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북클럽
박현희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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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 전성시대!
책 읽기에 이런 흥미가 있다면. 삶의 다양성이 성장하는 생각들이 차곡 차곡.
너와 나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힘을 찾을 수 있다.
독서의 재미또한 발견해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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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비용
유종일 외 지음,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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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단연 최고의 책!!!
뭐라고 할까... 실패에 대한 반성? 투표의 중요성? 과거 선택에 의한 현재의 고통을 뼈져리게 느끼고 있는 세대들에게 다시한번 상기시켜 준다. 우리의 선택으로 우리가 짊어져야 할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MB의 비용. 이젠 우리의 비용이 되어버렸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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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차이나 - KBS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KBS <슈퍼차이나> 제작팀 지음 / 가나출판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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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차이나!! 시간이 흐를수록 국제시장에서 중국의 힘. 영향력은 커져간다.
우리 이웃 나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중국에 대해 몰랐던 많은 부분들. 미국만큼이나 신경을 써야 할 그런 나라 중국.
슈퍼차이나를 통해서 조금은 배워보기를. 중국의 저력, 중국의 잠재능력이 폭팔하는 순간 세계는 또한번 뒤집어 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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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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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한국이 싫어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점점 일상어가 되어가고 있는 지금 한국의 문제를 청년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책.
아니 사회문제를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은 책. 한국이 싫어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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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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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문유석님의 <판사유감>은 말로만 들어 봤다.

실질적으로 만나는 것은 <개인주의자 선언>이 첫 책이다.

 

단순히 판사의 글 이라는 호기심도 있었다.

현시대에 "개인주의자"라고 당당히 선언한다니 어떤 의미일가 궁굼하기도 했다.

 

판사라는 직업.

막연함이 가장 앞서며, 보통 알고 있는 '판사'는 뉴스속에서 잠깐 보이는 모습,

드라마, 영화 같은 미디어 속에서 한쪽으로 치우처 굉장히 과장된 모습들만 봐왔기에 편견이 있는 직업이다.

실질적으로 판사는 만나볼 기회도 별로 없으며, 일상생활을 하면서 만나지 않을 수록 좋은 직업이 판사아닐까?

 

그런 판사가 쓴 글이라니. 더군다나 '선언'이라니!

어떤류의 선언이든 '선언'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정말 큰데.

판사로써 '선언'을 한다니. 아니 판사 전체가 아니라 개인적인 선언이긴 하지만.

'판사문유석' 이라는 말이 들어간 만큼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전체로 범위가 넓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개인주의자 선언>은 자기 고백에 가깝다.

문유석판사가 말하는 '개인주의자'는 한국에서 흔히 '개인주의'라고 말하는 '개인이기주의'가 아니다.

서양 역사속에서 발전되어 온 '개인주의'를 말하고 있다.

 

집단이 아닌 개인이 주체로서 당당히 기능을 하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살며, 개인을 위해 협상하는 개인주의자.

개인주의자는 '개인'이란 주체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 한다.

 

한동안 유행 했고, 지금도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유명한 심리학책들에서 말하는 '자기 자신을 알기'

보다 더 명확하고 확장된 개념이 '개인주의'다.

 

내가 나로써 주체하기에 남역시 개인으로 주체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의 기준이 바로 '개인의 추체'에 있다는 것.

개인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대변하며, 이기주의와는 다르게 이익을 위한 양보와 협력이 가능한 것.

나만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의견역시 존중하여 들어주는 것.

서로의 이익을 위해 양보하기도 하며, 함께 하기도 하는 것.

개인의 가치를 실현하는 그런 '개인주의'를 말한다.

 

(쉽게 쓴것 같은데 다시 읽어 보니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수정해야 할지 모르겠다.ㅠㅠ

아직 개인주의에 대한 이해의 부족. 또는 머리로만 조금은 알것 같기때문일 거다. 문유석판사님은 책 한권분량을 다 쓰쎴으니...뭐.)

 

<개인주의자 선언>은 이런 개인으로써 바라본 세상에 대한 판사문유석님의 글이다.

경제발전, 세월호사건, 신해철, 고등학교시절, 자기계발, 세대격차, 직업, 문명, 장그래, 등등

최근 몇년 사이 굵직한 사건들 부터 판사로써 접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 들까지.

다양한 사건에 일관된 (개인주의)시선으로 세상을 읽어준다.

 

문유석판사가 바라본 세상은 내가 바라본 세상과 비슷해서 그런지 익숙하다.

난 스스로 개인주의자라고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책을 읽고 나니 어쩌면 나도 어느정도는 개인주의를 인식하고 살아 왔던것 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바라본 대한민국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함'이다.

"애매모호"란 단어도 있다. 그렇다고 명확한 중립도 아니다.

서양에서 발전된 자유민주주의사상. 대한민국에서 받아들여 헌법에 명시하고 있는 민주주의.

어쩌면 우리는 헌법이 만들어진 이후에도 진짜민주주의를 한번이라도 실행했던 적은 없던것 같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집단 공동체에서 벗어나 '개인'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민주주의의 꽃을 투표라고 한다. 개인이 개인으로써 의사를 표명하는 절차 투표.

집단 공통체로 남아있으면 개인의 생각으로 착각하는 집단의 생각만이 있을 뿐이다.

 

광복이후 이념의 전쟁터로 변했고 그 이념들이 걷히고 나서도 이런 저런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 대한민국.

광복이후 70년이란 역사속에서 경제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단하나의 발전으로 인해, 너무 빠른 변화로 인해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버리고 달려왔다. 성장하지 못해서 쌓인 문제들.

국가? 사회?를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에릭슨이 말하는 발달단계중에서 중간 모든 것을 뛰어 넘어 버린것이고.

매슬로우가 말하는 욕구로 치자면 아직도 최하위 욕구에 머물러 있기에 문제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걷기도 전에 뛰기부터 했다. 걸으면서 배워야 하는 것들을 배우지 못했다.

기는 것도 재대로 기어본적이 없다. 그렇기에 할 줄 아는 거라곤 뛰는 것 밖에 없다.

 

뛸줄만 알기에 점점 빨리 뛰게 되었고 결국은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한계에 다다랐다.

 

기는것 부터 다시 배우기엔 돌아갈 수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할 것은 무엇인가?

지나간 것을 돼돌아가 찾아 올 수 없는 상황. 지금부터 다시 시작할 수 조차 없다.

뜀을 멈추게 되는 순간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고, 심하면 죽거나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결국 달리기는 계속 달려가야 한다. 문제는 달리면서 기는법 걷는법을 배워야 하는 어려움 이다.

 

어쩌면 바로 날개를 달고 날아야 할 지도 모른다.

시대는 끊임없이 바뀌고 있고, 우리는 이미 짧게 끝난 산업 혁명에서 정보혁명으로 접어 들었고,

정보혁명은 산업혁명보다 더 짧은 생명을 가지고 또 다른 혁명을 불러오게 될 거란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수많은 변화들, 공동과 집단으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늦다.

우리가 스스로 개인임을 자각하고 개인으로써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개인으로써 협력하는 길은 결국 함께하는 것, 공동과 집단을 유지하는 '역설'이 된다.

공동과 집단이 우선시되면 개인은 있을 자리가 없지만, 개인이 있음으로 해서 집단이 유지될 수 있는 역설.

이렇게 쓰고 보니 사회체계이론이 생각난다. 여러 개체가 유기적으로 맏물려 돌아가는 체계.

그 개체속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작은 단위는 단연 '개인'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서양에서 발전된 시스템을 들여 왔지만 그 시스템이 가장 기본을 들여오지 못해서

자꾸만 오류가 나고 있는건 아닐까?  지난번 읽은 <선비처럼>에서도 우리에게 안맞는 옷을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고 생각한 바로 그것.!

 

호환이 잘 안되는 아이폰에 억지로 맞춰쓰고 있는 그 기분!

 

호환이 잘 된다는 것은 약속인 국제표준기준을 만들고 서로 그 기준에 맞춰 만들었다는 것.

호환이 안된다는 것은 표준과는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만들었다는 것.

 

단순 비교, 비유 할 수 없지만, 호환성이 좋다는 것은 '개인주의'를 말하고

호환성이 나쁘다는 것은 '이기주의'를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개인주의보다 '이기주의'를 '개인주의'로 잘못 들여 왔기에 호환이 안되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

 

호환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호환문제가 없는 국제표준으로 바꿔 만드는 방법뿐.

서구에서 발전된 민주주의를 정말 잘 이해하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차근 차근 들여다 보고,

개인의 역할과 인식의 변화를 바라보고 지금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진단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민주주의의 국제표준에 맞춘 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사람은 이익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이익없는 희생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다수의 사람들의 결정이라면...

 

문제 해결 방법은 하나더 있다.

내 기준을 국제 표준으로 만드는 것. 어느쪽이 더 유리할지 가늠할 수 없다.

 

분명한건 지금 우리는 잘 안맞는 것을 억지로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맞출지. 나에 맞는걸 다시 만들지는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70여년이란 시간동안 내가 맞추는 것은 실패한 것 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나에게 맞는 것을 다시 만들 수는 없을까? 

 

어떤 문제해결책이 되었든 단 한가지

개인이 개인으로 주체가 되는 것에는 동의한다.

어떤 해결책을 찾게 되더라도,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개인'으로써 '우리'가 되어 협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개인으로 명확하게 살아가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 서로 협상하며 서로가 이기는 윈윈전략을 세우는 일.

내가 읽은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은 이를 위해서 당당하게 개인주의자라 선언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개인주의자"라고 선언 한다.

(분명 말하지만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오해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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