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억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THE ONLY STORY

 

 

우리 대부분은 할 이야기가 단 하나밖에 없다.
우리 삶에서 오직 한 가지 일만 일어난다는 뜻은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건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최종적으로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것은 단 하나뿐이다.
이건 내 이야기다.

 

 

줄리언 반스라는 이름 때문에 달달하거나 치명적이거나 스릴 넘치는 사랑은 아닐 거라 짐작은 했다.
기록이 아닌 기억인 이유가 있었다. 이것은 단 하나의 이야기 당신 또는 나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기억'이란 이름에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것이 '사랑'이라면 그 순간 모든 것이 환상으로 남기도 한다.

책은 3부로 나뉘어 사랑을 기억한다.
'사랑'...
다른 말로 바꿔봐도 담을 수 없는 무언가로 인해 결국 '사랑'이란 말로 쓰고 기억하는 것.

첫 번째 1인칭으로 쓰여긴 기록은
책 속 열아홉의 '나'로 끌고 들어간다 
아주 깊숙이...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너무나 많이 남은 나이, 경험하지 않은 것들이 경험한 것보다 많은 그때 한 남자에게 '사랑'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늘 그렇듯 우연히...
남들처럼 시작된 사랑이 남들과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결코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랑의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의 생을 '사랑'이라는 단 하나의 기억으로 각인되었다.

아무것도 없이도 무엇이든 할 수 있던 때를 지나 '삶'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때가 2인칭 시점으로 쓰인 2부의 이야기다.

그것도 사랑일까?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지며 무엇이든 하리라 다짐했던 시기
그가 사랑했던 그녀 역시 '사랑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녀가 술에 빠지게 된 것 역시 '사랑'이라 해야 할까...

그녀의 이야기는 알 순 없지만 그는 분명 '사랑'이라 기억한다.

3인칭 시점으로 기록된 3부에 '사랑'을 다시 고뇌하게 만든다.
평범한 일상이란 규칙을 만들고 규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생활을 하며 살아가면서 끝없이 생각하는 단 한 사람. 단 하나의 '사랑', 중간쯤에 잠시 착각했던 시기도 있었다는 고백,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역시 '사랑'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녀의 생에 마지막 순간 찾아가지만 역시나 '사랑'이라는 물음을 남긴 체 돌아온다. 아니 어쩌면 그제서야 떠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의 그 '사랑'으로부터.
'사랑'이라 믿었던 생으로부터...



'사랑'이란 단어에 무엇을 떠올릴까?
보통은 드라마 속의 그런 사랑들, 어쩌면 어린 시절 달달했고,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찬란했던 그런 기억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사랑이란 결코 달콤하지 않다, 씁쓸한 맛도 담고 있다는 책들은 참 많이 읽어봤던 것 같다. 하지만 줄리언 반스의 소설은 '기억'으로 간직한 '사랑' 속에 생의 착잡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명확할 것 같은 '사랑'에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아직 생의 내공이 부족한 서른이기에 일흔이 넘어간 저자의 연륜이 담긴 사랑의 기억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렬했던 처음을 떠올려 본다. 불과 10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지만 생생할 것 같은 그 순간들의 기억 속에 빠진 것들이 너무나 많다. 불과 10년... 줄리언 반스의 열아홉 살 보다 더 생생한 기록이 온라인 세상에 저장되어 있는데도 명확하지 않는다. 그때 '사랑'이라 생각했던 그녀의 얼굴은 사진으로 인해 명확하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어쩌면 상상으로 만들어 버린 허구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했던 그 순간, 웃음과 놀라움, 호기심, 모든 것이 서툴렀던 흐릿한 기억...

어쩌면 '사랑'이란 그 모든 것의 흐릿한 기억임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작가의 손을 벗어난 책은 결국 독자의 몫이라 하지만 한 남자의 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처음'과 '사랑'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p.75
어쨌든 절대 잊지 마세요, 폴 도련님. 모든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걸. 모든 사람에게. 대실패로 끝났을 수도 있고, 흐지부지되었을 수도 있고, 아예 시작조차 못 했을 수도 있고, 다 마음속에만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에서 멀어지는 건 아니야. 때로는, 그래서 더욱더 진짜가 되지.

p.85
인생에서 뭔가를 풀면 다시 그것을 풀 수 있고, 해결책은 두 번째도 똑같다는 추가의 믿음. 어떤 높은 수준의 성숙과 지혜에 이르렀다는 자신감을 준다.

p.100
나에게는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없었다. 사실 사랑이 무엇인지, 거기에 어떤 것들이 포함될 수 도 있는지 검토해보지 않았다. 그냥 나비키스에서부터 절대주의에 이르기까지 첫사랑의 모든 측면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p.136
첫사랑은 삶을 영원히 정해버린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래도 이 정도는 발견했다. 첫사랑은 그 뒤에 오는 사랑들보다 윗자리에 있지는 않을 수 있지만, 그 존재로 늘 뒤의 사랑들에 영향을 미친다.

p.141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나중에 오는 것이고, 사랑을 ‘이해하는 것‘은 현실성에 근접한 것이고, 사랑을‘이해하는 것‘은 심장이 식었을 때 오는 것이다. 무아지경에 빠진 애인은 사랑을‘이해하고‘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경험하고 싶어 하고, 그 강렬함. 사물의 초점이 또렷이 잡히는 느낌, 삶이 가속화하는 느낌,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는 이기주의, 욕정에 찬 자만심, 즐거운 호언, 차분한 진지함, 뜨거운 갈망, 확실성, 단순성, 복잡성, 진실, 진실, 사랑의 진실을 느끼고 싶어한다.

p.289
그는 가끔 자신에게 인생에 관한 질문을 전져보았다. 행복한 기억과 불행한 기억 가운데 어느 게 더 진실할까? 그는, 결국, 이 질문에는 답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p.304
몇 번의 검열에서도 살아남은 그의 공책의 한 기록.
"사랑에서는 모든 것이 진실인 동시에 거짓이다. 사랑은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한 가지 주제다."

p.358
나는 불사신이라고 느끼는데 남들은 소심한 상태, 아직 안정되지 않은 모험성 덕분에 죽어라 나아가는 것. 그래. 그 못든 것을 너무도 잘 기억했다. 그것은 열아홉 살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부는 사고가 나고 일부는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이다. 페르스타펜은 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신경 생리가 그를 온전히 분별력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놓기까지 아직 육 년이 더 남아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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