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란 계절은 감기와 함께 하기로 했나 봅니다.
한때는 열이 심하게 오르기도 했어요.
이제야 조금 잠잠해진 틈에 지난 시간의 기록을 합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8/1224/pimg_7251331102081286.jpg)
CBS 라디오 DJ 허윤희 님의 에세이 '우리가 함께 듣던 밤'
감기로 인해 잠 못 들던 지난밤, 라디오를 책으로 들었습니다.
목소리의 힘일까요? 책을 읽고 있는데 마치 라디오를 듣고 있는 생생함이 느껴졌어요.
조금 다른 점은 잠시 놓쳐도 이어 들을 수 있고, 생각이 필요할 때는 잠시 멈췄다 들어도 된다는 것.
그렇게 읽어간 밤은 지난 추억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저도 허윤희 님의 라디오에 추억이 하나 있거든요.
때는 20대 중반 막 전역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을 때였어요.
잠시 친구와 서울살이도 해봤죠. 세상에 대해서 아는 게 적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만 같았고,
힘들어도 즐거웠던 때라고 기억하고 있어요.
편의점에서 심야 알바를 시작했는데
그때 만난 친구가 라디오의 세계에 저를 이끌었습니다.
그전에는 라디오란 그냥 흘러가는 배경음쯤이었는데
지금은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있네요.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하루 8시간, 처음에는 혼자 있었는데
어느 날 사장님께서 위험하다면서 같이 일하는 친구가 생겼죠.
그 친구 덕분에 밤 10시부터 일이 끝날 때까지 매일 라디오를 들었어요.
라디오의 '라'자도 몰랐는데 라디오에도 다양한 채널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때 허윤희의 꿈과 음악사이에를 시작으로 심야 방송까지 4편의 방송을 찾아 들었죠.
CBS를 듣다가 방송이 끝나면 KBS 쿨FM으로, SBS 파워FM으로, MBC FM 4U로 옮겨 다녔어요.
심야 시간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깊은 밤 깨어있는 사람들의 일을 서로가 알게 됩니다.
다양한 이유로 깨어있는 밤,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생계를 위해서, 꿈을 위해서, 사랑 때문에, 이별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또 자신을 위해서 깨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시간 흘러나오는 음악을 함께 듣고 있으면 왠지 차분해지고, 편의점에 찾아오는 손님의 여러 표정들도 라디오 속 이야기 중 하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때 라디오의 매력에 빠져 대학을 다니던 내내 들었는데, 졸업과 동시에 마주한 야생의 거친 환경에 라디오를 들을 생각조차 못했어요.
벌써 5년 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허윤희 님의 소식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찾아보니 그 시절 밤을 함께 했던 다른 프로그램들은 전부 바뀌거나 폐지가 되었더라고요.
책을 읽으면서 소개해주는 사연 하나하나가 깊은 울림이 되어
잊었던 기억들을 추억으로 소환했어요.
좋아하는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의 고민, 어떻게 살아갈까 했던 질문과 답들,
사랑에 정답이 없지만 자신과 용기가 없었던 시간, 시험에 떨어질까 걱정도 했고, 이번이 마지막 같은 두려움에 떨기도 했던 수많은 시간들을 혼자서 보내왔던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어요.
세상에 소중한 많은 것들, 잊지 않고 응원해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있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고목처럼, 다시 찾은 허윤희 님의 라디오는 걱정과 고민이 많던 한 해의 마지막에
깊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오늘 밤은 오랜만에 꿈과 음악사이에 허윤희 님을 만나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