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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문화의 지형도
김기봉 외 지음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7월
평점 :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분야에서 한국사회의 문화를 이야기한다. 한정된 지면 위에 기존에 출간된 국내서에서는 볼 수 없는 문화면만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제시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부정보다는 긍정을 비판보다는 미래지향성을 보이는 이들의 글에서 역량과 깊이를 맛본다.
사진과 관련 도서 및 자료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연결해서 읽기 또는 이어읽기를 유도하고 있어 집약적이고 축약된 이 책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인다. 한층 더 나아가 문화 바로보기를 위한 가이드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29명의 전문가가 말하는 29개 키워드에는 집단보다는 개인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복제시켜 진화해 가고 그러한 움직임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곧 '나만의 세계'와 '나만의 미디어'가 통용되고 공식화되는 과정에서 보편화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마니아(오타쿠)가 생산자가 되고, 놀이가 문화컨텐츠로 상업화되고, 익스트림 스포츠가 스턴트맨이 아닌 스턴트맨이 되면서 자기만족과 자기희열의 극대화는 점점 현실부여로 가속화되는 것처럼.
급속도로 진화되고 있는 '1인 미디어' 속에는 'UCC'가 큰 몫을 담당하고, 지금 눈 앞에 보이는 형태, 즉 만져지고 보여지는 '나'에서 치장되어지고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나'로 1인 미디어는 존재해가고 UCC는 만들어져가고 있단다. 동일시 되어야 하는 '나'가 양면성을 띠는 나로 구별되는 시대에 살 것이라는 거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만들어내는 컨텐츠의 속도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주류 매체가 따라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비주류(1인 미디어)의 컨텐츠를 주류가 이용하는 역의존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이희용 씨는 말한다. 1인 미디어의 정보 입수 속도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신속하기 때문이란다.
무엇보다 생각을 더 얹게 만들었던 부분은 '탈민족'이었다. '디워'를 통해 보여준 왜곡된 민족주의에서 섬뜩함을 느꼈고, 김기봉 씨가 지적한 조승희 씨의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을 통해 보여준 미국의 민족주의와 한국의 민족주의의 분명함과 불분명함, 하인즈 워드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민족주의에 대한 우려섞인 말들은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임을 지적한다.
현병호 씨의 글 '탈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통계에 의하면 학교를 이탈하는 학생수가 줄고는 있지만 안전한 교실 속에서 이탈한 학생수는 훨씬 더 늘어났다고 한다. 학교 밖으로 나간 학생과 보호받는 학교 안에서 자발적 이탈을 선택한 학생간의 차이점은 없다는 것이다.
학교 속 '학교도서관'은 어떤가. 김종성 씨는 학교도서관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만큼 그에 걸맞는 전문가들도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전문 사서의 양성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학교도서관이 '탈학교'의 가속화에 얼마나 많은 제동 역할을 하고 있는가이다.
학교와 그 속에서의 도서관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공생관계이다. 학교가 없다면 학교도서관은 존재할 수 없고 학교도서관운동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탈학교'와 '학교도서관'이 교차점을 찾지 못한 채 각자의 길을 걷기보다는 학교도서관이 탈학교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도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독립영화는 끊임없이 사물의 질서와 인간관계에 질문을 던지는 현세계의 스핑크스 역할을 주저하지 않는다. 질문이 없다면, 그건 독립영화의 끝을 의미할 것이다." 이 문장은 <29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문화의 지형도>에 다섯 번째로 등장하는 '독립영화-독립, 인디라는 유령'에서 발췌한 문장이다.
이 말은 독립영화에만 해당한다고 보지 않는다. 29개의 키워드로 등장하는 '마니아 문화', '신화, 인터넷만화, 미래의 문학', '놀이, 익스트림 스포츠, 1인 미디어, UCC', '탈민족, 미래의 가족, 양성평등문화', '행복산업, 먹거리, 잘 죽음', '탈학교, 학교도서관' 등 이 모든 것에도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29개의 다양한 시선을 통해 한국문화의 현주소를 알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해당되고 생각하고 있는가에는 한손으로 꼽아가는 손가락조차 남는다. 좀더 현실적인 나의 문제로 생각해 보아야겠고, 가속화되고 있는 개인적 공간에 함께와 우리라는 관계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는 좀더 심도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