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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밴드왜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4대라는 말에 그리고 헌책방이 주무대라는 말에 집어 든 이 책은 등장인물이 많다 보니 독자의 이해를 위해 친절하게도 도입부와 본론의 시작에 등장인물을 소개를 반복적으로 놓았다.
새삼 소설 앞머리에 등장인물 소개라니 시나리오나 희곡도 아닌데 하며 뚱한 생각을 하면서, 4대가 사는 집의 이야기는 엉키기 마련이니 앞에서 정리된 대로 이해와 인물이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에 표현되어 있는 것을 차용하자면 팔랑팔랑 책장이 넘어가는 동안 자연스레 인물들이 정리가 되어 갔고, 동시에 가계보가 자동으로 그려져 갔다.
이 책은 쇼지 유키야라는 작가가 꼬인 혹은 얽힌 인간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어떤 방식을 취하고 있는가를 충분히 보여 주고 있다. 바로 작가가 인간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인간의 예의 그리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기본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배경이 되어 곳곳에 나타난 기치와 지혜는 주인공들의 짐을 때로는 가볍게 혹은 그 짐을 내려 놓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딱히 누가 주인공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등장인물 개개인이 놓인 위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모두가 중요하다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연륜이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중간중간 사건을 통해 알려 주고는 있지만,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이 놓여진 위치와 역할을 떠나 가족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문제 해결 능력이 동등할 뿐 아니라 발언권도 평등하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것도(28살의 IT기업 사장 후지시마는 빼고, 그리고 최고의 배우 이케자와 유리에도 빼고) 아닌 그저 평범하기 이를 데 없음에도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주어진 위치에서 만족하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무엇보다 보기 좋았다. 이는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에 작가가 보여준 강한 반발이 아니었을까? 인간의 참삶과 인생의 참의미를 알려 주려는 작가의 의도로 풀이된다.
또 하나 가족이라는 구성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대화라는 것을 이 책에서는 빼놓지 않고 있다. 개개인이 안고 있는 아픔이나 슬픔, 그리고 주변에서 발생한 사건들. 이 모든 것을 풀어가는 중심에는 대화가 자리를 잡고 있고,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으며, 모든 문제는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바로 잡아 주는 역할을 이 책은 우리라는 단어를 암묵적으로 알려 주면서 강요라는 단어를 등장시키지 않은 채 바로 잡아 주고 있다.
이러한 것은 장황한 설명을 배제시킬 수 있는 기반이 되었고, 일어난 사건에 대해 해결해 가는 과정을 먼저 독자에게 양보함으로써 '나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를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여유를 보여 주었다.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보여 준 침착성과 원인과 동기는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그 사건과 문제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을 배려는 인간애로 나타날 수 있었다.
헌책방 도쿄밴드왜건의 사장이자 4대를 이끌고 있는 수장 칸이치는 콘과 아이코, 아오의 할아버지이자 카요와 켄토의 증조할아버지이다. 이 정도의 위치라면 분명 헛기침을 동반한 거드름을 피거나 무게를 잡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경솔하거나 경박하지도 않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걸음 물러나 사태를 주시할 줄 알고, 저마다 가족이 갖고 있는 개성과 생각을 존중하면서도 가족이라는 큰 바퀴를 굴리기 위해서는 때로는 위엄이 필요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잘못하면 망나니로 비쳐질 기질이 다분한 칸이치의 외아들이자 전설의 로커인 가나토는 카요와 켄토를 손주로 두고 있다. 60의 나이에도 여전히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나 조용히 뒤에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두는 한마디의 훈수는 백 마디의 말이 부질없음을 보여준다. 다만 대대로 이어오는 가업을 물려받기를 거부해 헌책방 도쿄밴드왜건은 가나토의 아들 콘과 아오가 할아버지와 함께 잇고 있다. 아니 함께 꾸려가고 있다.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뉜 장들, 그에 맞게 발생되는 일련의 사건들. 이 사건들을 중심으로 칸이치의 가족들은 움직임을 시작한다. 느닷없이 나타났다 사라진 백과사전을 시작으로 펼쳐지는 일들은 주변사람들을 헌책방 도쿄밴드왜건으로 묶어 놓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연결이 억지스럽지 않고 오히려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동의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가나토가 밖에서 낳아 온 아오는 친모를 모른다. 그리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오의 결혼식을 목전에 두었을 때 친모가 누굴까를 찾아가는 그 과정은 그 어떤 과장도 억측도 없었다는 것에 이 책의 간결한 맛이 더해진다. 독자들에게 특별한 이해를 바라지도 않고, 그 어떤 동정을 요하지도 않는 작가의 당당함에서 오히려 대담함까지 느낀다.
헌책방을 중심으로 사건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당연히 책을 빼 놓을 순 없다. 책은 인생에 있어 심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책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는 항상 준비해 두어야 한다는 것을 헌책방에 발을 디딘 모든 인물들이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후지시마를 상대로 일전을 벌였던 칸이치의 말에서, 그리고 정년을 앞둔 가야노를 통해서, 미스즈, 코엔을 통해서 말이다. 그리고 오래 전에 책 중개상인에게 당한 사기 사건을 통해서 말이다. 책은 사람을 구제해 줄 수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줄 수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해 줄 수도, 또 용서를 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요란하지 않게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가끔 카롤린 봉그랑의 <밑줄 긋는 남자>와 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이 생각나게 만드는 소설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 속에서 혹은 책을 통해 이어지는 인간 관계는 그 어떤 동기부여보다 강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