무래도 아깝다 싶어서 머리맡에 둔 책을 들었다.

<굽이치는 강가에서>.

지난 2월 카페의 회원들께 온다리쿠의 소설을 추천받아 구입한 책이다. 흰색 바탕에 초록의 숲, 파자마를 입은 소녀들이 뺑 둘러서 마치 불어오는 여름 바람에 몸을 내 맡기고 빙빙 돌기라도 하는 듯 한 일러스트가 책을 두른 진분홍의 띠지와 잘 어울렸다. 온다리쿠의 책은 한번도 읽지 않았지만 그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것도 막연하게 이름만 아는 정도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면 '서늘한 숲의 밤바람'이 떠올랐다. 읽기도 전에 떠올렸던 그 이미지가 책을 읽는 내내 떠나지 않아서 '와 정말 서늘한 바람이군' 하고 놀라기도 했다. 그녀의 책은 왠지 마츠모토 시오리의 그림과 닮아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날 밤 이불 위에 엎드려서 읽기 시작한 책을 1/3 이상 읽을 때까지 놓지 못했다. 뻑뻑해질대로 거칠어진 안구를 토닥여가며 읽기를 한시간.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잠잘 시간 앞에서는 다음날로 미루곤 하는데 이 책은 책장을 덮기가 망설여져 계속 읽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어제 새벽에 읽은 다음의 내용과 결말이 궁금해 죽겠어서 한쪽엔 거울(눈에 안약을 조준하기 위해)과 안약을 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자후기에서 언급했듯 확실히 이 책은 어느장르라고 표현하기 힘들다. '소설'이라고만 분류할 뿐 이것이 성장소설인지 추리소설인지 스릴러인지 콕 집어서 말하기가 어렵다. 앞서 말한 장르가 총망라된 책이라고 하기에도 설명이 부족한듯하다. 그래서 더욱 처음에 그랬듯 마지막까지 책에서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옛 기억을 더듬어야하는 장소로 초대받은 마리코, 그녀를 초대한 아름다운 가스미, 가스미와 떨어질 수 없는 요시노, 애정과 죄책감과 호기심을 가득 안고 찾아온 쓰키히코, 어린시절 누나를 잃은 아키오미, 그리고 마리코의 자리를 채우는 제 3자인 마오코. 모두 그저 평범하거나 조금 튀는 정도의 10대 고등학생이다. 아이답게 때묻지 않았고 새침하지만 알듯 말듯 비밀을 만들고, 그 비밀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그들. 무겁게 깔려 정체되어있는 늦 여름 밤의 공기가 곧 있을 차가운 가을 바람을 몰고오는 듯 그들은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쓰러지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누군가 <"네 맘을 이해해"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 또한 서로의 상처를 자기만의 눈으로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서로 위안을 주기도 하는 모습을 보고 과연 그렇구나, 하고 인정했다.

 

 책을 읽고 난 후 이 안의 내용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여운이 짙은 소설이라 마치 모호하게 남아버린 거대한 웅덩이 같다. 굉장히 집중해서 읽었지만 나는 아직도 소녀와 소년들이 있던 그 자리에 홀로 서 있는듯한 느낌이다. 꿈에서 깨어난듯 '너희들 다 어디로 간거야?' 라며 나 혼자 그 집 안에 있는 듯하다.

 '운명'. 나는그렇게 생각해보았다. 이 거대한 웅덩이를 운명이라는 단어로 함축할 수 있다면 그렇게 표현해보기로. 스치기만 해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이 아이들은 서로를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때론 동경하고 때론 경멸하면서 살고 있었다. 하지만 가스미의 집에서 합숙을 한 후로 그들은 한 덩어리처럼 움직였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것 처럼. 어린 시절 아주 짧은 순간 옷깃을 스치듯이 얽혔던 그들의 이야기를 결론지으며 '이것은 운명'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그렇게 하고도 책의 결말이 자꾸 나를 붙잡아서 나는 내내 그들이 있던 곳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 오늘밤은 '사라반드'라도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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