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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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07번째 작품

책을 읽고 어떻게 남겨야 할까 한참을 생각하다 이제서야 리뷰를 쓴다.

 

책은 너무나 쉽게 읽힌다.

또 너무나 깊게 공감이 된다.

 

짧게 요약하자면 계나의 호주이민 정착기로 줄일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간단하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생각,

행복이란 무엇인가? 라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계나의 이야기에 빠져들기도 하고 반박해 보기도 한다.

 

소설과 해설을 모두 읽고 견해가 궁굼하다며 담화를 시작해보자는 허희님의 마지막 글을 읽고나면

책을 다시 한번 펼쳐들고 더욱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행복론'일 수도 있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그 자체에 대한 깊은 고찰의 시간이 될 수도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나는 어떻게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현실이 된다.

 

소설의 주인공인 계나가 호주로 떠나는 이유는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이고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몰 살겠서다. 좀더 깊히 들어가면 한국에서 살아갈 수 없는 자신을 직시한 것이고, 살기 위한 대안이 호주로의 이민이다. 소설 마지막에서는 결국 호주로 가려는 이유가 사람대접 받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계나가 직접 밝히는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p.11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p.44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

 

그렇다. 작품해설에서도 말하고 있는 바로 이부분.

책을 읽으면서 여러번 읽게 된 이부분... 나또한 비슷한 처지라 더욱 공감이 갈 수밖에 없는 이 부분을 보면 호주로 이민을 가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한다.

 

그럼에도 나라면 한국을 선택하고 싶다. 그렇게 비전이 없고 가진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결국은 조건을 따지며 출발선부터 불평등한 세상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계나의 선택은 결국 도망이고, 이 도망은 문제 해결에 아무것도 도움될 수 없다는 것. 호주로의 이민이 정답 처럼 느껴지지만 그건 장소만 옮겼을 뿐... 세상은 바뀐것이 없는 선택이다. 다시 보면 그건 가진것 없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국을 떠나 호주에서는 아주 작은 가능성. 쉽게 말해 보이지 않는 신분 상승을 위한 선택일 뿐이다. 문제를 인식했음에도 바꾸기 보다는 다른 곳에서 부족함을 채워 신분을 상승한 계나의 선택... '행복'이란 가치를 놓고 생각하면 과연 계나는 '행복'할까?

 

아무리 힘들어도 모두가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

사회구조가 잘못됐으면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고, 사람들의 시선이 문제라면 그 시선을 돌리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 그것이 나라면 한국에 남는 것을 선택한 이유다.

'가치'를 선택하는 것. 잘 살고 못사는 것의 기준을 돈에서 '행복'과 '자유'로 돌려 놓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여러 분야에서 이런 저런 힘든 일들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노력하는 '사회복지사'란 직업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p.61

'아니, 난 우리나라 행복 지수 순위가 몇 위고 하는 문제는 관심 없어.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고. 그런데 난 여기서는 행복할 수 없어.'

 

p.97

'여기서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는 거야. 이런 일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겪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었어. '

 

p.103

'주가 사라지자 바퀴벌레가 들끓었고, 바퀴벌레 다음에는 개미가 나오고, 그랬던 거야. 뭐가 바뀌긴 했는데 나아진 건 아니었어.'

 

이렇듯 소설 곳곳에서 계나는 한국에서 살수 없는 이유들을 늘어 놓는다.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할 수 없는 상황들 그래서 도망가고 싶어 했고, 한국에서도 무엇인가 나아지는 것이 있었다면 남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기에 떠날 수 밖에 없었음을 역설한다.

 

데체 한국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 걸까?

그래 이런 질문은 문제가 너무 많기에 쓸데 없는 질문이겠다.

 

저출산, 고령화는 기본이요, 양극화에 점점 줄어드는 중산층이라는 계급, 아니 그런걸 다 떠나서 모든걸 '돈'으로 평가해 버리는 시스템이 확고하게 자리잡았다는 그것이 이 문제의 핵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행복'이란 가치 조차 이젠 '돈'으로 환산해서 수량화 된 사회. 여기서 '돈'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절망적일 까.

자본의 세습! 사람들의 욕심이라 하겠지만... 가끔은 우리가 인간이길 포기하고 퇴화하고 있는 과정에 있는 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하긴 얼마전 발표된 최저임금안... 아니 최저임금을 정하기 위한 협상과정들...

사용자측에서는 8년 연속 고정하길 희망했다고 한다. 그래 사용자 측에서는 인건비를 어떻게든 줄이는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하면(여기선 인간을 단순한 재료로 봐야 한다.) 그들은 그렇다 치고 조정위원회의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조정안을 내놓을 수 있는지 그것또한 불가사의다...

 

이런 뉴스를 접하게 되면 나 역시도 한국을 떠나고 싶다.

태어날 때 부터 가진거 하나 없이 났으니... 뭐라도 해야 하는데 그 무엇은 재능이 없어 그저 평범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라고 하지만 돈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그 가치를 증명할 길도 없다는 것이 되어 버렸으니. 공부라도 잘하라는 말...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태어날 때 부터 있던 그들은 절대 공감할 수 없다.

 

어느 통계에서는 상위 10%에 들어 가 있는 그들은 자신들이 그만큼 노력을 했기에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가난해 지는 것은 '노력'부족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그들에게 묻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과연 노력 안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노력'이란 것을 수치화 한다면 어쩌면 상위 10%의 그들보다 나머지 90%의 사람들이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에도 절대 넘을 수 없는 벽에 막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그래 어쩌면 계나의 선택이 옳은 선택일 수도 있다.

바뀔수 없는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바뀔 수 있는 세상으로 도망이라도 가야 된다는 것. 그 선택이 호주이민이였고 결국 계나의 입장에서는 성공적인 선택이 되었다는 것. 비록 한국에서 사는 것 보다 더한 경험들과 고생을 했지만 결국은 호주의 주권을 가진 사람이 되어 한국에 있을 때 보다는 높은 계급에 올라 선것.

 

보이지 않는 계급속에서 방법을 찾아낸 계나가 성공했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소설속에서는 그럼에도 한국에 남아 있는 계나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계나의 동생이 있다.

비록 공시생으로 인생을 낭비하는 듯이 그려져 있긴 하지만, 언젠간 이라는 희망을 잡고 한국에서 살아가는 그녀, 조건이 아니라 사람이 좋아서 이름없는 밴드의 멤버지만 괜찮다는 그녀가 어쩌면 소설가 장강명이 말하고 싶어한 숨은 뜻은 아닐까.

 

그 무엇보다 '사람'그 자체를 바라보고, '사람'으로써 '사람'답게 살 고 싶다는 말을 이 소설을 통해서 하는 것은 아니였을까? 아니 계나의 문제들, 우리들의 문제들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에서 부터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모순, 사회구조의 문제, 호주이민의 현실등등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들에 꼭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터틀맨의 안타까운 죽음에서는 거북이의 경쾌한 멜로디 속에 숨어있는 슬픈 노랫말들이 생각 났고,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마지막 노래하는 모습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장강명은 계나를 통해서 호주사회와 한국사회를 비교했고,  한국사회를 그대로 옮겨간 한국 교민사회의 문제들을 바라보며 어쩌면 한국인의 속성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문제들을 해결 할 수 있는 것 역시 '우리들'이기에 한국사회에 '글'을 통해서 호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 같이 이 문제를 고민해 보고 답을 찾자고, 우리들은 할 수 있다고, '행복'이란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우리도 '사람대우'를 하며, '사람대우'를 받고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역설하고 있는 것은...아니였을까...

 

그래 나 역시 다른 분들의 견해가 궁굼하다.

우리 모두 담화를 시작해 보자!.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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