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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국가 - 우리가 목도한 국가 없는 시대를 말하다
지그문트 바우만 외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위기의 국가> 우리가 목도한 국가 없는 시대를 말하다.
지그문트 바우만과 카를로 보르도니의 대담집이다.
국가와 위기에 대한 두 석학의 폭 넓고 깊은 생각들이 담겨있다.
솔직히 쉬운책은 아니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빌려온 시간을 살아가기> 두권을 읽고 세번째 읽는 책이기에 그동안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과 글, 그리고 옮긴이의 번역에 익숙해 졌기 때문인지 앞선 두권보다는 편하게 읽었다.
여전히 불친절한 번역임을 느낀다. (글쓰기 특강 덕분에 글을 보는 눈이 높아져서 그렇다. 단점은 내글을 어떻게 고치든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
<위기의 국가>
우리는 '위기'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현 시대는 '위기'의 시대로 정의 해도 의견이 없을 정도로 우리 삶 주변에는 다양한 위기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큰 위기는 역시 '경제 위기'다. 우리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언제나 문제는 '경제 위기'라고, 하지만 이것이 다일까? '경제 위기'가 문제라고 알고 있다면, 정확히 무엇을 '경제 위기'라고 말하는지 알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 하고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정확한 정의 없이 써오고 들어 오던 용어이니까.
뉴스에서 쉽게 접하는 '경제 위기'라는 단어, 청년실업이 문제되는 것은 '경제 위기' 때문이다. 환율이 폭락하는 것은 '경제 위기'때문이다.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역시 '경제 위기'다. 무역 적자, 무역 흑자도 '경제 위기'가 원인이자 결과가 된다. 자유경제무역협정, 중산층의 몰락, 부익부 빈익빈 현상, 빈부의 격차, 노숙문제, 자살, 복지 그 어떤 문제와 결과들에서 '경제 위기'라는 단어가 꼭 들어간다. 정말 그럴까?
거의 모든 문제에 '경제 위기'가 원인이지 결과라면 결국 '자본주의'가 원인이자 결과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 그중에서도 특히 '소비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것, 현 시대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이념, 경제 원리인 '소비 자본주의'가 지금의 문제들을 만들어 온것은 아닐까?
세상에 '자본주의'가 등장한지 200여년이 됐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 문명의 역사에서 보면 지극히 짧은 200여년의 시간동은 우리는 너무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산업혁명, 문화혁명, 정보혁명, 민주주의, 사회주의, 공산국가, 자유국가 등 많은 용어들이 변화를 짐작하게 한다.
너무 갑작스러웠던게 문제였을까? 미처 변화는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없는 것일까?
인류는 지금껏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걸아가고 있다.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이렇다 할 수 없는.
어느 방향으로 바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환상, 과거를 돌아보며 현 시대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지금 '문제', '위기'라고 생각하는 것들의 원인과 결과들을 분석하고 좀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길 끝에 희망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위기'에 대해서 카를로 보르도니와 지그문트 바우만은 같으면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두 석학의 대담은 '위기'라는 말의 어원부터 더듬어 간다. '위기'는 어디서 부터 왔는지, 어떻게 '위기'라 불리고, 왜 현대 사회에 '위기'가 만연해 있는지.
카를로 보르도니는 위기가 늘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위기와 함께 살아가는데 익숙해 져야 한다고 말한다.
위기와 국면, 두 단어의 차이를 설명하면서 현시대의 위기는 결국 '책임자'의 부재로, 모든 것을 '개인'이 '책임'지는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지그문트 바우만 역시 위기에 대해 이야기 하며 현대의 문제는 결국 정치와 권력의 분리라는 상황에서 '주체'가 없기 때문이라 진단 한다.
가를로 보르도니는 '공위기'를,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사회'를 말하면서 때로는 같으며, 때로는 다른 의견들을 폭 넓고 깊게 이야기 하며, 주제에 대한 깊은 생각을 불러온다.
국가의 위기를 말하기 위해서는 '위기'와 '국가'가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 해야 한다.
두 사람이 말하는 '국가'역시 흥미롭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가'에 대한 정의
영토와 영공, 영해가 있고 국민이 있는 국가의 정의 에서 더 넓게 나아가 이념, 이데올로기 문화까지 포함한 '국가'의 의미와 그런 의미로 인해 역으로 '국가 없는 국가'가 되어버리는 상황, 현대의 지구적 범위로 민족과, 국가에 대한 의견까지 따라가다 보면, 지금껏 갇혀 있던 생각의 틀이 깨진다.
21세기, 2015년의 지구는 인터넷 공간과 '경제'의 흐름속에 많은 부분이 '지구적'이 된 세상이다.
'지구적'이란 말 그대로 물리적 공간의 범위가 지구 전체라는 것, 원한다면 지금 이곳에서 미국으로 돈을 보낼 수 있고, 순간 순간의 생각들을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문화역시 곳곳에 퍼져 있다.
거의 모든 것이 국적을 초월해 가는 세상에서 아직까지 '국가'의 틀에 얽혀 있는 것은 '정치'단 하나다.
두 사람은 '위기의 국가'를 말하면서 '근대의 위기'를 집어준다.
현대는 근대의 연속이기에 근대를 꼭 알아야 현대를 진단 할 수 있다.
근대는 격동의 시대였다, 모더니티에서 포스트모더니티를 지나 훗날 정의 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의 그 무엇!'에 대한 이야기.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아 개념을 따라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이해하기로 간단하게 말하자면 '모더니티'는 산업혁명이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확실성'을 전제로 하는 정치적인 모든 것들을 말한다면 포스트모더니티는 확실성위에 점점더 불확실해 지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19~20세기를 포스트모더니티라고 한다면, 21세기 이후는 포스트모더니티를 벗어난 그 '무엇'이 된것. 지그문트 바우만은 '무엇'을 '액체 사회'라는 새로운 '이론'을 말한다.
근대를 벗어서 인류 역사상 처음 가보는 현대와 미래, 여기서 두사람은 민주주의와 민주주의를 반대?하는 포스트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는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중은 무엇인가? 민중을 강력하게 통제했던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 받아들이는 민주주의란 '자유'와 '위협'이였고, 지금의 민주주의는 그때와 또 다른 의미가 되었다.
현대사회에서 민주주의란 어떤 의미일까? 과연 민주주의는 죽었을까? 아니면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이 민주주의의 모습일까? 민주주의 역시 앞에 '대의'라는 말이 들어간다. 소수의 의견 보다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많은 것들이 정해지는 정치형태, 대의 민주주의에서는 투표권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투표율이 점점 낮아지는 지금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요즘 교과서에는 어떻게 다룰지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시절 사회선생님의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가 떠올랐다.
"다수의 사람들이 예외되는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
이때 그 소수의 사람들이 부자들이냐고 따졌던 기억도 난다. 그리고 우리들만의 정의를 내렸었다.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게 소통하며 작은 의견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인류의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지그문트 바우만과 카를로 보르도니의 이야기를 힘겹게 따라가며, 제대로 이해 했는지 아직까지 의심스럽지만
그 들이 말하는 '위기'에 대한 것들, 결국에는 '사람'의 문제이며, '관계'의 문제가 아닐까?
'사람'이 사람보다 '자본'을 위선시 하는 도덕 없는 '자본주의'에 빠지면 서부터 문제들이 시작 된 것은 아닐까?
혁명이란 이름아래 굴복했던 많은 사람들... 그들을 '재화'로만 바라보면서 시작된 문제,
현대의 모든 문제는 '사람다움',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는 것은 아닐까?
단체에서 개인으로, 다시 개인에서 단체로 관계가 '사람대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둘 모두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고 해결해 나갈 길이란 생각을 해본다.
모든 것을 '자본의 재화'로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사람'답다는 것을 찾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