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 1 - 영웅 홍계남을 위하여
이병주 지음 / 나남출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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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남 서평단 선정 독서... 서평 기간에 맞춰 올린줄 알았는데... 임시저장상태로 잠들어 있어... 다시 올린다.)


<천명> 영웅 홍계남을 위하여 - 이병주


오랜만에 이병주님의 소설을 만났다. 많은 소설들 중에서 다시 만나게 된 소설은 <천명>이다.

과정이야 SNS를 떠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이벤트에 참여했고 덜컥 선정돼었기에 읽을 수 있었다.


소설가 이병주님은 나에게 추억이 담긴 이름이다.

아주 어릴적. 국민학교를 아는 분 있으려나?? 지금은 초등학교라 불리지만... (난 국민학교와 초등학교를 둘다 다녔다. ㅎㅎ 저학년때는 국민학교, 고학년때는 초등학교 그래서 끼인세대?일지도...)

그 때 우연히 읽게 됐다. 이병주님의 소설을... 정도전으로 처음 접했다. 국민학생. 겨우 열살의 나이로 이병주님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읽기 였다.  다른 책들보다 유난히 많은 한자어. 발음하기도 힘든 말들이 많아 책을 다 읽는데 까지는 무려 2달이나 걸렸다고 기록을 해뒀을 정도이니... 20년이란 시간이 흘러도 기억에 남아 있을 수 밖에...


그렇게 한권을 다 읽어 내고 나서 남는건 '성취감'이였다. 어른들이 보는 책을 읽어 냈다는 성취감.

그 감정이 너무 좋아서 부러 찾아 봤던 기억이 난다.  허균과 정몽주, 그리고 남로당 내용도 뜻도 잘 모르고 그저 읽기 그 자체에만 집중했던 그때 읽었던 책들.... 20년이 흘러 다시 만나게 되니 묘한 감정이 든다.


20년전에도 이병주님의 소설은 이랬었나??

기록을 아무리 찾아봐도 책에대한 내용은 없었다. 스스로가 뿌듯했던 기록들 뿐... 이런 저런 한자어들을 적어두고 국어사전에서 뜻을 찾아 옮겨두고나서 친구들이 잘 모르는 말 하나를 알았다는 자화자찬의 기록...


그렇기에 이병주님의 소설은 결국 처음 읽는 것 같다.


많고 많은 소설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천명>이 눈에 들어 왔을까?

찾아 보니 몇년전 부터 다시 복원하고 있었는데... 전혀 모르다가 이제와서 발견하고 눈에 들어 왔을까?


<천명>은 조선때에 실존 인물 "홍계남"이 주인공이다.

역사적 자료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아서 그의 삶을 상상려을 동원해 복원해 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였을까?

남아 있는 것은 몇줄 안되는 기록뿐이며, 여기 저기 구전되어 전해지는 이야기들... 그 속에서 이병주님은 "홍계남"이란 영웅을 살려냈다.  기록을 토대로 역사속 인물을 살려내는 작업... 그것은 고고학자들이 땅에 남아 있는 기록을 발굴해 내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인물의 위치와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파악해야 하고, 당시의 시대로 돌아가 어떻게 살아 왔을까? 삶의 모습을 복원하고, 여러 관계속에서 인물이 성장하며 보고 격은 경험들이 어떤 성격을 만들었을지, 주변관계는 어땠는지, 역사적 사실에 모순은 없었는지... 가상의 세계에서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는 것 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천명>속의 홍계남은 안타까운 영웅이다.

어쩌면 이병주님이 일부러 부제에 '영웅'이란 호칭을 줬을 지도 모르겠다.

조선이란 유교국가에서 유교적질서가 가장 강할 시기에 서출로 태어났다. 시대가 많이 다르긴 하지만 지금으로 치자면 아빠가 어디가서 사고쳐서 대리고 온 이복동생쯤? 아니. 지금 흔히 볼 수 있는 현대적 막장드라마속에 잘나가는 회장님의 둘째부인의 미운 동생? 쯤으로 보면 될까? 동화속 콩쥐일 수도 있고,..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로써는 짐작조차 할 수없는 신분에 얽매여 있는 삶...

(지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신분? 이란 녀석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평등사회이긴 지만. 조선은 모계에 따라 신분이 정해지고 한번 정해진 신분을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지금에 와서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인물들은 그야말로 예외라고 보면... 그 처지는 정말 끔찍했을 것 같다.)


조선시대 서출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아는 홍길동전에서 길동이의 실존인물이 "홍계남"은 아니였을지 슬쩍 짐작해본다.

아버진데 아버지일수 없고, 형인데 형일 수 없는 삶... 당시에는 무수히 많은 "홍계남"들이 있었겠지...


이병주가 그린 홍계남은 수 많은 서출들 중에서 예외적인 인물이다.

당시 사회에서는 짐작할 수 없는 사랑을 받고 성장 했다고 할까? 공부를 해선 안되지만 할 수 있었고,

벼슬을 받을 수 없었지만 벼슬을 받을 수 있었던 예외. 그 예외가 되기 위해서 그가 했던 노력은 정말 대단 했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아! 임진왜란이 없었다면 홍계남의 운명도 수 많은 서출들의 삶으로 그쳤을 지도 모르겠다.


임진왜란이 홍계남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나라는 불타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왕은 목숨을 보전하려 도망다니던 시대.

조정에서 본다면 일게 서출이였겠지만 21세기 우리가 바라본 "홍계남"은 영웅이다.


전쟁속에서 목숨을 바쳐 백성을 지켜낸 영웅. 어쩌면 경술국치가 아닌 임진국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역사속에서 승리를 만들었던 영웅. 그의 꿈은 보편적 자유 아니였을까?


얼마전 케이블 체널 프로그램중 하나인 "어쩌다 어른"에서 '설민석'의 강의를 봤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그때 국가를 지킨 것은 결국 수많은 민초였다는 내용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강조했던 것은 '애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이병주님이 찾아 살려낸 "홍계남"은 사랑받고 싶어 했던 한 인간의 삶은 아니였을까?

홍계낭이 꿨던 꿈! 짐작할 수도 없지만. "홍계남"으로 대표되는 당시의 수많은 백성들. 21세기에서는 '시민'이라 불리는 우리들이 살아 있었다는 것을 남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홍계남 그는 밤하늘의 별이 되어 영원한 영웅으로 남았다. 이병주님의 손에 의해서...


소설로써의 <천명>은 별점 3점이다.

현대 소설에 익숙한 나에겐 <천명>의 소설 구성은 어지러움 이다.

뭔가 많이 아쉽고, 뭔가 많이 부족한 듯 보이는 구성. 많은 것들을 담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했기에 도리어 아무것도 담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나버린 그런 느낌을 받았다. 아마 이병주님이 지금껏 살아 계셨더라면 <천명>또한 21세기에 맞춰 개정을 했었겠지?

그랬다면 정말 멋진 역사 소설이 되어 고전의 반열에 올라갔을 지도... 이뤄질 수 없는 상상을 해본다. 너무 좋은 소재가 너무 아쉽게 표현되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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