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 광주 5월 민주항쟁의 기록, 전면개정판
황석영.이재의.전용호 기록,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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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8일은 광주민주화운동 제37주년 기념식이었다.
겨우 38년 전에 일어났던 일. 내 나이와 고작 8년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일인데 1980년 5월의 광주의 항쟁은 조선시대 있던 동학농민운동만큼도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5.18은 TV 드라마에서 잠깐 봤던 내용, 어느 가수의 뮤직비디오 속의 한 장면, 그리고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만난 것이 전부였기에 단순한 사실 1980년 5월 18일에 광주에서 민주 항쟁이 있었다. 뿐이었다.

한국사 교과서에서도 짧게 한 페이지도 안되는 내용으로 배웠던 것 같은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렇게 5.18은 지난 시간 속에 있던 하나의 사건이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기 전까지는.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 역시 나에게 있어 역사 속 사건일 뿐이었다.
조선의 왕조를 외우고 공부하듯이 한국의 근현대사 역시 책 속에 담겨 있는 지나간 하나의 일이었다.
그랬기에 '예전에는 그런 일도 있었구나.' 하며 넘어가던 사실들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무관심 사이에서 나와는 관련 없는 누군가의 이야기였구나 싶었다.

지난겨울의 사건을 알지 못했더라면, 지난봄에 일어난 힘을 알지 못했더라면,
오늘 이 책을 읽지 못했더라면 나에게 있어서 5.18은 여전히 한 줄 기록으로 막연하게 알아둬야 하는 사실쯤으로 남아있었을 거다.

군인들이 민간인을 학살했다.!?
1980년이면 그래도 현대 사회인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생각이 컸다.
설마, 어쩌다 한두 명의 군인이 실수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한두 명쯤 피해가 있었겠지 하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군인의 상대는 언제나 '적군'이고 민간인은 군인이 보호하고 지켜야 할 '목적'이기 때문에 설마 했다.

더군다나 88년에는 올림픽을 개최할 정도로 국가적 위상이 높아졌고, 광복 이후 시간도 많이 흘렀으며, 박정희 독재도 끝난 시점이었기에 더욱더 상상할 수 없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소설이나 영상처럼 각색한 픽션이 아니다.
순수하게 당시 있었던 사실을 증언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그렇기에 책을 읽고 난 후 받은 충격은 거대했다.
내가 알던, 내가 살아왔던 하나의 세계가 무참하게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욕심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고 하지만 단체로 민간인을 학살하다니 글을 읽고 있는 동안에도 이게 사실인가 싶은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국가 대 국가의 이념 전쟁도 아니었다. 독일의 나치처럼 인종 학살도 아니었다. 제국주의에 의해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그저 국가의 권력을 잡기 위해서, 자국의 한 지역을 고립시키고 자행한 '학살'이었다.

당시 대통령은 최규하였으나, 1980년 5월의 광주를 고립시킨 것은 전두환이었다.
이미 끝난 일이라 생각했던 5.18은 아직도 진행 중인 사건이다.
국가 권력에 의해서, 군이 투입되어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 단순한 군이 아닌 공수부대가 투입된 것.
처음부터 '적'으로 봤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일부 극우 세력은 아직도 5.18은 북한의 공작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과장되었거나,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점을 다를 수 있으나 남아 있는 자들의 증언까지 매도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민간인을 향해 총을 발포한 것도 사실, 군부대를 투입한 것도 사실, 헬기가 동원된 것도 사실, 전차와 장갑차가 투입된 것도 사실, 남아있는 수많은 사실의 기록과 흔적들이 5.18의 광주를 증명한다.

책에서 내가 주목한 것은 5.18 광주의 당시 사건도 사건이지만 항쟁이 끝난 이후 지금의 이야기다.
전두환은 법정에서 판결을 받았지만 특별 사면됐다. 그리고 최근 자서전까지 출간했다. 헬기에서 발포했다는 증거는 있으나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기관총을 쐈는지 소총으로 발포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많은 지휘관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무죄!...  일반 사병이 아닌 지휘관의 무죄는 광주 민주 항쟁의 진실을 알게 된 지금은 받아들이기 힘든 판결이다. 불과 38년 전의 일. 당시를 겪었던 많은 사람들의 아픔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민간인을 학살한 그들은 과연 책임지고 반성했으며, 국가는 최선을 다해 용서를 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올해 5.18 광주 민주 항쟁 기념식에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지난날 난 노래 한 곡을 제창하거나 합창하는 것에 대해 왜들 그렇게 싸우는지 알지 못했다.
노래 한 곡을 기념식에서 빼는 것이 왜 논란인지 깊이 공감하지 못했다.

지금은 조금 알 것 같다.
그들이 희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오늘
꼭 기억하자는 다짐, 다신 같은 일을 반복하지 말자는 결심,
시민으로 깨어있고, 시민으로 책임을 다하며 시민으로 자부심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를.
국가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일이라는 것. 국민이, 시민이 관심을 가지지 않고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또다시 피 흘리는 희생을 하게 될지 모른다.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그들의 목숨. 그 무거운 생명의 무게를 영원히 잊지 않기로 맹세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린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올 수 있었음을 꼭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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