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단어에 무엇을 떠올릴까?
보통은 드라마 속의 그런 사랑들, 어쩌면 어린 시절 달달했고,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찬란했던 그런 기억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을까. 사랑이란 결코 달콤하지 않다, 씁쓸한 맛도 담고 있다는 책들은 참 많이 읽어봤던 것 같다. 하지만 줄리언 반스의 소설은 '기억'으로 간직한 '사랑' 속에 생의 착잡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리고 명확할 것 같은 '사랑'에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아직 생의 내공이 부족한 서른이기에 일흔이 넘어간 저자의 연륜이 담긴 사랑의 기억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렬했던 처음을 떠올려 본다. 불과 10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지만 생생할 것 같은 그 순간들의 기억 속에 빠진 것들이 너무나 많다. 불과 10년... 줄리언 반스의 열아홉 살 보다 더 생생한 기록이 온라인 세상에 저장되어 있는데도 명확하지 않는다. 그때 '사랑'이라 생각했던 그녀의 얼굴은 사진으로 인해 명확하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어쩌면 상상으로 만들어 버린 허구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했던 그 순간, 웃음과 놀라움, 호기심, 모든 것이 서툴렀던 흐릿한 기억...
어쩌면 '사랑'이란 그 모든 것의 흐릿한 기억임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작가의 손을 벗어난 책은 결국 독자의 몫이라 하지만 한 남자의 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처음'과 '사랑'은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