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초콜릿
공병호 지음, 오금택 그림 / 21세기북스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집 화장실에는 초콜릿 향이 난다.

책을 읽는 것이 '전쟁'이 되어버렸고 활자는 무기가 되어 내 눈을 찌르고 있었다.

책 읽는 것을 잠깐 그만둘까 하여 의식적으로 책을 들여다보지 않다가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서 생각한 것이 '책을 곁에 두고 조금씩 읽자'였다. 조금씩 시간이 날때마다 읽을 수 있는 책이라면 앞내용과 연결되어지는 긴 소설은 안될것이고, 짧은 시간 읽을 수 없는 어려운 책도 안될 것이었다. 책꽂이를 둘러보다가 배송시부터 싸여있는 비닐 포장을 채 뜯지 않은 '공병호의 초콜릿'을 발견했다. 평소 비소설은 등한시하고 소설만을 예뻐해주는 못된 습관을 가진 나는 아예 이 책을 그저그런 자기계발서 쯤으로 생각하고 포장을 뜯지도 않은 것이리라.

 

내 책꽂이에 입주한지 1년이 넘었을 이 책은 이제 짧은시간 나의 서재가 될 화장실에 모셔졌다. 두루마리 휴지와 수건, 비누, 치약 등이 담긴 다용도 장식장 한켠을 차지한 이 책을 나는 거의 매일 큰일을 볼때마다 읽어내려갔다. (조금 더럽고 부끄럽군 ㅋ) 이제 날이 따뜻해지고 구석구석 습기가 오를 때 하필 욕실 겸 화장실 한켠을 차지했으니 행여나 물에 젖을까, 축축한 욕실 바닥에 나뒹굴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사실 그러한 걱정보다는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이 한 권의 책을 읽는 시간이 길어져서 언제고 같은자리에 있다가 영영 다시 내 방 책꽂이로 돌아오지 못하는게 아닐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처음 장소를 옮겨두고 읽었던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몇주에서 한달 이내일까.

어느새 책의 마지막장을 덮었다. 그동안 공병호님의 짤막 짤막한 사유들과 마주하며 하루, 이틀 사이의 몇분동안 내 삶을 다시보고, 책 속의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돌아보면 한장이 채 안되는 짧은 글들과 캐릭터 하나로 전체를 보여주는 삽화를 보는 장소로 화장실을 택했으니 찰떡궁합이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책 속의 에피소드들을 하루 한개씩 실천하고 정리하자는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 내가 게으른 탓도 있을 것이고, 이 책은 단시간에 삶의 자세를 바꿔주는 '마법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도 여느 자기계발서 처럼 한번 읽고 털어버리는 먼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분명 모든 익숙한 교훈 안에는 진리가 담겨있고, 그 진리는 너무 익숙한나머지 쉽게 잊혀질 수 있다. 책 속의 초콜릿을 '먼지'로 소화할지 '진리'로 소화할지는 모두 나에게 달려있다.

 

쌉쌀하고 달콤한 '초콜릿'이라는 제목과 꼭 닮아있는 책.

다시 우리집 화장실에는 다른 향을 품고 있는 책이 놓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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