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스무
살 남짓했던 나이, 여러 이유로 시작했던 서울살이가 있어 그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처음 '작품'을 접했던 것은
'서울디자인올림픽'에서다.
서울살이 초반 복학하기 전에 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때.
생활비 마련을 위해 시작한
알바가 행사 진행 보조요원이었다.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에는 각종 잡무를 맡았고, 행사기간에는 진입로 주차요원으로 있었던 때.
정신없이 보내던 날들 속에서
고등학생부터 예술가라 불리는 사람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디자인이란 카테고리 안에 너무나 다양했던 작품들,
일상생활에 흔히 보이는 물건
하나가 누군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배웠다.
서울살이, 친구와 함께했던 생활이지만 인생의 앞날을 두고 고민이 많았던 때이기도 하다.
학교는 청주에 있어 먼
거리를 통학해야 했고, 덕분에 시간표를 잘 짜야만 했다.
시간을 아껴야 했고, 생활을 위해서 끊임없이 알바를 해야 했다.
친구는 친구대로, 나는
나대로 바쁜 생활 속에서 올림픽공원이 가까웠던 자취방 덕분에
소마 미술관에 전시를 보러 다녔었고, 1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틈만 나면 박물관과 여러 미술관에
갔다.
별 이유는
없었다. 수천 년의 유물부터 불과 몇 년 안된 그림이나 조각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홀로 보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작품을 남긴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영원할 것 같던 시간들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쌓였던 스트레스도 절로 풀렸었다.
사정이 있어 서울 생활을
접고 다시 집에서 학교를 다녔을 땐
거리상의 문제로 자연스럽게 전시와 멀어졌다.
그렇게 학생일 땐 그냥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것이 즐거웠지만 그림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품진 못했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라는
압박에 정신없이 보냈던 시간.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기도 했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던 어느 날
무작정 서울 가는 버스를
탔다. 목적 없이 출발한 서울행.
습관처럼 찾아간 인사동 거리, 우연히 관람한 전시
한국 화가 김현정 작가의
"내숭 올림픽"
전시장에 관람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더군다나 한복을 입고
전시장을 찾아온 사람들이라니!!
복잡한 와중에 바라본 작품들은 웃음 짓게 했다.
동양화인데, 한복을 입은
여인이 그네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구 큐를 들고 있다니!!
공원의 운동기구에서 국가대표만큼 진지한 얼굴로 운동을 하고 있는 여인이라니!!!
수묵화가 주는 그 느낌을
뭐라 해야 할까.
예스러우면서도 현대스러운 느낌. "내숭 폼생폼사"라는 작품은 자꾸만 돌아보게 했다.
그때 처음 이런 그림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구장에서 알바를 했던 기억, 가족과 함께 당구를 즐겼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자넷 리, 차유람의 사진이
아니라 멋진 남자들이 배경으로 걸려있고
한복 입은 여인이 우아하면서 진지하게 당구공을 노려보고 있는 그림.
가지고는 싶은데 이런 그림도
파는 걸까?
아니
그림도 사고파는 상품인 걸까?
가격은 얼마나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뚜렷하다.
그 뒤로 막연하게만 언제
기회가 되면 그림을 사야겠단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막연함은 여전히 막연한 체로, 마음만 남아 있던 차에 <월급쟁이 컬렉터
되다>란 책을 만났다. 월급쟁이라는 말에 펼쳤던 책은 그냥 작품을 사고 싶다는 마음만 키웠지, 정작 실행에 옮기진 못 했다. 그리고 이번에
만난 <아무래도 그림을 사야겠습니다>는 밤하늘의 별빛처럼, 망망대해에 등대처럼, 막연함이란 안개를 걷어내고 현실이란 햇살을
비추었다.
살다 보면 그림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온다.
하지만 그림에 대해선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림뿐 아니라 '작품'은 모두 그렇다.
그냥 책이나 물건들처럼
가격이 정해져 있고 파는 곳도 확실하다면 고민하지 않을 텐데.
그림은 어디서 어떻게 사야 하는 걸까? 아니 살 수는 있는 걸까? 싶은 생각이 먼저 들기도
한다.
더군다나 종종
뉴스에서 접하는 소식이란 누구의 그림이 어디 옥션에서 최고가를 경신했다.
누구의 그림은 몇억이다.
하는 이야기,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장에 가면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 작품 값만 몇 백에서 몇 천억이 훌쩍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그림은 비싸다는 편견을 만든다.
책은 가격부터 현실감 있게 제시한다.
저자도 책을 쓰면서 마음먹은
가격이 500만 원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투자가치 때문에 500만 원이 기준이 되었다.